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봉산 바위길 능선에서
-오봉산 청평사
-오봉산 정상에서
* 춘천 오봉산 산행여정
-산행코스 : 청평사선착장~하늘소민박~주차장~바위길~삼거리~오봉산~삼거리~청평사~청평사선착장
-소요시간 : 4시간 15분
* 서울에서 대중교통으로 오봉산 가기
-갈 때 : 용산역~춘천역(itx-청춘열차, 08:00~09:15), 춘천역~소양댐선착장(11번 시내버스, 09:20~09:55), 소양댐선착장~청평사선착장(배로 이동, 10:00~10:10)
-올 때 : 청평사선착장~소양댐선착장(배로 이동, 15:30~15:40), 소양댐선착장~춘천역(16:00~16:30), 춘천역~용산역(itx-청춘열차, 17:10~18:20)
춘천 오봉산을 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춘천역에서 양구행 버스를 타고 배후령고개~오봉산, 춘천역에서 11번 시내버스 소양댐정상 종점에 내려 배를 타고 청평사~오봉산으로 가는 방법이다. 배후령~오봉산으로 계획했지만 동절기에는 양구행 버스가 배후령에 들르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후자를 택했다.
소양댐정상 버스 종점에서 만난 소양댐.
올 겨울들어 가장 추운 날씨다. 강원도는 영하 10도를 넘었다. 스치는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10시인데도 소양댐은 고요했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
춘천역에서 11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렸다.
춘천역~소양댐은 25분 소요. 소양댐선착장~청평사선착장 가는 10시 배를 탔다. 동절기에는 첫 배 10시를 시작으로 매시 정각 16:00가 마지막 배다. 하루 7차례 운행되며 요금은 6,000원(왕복). 소양댐선착장 모습이다. 길은 꽁꽁 얼어 있었다.
겨울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날씨가 추울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해가 얼굴을 내밀었는데도 수온주는 영하 10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강원도는 지금 해빙 중...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다.
잠들어 있는 소양호 물결을 깨우며 출발한 배는 10분 정도면 청평사선착장에 닿는다. 오봉산 산행의 시작점인 청평사선착장 모습이다.
선착장에서 도로를 따라 10분쯤 오르면 좌측으로 등산로 이정표가 나온다. 산행출발지인 향토음식점 단지주차장이다. 등산로는 왼쪽이다.
다리를 건너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산행 완주를 위해 다리를 불살랐다.
"파부침주"[破釜沈舟]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때 타고 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으로 살아 돌아오기를 기약하지 않고 결사적 각오로 싸우겠다는 굳은 결의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진나라를 치기 위해 항우가 군사를 일으키며 출정식에서 한 말이다.
하얀 눈밭을 아무도 걷지 않은 눈꽃산행이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생각보다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앞서 같은 배를 타고온 4명의 일행들이 앞서 발자국을 낸다.
처음 만나는 로프 암릉구간이다.
오봉산 정상까지 가는데는 족히 10번 정도의 로프구간을 지난다. 이건 약과다. 로프의 극치는 나중에 만나게 되는 '구멍바위'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밧줄을 한 번 타고 땀이 맺힐 무렵이면 낮은 능선안부에 오른다.
바람은 강했고 햇살은 아무런 여과장치없이 머리를 때렸고 눈은 부셨다.
소양댐을 따라 나있는 국도에도 흰눈이 터를 잡았다.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해 사시사철 붐벼야할 도로는 텅텅 비어 있었다. 능선에 오르자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눈이 제법 몰려 있었다.
능선에는 칼바람이 불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불어대는 통에 올라갈 땐 꼼짝없이 왼쪽 볼과 귀에 중점적으로 찬바람을 맞는 구조다. 왼쪽 뺨만 추운게 아니었다. 누군가는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가지 내 주라"고 했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가. 덩달아 코도 괴로웠고 눈도 괴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이젠을 했지만 눈이 한 웅큼씩 달라붙는 바람에 걸음걸이는 느렸다.
맞은편 마적산과 경운산 능선에도 하얀 눈꽃이 피었다. 애당초 11번 버스 윗세밭종점에 내려 마적산~경운산~오봉산~부용산을 연계(7시간)하여 산행하려고 했었다.
주차장과 오봉산, 청평사로 갈라지는 첫 삼거리다.
청평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곳이다. 거리는 거의 중간지점이지만 이제부터가 진짜 산행이다. 시간에 비해 진도가 나지 않는 능선 암릉길이 정상까지 이어진다.
추울수록 하늘은 청명한 법이다.
하늘색만 봐서는 어김없는 늦가을 풍경이다. 구름도 제법 빠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소양댐이 크다 크다 하지만 산에 둘러쌓여 손바닥만하다.
오봉산에는 유독 로프구간이 많다.
아이젠, 스패츠, 튼튼한 장갑은 필수다. 아이젠은 했지만 스패츠를 하지 않아 등산화 속으로 눈이 들어가기 일쑤다. 스패츠가 거추장스럽다면 여분 양말을 준비해 자주 갈아신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오봉산은 100대명산에 이름을 올린 산이다.
기암괴석과 능선길이 산행의 백미다. 오봉산보다는 '바위 악'자를 써서 오악산이라 불러야 하겠다 싶었다. 기암괴석과 고목, 그리고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능선을 따라 펼쳐저 있다.
오른쪽 사면 부용산 능선에도 눈이 많다.
서서 휴식을 취한다.
겨울 눈밭에서 휴식이래야 잠시 서서 숨을 고르는 것이다. 그리고 지나온 길을 전체적으로 되짚어 보는 시간이다. 숨을 헐떡이며 오를 때는 나무보기도 벅찬데 숲을 볼 여유가 없다.
스틱도 등산화도 배낭도 그대론데 바뀐건 모자다.
능선 봉우리를 지나 두번째 작은 능선에 올랐다. 소양호는 점점 멀어져 같지만 한 눈에 들어오는 원근 풍광이 멋지다.
천년고찰 청평사 지붕들도 눈을 잔뜩 이고 있었다. 절 뜰에 내린 눈도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 있다.
오봉산 능선엔 유독 세 가지가 많다.
첫째, 암릉이다. 둘째, 로프이다. 셋째, 노송이다.
노송도 여러 가지다.
완전 죽은 노송, 반쯤 죽은 노송 그리고 죽기 시작하는 노송이다. 이 놈은 죽은 노송이다. 뇌사상태다. 노송은 죽어서 천년을 간다고 했다. 죽어서도 천년을 사는 것이다. 자연에게는 죽는 게 죽는 게 아니다.
죽은 놈을 배경으로 멋지다고 셔트를 눌러대는 내 모습... 반성한다.
아까 죽은 노송과는 달리 이 놈은 반쯤 죽은 노송이다.
치매가 걸린 소나무다. 반은 정상이고 반은 통제불능이다. 고사목하면 지리산과 태백산을 떠올리지만 이들 산과는 달리 오봉산은 소나무고사목이 유독 많다. 소나무혹파리병에 걸린 것일까? 꼭 멋진 장소에서 햇빛도 충분히 받는 소나무들이 유독 많이 죽어간다.
산림학자는 아니지만 연구대상이다.
앞서간 일행들을 따라 잡았다.
눈길을 내느라 생각보다 속도가 나지 않았다. 뒤에서 따라 올라간 나는 생각보다 편했다. 발자국만 보고 오르면 되었다. 고맙다.
반복하지만 유독 암릉과 로프구간이 많은 산이다. 그래서 오악산이라 부르는 게 어떨가 하고 생각했었다.
오봉산의 다른 산행기점 배후령, 청평사에서 오는 길과 만나는 곳이다.
춘천~양구를 잇는 배후령터널이 개통되면서 배후령을 들머리로 계획하는 산객들은 미리 교통관련 공부를 하고 가는 것이 좋다.
천단에는 '소요대'라는 곳이 있다.
소요대에서는 청평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배낭을 벗고 쉬는 곳이기도 하다. 서종화의 <청평산기>에 의하면, '산기슭의 머리부가 잘려져 대가 된 것'이라고 한다. 정말 청평사도 가장 아름답게 감상할 수 있고 소양호도 탁트인 경관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곳이 부용산 정상이다.
오봉산과 부용산을 연계하여 산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산 아래 부영계곡을 따라 오봉산과 부용산을 가르는 도로도 선명하다. 도로 왼쪽으로 계속 올라 고개에 이른다. 이 고개를 '배치고개'라 한다.
천단 소요대에서 내려오면 만나는 '해탈문'이다.
주차장, 청평사(완경사), 오봉산 세 곳으로 나뉘는 삼거리 갈림길이다. 하산할 때 정상에서 여기까지 내려와 청평사로 갈 예정이다.
오봉산은 5개의 봉우리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옛 문헌에는 ‘맑게 평정된다’는 뜻의 청평산으로 기록돼 있지만 나한봉·관음봉·문수봉·보현봉·비로봉 등 다섯 봉우리가 줄지어 서 있다고해서 오봉산이라 불리게 됐다.
이곳이 오봉산에서 유명한 '구멍바위'다.
배낭을 메고 빠져나가기는 어렵다. 개구멍이라 부르고 싶다. 개구멍을 안전하게 지나가는 세 가지 방법.....
첫째, 스틱을 접는다.
둘째, 겉옷을 벗는다.
셋째, 배낭을 벗는다.
배낭을 메고 통과한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므니다.
날씬한 나도 개구멍 중간에 끼어 개고생을 했다. 단순한 협박이 아니다. 위험 안내판도 떡하니 얼굴을 내밀고 있다.
바위밑으로 쇠말뚝을 잡고 오른다.
철저하게 몸을 낮추어야 한다. 늘 몸과 마음을 낮추어야 하는데 조금만 감투를 쓰고 계급장을 달면 자세는 금새 높아지는게 인간사요 세상사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제3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을 다정하게 대해주기보다는 아주 짓밟아 뭉개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때는 그들이 복수를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크게 주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군주론은 한 번 읽어서는 그 뜻을 헤아리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즘적 사고에 매몰되기 쉽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과격하고 인간성을 무시하는 듯한 내용들로 인해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지만 700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군주론은 정통 고전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다.
혹시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군주론을 너무 곧이곧대로 읽어서 정치판이 이렇게 된 건 아닐까.
구멍바위보다는 개구멍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을듯 싶었다.
암튼 낑낑대며 개구멍을 통과하면 당근이 기다리고 있다. 고개를 돌려보면 사방이 확트인 멋진 겨울산을 만난다. 피곤한 몸과 눈이 생기를 찾는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좀전에 지나온 '천단 소요대'이다.
암릉의 산사면은 물론 암릉 날등에도 노송이 이어져 바위와 나무의 조화가 아름답다.
특히 여름만큼은 아니지만 주변의 울창한 육산을 배경으로 볼 때 검은 회색의 암릉사면과 암봉은 위압감을 줄 정도로 회화적인 아름다움과도 갖추었다.
바람이 쌩쌩 불어 잠든 눈꽃을 깨운다.
군데군데 놀란 눈꽃들이 세찬 바람에 놀라 나자빠진다. 오봉산은 봄철의 암봉과 진달래의 어울림이 으뜸으로 알려져 있지만 겨울산도 아름답기는 매한가지다.
춥긴 했지만 날씨는 청명했다.
가시거리가 끝없이 펼쳐졌다. 겹겹이 포개진 능선들이 병풍처럼 포개져 있다. 고만고만한 산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마치 망원경으로 보는 듯하다.
추측건대, 멀리 보이는 산은 가평 화악산인 듯하다.
엄청난 거리지만 지척으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추운만큼 반대급부로 멋진 경관을 보여주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우리 사는 것도 그렇다. 늘 한가지만 있는게 아니다. 좋은 일만 있는 것도 나쁜 일만 있는 것도 아니다. 반복이다. 힘들면 힘든대로 좋으면 좋은대로 순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청평사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소요대'에서 앞서가던 일행들보다 먼저 나서게 되었다.
아무도 가지 않은 눈길을 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성가셨다. 자꾸 발목으로 눈이 들어가고.... 스패츠를 하지 않은 것을 내내 후회했다. 발자국을 따라올때는 괜찮았는데 먼저 길을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누구나 가지 않은 길, 가보지 않은 길은 어려운 일이다.
시인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에서 이렇게 말했다.
...........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 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내 모든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오봉산 50미터를 남겨두고 나타나는 이정표다.
부용산으로 가는 길과 이어져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 왠만한 산은 혼자 가더라도 크게 무리가 없다. 군데군데 이정표와 SOS를 취할 수 있는 팻말도 설치되어 있어 비교적 안전하다. 너무 안전해서 탈이다. 안전을 강조하다보면 산은 산 본래의 야성을 잃는다. 계단을 만들고 철책을 만들고 쇠말뚝을 박고.... 편한만큼 정상에 올랐을 때의 뿌듯함은 작아진다.
다그런건 아니지만 외국인들은 체육복으로 오르는 산을 우리는 수십만원 하는 아웃도어를 입고 오른다.
명품 아웃도어 옷이나 신발을 사서 1년에 산에 몇 번 가는가? 그나마 산에 갈 때 입으면 괜찮다. 아웃도어가 변형되어 집에서나 시장갈 때 입는 옷이 돼버렸다는 느낌이다. 관련 업체들의 마케팅에 철저히 농락당한다는 느낌이다. 사실 따지고보면 우리네 산 문화는 자연친화적이지 않고 인간친화적이다. 어찌된 탓인지 우리나라는 국립공원일수록 편하게 산을 오를수 있다. 외국의 국립공원은 인간친화적이지 않고 자연친화적이다. 안전팬스나 등산로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산이 인간의 안전을 이유로 너무 디지털화 되어가는 느낌이다. 20년 전 지리산, 설악산을 오를 때의 느낌과 지금 오르는 것은 천양지차다. 산은 산다워야 산이다.
오봉산 정상부의 모습이다. 오늘 처음 발을 내디뎠다.
오봉산(779m)은 춘천시 북산면과 화천군 간동면 사이 소양댐 옆에 있는 산이다.
배를 타고 가서 산을 오르고 다시 배를 타고 나오는 산과 물의 정취를 함께 느낄 수 있는 몇 안되는 산이 오봉산이다. 오봉산의 동쪽에 있는 부용산이나 서쪽의 770봉도 오봉산에 못지않는 봉우리이지만 두 산은 육산인 반면 오봉산은 암산인데다 암봉들을 줄줄이 거느리고 있다.
저 산 너머 산에는 휴대폰이 안 터질까?
외려 요즘은 휴대폰 안 터지는 산을 찾기가 더 어렵다. 산의 역할은 속세의 인간관계나 익숙함으로부터 잠시 탈출하는 것인데 우리는 속세의 것들을 그대로 안고 산에 든다. 산에서도 속세놀이가 한창이다. 전기밥통에 전원코드를 뽑고 휴대폰을 두고 산으로 드는 것은 어떨까?
개인마다의 취향은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난 산에가서 음식을 그닥 먹지 않는다. 아니 첨부터 별로 가져가지 않는다. 배낭 무게도 무게지만 보통은 4시간, 길어야 7시간 정도의 산행을 하는데 그렇게 많은 먹을거리가 필요없었다. 오랜 산행에서 얻어진 나름의 경험이다. 들고 간 음식을 다 먹고 오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산을 얕잡아 보는게 아니라 우리나라 산들은 너무 편하게 오를수 있게 해놨다. 개인적으로는 좀 불만이다.
작금의 우리나라 산에서 과거와 같은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이나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긍지" 같은 것은 사라진지 오래다. 6~7시간이면 가장 짧은 코스로 대청봉을 갔다 올 수 있다. 좀 더 어렵고 힘들게 산을 오르게 해야 하는거 아닌가? 등산과 산책이 애매모호한 지경에 이르렀다. 산책은 산책다워야 하고 등산은 등산다워야 한다.
튼튼한 신발도 견딜 수가 없었는지 물이 스며든다.
한번도 개기지 않던 등산화가 오늘은 단단히 별른 모양이다. 정상에는 햇살과 흰눈과 세찬 바람이 동시에 판을 치고 있었다. 젓은 양말을 갈아 신고 잽싸게 하산하기 시작했다.
내가 만든 발자국을 따라 하산한다.
올라올 때는 정상을 향한 희망이 있었지만 하산길에 접어들면 갑자기 희망이 줄어든다. 산은 그대로였지만 눈에 익숙한 풍경이기 때문이다. 특히 원점산행일 경우에 더 그렇다.
"한 여인이 눈 덮인 언덕길을 향해 걸어갑니다. 여인의 가슴엔 원한과 증오가 가득 차 있습니다. 여인은 자신이 버려진 아이였다는 사실을 알고 자살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덕에 올라 무심코 자신이 걸어온 발자국을 돌아본 여인이 생각을 바꿨습니다. 삶의 목표를 향해 똑바로 왔다고 생각했는데 눈 위에 찍힌 자신의 발자국은 이리저리 비뚤어져 있었습니다."
미우라 아야코의 소설 <빙점>에 나오는 구절이다. 내 발자국 역시 비뚤어져 있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대부분 사람들의 발자국도 비뚤어져 있을 것이다. 누가 더 비뚤어진 발자국을 바르게 하는가가 관건일게다.
능선에서 온 몸으로 바람을 맞는 노송을 만났다.
무슨 빙의처럼 반은 죽었고 반은 살아 있다. 죽어 가는 것인지 살아 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죽어가는 것 같다.
노송 한 그루 쓰러졌네
억겹의 오랜 세월을
묵묵히 견뎌왔건만
일본의 총칼도 이겨내고
동족상잔의 비극에도
용케 살아 남았지만
이 풍요의 시대에
노송 한 그루 넘어졌네
총칼보다 전쟁보다
더 무서운 건
허허실실이라
아무것도 아닌것이네.
최용우의 시 <노송>이다.
그토록 오랜 세월 총칼도 이겨내고 6.25전쟁에도 살아남았지만 이 풍요의 시대에 죽어가는 노송을 슬퍼하는 시인의 마음이 진솔하게 다가온다. 못 먹어서 죽어가는 건 아닐텐데... 병이 걸렸나? 우리도 매 한가지다. '풍요속의 빈곤'이라고... 갈수록 먹을건 많아지는데 목숨을 끊는 사람들은 늘어만 간다. 정신의 부재 탓이 아닐까? 노송도 마찬가지다. 노송에게도 스트레스가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올랐던 길을 원점회귀하다 이 지점에서 청평사로 하산한다. 가파른 내리말 경사에 계곡길이다.
청평사로 하산하는 길엔 역사의 흔적들이 곳곳에 서려 있다.
'진락공 세수터'이다.
진락공은 고려시대 중기의 문신, 학자, 문인인 이자현(李資玄)을 칭한다. 본관은 인주(仁州)이고 자는 진정(眞靖)이며 호는 식암(息庵)·청평거사(淸平居士)·희이자(希夷子)이다. 시호는 진락(眞樂)이다. 아직도 네모로 구멍을 파놓은 약수터 같은 것이 있었다.
여러 역사의 흔적들을 지나 청평사에 닿을 무렵 마지막으로 만나는 것이 조선시대의 '부도'이다. 환적당 의천과 설화당 부도다.
청평사 하늘에는 바람의 세기만큼 흰 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구름은 바람에 의해 생사고락을 한다. 자신보다는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이타적인 삶의 전형이다.
청평사는 고려때 창건됐다.
청평사는 옛 선비들이 권세를 등지고 은거한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청평사(淸平寺)라는 절 이름도 29세의 젊은 나이에 대악서승(大樂署丞, 현 국악원장)이라는 벼슬을 내던지고 이 곳에서 여생을 보낸 이자현(李資玄·1061∼1125)의 호(청평거사·淸平居士)에서 따왔다고 한다.
올라갈 때 걸었던 능선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가장 높은 봉우리가 청평사를 가장 아름답게 조망할 수 있는 '소요대'이다.
청평사는 고려 광종24년(973년) 백암선원(白岩禪院)으로 세워진 고찰이다.
이후 문종 22년(1068년)에 문수원(文殊院)을 거쳐, 조선 명종 때 이르러 오늘의 청평사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절터는 강원도 기념물(55호)로, 3층 석탑은 강원도문화재자료(제8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춘천시가 최근 청평사에 대한 국가지정 문화재 명승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이미 강원도에 지정 신청을 마쳤고 문화재청의 명승 지정이 승인되면 사찰과 영지(影池), 계곡, 옛길이 오롯이 복원될 것이라고 한다.
청평사는 고요한듯 빼어나고 빼어난듯 고요하다.
이곳의 풍광과 엇갈린 길을 가고 있는 두 선비의 고뇌와 사색, 우정이 대비되는 장면이다. 등 뒤엔 해발 779m의 오봉산, 문 앞엔 소양강댐이 바다처럼 펼쳐진 명당이 바로 이곳이다. 70년대에 생긴 소양강댐이 고찰의 역사에 비할 바 아니지만 한데 어울려 이렇듯 절묘한 배산임수(背山臨水)가 된다.
그리고 청평사는 소양강댐이나 오봉산과 따로 떼어 생각하는 것이 어색하다. 하나의 묶음, 하나의 풍경으로 연상되는 춘천의 대표적인 자원이자 자랑이다. 청평사, 오봉산, 소양강댐이 각각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명소이지만 특히 수도권사람들에겐 가벼운 마음으로 한 두시간이면 훌쩍 가 닿을 수 있는 편한 여행지다.
절 앞에 있는 생명수다.
바가지가 눈을 잠뜩 뒤집어 쓰고 있는 걸로 봐서 아직 아무도 찾지 않은 것 같다.
올라갈 때 멀리서 본 절 마당은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았었는데 하산길에 들렀더니 군데군데 눈을 치웠다. 세 명이서 눈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뜰 앞 나무에 걸린 안내문이다.
자꾸 만져서 안큰다는데.... 이유는 모르겠으나 옆에 있는 나무들에 비해 작긴 작았다. 유머스러한 안내문이 산행에 지친 피로를 풀리게 해주었다. 햇살 가득한 뜰 앞 벤치에 앉아 아이젠도 벗고 스틱도 정리하고 신발도 말리고 옷도 털었다. <부모은중경> 염불 소리를 들으며...
청평사에서 배타는 곳까지는 찻길이다.
1.4km 정도 되는 거리지만 15분이면 갈 수 있다. 청평사 뜰을 지나면 만나게 되는 전통찻집은 연신 하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불과 한 달 전 단풍철에는 오가는 이들의 발걸음이 부딪칠 정도로 붐빈 도로는 휑하다. 그많은 사람들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우리는 단일민족이라 그런지 '쏠림현상'이 좀 심한 것 같다. 놀러갈 때도 남들이 갈 때, 휴가도 남들이 갈 때, 밥 먹을 때도 산에 갈 때도....
조용함, 고즈넉함이라는 단어가 딱 맞는 풍광이다.
구송폭포(구성폭포)다.
계곡 너럭바위 위로 흰눈을 뒤집어 쓴 채 맑은 물이 미끄러지듯 흐른다. 여름이면 사람들로 붐볐을 폭포 앞은 적막함 뿐이었다.
청평사~선착장은 길지 않은 코스이기 때문에 쉬엄쉬엄 걷는 게 옳다. 그렇게 걸으면서 물소리 바람소리 나뭇잎소리 새소리에 귀 기울이며 마음 얹으면 그것이 휴식이고 안식 아니겠는가. 겨울 계곡길은 물소리도 숨을 죽였다.
해거름이 돼도 고드름은 그대로다.
아무리 겨울이라도 간밤에 생긴 고드름은 낮이 되면 녹아내리는 법인데... 춥다는 반증이다. 몹시 춥다.
평소 같으면 3시간도 안 걸리는 거리인데 4시간 이상 걸렸다. 청평사선착장을 떠나면서 산행을 마친다.
"내 인생 여정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약한 배에 의지해, 폭풍우 치는 바다를 지나, 마침내 모든 이들이 도착하는 항구에 이르렀으니, 여기를 통과하려면 계산을 마치고 자신의 지난 모든 행동, 악덕과 탐욕에 대한 설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미켈란젤로(말년에 쓴 <메아 꿀빠(Mea culpa)>라는 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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