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둘레길 5구간 명상길,
사색하며 생각하며, 혼자 걷기에 좋은 길이라 해서 이름 붙여진 길이다.
마치 부산 금정산의 '철학로'와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명상길은 등산로와 북한산 형제봉 능선을 사이를 지나간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절하게 나누어져 있어 차분하게 걸을 수 있는 생각의 길이다.
그동안 군사보호시설로 통제되다 최근에 개방된 '북악산 하늘길'과 연결되어 있어 백두대간에서 한북정맥으로 이어지는 북한산 혈류를 잇는 의미있는 구간이기도하다.
** 명상길 : 2.4km, 소요시간 1시간, 명상과 사색이 어울리는 길
"라오스에 살러오는 사람들은 곧 어떤 방식을 몸에 익히게 된다.
그들은 말수가 적어지며,
부드럽고 진기하며 기쁨이 넘치는 표정을 갖게 된다."
‘어원 연구의 데일 카네기’로 불리는 <WORD POWER made easy>의 저자 노먼 루이스(Norman Lewis)의 말이 잘 어울리는 길이다. 명상길에 서면 말수가 적어지고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마음은 차분해진다.
카메라 줌을 한껏 당겨 바위틈에 낀 이끼에게 다가가봤다.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벌써 이끼 곳곳엔 연초록 꽃이 피어나고 있다.
평창마을길과는 달리 오가는 이들과 여러차례 말을 섞을 수 있었다.
앞선 발자국을 따라 시나브로 걸었다.
뒷모습이 아름답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은 다 이유가 있다.
비록 앞모습은 세월의 무게를 피해갈 수 없었지만 뒷모습에는 여전히 청춘이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다시 청춘이 찾아오기를 손꼽아본다.
누구나 '청춘은 단지 나이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라고 말한 시인을 만나고 싶을 것이다.
살아가는 모습은 달라도 둘레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꿋꿋한 신념으로 주어진 삶을 즐기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자취는 언제 어디서나 향기롭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비행기를 타야만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친구의 말에 의하면,
세계의 수많은 여행지 중에서 우리나라 여자 여행자들이 특히 좋아하는 곳이 터키라고 한다.
터키에 가면 모든 여자들은 '공주'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눈이 작다느니, 다리가 짧다느니, 뚱뚱하다느니 해도 터키 땅만 밟으면 달라진다고.
가보고 싶다.
언제부터였던가?
우리는 가끔 느낀다.
인생 내비게이션이 길을 잃기도하고 인생나침반이 고장나기도 한다는 것을.
정작 멋진 길을 만나면 인생연료통이 비상등을 켜고 깜빡거리기도 한다는 것을.
여기저기 삐걱거리고 고장이 났는데도 애써 모른척 계속 내달려왓다.
머지않아 번잡한 어느 도로 위에서 차가 멈출 것이다.
하지만 보충할 연료가 없다.
그런데도 라디오 디제이는 삶은 행복한 거라고, 힘겨움은 잠깐이라고 떠들어댄다.
명상길 위에서 사람과 풍경을 만났고 손가는 대로 셔트를 눌렀다.
그리고 깨달았다.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려도 흐르고 인생은 싫든 좋든 자나가며 사물은 사라지고 풍경은 퇴색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그러나 슬퍼하지 말자.
우리가 길을 추억하듯, 길도 우리를 추억할 것이니까.
나잇살이 들수록 슬픔은 아주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밤 열두 시 수퍼마켓에서 라면 한 봉지와 소주 한 병을 살 때 예전엔 즐겁기도 하고 추억꺼리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슬퍼진다.
너무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슬픔이 싫다.
이젠 슬픔의 무게도 측정할 수 있는 나이인데도 말이다.
아무것도 아닌데,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일이, 지워지지 않은 얼굴이 있다.
그 이름 자연이다.
나는 산을 좋아한다.
나는 산을 사랑한다.
산이 부르는 무언의 말을 좋아한다.
그 말은 소란스런 일상을 정리해 준다.
불어 오는 바람이 좋고 스쳐가는 풍경이 좋다.
아득히 멀어지는 산마루를 바로보는 것도 좋아한다.
구름이 잠시 머물다가고 햇빛이 쏟아지는 나무의 그루터기를 좋아한다.
길을 걷다보면 나와 가까이 있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는다.
평소에는 일상에 짓눌려 거추장스러웠던 사소한 것들이 크게 다가오기도 한다.
방 한구석의 선인장,
책상위의 볼펜 한 자루,
잡지책 한 권,
모두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성경> 마태복음 6장 34절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모세의 인도로 40년 동안 광야에서 생활할 때 매일 저녁이면 메추라기가, 아침이면 '만나(떡, 빵과 비슷한 것)'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백성들은 아침으로 만나를, 저녁으로 고기를 먹으면서 광야에서 40년을 보냈다.
'만나'는 꿀맛이 나는 떡과 비슷한 것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희한한 것은, 이 '만나'는 다음 날이 되면 상해 버린 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궁금했다.
명상길에서 명상을 해봤다.
그날 떨어진 '만나'는 그날 안에 다 먹어야 한다.
내일을 위해 남겨두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남들보다 많이 챙기는 것은 무의미하다.
욕심은 무의미하다.
그건 단지 삶을 이어가는 하루의 식량일 뿐 돈도 권력도 아니다.
만약 '만나'를 모아둘 수 있었다면 그 안에서 빈부격차와 계급이 생겨나고 권력을 얻기 위한 여러 가지 술수와 중상모략이 생겨나고 서루 다투고 싸우고 미워하고 질투할 것이다.
지금의 인간사처럼 차별과 권력이 난무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루치의 식량과 하루치의 희망, 하루치의 사랑이다.
내일을 위해 남겨두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분의 절망, 하루분의 기다림, 그것은 모두 유통기한이 오늘 하루다.
일어나지도 않은 내일의 일 때문에 오늘 미리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하루의 행복이 이어져 일 년이 되고 인생이 된다.
그러니 오늘에 충실하자.
에브리바디, 카르페 디엠.
정릉주차장 앞에 있는 기도도량 청수사다.
나의 발걸음과 명상은 여기에서 멈췄다.
북한산정릉탐방지원센터,
5구간 명상길과 4구간 솔샘길의 경계지점이다.
북한산둘레길은 총 21구간이며, 총 거리는 71.8km에 달한다.
개인적으로 5구간 명상길을 마지막으로 북한산둘레길 전 구간 완주는 마무리되었다.
여러차례 나누어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넘나들며, 아끼고 아끼면서 걸었던 길이다.
말을 섞고, 옷깃을 스쳤던 수많은 사람들....
감사합니다.
바람과 햇살과 돌멩이와 나무,
그리고 무거운 발걸음을 반갑게 맞아준 길에게도 감사함을 전한다.
실망하면 어떡하지.
상처받으면 어떡하지.
실패하면 어떡하지.
그렇게 주저주저.
그 사이 나는 겁쟁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여러 번의 실망 + 여러 번의 상처 + 여러 번의 실패 = 겁쟁이"
그 실망과 상처와 실패의 순간을 함께 했던 길,
그때마다 길 위에서 난 한웅큼의 희망을 쥐고 돌아왔다.
감사하다.
다시 지도를 챙겨 길 위에 설 것이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브라보 유어 라이프!
브리보 에브리바디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