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가 있는 산행기/중부지역

스토리가 있는 산행기-불암산 암릉

김부현(김중순) 2012. 3. 26. 21:05

 

 

불암산 산행 :

"상계역-청암약수터-불암정-쥐바위-불암산정상-거북바위-깔딱고개-헬기장-천병약수터-중계2단지갈림길-정암사-상계역"

 

 

지하철 4호선 상계역 1번 출구, 초행길인 사람들에게 길 찾기가 조금 어렵다.

1번 출구로 나가 좌측으로 100미터 지점 꽃가게를 끼고 돌자마자 다시 좌측으로 200미터쯤 걸으면 큰길이 나온다. 신호등을 건너면 불암산 공원내에 있는 아래 이정표가 나타난다.

 

불암산(佛巖山)은 서울 노원구와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경계에 있는 산이다.

높이 508m. 서쪽으로는 북한산이 마주보이고, 북서쪽과 북쪽으로는 도봉산·수락산이 각각 솟아 있다.

"큰 바위로 된 봉우리가 중의 모자를 쓴 부처의 형상"이라 하여 이름 붙여졌으며, 필암산(筆巖山)·천보산(天寶山)이라고도 한다.

남북방향으로 능선이 뻗어 있으며, 산세는 단조로우나 거대한 암벽과 울창한 수림이 아름다운 풍치를 자아내고 있다.

약속이라도 한듯 형형색색 배낭을 메고 발걸음을 옮긴다.

 

주말을 맞아 많은 시민들이 불암산 암벽도전에 나섰다.

청암약수터입구다.

계절은 먼저 옷의 색깔부터 바꾼다.

평화로운 나날이 이대로 계속되리라 믿는 화창한 봄날 아침, 왠 찬바람이 쌩쌩불어댔다.

이럴 땐 단순한 일에 마음을 열어보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끊임없이 도전하는 데에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 깔려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은 실패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 다시 시작할 용기가 있다는 것이다.

실패한 것보다 더 비참한 것은 실패할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청춘을 깎고, 열망을 깎고,

충돌과 인생의 긴 생을 깎으며 삶은 그렇게 소리없이 깊어지는 모양이다.

실망하기 쉬운 가슴이 봄 햇살을 반긴다.

바람 한 켠에서 봄은 조용히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날씨가 많이 풀렸다고 마음을 놓았더니 꽃샘추위가 기성을 부렸다.

불암정에서 본 북한산과 도봉산 암릉들은 하얀 눈을 뒤집어 쓴 채 서울을 호위하고 있었다.

이젠 삼월 하순의 눈도 기상이변 축에도 끼지 않는다.

자연은 스스로 살아갈 내성을 키우고 있다.

봄인가 싶더니 기온은 영하로 내려가 옷깃을 여미게 하고 강한 태풍에 버금가는 바람으로 요란한 산행이었다.

30분쯤 오르막길을 걸어 불암정에 당도하자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불암정(佛巖亭),

이 정자는 임진왜란 때 양주에서 한성으로 넘어오는 왜군을 막기 위해 승병들을 이끌고 이 곳 수락산과 불암산에 매복했다가 노원평 전투에서 큰 승리를 했던 사명대사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동시에 불암산과 수락산 멀리는 도봉산, 북한산까지 한눈에 보이는 곳에 정자를 설치하여 역사와 전통을 생각할 수 있는 곳이다.

북한산 백운대와 인수봉이눈을 뒤집어 쓴 채 봄을 그리워하고 있다.

 

 

불암산의 전설이다.

옛날, 무지하게 먼 먼 옛날 바위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산이 통째로 하늘을 날아 다니던 시대가 있었다.

시생대라고 해야하나, 신생대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 시절 무렵이라는데,

원래 금강산에 붙어 있던 불암산이 수도 한양의 산이 되고 싶어서..............

어느날 불암산은 조선왕조가 도읍을 정하는데 한양에 남산이 없어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그래서 자기가 남산이 되고 싶어 금강산을 떠나 한양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불암산 자리에 도착하여 보니 한양에는 이미 또 다른 남산이 들어서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하여 불암산은 한양의 남산이 될 수 없었기에 금강산으로 되돌아 갈 작정으로 뒤 돌아섰으나 한번 떠난 금강산에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돌아선 채로 그 자리에 머물고 말았다.

이 때문에 불암산은 서울을 등지고 있는 형국이라고 한다.

 

 

 

 

 

걷기를 싫어하는 대학 동창 철수는 걷기는 단지 진통제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근본적인 상처를 치유해 주지는 못한다고 주장했다.

걷는 동안에는 진통제 역할을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결국 다시 스트레스를 받아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을 이어가야 하기에. 그렇게 생각한단다.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난 걷기가 잦아지면 결국엔 상처가 아물 것이라 믿는다.

상처가 아무는 순간이 지나면 걷기는 비타민 영양제로 변한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산은 평지보다 혹은 도심보다 기온이 낮기 때문에 중무장을 했더니 괜한 짓을 했다는 후회가 슬슬 밀려든다.

이마에서 겨드랑이에서 솟구치는 땀은 온몸을 흠뻑 적시기 시작했다.

바람은 세차게 불었지만 몸은 후끈 달아올랐다.

겉옷을 벗고 걸어도 땀은 쉬이 그치지 않았다.

대신 쉴 때 땀이 식으면서 선뜩한 한기가 느껴져 체온 보온이 쉽지 않았다.

자칫하다가는 감기에 걸리기 딱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산도, 구름도, 하늘도, 사람도, 마음을 울리지 않으면 가짜다.

누구에게나 그런 시간이 온다.

세상과 타협해 편하게 살던지, 세상과 한통속이 되기를 철저히 거부한 채 좀 더 전투적인 삶을 선택하던지. 

어떤 삶이 더 마음을 울릴까?

세상과 한통속이 되던 그렇지 않든 힘들기는 50:50이다.

매 한가지다.

 

 

길은 산을 따라 혹은 숲을 따라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낮은 산이기에 걷기 좋은 숲길 정도로 생각했다. 쉽게 생각하고 왔는데 산행의 강도는 높았다.

아무리 걷기 좋은 길이라고 해도 거저 걷는 것은 아닐게다.

한 걸음씩 내딛어야 앞으로 나갈 수 있고, 목표한 지점에 다다를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길을 걸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인내심일지도 모르겠다.

산을 오를 때도 가장 필요한 것은 경험이 아니라 인내심이다.

정상부에 있는 쥐모양을 닮은 바위라 해서 '쥐바위'라 불린다.

토종 쥐인지, 수입산 쥐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불암산은 내가 가본 산 중에서 가장 낮은 산이면서 가장 아슬아슬한 산으로 기억될 것 같다.

깔딱고개에서 정상부까지는 가파른 수직 계단으로 이어져 있다.

설악산 공룡능선의 한 봉우리를 연상케 하는 산이다.

봄이 마실나간 불암산 바위엔 평화로운 햇살만 남았다.

 

 

산을 찾는 것은 산의 지혜를 벤치마킹하는 것이고 길을 찾는 것은 길 위의 다양성을 벤치마킹하는 행위다.

혹자는 세상이 좋아졌다고 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땀을 흘리지 않아도 설악산 권금성을 오를 수 있고 차를 몰고 남해 금산을 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케이블카로 오르는 것과 땀흘리며 오르는 것은 극과 극이다.

케이블카를 타고서는 귓가를 스치는 바람소리를 들을 수 없고 해질녁 석양의 정취를 느낄 수 없다.

산을 오르는 것은 두 발로 자연을 배우는 행위다.

생각에 잠긴 모습이 너무 멋지다.

밥먹을 땐 여럿이 좋지만, 생각할 땐 혼자의 모습이 더 아름답다.

 

 

지혜는 다른데 있지 않다.

자기 자신을 알고, 타인의 요구를 이해할 때 지혜가 생긴다.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은 또 스스로를 사랑한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또 타인의 요구를 이해한다는 것은 타인에 대한 사랑과 연관되어 있다.

어느 작가가 말하길, "최고의 앎은 인간에게서 인간에게로 전해지는 것이다."라고 했다.

보다 많은 곳을 여행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 배우는 것,

이것이 내 여행의 목적이다.

-무사 앗시리드의 <사막별 여행자>중에서,

 

불암산 정상 표지석이다.

숨어버린 하얀 기억을 더듬는 듯한 모습이다.

정신을 무중력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산정상.....

정상에 서면 때론 기다림과 그리움이 칭칭 감겨져 올 때가 있다.

사람이 누군가를 그리워 한다는 것,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알멩이를 모두 내주고 난 뒤 기꺼이 텅 빈 마음으로 남는 행위다.

 

젊음이 뭔지 아나?

젊음은 불안이야. 막 병에서 따라 낸 붉고 찬란한 와인처럼.

그러니까 언제 어떻게 넘쳐 흘러버릴지 모르는 와인 잔에 가득 찬 와인처럼 에너지가 넘치면서도 또 한편으론 불안한 거야.

김동영의 <나만 위로할 것>에 나오는 글이다.

 

바쁘다. 우리는 바쁘다.

늘 'I'm busy'를 입에 달고 산다.

스케줄은 오늘은 물론 일주일치 해야할 일들이 빼곡하다.

주말에는 더 바쁘다.

주중에 미뤄둔 일 정리, 친구나 가족 결혼식 참석, 향우회, 동호회...

가야할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쓰나미에 휩쓸려가듯 자신도 모르게 일상에 휩쓸리지만 '스톱'을 외칠 용기가 없었다.

이런 사람일수록 일에서, 집에서, 익숙한 것들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걷기든, 여행이든....말이다.

걷는 동안은 아무 것도 안 해도 되는 특권을 길이 당신에게 부여했기 때문이다.

익숙한 일상에서는 자신에게 솔직해지기가 어렵다.

사회적 관계와 철든 행실을 하려면 룰에 맞게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우울해도 즐거운 척,

화가 나도 기쁜 척 해야 하는.... 그런 가식이 필요하다.

 

 

 

 

걷기는 강력한 치유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 번쯤은 바람에 자신을 맡기고 길을 떠나본 사람이라면 걷기가 얼마나 부드럽고 강한 치유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 것이다.

상처 난 마음에 반창고를 붙이기 위해,

절망을 이기고 새로운 출발을 위해,

때로는 그 상처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보기 위해 우리는 걷고 또 걷는다.

 

 

 

거추장스러운 것은 모두 벗어버리고 오직 간편한 배낭하나 달랑 메고 길을 나서리라.

꺾이지도 않고, 지치지도 않고

먼 길 끝까지 가려면 가벼운 여정으로 떠나야 한다.

봄은 그렇게 나에게 가르친다.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헬기장으로 가는 길이다. 

 

  

 

한 어부가 있었다.

그는 고기를 잡는 실력이 뛰어났다.

그런데 그는 출어를 할 때마다 맹세를 하는 습관이 있었다.

어느 해 봄에 시장에서 오징어가 비싼 값에 팔리는 것을 보고 즉시 맹세를 했다.

"이번에는 오징어만 잡아와서 큰돈을 벌 것이다."

그런데 잡으려는 오징어는 보이지 않고 게만 잔뜩 보이는 것이었다.

어부는 속이 상했지만 빈손으로 돌아왔다.

어부가 육지로 돌아오자 게의 가격이 오징어보다 훨씬 비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래서 다음에 바다에 나가면 반드시 게만 잡아오겠노라고 맹세했다.

두 번째 출어 때 어부는 게를 찾는 데만 열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징어만 보이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어부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징어 값이 게보다 훨씬 높았다.

역시 후회했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어서 어부는 다음 출어 때에는 게든 오징어든 아무거나 잡겠노라고 맹세했다.

세 번째 출어에서 어부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게도 오징어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연어들 뿐이었다.

그래서 어부는 다시 빈손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