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경영/꿈과 비전

2만 시간의 법칙, <다산 정약용>

김부현(김중순) 2010. 5. 28. 12:35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인물 중 한 사람이다.

정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그가 정조가 승하한 뒤 억울하게 귀양길에 오른다. 

20년 가까운 세월을 떠올리며 이렇게 회고한다.

"늘 돌부처처럼 앉아서 저술에만 힘쓰다 보니 방바닥에 닿은 복사뼈에 세 번이나 구멍이 뚫렸다."

여기서 탄생한 말이 '과골삼천(踝骨三穿)'이다.

바로 다산의 강진 유배시절 제자인 황상(黃裳)의 글 속에 나오는 말이다.

 

억울한 귀양살이에 술잔을 기울이기보다는 저술에 힘쓴 결과 <목민심서>, <경세유표>등 수많은 대작을 남겼다. 그가 귀양살이를 하지 않았다면 목민심서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책상다리로 앉아 20년 세월이 가는 동안 바닥에 닿은 복사뼈 자리에 구멍이 세 번 뚫렸다는 것이다.

낙숫물이 돌을 뚫는다는 말은 중학교 한문시간에 배웠고,

추사 김정희가 벼루 여러 개를 먹을 갈아 밑창을 냈다는 말도 고등학교 사회시간에 배운 기억이 나지만,

복사뼈에 세 번이나 구멍이 뚫렸다는 말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도 듣지 못했다.

 

 

요즘 자기계발이나 성공학에는 이른바 "1만 시간의 법칙, 10년의 법칙"이 대세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다산의 경우를 현대식으로 접목시켜보면 "2만 시간의 법칙, 20년의 법칙"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긴 시간 끈기와 인내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늘 지름길을 찾고 요란한 말에 휘둘리기 일쑤다.

나아가 얄팍한 기법 몇 가지로 위장을 하고 그럴듯한 이력서로 성공을 꿈꾼다.

누구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요행수를 꿈꾸기도 했다.

그런데 인생이라는 것이 늘 잔인한 것만은 아니어서 가끔은 운 좋게 결과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요행수란 100%의 확률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한 번은 어쩌다 결과를 내기도 하겠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경제, 교육, 지리, 과학 등 다방면에서 박식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정약용,

그가 후대에까지 멘토가 되고 있는 이유는 타고난 천재성이 아니라, 복사뼈에 구멍이 뚫릴 정도로 오랜 시간 매달리는 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제 우리 이야기를 해보자.

단 하루만이라도 복사뼈에 쥐가 날 정도로 치열하게 매달리고 몰입해 본 적이 있는가?

만약 없다면 아직은 성공을 말하기에는 좀 이른감이 있다.

그것은 몰입할 끈기가 없어서기보다는 미친 듯이 몰입할 대상이 없다는 반증이다.

우리를 미치게 하는 그 몰입할 대상이 바로 '꿈'이다.

우리의 가슴을 벌렁거리게 하고 호흡을 가쁘게 하는 당신만의 꿈을 찾는 것이 가장 먼저다.

당신의 가슴을 벌렁거리게 하는 것은 애인 말고도 있다는 말이다.

물론 복사뼈에 쥐가 나는 횟수가 잦아질수록 꿈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당신의 삶을 춤추게 하는 마법 같은 친구는 꿈이다.

꿈이란 당신이 존재하는 이유이자, 살아가는 이유다.

세상의 모든 꿈들은 처음에는 "될까?"라는 물음표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되겠구나!"하는 느낌표를 거쳐 "됐어."라는 마침표로 향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꿈을 찾는데 있어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선택과 집중의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넓이보다는 깊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못하는 것을 잘하려고 하는 것은 좋아하는 것을 잘하려는 것보다 훨씬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If, 박지성 선수가 농구를 했다면,

If, 김연아 선수가 골프를 쳤다면,

If, 최경주 선수가 육상 선수였다면,

장담할 수는 없지만 지금과 같은 위치에 설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끈기와 인내의 과정이야 비슷하겠지만 누구에게나 남들보다 잘하고 좋아하는 것이 있다.

그들은 한결 같이 자신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의 경쟁보다는 타인과의 경쟁에 신경을 쓴다.

다른 사람과 경쟁하다보니 늘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된다.

비교에는 필연적으로 타른 사람을 짓밟고 올라가야하는 제로섬게임의 룰이 약방의 감초처럼 존재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든 사회구조는 위로 올라갈수록 자리가 적어지는 피라미드 구조이다.

올라갈수록 앉을 자리가 부족하다보니 늘 다른 사람의 바지가랑이를 끌어당겨야 하고 또 끌어당김을 당하는 치열한 계단 오르기 게임이 상존한다.

 

그럼 왜 모두가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꿈꾸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권력의 힘' 때문이다.

 

이는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조직구조는 피라미드형이다.

피라미드는 그 구조상 올라갈수록 가파르다.

가파름에 비례하여 권력이 집중되어 있다.

권력의 힘이 크다보니 자리는 한정되어 있다.

따라서 조직에서 상사는 나보다 권력에 더 가까운 사람이다.

조직에서의 상사란 단순히 나보다 어느 분야에서 더 뛰어나고 부족하다는 차원이 아니다.

간단히 말하면 권력의 크기가 나보다 큰 사람이 바로 상사다.

문제는 권력에는 반드시 보복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모든 조직은 최고의 권력을 가진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

그 권력의 크기란 결국 의사결정의 크기다.

 

 

▣ 구본형의 <Boss : 쿨한 행동>의 일부를 살펴보자.

"대부분 상사는 부하직원과 갈등이 생겼을 때 준 것도 못 챙기는 바보가 되기보다는 불손한 부하에게 본때를 보여주는 악당이 되는 것을 택한다.........

중요한 점은 인간의 본능적 메카니즘이 분노에는 분노로, 경멸에는 경멸로, 복수에는 또 다른 복수로 반응하도록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본능은 우리를 이끄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인간에게는 올바른 이해와 추론보다는 기분 좋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살아남으려는 본능이다. 본능은 논리와 감정과의 싸움에서 늘 이긴다."

 

 

▣ <이솝우화>에도 복수는 결코 남는 장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한 농부는 여우가 자신의 송아지를 잡아간 데 대해 이를 빠득빠득 갈고 있었다. 그러다 농부는 절치부심, 드디어 여우를 잡았다. 농부는 여우에게 복수하기 위해 여우꼬리에 기름을 잔뜩 묻힌 밧줄을 묶은 다음 불을 붙였다. 꼬리에 불이 붙은 여우는 뜨거워 어쩔 줄 모르고 날뛰다가 농부의 밭으로 들어갔다. 밭에는 추수한 곡식이 가득 있었고, 곡식은 꼬리에 불이 붙어 날뛰던 여우에게 불이 옮겨 붙어 모두 타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못나 보이는 상사라도 결코 복수하려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의 상사는 다산 정약용만큼은 아니더라도 당신보다 복사뼈에 쥐가 난 횟수가 많았고,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더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당신보다 더 큰 권력을 휘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복사뼈에 쥐가 날 정도로 좋아하는 일에 밤을 새워보는 건 어떨까?

물론 다음 날 눈은 붉게 충혈되겠지만 마음은 뿌듯해지지 않을까?

그리고 꼴보기 싫은 상사가 있거든 포장마차에서 안주로 씹지말고 평소에 커피도 한 잔 갖다 주고, 물도 한 잔 주면서 "힘내십시오"라고 먼저 다가서 보라.

180도 다른 모습으로 당신을 대해 줄 것이다.

당신의 상사는 결코 당신이 할 수 없는 거창한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