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유가 있는 것은 분명 행복이다. 그리고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많다는 것은 더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이 많은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그렇까? ‘선택’이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역설적인 상황을 통해서, 사람들이 선택의 과정에서 받는 후회와 스트레스를 줄이고 최선의 만족에 이르는 길을 안내하는 책이 있다. 바로 <선택의 심리학>이다.
책은 선택의 기회비용, 손실혐오, 극대화자와 만족자 등 경제학의 개념을 선택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심리 반응과 접목시켜 사람들이 왜 자신의 선택에 만족하지 못하는 가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인 배리 슈워츠는 선택을 통제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제한하고,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것이 우리 삶에서 후회와 스트레스, 분주함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만족하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라는 것임을 강조한다.
수많은 선택에 둘러싸인 현대인 ‘삶에 대한 만족도 수준’을 측정한 최근 조사에서 부자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가난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보다 덜 행복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일본의 평균 소득은 폴란드의 10배에 가깝지만, 행복한 사람들의 수는 두 나라가 거의 비슷했다. 지난 40년 동안 일인당 소득이 2배 이상 높아진 미국인들도 행복지수가 거의 높아지지 않았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국가가 성장한 만큼 선택지의 수도 늘어났지만 그들은 자신이 더 행복해졌다고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현대에 들어서 우울증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어째서 선택의 기회가 늘어난 현대인들의 삶의 만족도가 떨어진 것일까? 우리는 청바지를 사건, 커피를 주문하건, 여행을 하건, 대학에 지원하건, 배우자를 고르건 매순간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말이다. 심지어는 외모까지도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처럼 삶의 모든 과정이 곧 선택의 문제로 직결되며, 우리는 항상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선택의 가짓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자유와 자율은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데 필수적인 것이다. 그리고 선택은 자유와 자율에 필수적인 것이다. 현대인들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선택의 자유가 주어졌다. 선택의 자유는 우리 스스로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 자율성을 보장한다. 그리고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많을수록 더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고,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을 찾아낼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더 행복해질 거라고 믿는다.
여기에 대해 이 책의 저자 배리 슈워츠는 이렇게 반문한다. “과연 그럴까?”
<선택의 심리학>은 선택의 순간 우리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반응을 흥미롭게 분석하고 그런 반응들이 어떻게 우리의 결정에 영향을 끼치는지 설명해준다. 또 우리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자유와 자율성의 상징인 ‘선택’이 오히려 해결책이 아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역설적인 상황을 통해, 우리의 심리 기제를 적절히 활용하여 선택이 주는 후회와 스트레스를 줄이고 최선의 만족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가를 제시해준다.
선택의 기로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갈등하는 사람이나 다시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올바른 선택의 길을 알려주는 나침반의 역할을 해줄 것이다.
-왜 선택하면 후회하게 되는 걸까?
-최선을 다해 골랐다고 생각했는데, 왜 결국은 나의 선택에 대해 후회를 하게 되는 걸까?
-왜 항상 내가 선택한 것보다 다른 사람이 선택한 것이 더 나아 보일까?
-선택으로 인해 분명 무언가를 얻었는데, 오히려 무언가를 잃은 듯한 상실감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한 번에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할 수는 없는 것일까?
저자는 이런 의문에서 출발하여 선택으로 인해 일어나는 인간의 심리와, 그러한 심리적 반응이 결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분석한다. 특히 선택의 기회비용(opportunity cost)과 손실 혐오(loss aversion), 극대화자(Maximizer)와 만족자(Satisficer) 등 경제학에서 발생하는 개념을 선택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심리 반응과 접목시키는 독특한 방법을 통해 왜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에 절대 만족하지 못하는가를 명쾌하게 설명해낸다. 이러한 연구 과정을 통해 우리가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개인적 자유와 자율성의 상징인 선택이 오히려 우리의 심리적, 감정적 만족에 해를 줄 수 있으며,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선택의 패러독스’를 보여준다.
저자는 선택을 통제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제한하고, 중요한 것에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무시하는 것이 역설적으로 우리의 삶에서 후회, 스트레스, 걱정 그리고 분주함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선택에 만족할 때 그것이 바로 최상의 선택이라는 것이
수년간 사람들의 선택에 관해 연구한 그의 결론이다.
* 선택의 순간,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선택 심리의 비밀
1. "극대화자와 만족자"-고르고 또 고른 건데, 왜 만족스럽지 못할까?
최고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려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을 극대화자(Maximizer)라고 한다. 극대화자는 자기 나름의 기준을 갖고 그 기준에 만족할 줄 아는 만족자(Satisficer)보다 불행하다.
2. "선택의 기회비용"-이것도 괜찮은 것 같고 저것도 괜찮은 것 같고…
선택의 기회가 늘어나면 고려해야 할 대안의 수도 많아지고 포기한 대안의 수도 많아진다. 우리는 포기한 대안들을 마음속에서 지우지 못하고, 고려했지만 선택하지 않은 그 모든 대안들 때문에 우리가 한 결정에서 얻은 만족이 희석되는 실망스러운 경험을 하게 된다.
3. "비교 선택의 심리"-‘아까 그게 더 좋은데…’ ‘저 사람 게 더 나아 보여…’
우리는 선택의 결과에 대해 끊임없이 다른 대안들과, 혹은 다른 사람의 경우와 비교하면서 그것에 영향을 받게 된다. 따라서 수많은 대안들은 궁극적으로 선택에 대한 만족을 줄이는 이유가 된다.
4. "손실 혐오 반응"-수수료는 싫다, 현금 내고 할인 받자!
무언가를 선택했을 때 다른 대안을 잃었다는 상실감에서 오는 실망감은 선택으로 얻는 기쁨보다 2배 이상 크다. ‘카드 결제시 수수료 추가’와 ‘현금 내고 할인 받자!’가 동일 가격을 지불함에도 다르게 느껴지는 까닭은 마음속에 자리 잡은 ‘손실 혐오’ 때문이다.
5. "간발 효과"-조금만 더 좋았다면 정말 완벽한 선택인데…
10분 늦어 기차를 놓쳤을 때보다 3분이라는 ‘간발의 차이’로 기차를 놓쳤을 때 후회와 실망이 더 크다. 이처럼 선택을 통해 얻은 결과가 기대치에 아주 조금 못 미칠 때, 후회는 더 커진다.
6. "적응의 이중 심리"-처음 살 때만 좋았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선택한 결과가 당장에는 만족스럽더라도 점차 그 결과에 익숙해지면 이내 실망하고 좀더 나은 대안을 찾기 위해 애쓰게 된다. 그 결과 선택의 과부하가 유발된다.
7. "결정 후 후회와 예상 후회"-‘아까 그걸 고를 걸…’ ‘이걸 사면 후회하지 않을까?’
선택 후 결과가 좋지 않거나 더 좋은 대안을 찾아낼 때, 우리는 ‘결정 후 후회’를 하게 된다. 결정하기 전부터 가능한 대안을 모두 고려하며 ‘예상 후회’를 하기도 한다. 선택의 가짓수가 많아질수록 후회도 늘어난다.
* Prologue에서,
6년 전쯤에 청바지를 사러 옷가게에 갔을 때의 일이다. 젊고 예쁜 점원이 다가와서 도와줄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청바지를 사려구요. 사이즈는 32-28입니다.” “어떤 것을 원하세요? 꼭 끼는 것, 무난한 것, 편안한 것, 헐렁한 것, 아주 헐렁한 것?” 계속해서 그녀가 물었다.
“세척 방식은요? 돌세척인가요, 산세척인가요? 단추형인가요, 지퍼형인가요? 탈색형인가요, 표준형인가요?” 순간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다소 촌스럽게 이렇게 얘기했다. “그냥 평범한 청바지를 원해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하지만 그녀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그날 청바지 하나를 사는 데 하루를 소비했다. 그 옷가게는 이 모든 선택의 기회를 제시함으로써 고객들에게 다양한 취향과 사이즈로 봉사를 한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선택의 기회 속에 나는 복잡한 결정을 내려야 했고, 결국 시간과 정력, 그리고 꽤 심각한 자기의심, 걱정, 그리고 피곤이라는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핵심은 이것이다.
* 선택의 수가 점점 더 늘어날 때, 그와 같은 다양성이 제공하는 자율, 통제, 그리고 해방은 강력하고 긍정적이다.
* 하지만 선택의 수가 계속해서 늘어나면, 다수의 대안에 따른 부정적 측면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 선택의 수가 한층 더 늘어나면 부정적인 측면들은 점점 더 커지고, 우리는 과부하(over-load)를 안게 된다.
이 시점이 되면, 선택은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무력화시킨다. 앞으로 보게 되듯이, 선택의 과부하에는 비용이 따른다. 내가 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많은 선택의 자유를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감은 덜한 것 같다. 나는 이 책에서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안하려고 한다. 우리는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서는 좋은 선택을 하는 법을 배우고,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는 걱정을 줄이고 짐을 덜어냄으로써 자유롭게 살 수 있다.
-선택에 지배당하는 사람들-
* 밑지는 건 참을 수 없다 - 손실혐오자
당신은 100달러를 확실하게 받고 싶은가, 아니면 내가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200달러를 받고 뒷면이 나오면 아무것도 받지 않기로 하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확실하게 100달러를 받는 쪽을 선호한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잠재적 이득과 관련된 선택을 할 때 위험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번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볼 수 있다.
당신은 확실하게 100달러를 잃겠는가, 아니면 내가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200달러를 잃고 뒷면이 나오면 아무것도 잃지 않는 것으로 하겠는가? 여기서는 후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더 높다. 사람들은 잠재적 손실과 관련된 선택을 할 때는 위험을 기꺼이 안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일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손실에 의한 심리적 효과는 이득에 의한 효과보다 적어도 2배는 크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는 잃는 것을 너무나도 싫어하는데, 심리학자인 카너먼과 트버스키는 이것을 ‘손실 혐오(loss aversion)’라고 얘기한다.
당신은 식당에서 음식을 먹거나, 음악을 듣거나, 혹은 영화를 보러가는 것을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는다. 음식이나 음악이나 영화가 그 순간에 당신에게 주는 느낌은 ‘경험 효용’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은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하기 전에 그것을 선택해야만 한다. 당신은 식당이나 CD나 영화를 골라야 하며, 그런 경험이 당신에게 어떤 느낌을 줄지 ‘기대하는’ 방식에 근거해 그와 같은 선택을 한다. 그래서 선택은 ‘기대 효용’에 바탕을 둔다.
그리고 특정한 식당, CD, 혹은 영화에서 경험을 하고 나면 그와 같은 경험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미래의 선택을 한다. 다시 말해, 당신의 미래 선택은 ‘기억 효용’에 바탕을 둔다. 따라서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고 말하는 것은 세 가지 효용이 서로 작용하면서 기대 효용이 경험 효용과 상응하고, 경험 효용이 기억 효용에 충실히 반영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와 같은 세 가지 효용이 멋지게 일치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가령 당신은 일부 멋진 순간들이 있었지만 끝은 별로였던 3주일의 휴가보다 일부 멋진 순간들이 있었고 더 멋지게 끝난 일주일의 휴가를 더 즐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햇빛 속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경치를 구경하거나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보냈던 나머지 2주일은 시간이 지나면 기억에서 사라지기 때문에 별 차이를 만들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일주일의 멋진 휴가와 멋진 일주일 후에 그럭저럭 좋은 2주일이 이어지는 3주간의 휴가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낫다고 확신하기 어렵다. 하지만 사람들은 일주일의 멋진 휴가를 더 좋아한다고 얘기한다. 논리와 기억의 차이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늘 알지는 못한다고 지적한다.
이와 같이 어떤 경험을 하고 난 후에 어떤 기분일 것인지에 대한 우리의 예측이나 그런 경험을 할 때 느꼈던 기분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그런 경험이 일어나는 동안에 우리가 실제로 느끼는 기분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과거에 대한 기억과 미래에 대한 예측을 바탕으로 선택을 한다. 점점 더 커지고, 혼란스럽고, 상충하는 선택들의 세상에서 우리는 (현명한 결정의 첫 번째 단계인) 정확한 목표 설정과 관련된 어려움 때문에 실제로 내리는 선택들에서 실망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좋은 정보를 찾아낸다 해도, 그렇게 많은 정보들 속에서 그것들을 제대로 분석하고 걸러내고 평가해서 올바른 결론에 도달하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늘 그렇지는 못할 것이다. 당신은 지금 새 차를 사기 위해 시장에 있고 당신의 관심은 안전성과 신뢰성 두 가지뿐이라고 생각해보자.
당신은 성실하게 「소비자 보고서」를 확인하였고, 이 잡지는 안전성과 신뢰성에서 볼보에 가장 높은 점수를 매기고 있다. 그래서 볼보를 사기로 결심한다. 그날 저녁, 당신은 칵테일파티에서 친구에게 당신의 결정에 대해 얘기한다. 그런데 그녀는 “볼보를 사지 않는 게 좋을 거야”라고 얘기한다. 당신은 이런 얘기에 어느 정도 비중을 두어야 할까? 이 얘기를 듣고, 수많은 사례를 바탕으로 한 「소비자 보고서」의 평가를 믿지 말아야할까? 당연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논리적으로 친구의 얘기는 당신의 결정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와 같은 종류의 개인적 평가에 상당한 비중을 둔다. 때로는 거기에 지나치게 의존해서「소비자 보고서」의 긍정적 평가를 뒤집기도 한다. 대부분의 우리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생생하고 자세할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직접 듣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더 큰 비중을 둔다. 개인적 경험의 다양성은 잘못 선택할 가능성을 줄일 수 있지만, 과연 우리가 의존할 수 있는 경험의 다양성이 어느 정도인가? 우리가 직면하는 선택의 수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의 양도 그만큼 늘어나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점점 더 개인적 경험보다 간접적 정보에 의존하게 될 수도 있다. 게다가 통신이 갈수록 지구화되는 세상에서 각각의 개인은 어디에 있건 ‘같은’ 간접적 정보에 의존하게 될 수도 있다.
CNN이나 USA 투데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이것은 한 개인이 잘못 이해하고 있더라도 친구들과 이웃들이 교정해줄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그들은 같은 뉴스를 보고 들었기 때문에 똑같이 잘못된 이해를 공유하게 된다. 당신이 어디에서나 똑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당신은 그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을수록 사람들은 그것을 더 자주 반복하게 될 것이고, 그래서 당신은 그것을 더 자주 듣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부정확한 정보는 부화뇌동의 효과를 가져 올 수 있고, 그 결과 빠르게 폭넓은, 하지만 잘못된 합의를 초래할 수 있다.
선택의 대안과 기회의 증가는 세 가지 부정적 효과를 초래한다.
첫째, 결정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둘째, 더 많은 실수를 유발한다.
셋째, 실수의 심리적 결과를 더 심각한 것으로 만든다.
* 고르고 또 골라도 만족할 수 없다-극대화자
현명한 선택은 우리의 목표를 분명하게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우선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는 목표와 충분히 좋은 것을 선택하는 목표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극대화자는 자신이 하는 모든 구매나 결정이 반드시 최고이기를 고집한다. 그러나 무엇이 최고인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그것을 아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대안들을 확인하는 것이다. 극대화자는 모든 스웨터를 보아야만 자신이 가장 좋은 스웨터를 찾았다고 확신할 수 있으며 모든 가격을 확인해야만 가장 좋은 가격으로 구매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의 결정 전략으로서 극대화는 엄청난 부담을 안겨주며, 대안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그 부담은 한층 더 커진다. 극대화자의 대안은 ‘만족자’이다. 무언가에 만족한다는 것은 충분히 좋은 것을 받아들이고, 더 좋은 것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
수많은 선택이 야기하는 문제들은 만족자보다 극대화자에게 훨씬 더 심각할 수밖에 없다. 당신이 만족자라면 결정을 할 때 수많은 대안들의 영향을 크게 받을 필요가 없다. 당신은 하나의 대안이 당신의 기준에 충분히 맞기만 하면 더 이상 탐색하지 않는다. 그래서 수많은 다른 대안들은 당신과 무관해진다. 하지만 당신이 극대화자라면 수많은 대안들은 당신을 끝없는 걱정과 후회, 그리고 자기의심의 덫에 빠뜨릴 수 있다. 그렇다면 극대화자는 만족자보다 덜 행복한가?
우리는 이런 가정을 확인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여러 해 동안 ‘잘 사는 것’의 지표라고 여겨졌던 것에 관한 다양한 설문지를 보여주었다. 우리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즉, 극대화 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삶에 덜 만족했고, 덜 행복했고, 덜 낙천적이었고, 더 우울증을 경험했다.
극대화 수준이 아주 높은 사람들 -91점 가운데 65점 이상을 기록한 사람들- 의 우울증은 병적인 수준에 가까웠다. 극대화자는 온갖 종류의 후회, 특히 소위 ‘구매자의 후회’에 만족자보다 훨씬 더 민감하다. 당신이 만족자라면 당신의 기준에 맞는 충분히 좋은 것을 선택할 때, 바로 길모퉁이에 더 좋은 것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덜 사로잡힐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극대화자라면, 그와 같은 발견은 극심한 고통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아, 가게를 한 군데만 더 갔더라면…”, “아, 소비자 보고서를 읽었더라면…”, “잭의 충고를 받아들였더라면…”
당신은 이와 같은 후회를 무한대로 할 수 있고, 매번 후회를 할 때마다 당신은 자신이 선택한 결과에 대해 덜 만족하게 된다. 매번 결정을 내릴 때마다 후회를 하는 삶은 힘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후회를 하는 사람들은 좋은 결정에서 비롯되는 만족감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적어도 일부를 잃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런 사람들은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후회를 경험할 수도 있다. 그들은 더 좋은 대안을 발견할 때 어떤 기분일지 상상한다. 이렇게 불필요한 상상은 그들을 삶의 모든 결정의 불확실성과 나아가 비참함의 덫에 빠지게 한다.
우리의 연구 결과는 극대화자들이 개인적인 삶의 질에서 상당한 대가를 지불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들의 완벽 추구는 적어도 더 좋은 결정으로 이어지는가? 그 답은 복합적이다. 극대화자는 만족자보다 ‘객관적으로’ 더 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주관적으로’ 더 못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우리는 결정의 질을 평가할 때 무엇이 중요한지 자문해야 한다. ‘객관적 결과’인가, 아니면 ‘주관적 경험’인가? 내가 볼 때, 대개의 경우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내린 결정에 대해 느끼는 기분이다. 경제학자들은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행동에 관한 이론을 전개할 때, 사람들은 자신들의 선호 또는 만족을 극대화시키려 한다고 가정한다. 현실 속에서 사람들이 경험하는 ‘만족’ 또는 ‘선호’는 분명히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것이다. 가장 좋은 객관적 결과라 할지라도 우리가 거기에 실망한다면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선택을 좌우하는 심리 법칙]
-선택의 패러독스
선택에는 분명하고 강력한 도구적 가치가 있다. 즉, 사람들이 삶에서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게 해준다. 선택은 각자가 자신의 금전적 능력 안에서 자신의 취향을 가장 잘 만족시키는 물건을 구매하고 활동을 추구하도록 해준다. 당신은 채식을 좋아할 수 있고, 나는 육식을 좋아할 수 있다. 당신은 힙합을 들을 수 있고, 나는 클래식을 들을 수 있다. 당신은 독신으로 살 수 있고, 나는 결혼을 할 수 있다. 언제든지 어떤 방식으로 선택이 제한될 때마다 누군가는 어딘가에서 자신의 가치를 추구하는 기회를 박탈당한다.
선택의 도구적 가치도 중요할 수 있지만, 선택은 그보다 더 중요한 다른 가치를 반영한다. 선택의 자유에는 일종의 ‘표현적 가치’가 있다. 선택은 세상에 대해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의 관심이 무엇인지 얘기할 수 있게 해준다. 이것은 우리가 옷을 입는 방식처럼 피상적인 것에 적용된다. 우리가 선택하는 옷은 취향의 의도적 표현으로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진지한 사람이다.” 혹은 “나는 센스가 있는 사람이다.” 혹은 “나는 부자다.” 혹은 이렇게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입으며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건 상관하지 않는다.” 자신을 표현하려면 적절한 선택의 수가 있어야만 한다.
경제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앨버트 허시먼은 『퇴장, 목소리, 그리고 충성심』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사람들은 불만을 느낄 때 대체로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고 얘기한다. 그것은 퇴장하거나, 상황에 저항하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자유시장에서 선택이 갖는 한 가지 미덕은 퇴장을 선택함으로써 불만족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관계에서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
우리는 식당, 시리얼, 혹은 휴가지를 버리듯이 연인, 친구, 혹은 공동체를 버리지 않는다.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대하는 것은 적절치 않거나 비난받을 일이다. 대신에 우리는 대개 불만족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연인, 친구, 혹은 공동체에 영향을 끼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노력이 실패할 경우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애를 써야만 한다고 느낀다. 퇴장이나 포기는 최후의 수단으로 취할 반응이다.
사회 기관들은 나름의 제약을 부과해 개인들이 선택으로 인해 지게 되는 짐을 덜어줄 수 있다. 이와 같은 제약들은 물론 바뀔 수 있는 것이지만, 개인들은 그것을 마음대로 위반하기 어렵다. 우리의 삶에 보다 분명한 ‘게임의 규칙’ -삶의 어느 정도를 우리를 위해 살고 가족, 친구,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의무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관한 제약- 이 있는 상태에서, 그와 같은 결정들에 따르는 고민은 상당 부분 없앨 수 있다.
선택의 자유가 부과하는 짐을 줄이는 방법 중 하나는 언제 결정을 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이다. 캐스 선스타인과 에드나 울먼 마갈릿은 이것을 ‘2순위 결정’이라고 부른다. 2순위 결정의 한 가지 종류는 ‘규칙’을 따르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안전벨트를 매는 것이 규칙이라면, 당신은 늘 안전벨트를 맬 것이고, 가까운 시장에 가는 데 그럴 필요가 있는지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파트너를 절대로 속이지 않겠다는 규칙을 택한다면, 당신은 나중에 당신을 괴롭힐 수도 있는 수많은 고민과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 규칙, 예정, 기준, 그리고 반복화를 사용해 스스로에게 제약을 부과하고 직면하는 결정들을 제한함으로써, 우리는 삶을 더 쉽게 살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헌신하고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결정들을 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물론 2순위 결정들에는 나름대로 대가가 따르지만 우리에게는 늘 그와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
자율과 선택의 자유에 부여하는 높은 가치를 감안할 때, 그것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대개의 경우 우리가 원하는 것들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이며, 그것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최근의 한 연구는 그와는 다른 점을 지적하고 있다.
즉, 우리의 ‘원하기’와 ‘좋아하기’는 두뇌의 서로 다른 부분에서 통제한다는 것이다. 이것들은 종종 함께 일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마약 중독자들은 마약을 너무나도 원하는데, 그것이 더 이상 즐거움을 주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일부 상황에서 원하기와 좋아하기는 분리될 수 있다. 이것은 종종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 실제로 선택하는 대안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과 비슷하다.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의 65퍼센트가 암에 걸리면 스스로 치료법을 선택하겠다고 응답했지만 실제로 암에 걸린 사람들 가운데 88퍼센트는 선택하고 싶지 ‘않다’고 얘기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늘 선택을 원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선택을 할 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살아가면서 점점 더 많이 그리고 더 자주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대안이 많을수록 만족도는 줄어든다 - 선택의 기회비용
경제학자들은 어느 특정한 대안의 가치를 다른 대안들과 분리해서 평가할 수 없다고 얘기한다. 어느 대안이든 그것의 ‘비용’은 다른 대안이 제공했을 기회들을 포기하는 데 있다. 경제학에서는 이것을 ‘기회비용’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따른다. 기회비용을 생각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결정을 잘못 내릴 수 있다. 종종 사람들은 셋집에서 살지 않고 집을 사는 결정을 정당화하면서, 이제는 집주인에게 돈을 벌어주는 데 신물이 난다고 얘기한다. 물론 자기 집을 갖는 것은 대개의 경우 좋은 투자다.
하지만 이와 같은 논리에서 주택 구매자들이 간과하는 것은 5만 달러의 일시금을 내는 기회비용이다. 그것으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때에 따라선 부동산이 주식보다 더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주가가 급등하던 1996년에 올바른 기술주에 투자했다면 엄청난 돈을 벌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당연하게 보이는 결정조차도 포기한 대안들의 숨은 비용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기회비용을 생각한다고 해서 당신의 결정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그것은 당신이 하는 결정의 모든 측면을 좀더 현실적으로 평가하게 해준다.
기회비용이 가장 좋은 대안에 대한 만족을 줄이고, 우리가 포기하는 여러 대안들에 대해 기회비용을 느낀다고 가정하면, 대안이 많을수록 우리가 경험하는 기회비용은 커지게 된다. 그리고 기회비용이 클수록 우리가 선택한 대안에서 얻는 만족은 줄어든다. 다양한 대안들의
존재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대안들을 상상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우리는 이와 같은 대안들을 상상할 때 마침내 선택하는 대안에서 충분히 만족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번에도 너무 많은 선택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최선의 휴가지나 최선의 일자리나 토요일 밤을 보내는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알 수 있다면, 대안들이 많을수록 사람들은 더 행복해질 것이다.
새로 나타나는 대안이 최선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가장 좋은 휴가지, 일자리, 혹은 토요일 밤의 활동은 없다.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선택의 가치는 특정한 선택에서 얻는 ‘주관적’ 경험이다. 그리고 추가적인 대안들이 어느 시점을 지나 우리의 주관적 경험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면, 우리는 더 나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결정할 때마다 대안들 간에 맞바꿈이 수반되고 사람들이 그 맞바꿈을 거부할 때는 어떻게 할까? 한 가지 선택은 결정을 미루거나 회피하는 것이다. 갈등은 중요하지 않은 선택에서도 결정을 회피하도록 만든다. 갈등이 어떻게 결정을 회피하도록 유도하는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예가 있다.
의사들에게 골관절염으로 고생하는 환자의 병력 자료를 보여주면서 그에게 새로운 처방을 내릴 것인지 아니면 전문의에게 보낼 것인지 결정해줄 것을 요청하자 거의 75퍼센트의 의사들이 처방을 선택했다. 또 다른 의사들에게는 두 가지 새로운 처방과 전문의 소개 사이에서 선택하라는 요청을 했고, 그들은 50퍼센트만이 처방을 선택했다. 따라서 전문의를 소개한 비율은 앞의 경우보다 배나 높았다.
전문의 소개는 당연히 결정을 회피하는 방법이었다. 사람들은 맞바꿈을 해야 하는 선택을 너무나도 불편하게 느껴서 결정에 도움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붙잡으려 한다. 갈등은 결정을 회피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것은 아니다. 이제 당신은 디지털 카메라와 산악자전거 중에서 무엇을 살 것인지 결정한다고 생각해보자. 각각의 대안에는 나름의 이득 -다른 것에는 없는 그것만의 긍정적 특성- 과 나름의 손실 -그것에는 없는 다른 것의 긍정적 특성- 이 있다. 카메라를 선택할 경우에, 당신은 디지털 사진 기술의 질과 편리함을 얻지만 아름다운 곳에서의 운동 기회는 잃게 된다.
손실의 영향은 이득보다 더 크기 때문에 카메라를 자전거와 비교할 때 얻는 즐거움은 카메라 하나만을 고려할 때 얻는 즐거움보다 작아진다. 이것은 자전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우리는 맞바꿈이 포함되는 결정을 할 때마다 그것이 없는 결정을 할 때보다의 선택의 결과에 덜 만족한다. 간단하게 말해서, 우리가 고려하는 선택들은 대개 다른 선택들과의 비교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한다.
누구도 맞바꿈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따라서 누구도 기회비용이 누적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맞바꿈과 기회비용의 문제는 만족자에게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
만족자가 찾는 것은 가장 좋은 것이 아니라 ‘충분히 좋은 것’임을 기억하라. ‘충분히 좋은 것’은 기회비용에 대한 생각을 극복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충분히 좋은’ 기준은 극대화자의 ‘가장 좋은’ 기준보다 대안들의 탐색과 분석을 덜 포함할 것이다. 고려 대상이 되는 대안들이 더 적다면 기회비용도 더 적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만족자는 그 모든 것을 갖고 있고 맞바꿈이 필요 없는 이론적으로 완벽한 세상에 대해서 덜 생각할 것이다.
이 모든 이유들 때문에 맞바꿈을 하는 고통은 특히 극대화자에게 더 클 것이다. 실제로 내가 볼 때 만족자들보다 극대화자들이 덜 행복하고, 삶에 덜 만족하고, 더 자주 우울증에 걸리는 한 가지 이유는 바로 맞바꿈과 기회비용의 고통이 결정한 후의 만족을 상당히 줄이기 때문이다.
-선택하면 반드시 후회하는 사람들 : ‘결정 후 후회’와 ‘예상 후회’
결정을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거나 더 좋은 결과가 나왔을 대안을 찾아낼 때, 당신은 후회를 할 수 있다. 몇 달 전에 아내와 나는 등에 좋다는 하이테크 의자를 이베이의 온라인 경매에서 주문했다. 의자는 도착하지 않았고, 판매자는 사기꾼이었다. 우리는 적지 않은 돈을 잃었다. “어떻게 우리가 그렇게 멍청할 수 있었지?” 아내와 나는 번갈아가며 서로에게 그렇게 얘기 했다. 우리는 사기를 당한 것에 후회를 할까? 당연히 우리는 후회한다. 이것은 ‘결정 후 후회’로서, 결정의 결과를 경험한 후에 하게 되는 후회다.
‘예상 후회’라는 것도 있는데, 이것은 결정을 하기도 전에 나타난다. 이 스웨터를 산 후에 건너편 가게에서 더 싸고 더 좋은 것을 발견하면 어떤 기분일까? 이 일자리를 택한 후에 다음 주에 더 좋은 기회가 생긴다면 어떤 기분일까? 결정 후 후회는 때로 ‘구매자 후회’라고 불린다. 특정한 구매 결정을 한 후에,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사실은 선택한 것보다
거부한 대안들이 더 나은 것이었다고 확신하거나, 저기 가면 우리가 알아보지 않은 더 좋은 대안이 있다고 상상하기 시작한다. 후회의 씁쓸함은 그것이 정당하건 안 하건 우리가 얻는 만족을 줄인다. 예상 후회는 여러 면에서 더 나쁘다. 불만족뿐 아니라 결정의 결여까지도 초래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집을 사고 나서 다음 주에 더 좋은 집을 발견하면 어떤 기분일지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그 사람은 집을 사지 않을 것이다.
두 가지 후회 -예상 후회와 결정 후 후회- 모두 결정의 감정적 측면을 높이게 된다. 예상 후회는 결정을 어렵게 만들고, 결정 후 후회는 선택의 만족을 줄인다. 특정한 결정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 방법은 가능한 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후회는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해가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도 대안들이 많을수록 후회를 경험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이것은 왜 우리의 삶에 대안들을 추가하는 것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닌지 설명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대부분 좋은 결과가 나왔을 행동을 하지 않은 것보다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온 행동을 더 후회한다는 직관을 공유하는 것 같다. 이것은 때로 ‘누락 편견’이라고 불리는데, 우리는 결정의 결과를 평가할 때 누락을 낮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최근의 증거는 행동이 늘 누락보다 더 두드러진 것은 아니라고 얘기한다. 누락 편견은 보다 먼 과거의 결정과 관련할 때는 반대로 진행된다. 지난 6개월 동안에 가장 후회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할 때, 사람들은 대개 기대에 미치지 못한 행동들을 지적한다. 그러나 전반적인 삶을 돌아볼 때, 가장 후회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할 때, 사람들은 대개 행동하지 않은 것들을 지적한다.
이와 같이 우리는 우리가 한 결정들에 대해 심리적인 문을 닫지 않은 채 열어두며,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하지 못한 것은 점점 더 크게 부각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지만 확실한 이득과 크지만 불확실한 이득 사이에서 선택할 때 위험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가령, 확실한 100달러와 반반의 확률로 얻는 200달러 사이에서 선택을 할 때, 우리는 대부분 확실한 것을 택한다. 왜냐하면 주관적으로 200달러는 100달러의 2배만큼 좋지 않고, 따라서 반반의 위험을 안을 값어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험을 꺼리는 또 다른 이유는 ‘후회 혐오’ 때문이다.
지금 당신은 확실한 100달러와 위험한 200달러의 대안 중에서 100달러의 대안을 선택한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위험한 200달러를 선택했을 경우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확실하게 알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확실한 것을 택한 결정에 후회할 이유가 전혀 없다. 반면에 당신이 위험을 택한다고 생각해보자.
이제 당신은 확실한 것을 택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알 수 있다. 그 결과 당신이 위험을 택한 결정으로 돈을 얻지 못한다면, 당신은 비단 돈만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후회까지 떠안아야 한다. 확실한 것을 택하는 것은 결정을 후회하지 않기 위한 방편이다. 확실한 것을 선택할 때 당신은 다른 대안의 결과가 어땠을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는 분명히 우리의 모든 결정들에서 아주 큰 역할을 하지만, 선택 -특히 너무나도 많은 선택- 은 후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대안들이 없을 때,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나? 실망할 수도 있지만,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다. 몇 가지 대안밖에 없을 때 당신은 최선을 다하지만, 세상은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충분히 허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대안들이 너무 많을 때 세상에 정말로 좋은 것이 있을 가능성은 높아지며, 당신은 그것을 찾아야 한다고 느낀다. 그러나 당신이 실제로 선택하는 대안이 실망스러운 것으로 드러나면, 당신은 더 현명하게 선택하지 않았다고 후회한다. 대안들이 더 많을수록 선택한 것보다 특정한 측면에서 더 좋은 일부 대안들이 있을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그래서 대안들의 수가 많을수록 기회비용은 커지고, 기회비용이 높아지면 후회도 더 많이 하게 된다.
* 만족하다가도 실망한다 : 적응의 이중 심리
후회와 기회비용은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것에 관심을 갖게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선택한 대안들에도 불만족의 여지는 많다. 인간 심리의 보편적인 특성 때문에 삶에서 우리가 기대했던 만큼 결과가 좋은 경우는 별로 없다. 고민 끝에 당신은 렉서스를 사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 그리고 당신은 다른 차종들의 매력을 마음속에서 지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일단 새 차를 몰게 되면, 그와 같은 경험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게 되고 당신은 이중의 고통을 겪는다.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와 선택한 것에 대한 실망이다. 인간 심리의 이 보편적 특성은 ‘적응’의 과정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우리는 상황에 익숙해지며, 그런 후에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한다. 비록 우리가 제대로 예상하지는 못하지만, 기쁨에의 적응 -기쁨에 익숙해져서 기쁨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은 불가피한 것이며, 그것은 선택이 더 많은 세상에서 실망감을 더 높이게 된다.
쾌락 적응은 방금 얘기한 ‘익숙해지기’를 뜻할 수도 있고, 혹은 참조점의 변화 때문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여성이 연봉 4만 달러를 받고 흥미로운 직장에서 만족하며 일한다고 가정해보자.
새로운 일자리가 나타나 그녀에게 6만 달러를 제시한다. 그녀는 직장을 바꾸지만, 아쉽게도 6개월 후에 새 회사는 도산한다. 옛날 회사는 기꺼이 그녀를 받아들이며, 연봉을 4만 5천 달러로 인상한다. 그녀는 이와 같은 ‘인상’에 만족할까? 인상이라는 느낌이 들기나 할까?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비록 잠시뿐이었다 해도 6만 달러의 연봉은 그녀에게 쾌락의 새로운 기준 내지 참조점을 설정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보다 적을 때는 손실로 여길 것이다. 물론 6개월 전이라면 4만에서 4만 5천 달러로의 인상은 멋진 느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6만에서 4만 5천 달러의 삭감으로 느껴질 것이다.
선택의 풍요는 결정에 따르는 시간과 노력의 비용을 증가시켜 적응의 문제를 악화시킨다. 시간과 노력, 기회비용, 예상 후회 등은 우리가 결정을 할 때 미리 ‘지불하는’ 고정비용이며,
그와 같은 비용은 결정의 결과에 따라 분산된다. 어떤 결정이 오랫동안 상당한 만족을 준다면, 결정에 따른 비용은 상대적으로 작은 것이 된다. 그러나 결정이 주는 만족이 잠시뿐이라면, 그와 같은 비용은 훨씬 더 크게 부각된다. 그래서 선택의 수가 많을수록 결정에 들어가는 노력은 커지고, 우리는 결정에 따른 만족을 더 많이 원하게 된다.
적응은 그와 같은 만족의 지속 기간을 극적으로 줄임으로써 결정에 필요했던 노력을 대단치 않은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우리는 결정에 더 많은 투자를 할수록 더 많은 투자 수익을 기대한다. 그런데 적응은 결정을 위한 고민이 나쁜 투자가 되도록 만든다. 적응이 주관적 경험을 약화시켜 사람들이 선택하는 데 투자한 시간과 노력을 보상하지 못한다면, 선택은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짐이 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적응 과정을 중단시킬 수 있다면, 우리의 만족 수준을 크게 높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응은 사람들의 너무나도 강력하고 보편적인 특성이기 때문에 그것을 상당히 줄일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적응 과정을 알기만 해도 효과를 예상할 수 있고, 나중에 느끼는 실망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결정을 할 때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선택결정에 따르는 적응을 충분히 예상하면, 지금 당장이 아니라 나중의 결과를 더 잘 알 수 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최고’가 아닌 ‘충분히 좋은 것’에 더 잘 만족할 수 있고, 선택에 따르는 시간과 노력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감사하는 마음과 태도는 연습을 하면 더 나아질 수 있다. 우리의 삶이 과거에 그랬던 것보다 혹은 그렇게 됐을지도 모르는 것보다 지금 얼마나 더 좋은지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우리는 적응으로 인해서 느끼는 실망을 크게 줄일 수 있다.
*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 비교 선택의 심리
우리는 차 문에 손을 찧는 것은 절대적으로 나쁜 것이고, 서로를 위하는 사랑은 절대적으로 좋은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 경험은 그렇게 절대적인 관점에서 평가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대개 다른 요인들에 대한 상대적 관점에서 평가된다. 우리는 어떤 음식이나 휴가지, 혹은 강의를 좋아했는지 따질 때, 불가피하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무엇과 비교해서?” 미래에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을 할 때, 더 중요한 문제는 “그것이 좋았는가 나빴는가?”보다 “그것이 얼마나 좋았거나 나빴는가?”이다. 음식점의 식사가 정말로 형편없어서 먹다 말고 나가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친구들에게 어떤 식당이 나빴다고 얘기하며, 친구들은 그것이 특정한 기준에 비교할 때 그렇다는 점을 이해한다. 결국에는 비교만이 유용한 잣대가 된다.
현대의 삶은 우리의 경험들에 대해 궁극적으로 덜 만족하게 만드는 것 같으며, 그 이유 중 하나는 비교 대상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선택의 과부하는 그와 같은 불만족의 한 요인이다. 사회과학자인 알렉스 미칼로스는 주관적인 경험의 질과 관련해서 사람들이 설정하는 만족의 기준은 세 가지 격차의 평가에 바탕을 둔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과 원하는 것의 격차,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과 비슷한 사람들이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격차, 그리고 사람들이 현재 갖고 있는 것과 과거에 가졌던 가장 좋은 것의 격차다.”
미칼로스는 삶의 만족에서 개인들이 보이는 다양한 반응은 객관적 경험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그와 같은 세 가지 격차의 비교 결과라고 얘기했다. 이와 같은 세 가지 비교들에 나는 한 가지를 덧붙인다. 즉,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과 기대하는 것의 격차다.
물질적, 사회적 상황이 좋아지면서 우리의 비교 기준은 높아진다. 질이 좋은 것들과 접촉하면서 우리는 ‘차별의 저주’로 고생하기 시작한다. 전에는 완벽했지만 질이 낮은 것들은 더 이상 충분히 좋은 것이 아니다. 우리의 쾌락 참조점은 계속해서 높아지며, 그와 함께 기대와 희망도 높아진다. 이와 같이 높은 기대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우리는 더 높은 것을 가지기보다 우리의 기대를 통제할 때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적절한 수준의 기대를 갖는 것의 이점은, 그럴 때 우리는 많은 경험을 신선한 자극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그럼으로써 쾌락지수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실제로 겪는 경험들이 점점 더 좋아지는 경우에도 적절한 수준의 기대를 유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중 하나는 멋진 경험을 드물게 유지하는 것이다. 아무리 여유가 있다 해도, 멋진 포도주는 특별한 경우를 위해 아껴두라. 아무리 여유가 있다 해도, 당신이 좋아하는 예쁜 실크 블라우스는 특별한 날에만 입으라. 이것은 금욕의 연습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당신이 계속해서 즐거움을 경험하게 해주는 방법이다. 아무리 좋은 음식, 아무리 좋은 포도주, 아무리 좋은 옷이라도 당신을 즐겁게 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는 이미 대안이 많을수록 좋은 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모으기는 더 어렵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정보를 모으기가 어려울수록 다른 사람들의 결정에 의존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설사 당신이 부엌에 쓸 벽지로 최고를 원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선택의 가능성이 수백 혹은 수천 가지나 된다면, 충분히 좋은 것을 찾는 노력은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선택하는지를 알 때 엄청나게 쉬워진다. 그래서 당신은 대안이 너무 많을 때 어깨너머로 다른 사람들의 결정을 보게 된다. 하지만 사회적 비교를 많이 할수록 당신이 그것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더 커지고, 그 결과는 대개 부정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위의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고 결정함으로써 수많은 대안들의 세상은 궁극적으로 더 불만을 느끼도록 만든다. 이것은 대안들의 증가가 우리의 선택에 대한 만족을 감소시키는 또 하나의 이유다.
-배리 슈워츠의 <선택의 심리학>,<다음 카페 hiowner>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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