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가 있는 산행기/중부지역

구름도 쉬어가는 참선도량, 안면도 안면암

김부현(김중순) 2012. 4. 18. 20:01

-비루전에서 본 안면암(浮橋, 浮上塔, 무인도 여우섬과 조구널섬) 

 

오래전부터 벼르고 별렀던 곳, 마음으로 사진으로는 벌써 여러 번 다녀온 곳, 구름도 바닷물도 사람도 모두 편히 쉬어간다는 참선도량, 안면도의 안면암을 찾아 나섰다. 

천수만을 바라보는 해안가 언덕에 아스라히 위치한 안면암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출사지이다. 특히 아름다운 일출로 이름난 곳이다. 인터넷을 통해 얻은 선지식이다. 선지식을 확인하러 간다.

-비로전 3층 전망대에서 본 안면암 전경

 

새벽녁 봄바람은 엉성하고 무질서했다.

겨드랑이를 보드랍게 들락거리는 봄바람은 '차렷'이 아니다.

'열중 쉬어' 내지는 '편히 쉬어'다.

봄바람은 긴장감이나 팽팽함이 없다.

그래서 봄바람이다.

약간의 살랑함과 느슨함이 봄바람의 특징이다.

그래서 봄에는 처녀가 바람이 난다.

아침저녁의 봄바람은 생김새가 다르다.

아침바람은 샛님 같고 저녁 바람은 차도녀 같다.

늦겨울과 초봄의 경계에서 두 계절의 삿바 싸움이 치열하다.

새벽엔 늦겨울 쌀쌀함이 설치고, 한낮이 되면 늦겨울 바람은 잠잔다.

그 틈을 타서 초봄 봄바람이 한낮을 지배한다. 

 

이른 봄바람을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며 팍팍한 서울도심을 떠났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시간당 한 대 꼴로 다니는 안면도행 첫 차(06:40)에 올랐다. 10여명의 승객들은 모두 잠이 들깬 듯, 마치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이내 잠공부에 들어갔다. 나도 그랬다. 

한참이 지나 버스가 멈췄다. 자동으로 눈꺼풀이 올라갔다. 당진이다.

버스는 남부터미널~당진~서산~태안의 정류소에 참새 방앗간처럼 들렀다. 방앗간엔 참새가 별로 없었다. 서산을 지나 태안 보리밭이 차창으로 스쳤다. 호사스런 녹색 풍경에 회색빛으로 찌든 눈은 당황스럽기만하다. 3시간 넘게 부지런히 구른 바퀴가 안면도에서 멈췄다.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같은 땅인데도 발바닥의 느낌과 코를 스치는 솔바람이 서울보다는 훨씬 자연에 가까이 왔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택시를 탔다. '안면암'을 외쳤다.

5분만에 도착했는데도 7,000원을 냈다. 택시비가 아깝다면 버스를 타야 한다. 버스로 가려면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가뭄에 콩나듯 찔끔찔끔 다니는 시간대를 잘 맞춰야 하고 절 입구 정류장에서 2.5킬로미터를 발품팔 각오를 해야 한다.

 

시간이 허(許)하거나 자연에 더 다가서고 싶다면 두 발에게 부탁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눈요기 꺼리가 괜찮다.

안면암으로 향하는 길은 소나무 천지다.

소나무 군락지라 불러도 좋고 소나무숲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그 어떤 언어로도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렵다.

 

정말 아름다운 자연과 벗하면 언어의 표현성에 한계를 느낀다. 안면도에는 유독시리 소나무가 많다. 소나무와 비소나무가 여당과 야당처럼 팽팽한 기싸움을 펼치고 있다. '빨리빨리'를 빼고 대한민국을 이야기할 수 없는 것처럼 소나무를 빼고 안면도를 이야기할 수 없다.

내 눈에 보이는 건 온통 소나무뿐인데도 택시 기사는 지금은 소나무가 적은 거라고 한다. 연륙교 다리가 생기기 전에는 육지로 소나무가 나가지 않아 소나무 때문에 도로 내기도 어려웠다고 전해 주었다. 그래도 내 눈에 들어온 안면도의 첫인상은 단순하다.

'안면도=소나무, 소나무=안면도'라는 이분법적 공식이다. 안면도의 소나무는 욕심쟁이다. 승자들이다. 지들끼리 학연, 지연을 넘어 혈연으로 의기투합해 다른 나무들은 기를 펴지 못한다. 독과점을 이루고 있다. 안면도의 진달래는 불쌍하다. 소나무 밑에서 꽃을 피우기 위해 24시간 내내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소나무가 햇빛을 가리고 영양분을 다 먹어치우는 통에 영양실조에 걸린 진달래가 태반이다. 자세히보면, 진달래라고 다 같은 진달래가 아니다. 색깔도 다르고 크기도 다르고 색깔의 농도도 다르다. 소나무 탓이다.

 

소나무가 판을 치는 독과점 구조 속에서 꽃을 피우는 진달래는 그래서 대단하다. 소나무 곁에 치여서도 기어코 꽃망울을 터트리는 진달래를 보면 참 부럽다. 그의 용기와 기백이 대단하다. 설악산 천불동 계곡 바위 틈에 핀 진달래 못지 않다. 자연의 섭리라고 치부하기에는 안면도 진달래가 너무 안쓰럽다.

자연에도 변화와 경쟁 논리가 엄연히 존재한다. 안면도의 소나무들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 다른 나무들을 제치고 경쟁우위를 점하고 있다.

안면암 가는 길가의 소나무와 태안해변길에 서있는 소나무와 안면도 자연휴양림 소나무 군락지의 소나무는 각각 다르다. 환경에 맞게 크기와 색깔이 키가 다르다. 그러니 변신의 귀재라 불러 마땅하다.

 

안면암(편안할 安, 쉴 眠, 암자 庵)은 글자그대로 '편안하게 쉬어가는 참선도량'이라는 뜻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네이버 백과사전).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末寺)이다.

법주사 주지와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 등을 지낸 지명스님을 따르던 신도들이 1998년 안면도 해변가에 지은 절이다. 아름다운 절로 이름난 곳이다. 아름다운 절경은 대부분 위험한 벼랑에 있는 법이다.

다른 절에 비해 역사는 짧지만 도량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천수만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3층짜리 현대식 건물로 지어졌다.

내부는 공양처와 불자수련장, 소법당, 대웅전, 선원(禪院), 불경독서실, 삼성각(三聖閣), 용왕각(龍王閣)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면암 입구의 7층 불상 철탑은 얼핏 보기에는 그 포스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체력이 부족한가보다.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여러 갈래의 손가락 굵기의 쇠줄이 곳곳에 탑을 보호하고 있었다. 택시 기사의 말로는 예전 태풍 '곤파스' 때 철탑이 넘어진 적이 있었다고 한다. 물어보지 않았는데도 기사는 많은 정보를 주었다. 탑은 태풍 후 수술에 들어가 지금 저렇게 쇠줄에 의지해 있다고 한다.

택시 기사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난 내내 궁금했을 것이다.

왜 저런 쇠줄을 감고 있는지가.

고맙다.

 

안면암은 여느 절처럼 목재나 석재 건물로 고즈녁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대신 시멘트로도 중후하면서도 화려한 사찰 본연의 미덕을 살렸다는 것이 특이하다.

'나무=사찰'이라는 수천년 이어져온 절에 대한 상식을 뒤집어 엎은 것이다. 이젠 불교도 대중들 속으로 들어왔으면 한다. 산속에 있어야 절은 아닐 것이다. 아름다운 절은 산속이나 절벽 위에 있는 절이 아니라 속세의 한 가운데 있는 절이어야 하지 않을까.

 

한낮에 도착한 안면암은 온통 봄햇살 천국이었다.

햇살이 판을 치는 통에 아지랑이도 덩달아 지붕위를 휘감는다. 아침엔 코 끝에 스치는 공기가 '싸~' 했는데 벌써 겉옷을 하나 배낭에 집어 넣었다. 기온은 밀물처럼 빠른 속도로 대지를 데우고 있었다.

계절이 바뀌는 시기가 환절기다. 하루치의 기온차가 큰 날이 계속되는 시기를 환절기라 하는 것도 틀리지 않다. 요즘이 그렇다. 그래서 다들 환절기라 한다. 환절기 감기는 고약하다. 잘 낫지 않아서다.

안면암에서는 환절기 감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안면암에는 벌써 봄이 왔다.

 

 

비루전을 나와 해안가쪽으로 눈을 돌렸다.

동자승들이 공부는 하지 않고 한가로이 바둑을 두면서 땡땡이를 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겠지', '휴식시간이겠지' 라고 생각했다. 근데 도박 바둑이다. 돈을 걸고 내기를 하는 폼세다.

머리에 손에 발바닥에 동전이 있다.

자세히 보면 속세의 인간사가 다 보인다.

두 대국자의 자세는 사뭇 진지하다.

감독관은 '열중 쉬어' 자세로 엄숙함을 유지하고 있고, 바둑에 취미가 없는 동자승은 귀퉁이에서 졸고 있다. 

단연 압권은 턱을 괴고 엎드려 있는 동자승이다.

최고참은 아닌 듯한데 편안해 보인다.

그래 말이다. 이거다. 이런 모습이다.

늘 바른 자세로 공부하는 스님들에게도 이런 봄날 같은 휴식시간이 필요하다.

속세를 떠난 스님에게도 때론 속세 체험이 필요하다.

우리가 템플스테이를 하듯 스님들도 속세체험이 있으면 참 좋겠다.

어차피 스님이나 나는 지구촌이라는 한 마을에 살고 있으니까.   

 

비루전 3층 전망대에서는 안면암의 전체 뒷모습을 감상하기에는 안성맞춤인 장소다.

간조로 맨몸을 드러낸 채 더위를 식히고 있는 갯벌은 따습한 햇살을 반사시켜 눈이 부셨다. 간조인데도 멀리 천수만 갯골에는 자기 용량만큼의 물을 머금고 있다.

이 갯골을 도로삼아 부지런한 어부들은 일을 나간다.

 

 

안면암은 기존의 절 형식을 거부한다.

나무가 아닌 스텐을 절단하고 용접해서 만든 7층 3쌍탑과 나한전 본관의 모습이다. 철제 불상탑들은 하나같이 바람에 약하다. 그래서 몸뚱아리에는 쇠줄을 감고 있다. 2010년 9월 서해를 강타한 태풍 '곤파스' 때의 피해 때문이다. 바람이 많이 찾는 해안가 절벽에 위치한 절에서 이런 스텐 불상탑이 왜 만들어진 것일까?

궁금했다.

집에 오는 내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궁금하다.

스텐으로 만든 불상은 난생 처음이다.

 

7층 3쌍탑의 뒷모습이다. 앞모습과 다르지 않다.

진실되고 또 진실되도다.

이 3개의 철탑은 석지명 스님이 불자들의 도움을 받아 직접 설계, 제작하였다.(철탑 앞 안내문)

"세상에 빛이 될 인재가 많이 솟아오르게 해 달라"는 발원을 담은 글이라고 한다.

 

안면암 용왕각 옆 '마음에 소원을 담아서'라는 소원을 적어 걸어두는 곳이 있다. 가족의 건강이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불자들의 간절함이 들어 있다.

절에 들면 누구나 불자가 된다. 인형에다 건강을 기원하는 글을 적어 매달아 놓은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종이에 적은 소원들을 다른 사람들이 소원을 빼앗아 가지 못하도록 묶어 놓았다.

 

무량수불인 아미타여래를 모신 법당, "무량수전(無量壽殿)"이다.

극락의 주불인 아미타불(阿彌陀佛)은 자기의 이상을 실현한 극락정토에서 늘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고 있는데, 이를 상징하는 극락전을 아미타전 또는 무량수전이라고도 한다.

국보 제 18호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이 단연 으뜸이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본전으로 신라 형식으로 보이는 석기단 위에 초석을 다듬어 놓고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배치하였다.

기둥은 배흘림이 많은 두리기둥을 세웠다는 것이 특징이다.

 

'안면암'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다 위를 걸어갈 수 있는 '물에 뜨는 다리', 부교(浮橋)이다. 만조시에는 실감나는 환상적인 부교체험이 가능하다. 

부교는 물이 빠지면 부교 위를 걸어 쌍둥이섬(왼쪽 여우섬, 오른쪽 조구널섬, 가운데 부상탑)까지 가는 동안에 양쪽으로 펼쳐진 갯벌을 감상할 수 있으며, 바닷물이 만조가 되면 수면위로 다리가 떠올라 바다위를 걸어갈 수 있다.

법당 무량수전 2층에서 본 절경이다. 물이 빠져 뻘밭으로 변한 바다는 거대한 육지였다.

 

 

만조시에는 안면암에서 바다위 부교다리를 건너서, 간조시에는 걸어서 천수만의 무인도인 여우섬(여우섬엔 여우가 살았을까)과 조구널섬(옛날 조기를 널려 말리던 섬) 그리고 두 무인도 사이에 있는 부상탑(浮上塔, 물에 뜨는 탑)에 갈 수 있다. 

빨간색 스치로폼과 나무판으로 만들어진 부교를 건너가 만나게 되는 여우섬과 조구널섬의 모습도 보인다.

 

 

부교위 나무 기둥에는 많은 불언(佛言)들이 새겨져 있다.

아함경의 글귀가 이채롭다.

"자신보다 약하고 어리석고 답답한 이 앞에서 참는 것이 진정한 참음이며, 위대한 승리이다."

 

 

두 개의  섬 모두 신기하게 퇴적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태안지역에서는 유독 이 섬만이 퇴적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주도의 돌멩이 사촌쯤 돼 보였다. 구멍숭숭 뜷린 돌은 아니었지만 엉성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특이하다.

 

안면암 기록에 의하면, 부상탑 내부에는 '1000불 탱화'와 '1000불벽화'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바다에 떠있는 불상, 상식을 비상식으로 내친다.

거친 바닷 바람과 세찬 물살을 천불탱화의 힘으로 이겨나가고 있을 터이다.

 

 

부상탑에 대한 설명이다.

태안 기름 유출 사고로 얼룩진 태안 바다를 살기 좋은 곳으로 북원시킨다는 염원을 담은 탑이다. 지금 태안에는 겉으로 보기에는 기름 유출사고의 아픔을 떨쳐낸 것으로 보였다. 바다는 그랬다.

사람은 모르겠다.

 

김훈은 <자전거여행>에서 서해의 갯벌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서해는 깊이 밀고 멀리 당긴다.

갯벌은 육지와 바다의 완충이며 진행형의 대지다.

갯벌은 오목하고 부드럽다.

육지 쪽은 뻘이고 바다 쪽은 모래이다.

뻘은 물의 힘이 약한 내륙 쪽에 가라앉고 모래는 물의 힘이 센 먼 바다 쪽에 가라앉는다.

모래가 뻘보다 무겁기 때문이다.

굵은 입자일수록 멀리 가서 가라앉아, 사람과 가까운 쪽이 가장 부드럽다.

그래서 그 넓은 갯벌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가지런한 퇴적물의 스펙트럼을 이룬다.

갯지렁이와 게는 뻘에서 살고 조개는 모래에서 산다.

게는 뻘을 먹고 살고 조개는 물을 먹고 산다.

뻘과 물속에도 일용할 양식은 있다.

물고기들은 게를 잡아먹고 새들은 조개를 잡아먹는다.

그래서 게와 조개들은 뻘 속에 구멍을 파고 살거나 바위에 착 달라붙어서 산다."

 

김훈은 참 지독하다.

하나의 글 꺼리를 잡으면 집요하다.

산수유, 배꽃, 갯벌, 진달래, 소나무 등 하나도 허투루 넘기는 법이 없다.

일상적인 것들이 그의 글을 통하면 특이한 것이 된다.

<자전거여행>, <풍경과 상처>와 같은 기행문이나 에세이를 보면, 글 꺼리에 대해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그 단어를 샅샅히 해부한다.

그래서 그의 글은 부사가 없다.

그의 글은 형용사도 조사도 없다.

그의 글은 접속부사도 없다.

그의 글은 문장이 짧다.

그의 글은 사실적이다.

그래서 감동적이고 울림이 크다.

부교를 건너 맞은편 바다쪽 섬에서 바라보는 절벽위 안면암의 풍광 참 멋지다. 물 빠진 갯벌은 평온하지만 생물체들의 이동이 활발하다.

 

 

 

바다쪽에서 본 안면암의 앞모습이다. 민 낯인데도 얼굴이 잘 생겼다.

어느 절인들 절경 아닌 곳이 있으련만 안면암은 절경 속의 절경이다.

수천, 수백년 된 유서깊은 사찰은 아니지만 불심은 그 짧은 역사를 뛰어넘고 있는 것 같다.

 

조병화 시인은 ‘해인사’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큰 절이나 작은 절이나 믿음은 하나, 큰 집에 사나 작은 집에 사나 인간은 하나"라고.

절의 크기가 믿음의 크기는 아니다.

법당의 크기가 불심의 크기도 아니다.

믿음과 불심은 크기가 아니라 신뢰에서 나온다.

자신과 세상과 자연에 대한 신뢰에서...

 

무량수전 법당 옆에 있는 용왕각과 산신각이다.

지나는 두 남녀의 바짓가랑이 길이만봐도 안면암의 봄기운을 가늠할 수 있다.

혼자보다는 둘일 때 더 안정감이 있다.

사람이 그렇다. 남녀가 그렇다.

 

안면도에는 우리나라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일출과 일몰 지역이 있다.

일출은 안면암, 일몰은 꽂지해수욕장 할미,할아비바위다.

안면암 법당 2층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서 본 일출이다.

아래 사진은 안면암 홈페이지에서 빌려왔음을 밝힌다.

 

안면암은 내게 우연처럼 다가왔다.

안면도 태안해변길 5구간 노을길(백사장항~꽂지해수욕장, 12km, 4시간)을 걷기 위해 갔다가,

졸지에 택시 기사님 덕분에 간 곳이다.

여행이란 이런 것이다.

필연이 우연처럼 사라지기도 하고, 우연이 필연처럼 다가오기도 하는....

꼭 가봐야지 했다가 못 가본 아쉬움보다 뜻하지 않게 갔다가 '와~' 하고 느끼는 즐거움  중 어느 것이 참일까.

나는 후자다.

그래서 여행은 너무 상세하게 계획표를 짜지 말자. 쫌.

그냥 떠나자.

우연의 횟수가 많아질수록 추억은 커진다.

안면도엔 소나무만 있다는 내 속좁은 마음을 벗어던지게 되어 다행이다.

그러나 여전히 내 머리통을 맴도는 문장이다.

"안면도엔 왠 소나무가 그리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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