국민 5명 중 1명 이상이 본 영화가 바로 아바타이다. 열풍을 넘어 '광적'인 수준이다. 지금도 그 열풍은 계속되고 있다. 요즘 우리나라에선 아바타를 보지 않으면 영화를 이야기할 수 없을 지경이다. 하지만 정작 난 이런 저런 이유로 아직 아바타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구태여 보지 않아도 주위에서 온통 아바타 이야기를 하는 통에 내용은 대충 알고 있다. 주위에선 아바타를 안 봤다고 하면 마치 영화의 문외한 취급을 한다.
하지만 관객 1000만 명을 훌쩍 돌파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약간의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다. 그 이유를 이해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작품이 뛰어난 덕분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외화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한다는 것은 작품성 그 이상의 무엇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집단주의와 단일민족으로 대별되는 광적인 우리의 문화 때문은 아닐까?
이와 관련하여 <조선일보>의 "아바타 열풍의 뒤안길"이라는 데스크 기사가 나의 답답한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아바타'가 전 세계 극장에서 우리 돈으로 2조 4000억원 넘는 매출을 올리는 데는 한국 '공(功)'도 작지 않았다. 아바타가 개봉 7주 만에 벌어들인 돈 20억 7500만 달러 중 71%는 미국 밖 관객이 낸 티켓 값이다. 이 중 프랑스 관객이 지난 주말까지 1억 3400만 달러를 내 단연 1위이고, 한국은 8846만 달러로 7위다. 두 나라 사이엔 중국·독일·영국·러시아·일본이 있다. 한국은 아바타 흥행 대열에 선진국·인구 대국(大國)들과 함께 나란히 서 있다.
인구 한 사람당으로 따지면 한국인은 1.82달러를 아바타를 보는 데 썼다. 프랑스인(2.09달러)과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일본(0.72달러)과 브라질(0.23달러)에 비하면 월등히 높은 액수다. 프랑스와 한국의 영화 관객 규모는 큰 차이가 없다. 프랑스에서 1년간 극장을 드나드는 인원의 합계는 1억 7700만 명(2007년 기준), 한국은 1억 5800만 명이다. 그러나 이것은 극장에 직접 간 관객만의 숫자이고 DVD나 비디오, 온라인 영화를 포함하는 '부가(附加) 상영 시장'까지 따지면 달라진다.
프랑스 전체 영화시장에서 극장 상영 시장의 규모는 40%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60%는 DVD 등으로 영화를 본다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정반대다. 영화시장 전체에서 극장 매출의 규모가 78.4%나 된다. 그리고 이 비율은 점점 올라가고 있다. DVD와 비디오를 보지 않고 불법 다운로드가 여전히 기승(氣勝)을 부리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비디오 대여점 씨가 급속히 마른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결국 프랑스 사람들은 평소 한국 사람보다 영화를 훨씬 더 많이 보고 있다는 얘기다. 이것은 두 나라 전체 영화시장 규모(프랑스 4조 1400억 원, 한국 1조 5000억 원)의 차이로도 드러난다. 즉, 한국인이 1년에 영화 관람에 1인당 3만1000원쯤 쓸 때, 프랑스인은 두 배 넘는 6만4600원을 쓴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아바타에서만큼은 한국에서 세계적 규모의 관객이 영화관으로 몰려온 것일까?
우리 문화를 살펴보면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역설적으로, 한국인은 영화를 보지 않기 때문에 아바타를 본다.
평소에는 영화를 보지 않다가 뭔가 '대박'이 난 영화라면 '그런 영화쯤은 봐 줘야지' 하는 심정으로 극장에 가고, 일반 극장에서 본 사람이 3D로도 보고 아이맥스로 또 본다.
이런 가설 말고는 전체 인구의 5분의 1 이상이 한 영화를 보는 이 놀라운 '사태'를 설명할 길이 없다.
이런 우리 사회에서 아바타 흥행 열풍의 뒤안길에 총 관객 수 100명 남짓인 성적으로 간판을 내리는 독립영화들이 한둘이 아니다.
우리는 영화뿐 아니라 연극도 잘 보지 않고 콘서트에도 잘 가지 않으며 박물관, 미술전시회 방문횟수도 극히 적다.
그 모든 문화 예술을 안방에서 TV로 소비한다.
TV를 봤을 뿐인데 문화 예술 분야를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TV 프로그램 '영화가 좋다'를 보고 영화를 안다고 생각하고, 'TV 인기가요'를 본 뒤 요즘 대중음악에 대해 말하는 식이다.
'TV쇼 진품명품'을 보고 문화재와 고(古)미술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박물관에서 사람들이 툭하면 국보(國寶)나 보물의 값이 얼마냐고 물어보는 것이 이런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아바타 한국 관객 1000만 명 돌파를 보면서 썰렁하게 비어 있는 다른 영화관, 연극 극장, 콘서트 장, 박물관, 미술 전시회가 떠오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국인은 영화를 보지 않기 때문에 아바타를 본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독립영화의 90%가 관객 100명도 안 된다."는 것을 작품성으로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이것은 비단 영화와 연극뿐만 아닐 것이다. 출판 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100만부 이상의 베스트셀러 뒤에는 1000부도 채 팔리지 않는 책이 95%를 넘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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