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경영/꿈과 비전

IQ가 높은 사람 = 똑똑한 사람?

김부현(김중순) 2010. 4. 20. 10:49

 

우리는 흔히 IQ가 높은 사람을 똑똑하다거나 재능이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소위 '똑똑한' 사람일수록 환경에 순응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 이유는 IQ가 높아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학교와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게임의 법칙'을 빨리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게임의 법칙을 가장 먼저 배우는 곳이 곧 학교다. 예를 들면,

 

-선생님을 기쁘게 하는 법,

-짧은 시간에 성적을 올리는 법,

-줄을 똑바로 서는 법,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법 등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꿈은 종종 이 게임의 법칙으로 인해 상처를 받는다. 꿈을 이룬다는 것은 IQ의 높고 낮음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사실 IQ가 낮을수록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경우가 더 많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개인의 꿈은 게임의 법칙에 밀려나고 있는 듯하다.

그럼 꿈을 갖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게임의 법칙을 위반했을 경우 받게 되는 손가락질과 다수의 룰을 어겼을 때 받게 되는 불이익을 개인이 감당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두가 게임의 룰에 더 빨리 적응하려고 발버둥을 친다.

 

일전에 모교인 K고교에 특강을 위해 방문한 적이 있었다.

강의를 마치고 평소 학교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양해를 구하고 1학년 수업을 1시간 동안 학생들과 함께 들어봤다. 예전과는 달리 교실에 TV 모니터는 물론 각종 교과 기기들로 인해 더 효율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시스템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교육 환경이나 시스템은 많이 변했지만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유독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많이 변했고 또 변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여전히 가르치고, 또 가르침을 받는 일방통행식 수업환경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실 교육이란 누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가르침은 학원이 훨씬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교는 지식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는 학생들의 가치관 형성을 도와주고 꿈을 찾게해주고, 함께 토론하고 지도하는 자유와 협력의 공간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전의 노트로 21세기의 아이들을 가르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10년 전의 배움으로 지금의 아이들을 가르칠 수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변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있다면 학생을 탓하기 전에 학교가 먼저 변해야 한다. 어쩌면 아이들의 기대에 교육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 사회 전체가 냉철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先生이란 '먼저 태어난 사람'이다. 먼저 경험하고 배운 것을 다음 세대와 나누는 것이다. 문제는 과거에 배우고 경험했던 것들이 지금은 예전과 같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데 있는 것 같다. 물론 여러 가지 교육 환경이나 제도가 뒷받침 되어야 하겠지만 이젠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는 협력자 관계로 바뀌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결국 학교는 학생이 주인이기 때문이다.

학생이 없는 학교란 존재할 수 없다. 말로는 학생이 주인이라고 하지만 과연 학생이 주인처럼 대우받는 학교가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학교는 결코 학생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우월적 지위에 있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철지난 20세기의 일이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엄격한 상하관계가 아닌 평등한 협력자 관계로 바뀔 때 진정한 교육의 자율화가 실현될 수 있지 않을까?

 

 

'수평적 사고'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 드 보노(Edward de Bono's)는 그의 저서 <생각의 공식 Thinking Course>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이상하게 생긴 수레 그림을 보여주면서 이 그림에 대해 각자 다섯 가지 의견을 피력하라고 했다.

 

 

대부분의 응답자들은 수레의 디자인을 '비판하는' 의견을 표출했다.

-바퀴가 잘못된 자리에 달려 있다.

-바퀴가 달린 버팀목이 부러질 것 같다.

-바퀴가 너무 작다.

-수레가 뒤집힐 것 같다.

-손잡이가 너무 짧다. 등등.

 

 

여기서 '부정적인 의견' 대 '긍정적인 의견' 의 비율을 보면,

 

-기업체 임원들의 경우 20:1

-IQ가 140이 넘는 사람들 모임의 경우 22:1

-교사의 경우 27:1

-12,13세 아이들의 경우 2:1 로 나타났다.

 

단순한 실험 결과지만 시사하는 바는 결코 단순하지 않아 보인다.

아이들이 미래의 희망이자, 꿈이다.

그들에게 꿈이 없다면 우리나라도 꿈이 없는 것이다.

모든 아이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학교 뿐만 아니라 조직에서도 게임의 법칙은 위력을 발휘한다.  

모든 조직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부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게임의 법칙을 거스러면서 좀 다르게 생각하고 시도하려는 직원들을 가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한 직원이 어떤 일을 다르게 시도했다가 실패라도 하면 그 '실패 경력'은 마치 마귀 할멈처럼 계속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평생을 괴롭힌다. 설령 그 다음에 성공하더라도 앞서 실패한 경력을 극복하기가 어렵다.

반대로 그가 시도한 일이 성공을 해도 만사형통이 아니다. 이 때는 왜 그것을 더 빨리 시도하지 않았냐고 비난한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은 결국 조직에서 '튀는 놈', '생각이 많은 놈'으로 낙인찍혀 소위 '위험 인물'로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된다.

따라서 많은 조직들이 눈만 뜨면 혁신과 변화, 도전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블랙리스트에 오른 직원들을 대우해 주지 않는다. 따라서 조직 구성원들은 '튀는 놈'이 되기보다는 '무난한 놈'으로 남기를 원한다. 즉 게임의 법칙을 거스러기보다는 순응하는 것이 똑똑한 결정이라는 생각을 갇게 된다. 마침내 조직에서 '튀는 놈'으로 분류되는 것은 그리 현명한 행동이 아니라는 자기위안에 빠지게 된다.

 

그러기에 자신의 길을 가고, 자신의 꿈을 이루는 사람이 이토록 적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