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경영/꿈과 비전

꿈을 디자인하라

김부현(김중순) 2010. 3. 22. 14:39

꿈, 그것은 무겁고 딱딱하게 다가온다.

부드럽고 가벼운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꿈, 그것은 결과물로 평가받는 것처럼 다가온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꿈, 그것은 특별해야 가질 수 있는 것처럼 다가온다.

가졌기 때문에 특별해 지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꿈, 그것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처럼 다가온다.

배우고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꿈, 그것은 항상 커야 하는 것처럼 다가온다.

작은 꿈도 소중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꿈, 그것은 좋아하는 일을 해야만 하는 것처럼 다가온다.

좋아하지 않는 일에서도 좋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꿈, 그것은 차렷 자세여야 하는 것처럼 다가온다.

편히 쉬어 자세도 가능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꿈, 그것은 승자의 전유물처럼 다가온다.

꿈꾸는 모든 사람들의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하루 세 끼 먹고 사는 것이 급급했던 시절, 그땐 '꿈이 뭐냐'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 간혹 있다하더라도 '꿈이 밥 먹여 주냐'고 따지면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먹고 사는 것이 해결된 지금도 여전히 '꿈이 뭐냐'고 묻는 것은 마치 상대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한 사람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쉽게 묻지도 않거니와 여간해선 대답도 잘 하지 않는다. 또한 마음속에는 모두 꿈을 간직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 꿈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고민하지 않는다. 이를 구별하는 기준은 '꿈이 뭐냐'고 물었을 때 머리를 쓰는가 여부이다. 머리를 쓰면서 머뭇거린다면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 그 어떤 의도됨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꿈은 머리가 아닌 가슴이 답한다. 따라서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그야말로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던 어린 시절, 그 때 난 꿈이 무엇인지 몰랐다. 구태여 꿈이라고 한다면, 그 지긋지긋한 산골을 탈출하는 것이었다. 타 지방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비로소 탈출에 성공했기에 18살 때, 그 꿈을 이룬 셈이다. 하지만 철이 들면서 잠자는 거인을 깨우고 싶었고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너고 싶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무엇을 타고 강을 건너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해 주지 않았다. 뗏목을 타고 건너야 하는지, 배를 타고 건너야 하는지, 비행기를 타고 건너야 하는지, 아니면 걸어서 건너야 하는 것인지를 말이다. 따라서 너무 멀리서, 너무 높은 곳에서 비행기로만 건너려고 준비한 탓에 이렇게 오래 걸렸던 것 같다. 뗏목은 늘 내 곁에 있었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꿈은 내게 너무 무겁게 다가왔고, 똑똑해야 하고 그리고 가방끈이 길어야 하는 것으로만 알았다. 총명하지 않은 놈이 무거운 것을 단번에 들려고 하니 들 수가 없었다. 따라서 불가능한 일이 되었고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조금씩 나누어서 들 수도 있었는데 기중기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었다. 또한 만화책은 누워서 땅콩 먹으면서 보는 것으로 알았지만 꿈은 바른 자세를 하고 머리띠를 두르고 골방에서 코피를 흘려가면서 해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고시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 무지해서라기보다는 이미 너무 많이 알고 있었다. 너무 많이 알고 있었기에 주판알만 튕기면서 늘 준비만 한 결과 그 어떤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것은 기법이 아니라 마음의 차원이었기 때문이다.

 

몰라서 꿈꾸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알고 있다고 모두 꿈꾸는 것은 아니다. 역설적으로 너무 많이 알고 있기에 꿈꾸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기법이 아니기에 요술방망이 같은 비법이나 지름길은 처음부터 존재할 수도 또 존재하지도 않는다. 수학은 이른바 '족집게 과외'가 가능할지 모르지만 꿈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그 족집게 과외를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마치 떨어지는 바위를 계속 산위로 밀어 올리는 시지프의 형벌처럼.

 

내가 감히 꿈이라는 주제로 글을 쓴 진짜 이유는 나 자신에 대한 후회에서 기인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배울 만큼 배웠고 알만큼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몰랐다. 정말 몰랐다. 언제가 문제인지, 언제 시작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이다.

혹시라도 꿈에 대한 체계적이고 일목요연하게 어떤 비법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책을 잘못 선택했다고 후회할지도 모른다. 또한 표준화된 통계나 자료에 근거해 행동하고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나의 글이 실망스러울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기승전결과 같이 순서대로 잘 정리된 글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역시 번지수가 틀렸다. 꿈이란 표준화되고 체계화된 통계자료나 수치로 아무리 잘 무장시킨다 하더라도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의 글은 거칠다. 매끄럽지도 않다. 굳이 매끄럽게 써야 할 이유 역시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다 알려진 것을 반복하는 것뿐이니까. 그러므로 승자의 언어가 아닌 우리들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누구든 배움이 부족해서, 능력이 부족해서 꿈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일상에서 '약간의 자극'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굳이 비법이 있다면 삶에 약간의 자극을 주는 것이다. 나태함에 대한 자극, 변화에 대한 자극, 그리고 행동에 대한 자극 말이다. 이것이 모여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이 되고 이야기가 되고 꿈이 되기에.

 

따라서 정상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 그리고 꿈이란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알고 있지만 실천이 어렵다는 것에 의견을 같이 하는 사람들, 그들과 함께 하고 싶다.'약간의 자극'이 반복될수록 정상은 가까워진다. 하지만 지속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길거리에 휴지를 버리지 않아야 하는 사소한 것조차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지금도 누군가에 의해 여전히 휴지는 버려지고 있다. 결국 주어진 환경, 가치관, 능력이 각자 다르기 때문에 그 비법은 바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단지 '약간의 자극'이 필요할 뿐이다. 절망에 빠지거나 실패했을 때 엉덩이를 툭툭 쳐 줄 수 있는 조그만 자극 말이다.(중략)

 

-꿈디자이너의 <꿈을 디자인하라>, 머리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