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경영/꿈과 비전

나는 꿈꾼다, 고로 존재한다.

김부현(김중순) 2011. 12. 8. 11:52

'가계도' 하면 으레 우리는 나를 맨 위에 놓고 밑으로 그린다.

내가 있고 내 자식, 내 손자 그리고 증손자....

물론 내가 중요하니까 나를 기준으로 그리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내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필요했다.

만약 부모님께서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실천(?)하셨더라면 당연히 지금의 나는 없다.

그래서 위로 올라가는 가계도를 그려보자. 동방예의지국이니까.

 

먼저 아버지에게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머니에게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있어야 했다.

할아버지 대까지만 올라가도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세 쌍이 필요하다.

증조부까지 올라가면 벌써 일곱 쌍이 된다.

위로 올라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숫자가 늘어나고 계산도 복잡해진다.

A4용지 한 장으로는 부족할 정도다.

이렇게 올라가다보면 내가 태어나기 위해 30대 조상까지 모두 몇 쌍이 필요했는지도 계산이 가능하다.

그리려면 너무 복잡하니까 간단하게 계산하는 수학 공식이 있다.

2의 30이다.

대충 계산해봐도 10억하고도 7,374만 쌍, 즉 21억 명 정도다.

엄청난 숫자다.

대한민국 인구의 11배가 넘는 수치다.

 

내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이렇게 엄청난 조상들이 강제동원(?)되었다는 말이다.

그것도 수많은 정자들 중 가장 우수했고 또 1등을 한 결과물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결정체다.

따라서 조상들은 진화론의 승자들이다.

공룡도 사라졌지만 온갖 지진과 폭우와 같은 이상기후와 자연재해를 극복하고 살아난 승자들이다.

승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놈이 승자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승자들이다.

위대한 존재, 그 자체다.

그 위대함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있고 가족이 있고 우리나라가 있는 것이다.

지금 조금 어렵다고 국가 탓, 조상 탓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그래도 억울하다면 시대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보자.

만약 당신이 원시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지금보다 행복했을까? 사냥을 하다 호랑이의 먹이가 되어 일찍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그럼 삼국시대에 태어났다면? 전쟁터에 나가 칼에 맞아 죽어 무명용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조선시대는 어떤가? 노비나 몸종으로 태어나지 않았으면 감지덕지 했을지도 모른다.

일제치하나 6.25에 태어났다면? 배고픔과 보릿고개로 먹는데 고군분투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격동의 시기를 용케도 피해서 태어났다.

전쟁터에 나가 칼에 맞아 죽을 염려도 없고, 노비가 될 염려도 없고 배를 곯지 않아도 된다.

이것 자체로도 행운아다.

하지만 일시적인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있어왔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어려움에 처할수록 그 원인을 분석해보고 대안을 행동으로 실천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어려울수록 더 안전한 방법, 내가 잘 알고 있는 방식, 내가 해왔던 방식을 더 고수하려고 한다.

WHY?

편하고 안전하기 때문이다.

위험이 없기 때문이다.

최소한 현상유지는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적으로도 사람은 낯선 것보다는 익숙한 것을, 위험보다는 안전한 것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판에 박힌 안전한 방법으로는 삶을 변화시킬 수 없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의 연속일 뿐이다.

어제와 다른 나를 만나려면 어제와는 다른 말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결과물을 원한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행동을 해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어려울수록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려는 용기와 도전이 필요하다.

만약 오랫동안 취업이 안된다면, 같은 사진과 이력서를 여기 저기 남발할 것이 아니라 어제와는 다른 사진, 자기소개, 그리고 이력서를 작성해 보라. 

같은 이력서로 이 회사 저 회사 무턱대고 지원하는 것은 간절함이 없기 때문이다.

간절함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또 실제로도 그런 결과가 나온다.

정말 간절하다면 어제와 다른 방법으로 해보라.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려는 당신에게 한 편의 시를 바칩니다.

 

(중략) 

그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먼먼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