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둘레길 21구간 중 서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함께 느낄 수 있는 구간, 6구간 평창마을길(탕춘대성 입구~형제봉 입구)이다.
광해군때 시행하던 대동법에 의해 조세를 관리하던 선혜청(宣惠廳, 조선시대, 대동법에 따른 대동미, 포, 전의 출납을 맡아보던 관청으로 1608년에 두었다가, 1894년에 없앴다) 중에서 가장 큰 창고인 평창이 있던 곳이다.
'재물이 모이는 땅'이라는 선혜청이 있던 자리로 풍수학적으로도 소위말하는 '명당'에 속한다. 북악산, 인왕산, 관악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어 즐겁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 평창마을길 : 소요시간 2시간, 거리 5km,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If you are, you breathe. 당신이 존재한다면, 숨을 쉴 것이고
If you breathe, you talk. 숨을 쉬면, 말을 할 것이고
If you talk, you ask. 말을 하면, 물을 것이고
If you ask, you think. 물으면, 생각할 것이고
If you think, you search. 생각하면, 탐색할 것이고
If you search, you experience. 탐색하면, 경험할 것이고
If you experience, you learn. 경험하면, 배울 것이고
If you learn, you grow. 배우면, 성장할 것이고
If you grow, you wish. 성장하면, 무언가를 바랄 것이고
If you wish, you find. 바라면, 찾을 것이고
And if you find, you doubt. 찾으면, 의심할 것이고
If you doubt, you question. 의심하면, 질문을 할 것이고
If you question, you understand and if you understand, you know. 질문을 하면, 이해할 것이고 그리고 이해하면, 알 것이고
If you know, you want to know more. 알게 되면, 더 알고 싶을 것이고
If you want to know more, you are alive. 더 알고 싶다면, 당신은 살아있는 것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광고영상물 중에서 인용한 글이다.
"Live Curious!"는 다큐멘터리 채널, 내셔널 지오그래픽 슬로건이다.
'호기심을 가진 삶을 살아라.'는 슬로건을 볼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철이 들수록 물음표를 잊어버리는 것 같아서.
철든 사람에게 물음표를 다시 회복시켜 주는 것은 자연이다.
걷고 땀흘리고 오르고 여행하다보면 작은 호기심이 새록새록 자란다.
하나의 호기심을 풀기 위해 어딘가에 가면 또 다른 물음표가 생긴다.
호기심은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 줄 뿐만 아니라 내 삶을 다시금 돌아보게도 한다.
처음에는 마지못해 짐을 쌌지만 지금은 길에서 만나게 될 새로운 것들에 더 가슴이 뛴다.
탕춘대성 암문 입구에서 20여분이면 구기터널 입구에 닿는다. 삼성출판 박물관 입구에 서있는 이색적인 시 한 편을 만났다.
눈과 비가 합창을 한 요란한 밤이 지났다.
인디언들의 힘을 빌려 기우제라도 지내야 할 판이었는데 다행히 어제 깡마른 대지에 숨통을 틔워주는 단비가 내렸다. 근교 북한산과 도봉산 봉우리들은 3월에 때아닌 하얀 눈을 뒤집어 썼고 하늘은 가을의 푸르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매스컴에서는 전국에 내린 단비가 수천억원의 경제적 효과가 있다고 보도했다. 인간은 이제 자연현상까지 돈으로 계산하려는 얄팍함에 빠져 버렸다.
바람은 겨울이었지만 햇볕은 겉옷을 벗기기에 충분했다.
누구를 만나기로 한 것도 아니고 누구를 배웅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두 발은 꼬닥 꼬닥 산으로 향한다. 해야 할 서류 더미와 설거지 꺼리를 쌓아둔 채. 산에 들면 비로소 새로운 세상과 만난다. 산과 도심과 산허리를 넘나드는 둘레길은 언제나 그렇듯 나를 반긴다.
일하는 데 여덟 시간,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여덟 시간,
잠자는 데 여덟 시간 이렇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참 좋겠다.
3월 하순에 눈을 뒤집어 쓴 북한산 형제봉이 손에 잡힐듯하다.
도시는 느긋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버스정류장에서, 지하철에서 잠시라도 정신 줄을 놓는 순간 버스는 떠나고 지하철 문은 닫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면 정신 줄을 놓지 않아야 한다.
밥 먹을 때도, 커피를 마실 때도 항상 그 사람에게서 눈을 떼지 않아야 한다.
도시는 인간을 시험한다.
정신 줄을 놓는 자에게는 가차 없이 그에 상응한 실망과 좌절을 선물한다.
그래서 자연이 그립다.
자연은 정신 줄을 강요하지 않는다.
정신 줄을 헐렁하게 해도 마음의 긴장을 풀어도 모두 받아준다.
자연은 인간보다 속이 깊고 마음 씀씀이가 넓다.
너무 행복해서 오히려 다가올 불편한 날들이 두려워질 때가 있다.
그런 날들이 우리 기억 속에 분명 일주일은 될 것이다.
어쩌면 그 일주일이 십 년보다 더 불행한 추억을 만들게 한다.
평창마을은 고요했다.
봄볕을 흠뻑 뒤집어쓴 평창마을은 스위스의 융프라우도 부럽지 않은 서울에서 몇 안 되는 아름다운 곳이다. 바람이 산허리를 돌아 쉬어가는 평창마을은 한낮인데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아름다운 곳이지만 그에 비례해 사람 냄새는 없었다. 함께 말과 얼굴을 섞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눈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지만 마음은 좀 불편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길이었다.
가끔 옷깃을 스치는 사람들조차 이방인 취급하듯 휑하다.
그래서 불편했다.
모자를 뚫고 들어오는 봄 햇살이 따사롭다.
머지않아 앙상한 나무들은 초록의 옷을 입고 토실토실 살이 찔 것이다. 겨울에는 다이어트로 앙상한 뼈만 간직했던 나무들도 겨울잠에서 깨어날 것이다. 계절과 계절을 잇는 경계에서 오는 비는 다가올 계절의 교체를 앞당긴다. 새로운 계절이 당도한다는 것은 사실은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
다비드 르 브로동은 <걷기 예찬>에서 "진정한 걷기 애호가는 구경거리를 찾아 여행하는 것이 아니다. 즐거운 기분을 찾아서 여행한다. 우리들의 발에는 뿌리가 없다. 발은 움직이라고 생긴 것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난 여전히 눈에 보이는 풍경에 감탄하곤 한다.
배낭을 메고 걷기엔 왠지 낯설다.
디지털화된 마을에 아날로그는 어울리지 않는다.
모두들 마음 한 귀퉁이에 불편함을 간직하며 걸을 것이다.
평창마을길 구간은 다른 산길로 대체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봄만 되면 내 마음은 말랑말랑했고 여름이 되면 찰랑찰랑했다.
그러다 가을이 되면 헐렁헐렁 해지다 겨울이 되면 꼬들꼬들해졌다. 잎을 다 떨구고 군살 없이 쭉쭉 뻗은 나무처럼 꼬들꼬들해졌던 마음이 조금씩 말랑말랑해지고 있다.
계절을 타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아닌가 보다. 겨울이면 마음을 '톡' 건드리기만 해도 얼음장 갈라지듯 쩍쩍 갈라지곤 했다. 그래서 내 마음을 다독이는 데 겨울은 치명적이다. 이제 봄이 되면 누가 꿀밤을 줘도 말랑말랑한 마음으로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평창마을은 10미터가 멀다하고 반기는 감시카메라가 불편했다.
담벼락엔 담쟁이 덩굴과 CCTV 뿐이다.
도종환의 <담쟁이>란 시를 떠올려본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걷기도, 여행도, 삶도 결국은 담쟁이처럼 벽 하나를 넘는 게임이다.
불가능한 일도, 절망의 늪에서도
그 한순간을 견디는 게임이다.
견딤 뒤에 찾아오는 희망을 찾는 게임이다.
인생은 게임이다.
도대체 어느 길에서 또 기대하지 않았던 내 마음이 홀딱 넘어갈까.
무엇이 비뚤어진 내 마음을 곧추세우게 해 줄 것인가. 길은 떠날수록 더 자주, 많이 떠나야 함을 알게 한다. 그래서 길이다.
길은 멈춤이 없다.
목간통에 벌거벗고 앉아 있던 디오게네스는 온 세계를 발밑에 굴복시킨 알렉산더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대보다 위대하다. 그대가 소유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나는 하찮게 여기므로.
그대가 소유하려 애쓰는 그 모든 것이 내겐 무시할 만한 가치도 없는 것이다."
필요하지 않은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던 그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필요로 하는 사람보다 행복하다.
필요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니 최고의 사람인 것이다.
-중세 기독교 영생가, 에크하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