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제는 누구나 고민하는 '인간관계' 되시겠다.
인간관계(human relation)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과 인간, 또는 인간과 집단과의 관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바야흐로 이를 측정하는 기준이 되는 NQ(Network Quotient : 인간관계지수)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그럼 왜 인간관계가 이토록 중요한 것일까?
우리는 결코 로빈슨크루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철학적인 말로 바꾸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직접 물어봐야 하는데 안타깝지만 그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
더 쉽게 우리식대로 바꾸면 바로 만병통치약 "우리가 남이가"이다.
정도를 무시하고 편법을 동원하는 곳에는 어디든 마귀할멈처럼 "우리가 남이가"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이 꼬리표의 생존력은 질경이보다 더 질기다.
게다가 그 위력 또한 대단하다.
누군가 새롭게 시도를 하거나, 원칙을 따르려고 할 때 이를 돌파하기 위한 저항군으로 "우리가 남이가"라는 꼬리표가 비집고 들어온다.
반만년 유구한 역사에 단일민족이라는 공동체적 집단주의가 바로 "우리가 남이가"라는 꼬리표를 생산하는 공장이다.
지금도 이 공장은 야근을 해야 할 정도로 바쁘기만 하다.
이 공장이 망하지 않는 한 우리나라의 선진화는 요원할지 모른다.
왜냐고?
그것은 "우리"라는 공동체적 문화는 그 반대급부로 개인의 창의성과 개성을 무시한다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굳이 토마스 L. 프리드먼이 그의 책 <세계는 평평하다>에서 세계화를 3단계로 구분한 것을 들추어 내지 않더라도 지금의 세계는 개인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입에 풀칠하는 것으로 삶의 질을 이야기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떼잡이 문화가 아니라 스티브잡스 문화가 필요하다는 말씀 되시겠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이 곧 떼잡이 문화의 발원지다.
떼잡이 문화의 특징은 톡 불거져 보이기보다는 그냥 군중속에 묻혀가려는 것이다.
또 앞서기보다는 함께 섞여 가려고 한다.
1등을 하면 따돌림을 당하고 꼴찌를 하면 형편없는 놈으로 낙인 찍히기에 중간이나 하자는 것이다.
얼마 전, 국내 거주 10년 이상 외국인 CEO들에게 설문조사한 결과다.
"대한민국 하면 생각나는 3가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가장 많은 답은 "우리 대한민국(We Korea)"이었다고 한다.
"우리"라는 공동체적 문화가 그동안 대한민국을 이끌어온 원동력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제는 선진국으로 가려는 우리에게 가장 큰 장애물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려했음은 물론이다.
각설하고 아무튼 우리의 인간관계는 상당 부분 "가상 친밀감"으로 위장한 바람직하지 않은 관계를 인간관계의 표본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현의 저서 <도시 심리학>에서는 '가상 친밀감'을 이렇게 설명해 주고 있다.
'우리는 친하다'는 최면을 걸어야 할 때, 폭탄주를 나누면 순간 경계심이 마취되어 '정말 이 사람이랑 친한 것 같아'라는 가상 친밀감이 형성된다고 설파했다.
가상 친밀감의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같이 술잔을 기울이는 것'이다.
퇴근 후 함께 술을 마시면 친하다고 착각하고 폭탄주가 몇 순배 돌고나면 "우리가 남이가"를 남발한다.
가상 친밀감은 술이라는 매개체가 사라지는 순간 한 줌의 재로 변하는 인간관계다.
술을 마시는 동안에는 친밀감이 형성되지만 회사를 그만두면 그날부로 end가 되는 인간관계의 전형이다.
매개체가 같은 목표가 아니라 술이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보통의 다른 사람들보다는 자주 회사를 옮겨 다닌 편이었다.
이직을 할 때면 항상 판에 박힌 듯 송별회를 했던 기억이 난다.
술잔을 기울이며 회사를 떠나더라도 '계속 연락하자'고 말했던 사람들의 90% 정도는 자칭 타칭 계속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나만 그런가?
당신은 어떤가?
그것은 누구의 탓이 아니라 가상 친밀감으로 형성된 인간관계였기 때문에 서로가 연락할 이유도 명분도 딱히 없었기 때문이었다. 술이 결코 인간관계의 지속성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는 반증이다.
따라서 진정한 인간관계가 유지되려면 '술'이나 '우리가 남이가'라는 안주가 주가 아닌, 가치관이나 목표, 꿈과 같은 공통의 관심사가 있을 때 지속적인 인간관계가 가능해진다.
만약 직장에 몸담고 있다면 당신이 지금 '술을 같이 마시는' 가상 친밀감에 근거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파악해보라.
직장은 개인의 목표와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이 어울려 일하는 곳이 아니다.
조직의 목표 달성을 위해 모인 대표적인 집단이 바로 직장이다.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개인 목표와 조직 목표의 접점을 찾는 일이다.
하지만 양자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은 산불처럼 번지고 있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고로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잘못된 환경을 척척 바꿀 만큼 위대하지 않다는 사실 되겠다.
어떤 식으로든 환경의 영향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누구와 일을 하고 누구와 술을 마시고 누구와 대화를 하는가에 따라 자신의 존재가 결정된다는 말씀 되시겠다.
이와 관련하여 <9 to 6의 혁명>을 쓴 양지훈 씨는 그의 저서에서 인간의 환경적응력과 관련하여 이런 사례를 들었다.
한 귀부인이 상스러운 말만 담고 사는 암컷 앵무새 때문에 고민하다 사제를 찾았다.
"뭐라고 하는데요?"
"그게요. '우리는 몸을 팔아! 당신도 재미 좀 볼래?'라고 한답니다."
"정말 낯 뜨거운 말이군요!"
사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아이디어를 냈다.
"제게도 말을 할 줄 아는 수컷 앵무새가 두 마리 있습니다.
그 녀석들에게 제가 기도하고 성경 읽는 법을 가르쳐 주었거든요.
부인의 앵무새를 데려와 같이 넣어 놓는다면 우리 앵무새들이 부인 앵무새들에게 성스런 말을 가르쳐 줄 것이고,
그러면 부인 앵무새의 말버릇이 고쳐질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신부님. 정말 멋진 방법이에요."
다음 날 부인은 암컷 앵무새를 데리고 왔다.
새장 안의 수컷 앵무새를 보니 묵주를 들고 기도하고 있었다.
부인은 크게 감명을 받고 암컷 앵무새를 넣었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암컷 앵무새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몸을 팔아! 당신도 재미 좀 볼래?"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수컷 앵무새가 다른 수컷을 향해 소리쳤다.
"야! 이제 묵주 치워. 드디어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진 거야!"
먹을 가까이하면 검게 되는 것이 인간사의 이치다.
나와 연결되어 있는 인간관계를 재점검해 보라.
부자가 되고 싶다면 부자의 줄에 서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면 지혜로운 사람과 숲을 이루어야 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수준이 같거나 조금 부족한 사람을 친구로 사귀고 싶어한다.
왜? 편하기 때문이다.
역시 편하다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 편안함에 빠지면 서로를 한단계 높이 끌어주지는 못한다.
공통의 관심사가 아닌 술친구로 이루어진 관계라면 그것은 위장된 인간관계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가장 많이 하는 것이 '술을 같이 먹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공짜안주와 함께...
물론 술이 인간관계의 윤활유 역할을 해주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이제 역으로 생각을 180도 바꿔 속는 셈 치고 쿨하게 이렇게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당신에게 모욕적인 말을 하고 절제되지 않은 언어로 심하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이 당신과 가장 인간적인 관계는 아니었는지?
물론 그런 사람은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될 수도 있겠지만 꼭 그런 것일까?
상처를 주었던 그들이 진정 나를 사랑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넓이보다 깊에에 바탕을 둔 인간관계의 참모습이 아닐까?
정말, 그 놈이 당신의 진정한 친구가 아니었을까?
우리는 그동안 인간관계라는 위장된 가면을 쓰고 늘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말을 하도록 훈련받아 왔다.
따라서 울퉁불퉁한 말보다는 부드럽고 매끄러운 언어에 현혹당해 왔다는 점을 부정할 순 없다.
의견이나 생각을 곧이곧대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몰상식한 사람으로 치부해 버리곤 한다.
하지만 때론 당신의 아픈 곳을 건드리고 잘못한 것을 꼬집어 주는 그 사람이야말로 당신의 진정한 친구가 아닐까?
'가상 친밀감'에 기초한 인간관계의 특징은,
-당신이 듣기 좋아하는 말만 해준다.
-당신의 기분을 맞춰주는 말을 해준다.
-아버지를 어머니라고, 어머니를 아버지라고 말한다.
이것이 오히려 위장된 인간관계는 아닐까?
지금 당장 다이어리를 들추어 나를 심하게 몰아세웠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찾아보자.
아마도 그가 당신을 몰아세웠던 이유는 당신이 지금보다 더 발전하기를, 지금보다 더 성공하기를 바라는 충정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먼저 전화해 보라. 그리고 말해줘라. '니가 보고 싶다고'...
어쩌면 당신이 받은 상처의 크기만큼 그가 당신을 사랑하고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당신은 진정한 친구가 있는가?
<폰더 씨의 실천하는 하루>에 나오는 이런 친구 말이다.
"진정한 친구란,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보다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 주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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