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희망편지' 라는 코너가 있다. 편지의 주인공들은 막다른 인생, 절망의 끝에서도 희망과 꿈을 잃지 않고 마침내 절망보다는 희망을 택한 사람들이다. 사연들을 보노라면 나에게 주어지는 '이까짓 힘겨움은 정말 절망 축에도 끼일수 없다' 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삶의 실타래가 엉킬대로 엉키어 있다면, 이제 실타래가 풀릴 일만 남은 것이다. 실타래를 엉키게 한 것이 나였으니까 엉킨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열쇠를 가진 사람 역시 나 자신이다.
마찬가지다. 절벽의 밑바닥에서는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다. 절벽을 날아오를 일만 남아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때때로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우를 범하곤 한다. 시쳇말로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는 상황에서 간혹 극한 행동을 하곤 한다. 절망의 한 발짝 옆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애써 외면해 버린다. 엉킨 실타래를 푸는 열쇠는 단 한 가닥의 실이다. 한 가닥의 실만 풀어내면 그 다음에는 일사천리로 술술 풀린다.
항구도시 부산에 가면 '태종대'라는 유명한 관광지가 있다. 우리나라의 해안지형 가운데 관광지로서 개발이 가장 잘 되어 있는 곳으로 사시사철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태종대는 신라시대 태종 무열왕이 전국의 명승지를 다니던 중 이곳 영도의 절경에 도취되어 쉬어갔다고 하여 부르게 된 이름이라고 한다. 태종대에서 해안절경이 가장 좋은 곳에 이른바 "자살바위"라는 곳이 있다.
태종대의 자살바위가 유명하게 된 것은, 한국전쟁 중 '1.4후퇴' 때 따뜻한 부산으로 내려온 많은 피난민들, 특히 이북사람들이 부산으로 대거 모여 들면서부터라고 한다. 그들은 고향을 떠날 때 뿔뿔이 헤어지면서 훗날 당시 다른 지역민들에게 가장 유명했던 부산의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는 막연한 약속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피난살이가 고단하거나, 영도다리에서 만나자고 한 부모형제들을 못 만나게 되자 영도다리에서 몸을 던진 사람이 많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영도다리에서 자살하는 사람을 막고자 보초를 세우기까지 했다. 그러자 자리를 태종대 자살바위로 옮겼다고 한다.
자살바위가 있는 이곳 해안의 지형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해식애 절벽이라서 절경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또한 높이도 아득할 정도로 높아 그 바위에 서면, 마치 자신이 바다위에 서 있는 착각이 들게 한다고 한다. 고개를 들면 멀리 넓고 끝없이 펼쳐져 있는 망망대해이다. 그야말로 환상적인 곳이다. 그 후 자살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한 때 '한 번 더 생각해 보세요' 라는 푯말이 설치되어 있기도 했었다.
그 후에는 푯말을 대신하여 자애로운 '모자상'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모자상을 설치한 이유는 자살하기 전에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보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지금은 이 자리에 전망대가 들어서 있어 옛 추억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쥐 한 마리를 캄캄한 독 속에 집어넣으면 채 3분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 독 속에 한 줄기의 빛만 새어 들어가면 적어도 36시간은 죽지 않고 견딘다고 한다. 이렇게 희망은, 꿈은 막다른 길에서도 새로운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 역할을 해준다. 지금 이것만 지나면 또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 삶이 늘 햇빛처럼 따사로운 것은 아니다. 때로는 추운 겨울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자. 추위만 지나면 따뜻한 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 암센터 이희대 소장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분이다. 그는 골반으로 전이된 암 때문에 지금도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이 소장은 "암 4기 상태로 무려 6년 동안 일할 거 다하고 살았다"고 말씀하셨다. 찡그릴 법도 한데 그의 얼굴에는 늘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골반으로 전이된 암 때문에 한쪽 다리를 못 쓰게 되어 양쪽에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는 것 말고는 그가 암 환자라는 사실은 찾아볼 수 없다. 20여 년간 암 치료를 하던 암 전문의가 아이러니하게도 암에 걸려 싸우고 있는 것이다.
유방암 수술 분야에서 손꼽히는 명의인 그는 2003년 1월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벌써 6년전의 일이다. 당시 그는 대장을 절반이나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이후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암은 간과 왼쪽 골반으로 번졌다. 대장암 4기, 흔히 말하는 '말기 암' 환자였다. 그의 암은 집요했다. 지금까지 모두 열 한번 재발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간과 골반 뼈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다섯 번이나 받았고, 또 다섯 번의 고강도 방사선 치료도 받았다고 한다. 3~4개월씩 계속되는 항암치료도 두 번이나 받았다. 그가 환자들에게 처방했던 모든 치료법을 똑같이 받은 것이다. 그의 교수실 한쪽 벽에 걸린 대문짝만한 크기의 칠판에는 그가 이제껏 받아온 치료가 순서대로 빼곡히 적혀 있다. 더 이상 쓸 칸도 없다고 한다. 그래도 그는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우리는 암환자가 암으로 죽지 않고 절망으로 죽는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렇다. 누구든 절망에 빠지곤 한다. 그러나 절망에 빠진다고 모두가 헛된 짓을 하지는 않는다. 절망은 우리의 삶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희망의 단초이다. 달을 보기 위해서는 어둠이 꼭 필요하듯이 꿈과 희망을 지니기 위해서는 때로 절망도 찾아드는 법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않는다. 절망이 깊을수록, 어둠이 짙어질수록 자신만의 꿈이 있어야 한다. 정말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꿈이 필요하다. 꿈이 곧 희망이다. 희망이 곧 꿈이다. 꿈이란 성공이나 돈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꿈을 가진 사람에게 어둠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설령 찾아오더라도 금새 햇빛으로 바꿀 의지와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경전하사(鯨戰蝦死)'라는 말이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뜻으로 강한 자끼리 서로 싸우는 통에 아무 상관도 없는 약한 자가 해를 입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왜 '새우 싸움에 고래 등 터진다'는 속담은 없는 것일까? 새우와 고래가 싸우면 새우가 이긴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새우는 깡이고 고래는 밥이기 때문이라나.
또 혹자는 고래가 아닌 새우로 살아가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사막을 건너는 건, 용맹한 사자가 아니라 못생긴 낙타이고,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키듯, 우리의 식탁을 가득 채우는 것은 고래가 아니라 새우이기 때문이라고... 아무튼 고래이던 새우이던 누군가의 삶에 필요한 존재가 된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래도 꿈만큼은 고래의 꿈을 꾸어야 한다. 새우 같은 조그만 걸림돌을 극복하기 위해서....
새우도 고래의 꿈을 꾸는가 하면, 고래도 새우의 꿈을 꾸기도 한다.
새우라고 다 같은 새우가 아니고, 고래라고 다 같은 고래가 아니다. 새우같은 고래도 있고, 고래같은 새우도 있다.
처해진 현실이 새우일지라도, 꿈만큼은 고래의 꿈을 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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