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국무총리는 20일 대전에서 기독교계 인사들을 만나 "지금까지 여러분과 충분히 상의하지 않고 세종시 수정 계획을 추진해온 것을 진정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정부가 세종시 수정을 추진하면서 최대 이해당사자인 충청권과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머리를 조아린 것이다.
정부가 사업을 추진하는 원뜻, 국민의 그 사업에 대한 이해의 정도, 반대파의 반대 논리가 저마다 제 갈 길을 가면서 하나로 통일되지 못한 것이 세종시 하나뿐이 아니다. 정부의 또 다른 핵심 정책인 4대강 사업 추진 과정도 다를 게 없다.
정부가 이 사업의 첫 삽을 뜬 지 1년여가 지났지만 국민들 가운데 상당수는 '4대강 정비는 홍수 피해 방지, 물 부족 해결, 수질 개선, 하천 살리기의 지름길'이라는 정부 주장을 아예 모르고 있다. 그 결과 국민의 과반(過半)인 56.8%가 4대강 사업에 반대하고 37.3%만이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한국리서치 2월 22일 조사).
대통령은 그동안 공무원들에게 "(4대강 사업에) 역사적 소명(召命) 의식을 갖고 참여하라"고 당부해 왔고, 대통령이 세종시든 4대강이든 국민 앞에서 직접 설명하고 설득해 왔다. 민주정치에서 국민을 설득해 정부 정책을 지지하도록 만들고 반대를 최소화하는 최종적 역할은 대통령의 몫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이런 역할을 최대한 능률적으로 수행하려면 대통령의 직계 참모인 청와대 수석비서관과 각부 장관들이 사회단체·학계·언론계 등을 접촉해 각 정책에 대한 기초 정보를 미리 제공하는 사전(事前) 정지(整地)작업을 통해 대통령의 국민 설득이 이뤄질 '신뢰의 공간'을 미리 넓혀 놓지 않으면 안된다. 대통령의 정치적·감성적 호소는 이런 토대 위에서 국민을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쪽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 사전 정비작업이 아예 없거나 불충실할 경우 대통령의 국민 설득은 불발(不發)로 끝나버릴 가능성이 크다.
천주교 최고 의결기구인 주교단회의의 강우일 의장은 지난 12일 4대강 사업 반대 성명을 발표하면서 "정부 실무진과 반대쪽 의견을 모두 들었지만 정부 설명이 너무도 미흡했다"고 했다. 정부측이 주교단의 비중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도 '실무진'만 내보냈고, 그나마 그 실무진의 설명조차 '미흡했다'는 것이다.
사실 청와대 수석 가운데 누구 한 사람도 대통령보다 앞서 국민은 물론이고 4대강 사업 반대측을 설득하는 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자신들의 직분은 책상 위에서 정책을 만들고 다듬는 것일 뿐 국민 설득은 대통령 몫이라고 미리 역할을 구분해온 것이다. 대통령 참모들이 직접 국민을 상대로 혹은 사회종교단체·학계·언론계 등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중간 지대에 위치한 오피니언 리더들과의 소통 작업에 손을 놓아 버린 채 국가 사업에 대한 국민의 이해 저조(低調)를 오피니언 리더들의 비협조 탓으로 돌리는 것은 일종의 직무 유기(遺棄)다.
-<조선일보>, 사설, 2010.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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