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봉에서 본 삼악산과 북한강
▶산행일정 : 강촌역~봉화산~검봉산~강선봉~강선사~강촌역
▶세부여정 : 강촌역~(0.5km,10분)~창촌리들머리~(2.1km,40분)~헬기장~(2.0km,40분)~봉화산~(2.1km,60분)~감시카메라~(1.0km,20분)~이정표삼거리(1.2km,60분)~검봉산~(1.6km,60분)~강선봉~(1.3km,40분)~강선사~(0.4km,10분)~강선사입구~(1.0km,20분)~강촌역
▶거리 : 13.6km
▶소요시간 : 6시간
자동차 타이어처럼 구르는 일상의 야속함.....
왠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을 파고드는 추남의 쓸쓸함.....
옷깃을 스며들어 목덜미를 휘감는 서늘한 공기의 아찔함.....
TV 메인 뉴스에선 설악산 단풍이 어쩌구 저쩌구 영남알프스 억새가 어쩌구 저쩌구.... 요란하다. 일상을 견디기도 벅찬데 자꾸 콧구멍에 바람을 넣는다. 가슴에 구멍이 생기는 남자의 계절 가을, 이맘 때면 연례행사처럼 부닥치는 이런저런 상념과 쳇바퀴에 지치기 마련, 산이 생각났다.
-봉화산에서
주말 상봉역, 서울~춘천을 오가는 행락객들의 만남의 장소다.
단풍보다 더 알록달록한 복장들로 도심을 탈출하려는 객들로 그야말로 역사(驛舍)는 아수라장이다. 월요일 만원 지하철이 부럽지(?) 않다. 적어도 동서남북 네 명 정도와 몸을 부벼야 할 정도로 복잡하다.
강촌역 봉화산, 검봉산 산행은 시작부터 만만치 않은 통과의례가 필요했다. 단풍철엔 어딜가나 교통난이 심하다. 특히 주말 나들이는 고생길이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라는 속담을 알면서도 배낭을 싼다. 교통체증이 덜한 전철로 갈 수 있는 산행지를 택했는데...
나의 잔머리는 시작부터 삐걱대댔다. 하지만 몸을 부비면서도 도심을 벗어나기가 무섭게 북한강을 끼고 스쳐가는 대성리, 가평, 청평의 산과 강을 보면서 그 보상을 받는다. 지나는 풍경이 여간 정겨운 게 아니다.
-검봉산 정상에서
휴일 서울 북한산, 청계산, 도봉산은 나무보다 사람이 더 많다. 바위보다 사람이 더 많다. 사람이 산이고 골짜기다. 봉우리고 능선이고 계곡이고 간에 산 전체가 월요일 출근길 2호선 만원 전철을 떠올리게 한다.
누군가 "적막하지 않으면 산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서울 근교산에서 적막감을 느끼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소위 명당 자리라 불리는 그늘에는 김치와 된장 냄새로 진동한다. 그래서 '명당 코스는 사람이 적게 다니는 등산로다'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명당길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앞서 강촌을 갔다온 지인이 불어넣는 바람에 귀가 솔깃해진 난 결국 춘천행 전철을 탔다. 강촌역엔 추억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강촌엔 구곡폭포만 있는 게 아니다.
산행하는 사람들도 많이 몰려드는 곳이다. 강촌역을 아우르고 있는 삼악산, 봉화산, 검봉산의 위용은 대단하다. 오늘은 구곡폭포와 문배마을을 감싸고 있는 봉화산과 검봉산을 연계하여 걸어보기로 한다. 지도 아래 창촌중에서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 원점산행하는 코스다. 총 3개 구간으로 나누어 정리해 본다.
신 강촌역사 앞.
역 앞 이정표는 강촌역 주변에 가 볼만한 곳을 잘 알려주고 있다. 우측 강촌유원지 방향으로 200미터 내려가면 사거리가 나온다. 사거리에서 강촌IC 방향, 우측으로 돌면 곧장 강촌프로포즈계단이 나오고 50미터를 더 가면 산행들머리인 봉화산 이정표가 나온다.
강촌역에 새로운 명물로 각광받는 이른바 'GPS(Gangchon Propose Stair : 강촌프로포즈계단)'이다.
YES/NO의 두 갈래 계단이 있다.
세상사 대부분은 양자택일이다. 여당과 야당, 부자와 빈자, 잘난 놈과 못난 놈, 여자와 남자... 인간은 태생적으로 편가르기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제1구간 : 강촌역~봉화산(4.6km,1시간 30분), 완만한 오르막 경사구간
들머리 이정표를 따라 오른다.
키다리 잡풀들이 무성하다. 시작은 가파른 오르막, 다행히 낙엽이 쌓여 먼지가 풀풀 날리지는 않는다.
채 이마에 땀이 맺히기도 전에 벌써 코가 뻥 뚫리고 목이 편안해진다. 숲에 든 것이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느낀다. 설악산 숲과 봉화산 숲이 다르지 않다. 북한산 숲과 검봉산 숲이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다.
20여분 땀을 빼면 시야가 확보되는 능선에 오른다. 능선길이지만 햇살이 눈을 찌르지 않아 좋은 점도 있지만,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단점도 있는 길이다.
단풍길에 객이 있어도 텅 비어도 아름다운 길이다.
그 어떤 경우에도 초라하지 않은 길이다. 능선은 부드럽고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다. 오르내림이 심하지는 않지만 은근한 끈기가 필요한 길이다. 지리한 능선의 반복이 이어진다.
본격적인 봉화산 단풍을 즐겨볼 시간이다.
능선이 반복될수록 더 깊은 가을빛을 낸다. 평평한 능선길은 사색할 수 있는 행운을 주기도 한다. "호기심을 회복시켜 준 것이 여행이자, 산이었다."라고 말한 한 어른의 명쾌한 일침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돌이켜보니 그런 것 같다. 어느 순간 궁금한 것도 물어볼 것도 없어졌다. 산을 오르고 걷고 이곳 저곳을 여행하다 보면 세상이 다시 호기심으로 가득찰 수 있을까. 그런 것일까.
"천천히 오르자, 하지만 꾸준하게 가자."
이것이 산에 들 때 내가 지키는 산과의 약속이다. 천천히 걷는 것이 느린 것은 아니다. 일상의 분주함을 산에서까지 적용할 필요는 없다. 월화수목금 일주일 고생했다. 이렇게 나를 보듬고 다독이는 시간이다. 나를 위로하는 시간, 나에게 힘을 주는 시간이 산에 들 때다. 산에 들면 또 다른 나를 만난다. 세상의 이야기들과 나의 이야기들...
생각의 넓이와 이해의 폭이 커진다.
산에서의 시간 덕분에 무분별하게 받아온 많은 자극들이 내 안에서 스스로 용해되고 분해된다. 슬픔도 원망도 반감되고 몸도 마음도 여유를 찾는다.
나에게 산은 그런 곳이다.
누구에게나 그럴 것이다.
그러니 산에 들거는 좀 천천히 걷자. 천천히...
'세상을 너무 복잡하게 산다'는 충고를 가끔 듣기도 한다.
삶을 간단하게 사는 사람이 있기는 한걸까.
가을 들녁에서 지게를 지고 가는 농부는 카메라를 멘 사람에게는 멋진 풍경이겠지만 그 농부에게는 결코 풍경이 아니다. 삶이다. 그 어떤 삶이든 가볍지 않고 간단하지 않다.
공자 천성을 가진 사람이라도 종종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는다.
마음이 덜컹거리는 사람이 한 둘은 있기 마련이다. 이들과의 관계에 윤활유를 제공하는 것이 자연에 드는 것이다.
얼마간 살랑살랑 걸었더니 호흡을 가쁘게 하는 능선을 만난다.
봉화산은 고만고만한 많은 능선을 오른다. 재미있는 길이다. 호흡이 가빠질만하면 평지가 나온다.
강촌역~봉화산 정상의 중간기착지다. 첫 번째 쉼터다. 구곡폭포관광지 매표소 주차장으로 내려갈 수도 있다.
"Just try it"
걷고 오르고 다니는 내내 끊임없이 내게 알려준 자연의 외침이었다.
뭐든 해보고 느껴보고 부딪쳐보라는 산의 명령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해보기 전에 너무 많은 생각을 한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그러한 상황들은 별일 없이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법 많은 능선길을 오르내린 뒤 맞이하는 봉화산(烽火山, 526m) 정상이다.
조선시대에 피웠던 봉수대가 있어 봉화산이라고 불린다. 그래서 우리나라 각지에는 봉화산이 매우 많다. 특히 춘천시에는 북산면과 남산면, 두 곳에 봉화산이 있다. 그 많은 봉화산 중에 수도권에서 가장 사랑받는 곳은 남산면에 자리한 봉화산이다.
정상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금방 알 수 있다. 정상 좁은 공터에는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조망하기 좋은 높은 산봉우리에 설치하여 밤에는 횃불을 피우고 낮에는 연기를 올려 나라의 위급한 소식을 중앙에 전하는 시설을 봉수대라고 한다. 봉수 제도는 삼국 시대에 처음 시작되어 고려 18대 왕인 의종(재위 1146~170년) 때 확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디 봉화는 밤에 피우는 횃불만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낮에 올리는 연기까지도 포함해서 흔히 봉화라고 불렀다고 한다.
봉화산 봉수대의 연기 대신 형형색색의 무지개색 단풍을 조망해 본다.
두 개의 봉우리 중 왼쪽 산이 가야 할 검봉산이다. 오른쪽 봉우리는 강선봉이다. 역시 가야할 길이다. 아름답지만 조망권이 확보되지 않아 군데군데 지리한 능선의 반복이다. 이런 풍경에 맞설 때 똑딱이 카메라의 한계를 실감한다.
삼악산을 당겨봤다.
암릉과 바위로 이루어진 산행재미가 아주 좋은 산이다. 춘천의 자랑 중도가 아름답게 내려다보이는 산이다.
아래쪽은 구곡폭포관광지 주차장이다.
정상 이정표에 올라선 산객....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언뜻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왼쪽으로 문배마을도 살짝 보인다.
두말할 필요없이 봉화산 최고의 명소는 구곡폭포다. 아홉 굽이를 돌아 들어간다고 해서 구곡(九曲)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제2구간 : 봉화산~검봉산(4.7km,2시간), 완만하게 오르내리는 능선길 구간
봉화산~검봉산 구간도 제법 길다. 이정표는 말한다. 4.7km.
봉화산은 부드러운 흙산이어서 편안하게 등산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봉화산을 지나 검봉산으로 향한다. 여기서 양자택일이 필요하다. 먼저 봉화산~문배마을~검봉산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봉화산~임도~감마봉~암릉~검봉산으로 향할 것인지...
난 후자쪽을 택했다. 완전한 연계종주를 위해서...
많은 사람들은 전자를 택한다. 따라서 내가 걸었던 길은 한산했다. 봉화산 정상에서 부대꼈던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하고 살짝 궁금했다.
앞서가는 산객들의 일상이야기를 듣는 것도 산행의 또 다른 재미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데...."라는 말이 나의 촉수를 건드렸다. 그럴 것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은거다.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진정 좋아하는 일이 무언지를 찾기 위해 어떤 노력과 정성을 다했는지... 가슴이 작아지고 입은 벙어리가 된다.
많은 이들이 스티브 잡스를 롤모델로 들먹이지만 잡스는 뜻하지 않은 인도 여행을 통해 선사상을 접하게 되었고 그것이 단순한 디자인이라는 애플의 철학이 되었다.
말이 아닌 가슴으로 찾아보자.
봉화산에서 10여분을 걸으면 임도와 만난다.
임도에서 좌측 문배마을 방향으로 500미터쯤가면 검봉산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온다.
봉화산 정상에서 이곳까지는 오는 길이 번거롭다.
가파른 오르막길과 마주하게 된다.
거친 호흡을 토해낼 무렵이면 조그만 봉우리에 오른다.
감마봉이다.
왜 감마봉인지는 알길이 없다.
잠시 휴식....
간만에 배낭을 벗고 앉아본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살갑다. 아침녁으로는 서늘하지만 한낮은 여전히 요름의 끝자락에 머물러 있다. 감마봉에서 서니 시야가 확트인다. 검봉산, 강선봉 멀리 삼악산도 함께 조명된다. 멋진 전망대 역할을 한다. 10월 어느 휴일 춘천의 산들은 그렇게 불타고 있었다.
가을 산을 붉게 만드는 것은 단풍나무만이 아니다.
옻나무의 화려한 자태도 멋지다. 옻을 타는 사람들은 말만 들어도 온 몸에 옻이 오른다. 옻나무는 낮은 곳에서 산을 물들인다. 키 큰 나무들 틈바구니에서 기어코 자신의 이름을 알린다. 고맙다.
산객들의 발걸음이 가장 무딘 봉화산~감마봉 구간을 지나 감시카메라가 있는 키작은 철탑에 도착했다. 카메라가 작동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산중에 감시카메라?
놀라운 일이다.
이정표는 내가 감시카메라 지점에 와 있음을 알려준다. 오가는 이 하나 없는 휑한 구간이다. 산돼지를 만날 것 같은 그런.....구간이었다.
이 구간은 문배마을을 애둘러 가는 코스다.
감시카메라 구간을 지나면 조선 선조시대 화전민이 일구었다는 문배마을에 근접한다.문배마을에는 사람들 소리로 요란했다. 오리를 잡고 두부를 먹고 족구를 한다.
문배마을은 해발 430미터의 아늑한 분지에 올라앉은 오지 마을로 알려져 있다.문배 마을에는 임진왜란 이후부터 전쟁을 피해 사람들이 살았다는 말이 전해지지만 주민들에 따르면 약 200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문배 마을은 화산 분화구처럼 사방이 산으로 에워싸인 아늑한 분지에 자리 잡고 있다.
문배라는 이름은 봉화산 줄기인 앞산이 흡사 배처럼 생겨서, 또는 지형이 짐을 가득 실은 배 같다고 해서 붙은 것이라고 한다. 산에서 자생하는 돌배보다는 크고 과수원에서 재배하는 배보다는 작은 문배나무가 많아서 그렇게 불린다는 말도 있다. 드문드문 흩어져 사는 이 마을의 10여 가구는 모두 토속음식점과 민박을 겸한다.
잠시 숨을 고른 후 배낭을 맸다.
문배마을을 애들러 지나 검봉산으로 향한다.
능선이 다소 완만해지고 좁은 능선길이 이어진다.
가을이 저물어 가는 탓일까, 발을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잠들어 있던 낙엽들이 놀라 날아오른다. 간혹 인적이 드문 곳엔 바스락거리며 낙엽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앞서가는 꼬맹이, 문배마을에서 엄마 아빠를 졸라 닭을 잡아 먹은게 틀림없다. 힘차게 오른다.
붉은색보다 더 귀한 노란색 단풍나무를 만났다. 자주 볼 수 없는 낯선 단풍이다.
낯섬과 마주한다는 것은 축복이다.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탈출이니까.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라는 고은의 싯구를 들먹이지 않아도....
오전에는 왼쪽 뺨만 집중적으로 비추던 햇살, 봉화산을 지나 문배마을에 닻을 무렵에는 뒤에서 그리고 이젠 오른쪽 뺨에다 햇살이 집중포화한다. 방향에 따라 얼굴을 사방으로 돌아가며 그을려 준다. 굴봉산과 엘리시안강촌, 검봉산으로 갈라지는 삼거리..... 검봉산 정상 500미터....
오가는 산객들의 발걸음은 참 가볍다.
몇 시간을 걸으니 갑자기 신발의 무게가 느껴진다.
"신은 장사다. 사람을 든다."는 한 초등학생의 시를 보고 한참을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오늘 내 신은 고생이 많다. 하루 종일 나를 들고 다니려니 말이다. "창의력 부재의 가장 큰 걸림돌은 지식과 경험이다."라는글도 의미심장하다. 지식과 경험이 생기는 순간 습관이 생겨 사고가 경직되아서일까...궁금하다.
검봉산 정상부에 있는 200미터의 가파른 계단길이다. 올라가는 계단과 내려가는 계단이 구분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그런 경험 있을 것이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 내려오는 사람과 부딪혔을 때의 그 꿀꿀한 기분...말이다.
배려가 고맙다.
검봉산 정상부에 있는 조망데크다.
전망도 좋지만 단풍도 아주 곱다. 햇살이 아주 좋아하는 양지바른 구간이다.
검봉산 전망데크에 서면 내로라 하는 인근 산들이 검봉산을 주시하고 있다.
멀리 좌측으로부터 명지산, 국망봉, 화악산, 삿갓봉, 용화산 이 한 눈에 들어온다.
검봉산(530m) 정상석이다. 검봉산은 춘천 남산면 강촌리에 있는 산이다.
마치 칼을 세워 놓은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칼봉 또는 검봉이라 불리기도 한다. 봉화산과 연계하여 산행하는 코스로 잘 알려진 산이다.
산의 생김새보다는 칼과 얽힌 전설이 있다.
통일신라 말기 왕건에게 패하고 쫓겨온 궁예가 건너편 삼악산에 성을 짓고 있을 때. 이 곳에서 신라의 한 장수가 흐드러지게 칼춤을 춰 궁예군의 넋을 빼놓았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제3구간 : 검봉산~강촌역(4.7km,2시간 10분), 오르내리는 완경사구간
봉화산과 능선으로 연결되어 마치 하나의 산에 두 개의 봉우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두 산의 경계가 없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면 산은 결코 단절되거나 경계지워지는 경우가 없다. 산맥과 산맥으로 골짜기와 골짜기로 북한산과 오대산이 연결되고 지리산과 한라산까지도 연결되어 있다. 특히 봉화산과 검봉산은 엇비슷한 높이여서 서로 잘 난 체하지도 않고 비교하거나 키재기를 할 필요가 없다. 한 지붕 두 가족의 산이지만 단풍색은 하나다.
검봉산 정상부에 있는 명쾌한 이정표.... 검봉산~강선봉~강선사까지 3.2km....
검봉이라고 해서 포악하지는 않다. 검박하되 비루하지 않은 산이다.
걷고 또 걷는다.
풍경은 아름답지만 길은 길고도 지리하다.
특히 검봉산에서 강선봉까지 구간의 단풍이 아름답다.
봉화산과 검봉산은 올망졸망한 봉우리와 능선을 수없이 품고 산다. 길이 아까워서 천천히 가야 하는데 풍경이 너무 좋아 빨리 가게 된다. 신발에 바퀴가 달렸는지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새로운 단풍의 바다는 끝도 없이 펼쳐저 있었다. 경건하게 산에 들어 공손하게 풍경을 맞았다. 햇빛은 밝고 하늘빛은 푸렇고 단풍빛은 붉었다.
검봉산 능선은 여러 변방 오지에 흩어진 인간의 삶이 현실과 관련을 지으려 할 때 반드시 넘어야 할 고개로 느껴졌다.
일종의 인생 통과의례와 같은... 능선 곳곳에는 바위들이 나무턱에 기대서 있다. 오르막에서 지친 몸이 내리막에서 풀리고, 오르막에서 난 땀이 내리막에서 식는 구간이다.
검봉산 고갯마루 단풍길은 가을빛의 바다였다.
오래 전 이곳에서는 새벽처럼 빛을 맞이하는 제사를 지냈을 법힌 곳이다. 풍경을 설명하려는 어줍잖은 객들의 끈질긴 허영심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 웅장한 산하에서 한낱 티끌로 떠도는 인생사의 아픔을 떠올려 본다. 간혹 오가는 이들이 반갑다.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곳이 많다.
'아아아~!!!!!'
감탄사를 연발하다 보면 어느새 강선봉에 닿은다. 땀은 흐르지만 피곤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강선봉 정상.... 사면은 깍아지른 절벽이다.
강선봉에서 본 북한강은 단연 으뜸 경관이다.
강선봉을 내려서면 마주치는 고사목 소나무....
포토존이다. 카메라를 멘 오가는 이들에게는 가장 많이 찍히는 놈이다.
먼발치로 신강촌역사가 손에 잡힐듯하다.
속도는 빨라졌지만 그에 비례해 추억과 낭만은 사라졌다.
강선봉 아래 고사목 소나무에서 15분쯤 내려서면 강촌역과 강선사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예전에는 강촌역으로 가는 길이 없었는데 최근에 생긴 것 같다. 강선사로 향한다. 강선봉을 올려다 본다. 해거름이다.
삼악산은 여전히 햇살 천국이다.
삼악산과 북한강의 궁합이 아름답다.
도심이 잠든 휴일 아침,
서울을 벗어나 깨어난 자연을 만나러 여기까지 왔다 해는 온종일 부지런히 가을들녘과 산을 골고루 비추었고 햇살의 강도만큼 숲은 허물을 벗기에 바빴다.
숲은 도심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가을의 정점으로 치닫고 있었다.
책상에 앉아 남의 여행기 사진에 안위하며 즐거워해야 했던 일상에 반기를 들게 하고, 하루쯤 일상의 속도에서 벗어나 자연의 속도로 살고 있는 곳, 강촌은 내개 그런 곳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다 정리하지도 못한 채 강선사에 닿았다.
강선사(降仙寺)는1958년 심상봉에 의해 창건되었다. 대웅전, 극락전, 요사를 갖추고 있다. 강선봉 배꼽 위치에 자리잡은 강선사에는 벌써 가을 볕이 놀다 가고 있었다. 강선봉 암릉을 머리에 인 강선사는 경사지에 안착해 있다.
화엄(華嚴)의 힘이 강선사 풍경에도 골고루 미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수행을 하고 만덕을 쌓아 덕과를 장엄하게 하는 일"을 화엄이라 한다. 화엄은 인간의 속세를 일거에 열어젖혀 모든 죄를 사하게 한다. 강선사에 드니 문득 떠오르는 시가 있다. 바로 조병화의 '해인사'에 나오는 명쾌한 한 구절,
"큰 절이나 작은 절이나 믿음은 하나,
큰 집이나 작은 집이나 사람은 하나"
강선사는 큰 절도, 작은 절도 아닌 적당한 크기의 절이었다. 과하지도 부족함도 없는 딱 그 크기...
세월의 나이테를 켜켜이 쌓아 있는 절 앞 은행나무도 허물을 벗었다.
오늘, 지금, 이 시간...
나를 강선사로 이끈 것은 다름 아닌 인연일터... 강선사 들 앞 단풍나무에 걸린 한 편의 시다. 만나는 사람, 옷깃을 스치는 사람, 만원 전철에서 몸을 부비는 사람들...모두...인연이다.
아주 귀한.....
인터넷을 떠돌다 저의 블로그, 예까지 오신 모든 님들...
참 좋은 인연입니다.
"날마다 좋은 날 되시길....."
오직 강선사에만 있는 이른바 "부적바위"다.
마음의 무게를 다는 곳이다.
몸무게가 아닌 마음의 무게를 다는 저울이다. 마음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손바닥을 올리면 된다. 로또복권 사는 것보다는 강선사 부적바위에 소원성취를 빌어보는 건 어떨까.
마음의 무게를 다는 저울.... 육체는 비만화 되어 가고 있는데 마음은 빈곤화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단 한 사람만이라도 이 글을 통해 배낭을 싸고 산을 오르고 들판을 걷는 땀 흘리는 수고로움을 한다면 그것으로 만족이다. 배낭을 싸고 산을 오르고 길을 걷는 것은 자신의 삶에 더 충실해지는 것이다. 트위터 대통령으로 불리는 이외수는 얼마 전 대통령 후보 안철수를 만나 컴퓨터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백신도 중요하지만 “자살예방백신”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심각한 우리나라의 자살률 때문이다. 충실한 삶에서 자살은 싹트지 않는다.
충실한 삶, 자신에게 위로를 주고 용기를 주는 삶, 산에서 가능하다.
삶은 산이다. 산은 삶이다.
산에 들면 모두에게 행운 만땅이다. 행운(行運)은 행동하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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