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가 있는 산행기/강원지역

스토리가 있는 산행기-설악산 불교성지순례(백담사~봉정암~오세암~영시암)

김부현(김중순) 2013. 6. 16. 10:12

우리나라 설악산에도 불교성지 순례길이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트레킹이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본디 트레킹은 순례라 하는 종교적 성찰과정이었다. 순례자들은 수백 수천 키로미터에 이르는 성지를 향한 길 그 자체를 수행과 예배의 노정으로 받아드려 목숨을 걸고 그 멀고 험한 길을 기꺼이 걸었다. 전 세계 도보여행자들의 로망이 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은 예수의 열두제자중 한사람인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성지 산티아고콤퍼스텔라를 향한 말 그대로 순례길이고, 네팔의 유명한 트레킹 코스들 또한 힌두교의 성지로 여기는 히말라야 설산 어딘가에 있다는 인디스 갠지스강의 발원지를 향한 수행자들의 순례길에서 비롯되었다.

 

설악산 봉정암, 대한민국 불교의 지존이자, 지리산 법계사 다음으로 높은 곳에 위치한, 우리나라 불자들의 성지로 추앙받는 영험한 곳이다. 그래서 다리 아프고 몸이 아픈 불자들도 죽기 전에 한 번은 가보고 싶어하는 순례길로 명명되고 있다. 설악산 불교 성지순례길을 걸어봤다.

 
 

-봉정암 사리탑

 

-오세암

 

 

 

“버려라, 놓아라, 비워라”

법정스님의 가르침이다.

 

 

무엇을 버릴지, 무엇을 놓을지, 무엇을 비울지를 아는 것이 지혜다.

 

 

마음은 헐렁하게, 발걸음은 널널하게

여느때처럼 익숙한 몸짓으로 배낭을 멨다.

산을 오른 높이만큼

마음은 낮아진다는 것이 좁은 생각이다.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지리산에 가고,

생각을 잊기 위해서는 설악산에 가라.”는 말도

다시 되새겨 볼 요량이다.

예외 없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명산은 사찰을 가득 품고 있다.

명산 중의 명산 설악산도 그렇다.

예로부터 '신성하고 숭고한 산'이라 불리는 설악,

그 중 내설악  4개의 절과 암자

백담사, 봉정암, 오세암, 영시암을 찾는

"불교성지" 산행에 나섰다.

 

 

산행여정 : 백담사~영시암~수렴동대피소~봉정암~오세암~만경대~영시암~백담사 원점회귀

 

 

▶제1일차 : 셔틀버스 백담사 도착(16:40)~영시암(17:40)~수렴동대피소(18:00, 1박) 4.7km  1시간 20분

▶제2일차 : 수렴동대피소(05:24)~봉정암(08:10)~오세암(11:10)~만경대(11:30)~영시암(12:30)~백담사(14:00) 15.3km  8시간 40분

▶총거리 : 20km

▶소요시간 : 10시간

 

 

 

 

적색 실선을 따라

불교성지순례길에 나섰다.

 

 

 

 

 

산은 친구다.

산행은 병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차마 오지 않을 것 같은 기다림이

초록빛이 짙어지자

또 심한 역마살에 몸살이 났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백담사행 버스를 탔다.

2시간 10분이면 백담사 입구

용대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한다.

서울은 우중충한 날씨였는데  

설악은 푸르렀고

햇살은 쨍했다.

 

 

 

 

 

백담계곡이 시작되는

용대리 내가평이다.

 

 

 

 

 

인간이 불행해지는 유일한 원인은 자신의 방에 고요히 머무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여행의 기술>

 

 

 

 

백담사입구 버스정류장에서

백담사행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15분쯤 걸어야 한다.

백담마을을 지나간다.

 

 

 

 

 

 

용대리~백담사를 오가는

순환 셔틀버스 정류장이다.

 

 

 

셔틀버스 운행 시간(5월16일(목) ~ 6월30일(일))

▶ 첫차 : 오전 8시

▶ 막차 : 상행(백담사행) 오후 5시 / 하행(용대리행) 오후 6시

▶ 버스운행 문의 : 033-462-3009

 

 

 

 

 

 

 

 

셔틀버스를 타고

15분이면 백담사에 도착한다.

 

 

'백담사'라는 절 이름의 유래는,

설악산 대청봉에서 백담사까지 ‘작은 담(물이 고인 깊은 웅덩이)이 100개가 있는 지점에 세운 절’이라고 해서 백담사라고 불린다.

실제로 백담사에서 대청봉을 올라가 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계곡산행임을 실감할 수 있다.

백담사로 흘러내리는 백담계곡은 수량도 풍부하고 바위와 어우러져 사계절 탄성을 자아내는 아름답고 깊은 오지라는 걸 체험할 수 있고 유독 깊은 웅덩이와 폭포가 많다.

 

 

 

 

 

 

백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 신흥사의 말사다.

설악동에 있는 신흥사는 우리나라 사찰 중 방문객이 가장 많은 절이다.

백담사도 신흥사 못지 않게 방문객들이 많은 절이다.

 

 

 

 

 

백담사는 템플스테이로도 잘 알려진 절이다.

대표적으로 정기프로그램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매월 진행되고 있으며,

맞춤식 프로그램과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군대용어가 되다시피한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다”는

인제와 원통 너머 깊숙한 오지에 백담사가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이야 맘만 먹으면 당일치기로 가볍게 갔다 올 수 있지만

예전에는 오가기가 쉽지 않은 내설악의

가장 깊은 오지중의 오지에 있는 절이었다.

 

 

 

 

 

백담사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은 만해 한용운 선사다.

현재 백담사에는 만해의 문학사상과 불교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만해기념관, 만해교육관, 만해연구관, 만해수련원 등이 있다.

백담사는 애초에 신라 진덕여왕 1년에 자장율사가 설악산 한계리에 절을 지어 미타상 3위를 조성, 봉안하고 이름을 한계사라고 했다.

한계사는 자장이 창건한지 50여년만인 신문왕 10년인 690년에 실화로 불타 없어졌지만 곧 재건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백담사는 1919년 4월에 당시의 주지인공선사가 복구한 것이다.

원래 산수가 빼어나고 수도처로서도 손색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그러나 역사속의 인물보다 만해(卍海) 한용운의 주석처로 더욱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만해 스님은 이곳에서 <님의 침묵>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탈고한 곳이다.

 

 

 

 

 

백담사 입구 백담계곡에는 유독 돌탑들이 많다.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으로 하나 둘 쌓아 올린 돌탑들이 석양빛에 물들어 이색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한여름 소낙비에 백담 개울물이 넘치면 저 많은 소원들도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하지만 매년 쓰러지고 다시 세워지는 돌탑들 덕분에 백담계곡은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누구나 돌탑 속으로 들어가면 간절한 염원이 담긴 돌 하나쯤 쌓지 않을 수가 없다.

설령 돌탑은 무너져도 그 간절함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백담계곡은 ‘백담골’이라고도 부르는 내설악의 대표적인 계곡이다.

내가평마을에서 백담산장 앞까지 전형적인 S자 모양의 사행천이다.

가야동계곡·구곡담계곡·백운동계곡·귀때기골·대승골(흑선동계곡)·곰골·길골 등

십이선녀탕계곡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내설악의 물줄기가 모이는 내설악에서 가장 큰 계곡이다.

이름은 백(百)개의 담(潭)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설악산의 물줄기들이 한곳으로 흘러들어 모인다는 백담계곡,

그 아늑한 터전 위에 백담사는 자리 잡고 있다.

외설악을 찾는 사람들이 신흥사를 거쳐 설악산을 구경 하듯,

내설악을 찾는 사람들은 으례 백담사를 찾게 된다.

백담사는 내설악의 첫 관문이자 얼굴이다.

 

 

 

 

 

 

백담사를 살펴보고

수렴동대피소로 향한다.

 

 

 

 

 

 

 

백담사~수렴동대피소는

고즈넉한 평지길이다.

맑고 푸른

청정 산소가 팍팍 나온다.

 

 

 

 

 

 

 

 

 

설악산 백담탐방안내소다.

백담탐방안내소~용대리 내가평마을끼지가

백담계곡이다.

 

 

 

 

 

 

 

등산화를 신고

등산 스틱을 짚으며

앞서가는 스님의 풍경이 현대적이고

실용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머지 않아 스님들도 바랑 대신

배낭을 메야 할 듯....

 

 

 

 

 

 

 

 

 

 

 

 

서산을 향해 가는 해가

마지막 힘을 발한다.

 

 

 

 

 

 

 

 

백담사에서

뭉그적대며 1시간을 걸어

영시암에 도착했다.

 

 

 

 

영시암(永矢庵)의 유래다.

조선의 역사는 당파싸움의 역사였다.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이 당파싸움은 계속됐다. 숙종16년(1689)에 있었던 기사환국(己巳換局)은 왕비 인현왕후 민씨가 폐출되고 장희빈이 중전으로 승격되면서 정권이 노론에서 남인으로 넘어가는 엄청난 사건이다. 숙종의 비 민씨는 아기를 낳지 못해 늘 근심과 걱정으로 나날을 보냈다. 그러데 임금의 총애를 받은 후궁 장희빈은 아들을 낳았고, 그아이가 원자(原子)로 책봉 되었다. 장희빈을 사랑하던 숙종은 그녀를 왕비로 승격시킬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것을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노론이 반대하였고, 그래서 숙종은 이들을 숙청하고 남인을 등용했다. 희빈이 낳은 아이의 세자 책봉문제가 나오자 노론의 총수 송시열은, "임금의 보령이 이제 겨우 29세시고 중전은 23세로 아직 젊으신데, 후궁의 아들로 세자를 책봉한다는 것은 시기상조다." 라고 극구 반대했다. 숙종은 송시열의 말을 묵살하고 그에게 사약을 내렸으며 정권을 남인에게 넘긴 것이다.

숙청된 노론 중 김수항(金壽恒)이 이었다. 그의 아들 김창흡은 어지러운 속세와 인연을 끊고 수도를 하겠다고 암자를 지었는데 그것이 바로 영시암이다. 그런데 이 암자를 세우지 6년이 지난 어느날 그의 하녀가 호랑이 한테 물려죽고 만다. 이후 김창흡은 암자를 떠나 어디론가 떠났다고 한다.

혼란한 시대의 뒷면에 존재하는 슬픈 사연이다.

 

 

 

 

 

 

 

영시암 역시 백담사에 딸린 암자다.

1648년(조선 인조26) 김창흡 창건. 1691년 설정(雪淨) 중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백담사~영시암 구간은 오르내림이 없는 평평한 길이다.

그래서 백담사 탐방객들 중 상당수는 영시암까지 다녀간다. 

 

 

 

 

 

 

영시암은 한국전쟁 때

영시동 마을이 폐쇄된 터에 지어진 암자다.

‘영시’는 ‘영원히 쏜 화살’이라는 뜻이다.

 

 

 

吾生苦無樂[오생고무락] 내 생애에 괴롭고 즐거움이 없으니

於世百不甚[여세백불심] 속세에서는 모든 일이 견디기 어렵네

投老雪山中[투노설산중] 늙어서 설산(설악산의약칭)에 투신하려고

成是永矢庵[성시영시암] 여기에 영시암을 지었네

-인제군지

 

 

 

 

 

 

 

영시암에서 100미터쯤 오르면

오세암과 봉정암으로 나뉘는

삼거리 갈림길이 나온다.

 

 

 

 

 

 

수렴동대피소는 봉정암 방면으로 가야 한다.

영시암~봉정암~오세암~영시암으로 산행하기로 했다. 

간혹 영시암~오세암~봉정암~영시암으로 산행하는 이들도 있다.

어디로 가든 그것은 자유다.

 

 

 

 

 

 

.

수렴동계곡이 어둑해지기 시작한다.

백담탐방안내소~수련동대피소까지의 계곡을 수렴동계곡이라 부른다.

명칭은 금강산의 수렴동 계곡에서 따왔다고 한다.

구곡담 계곡과 함께 내설악의 대표적 계곡으로서 특히 가을 단풍 길은 아주 유명하다.

상류에 구곡담 계곡이 있고, 하류에 백담계곡이 이어진다.

 

 

 

 

 

 

 

오늘 1박을 할 수렴동대피소다.

영시암에서 20분,

백담사~수렴동대피소는 1시간 20분 소요 

 

 

 

 

 

 

현재 설악산에는 4개의 대피소가 있다.

희운각, 소청, 중청, 그리고 수렴동대피소다.

양폭대피소는 화재로 소실되고 없다.

다른 대피소는 여러 번 가봤지만

수렴동대피소에 머무는 것은 머리털 나고 처음이다.

 

 

 

 

 

 

수렴동대피소는 우선 작다.

정원이 18명이다.

설악산 대피소 중 규모도 가장 작고 수용인원도 가장 적다.

2주전쯤 5월말, 공룡능선 타려고

소청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묵었었는데....

금새 역마살 낀 몸뚱아리가 근질거려

2주 만에 다시 설악을 찾았다.

설악은 아무리 자주 와도

같은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양파 껍질까듯 까도 까도,

또 걸어도 걸어도

질리지 않고 자꾸 색다른 감동이

고구마줄기처럼 퍼져 나간다.

그래서 설악은 와 본 사람이 

 다시 찾아오는 마약 같은 산이다.

 

 

 

 

 

 

 

 

 

1,2,3층으로 이루어진

수렴동대피소 내부다.

각 층에 6명씩,

18명이 정원이다.

널널하다.

저녁 9시면 소등이다.

 

 

 

 

 

 

새벽 5시경 대피소는

깊은 잠에 빠져

안개에 파묻혀 있었다.

 

 

 

 

 

새벽 05:24분,

사과 한 개와

진한 캔커피 한 잔을 마시고

가야동계곡을  깨우며

봉정암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가야동계곡은 희운각대피소~수렴동 대피소까지의

긴 계곡을 말한다.

 

 

 

 

 

 

수렴동대피소~봉정암 소요시간을

3시간 30분 정도로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천천히 걸어도 3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자신을 되돌아보고 간절한 소망 하나씩 안고 오르는 봉정암 가는 길...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청옥빛 백담계곡 물이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준다.

출렁이는 여름신록을 따라 백 가지 천 가지 그림을 연출한다.

같은 풍경이라도 눈으로 마음으로 머리로 가슴으로 볼 때마다

다른 감동이 밀려온다.

 

 

 

 

 

 

만수폭포다.

곡담 계곡의 폭포 가운데 하나다.

수렴동대피소에서 봉정암으로 향하는

구곡담 계곡에 들어서서 처음 나타나는 폭포다.

 

 

 

 

 

 

수렴동대피소~봉정암까지는 우선 눈이 호강한다.

눈이 호강하면 덩달아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좌측으로는 설악의 비경 용아장성이 힘있게 솟아있고

우측으로는 공룡능선이 호위하고 있다.

 

 

 

 

 

 

 

 

 

 

 

 

 

 

 

 

대청봉~희운각 대피소에 이르는 계곡을 ‘죽음의 계곡’이라 부른다.

죽음의 계곡은 희운각 대피소 앞에 있는 무너미 고개에서 내설악의 수렴동대피소 뒤쪽까지 6㎞에 걸쳐 이어지는 데 이 계곡이 바로 가야동계곡이다. 예전에는 개골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정규 등산로가 아니기 때문에 눈요기만 가능한 구간이다. 희운각 대피소로 오르는 구간은 경사가 완만하나 폭포와 소(沼)가 많고 냇물을 수십 번 건너야 하기 때문에 비가 오면 물이 급격히 불어나 위험한 계곡이다.

 

수렴동대피소에서 계곡으로 20분쯤 오르면 천왕문이 나오고 왼쪽으로 돌아 용아장성의 북벽을 보며 계류가 이어진다. 와룡연을 지나면 왼쪽에는 오세암으로 가는 길이, 오른쪽에는 봉정암으로 가는 길이 나오고 계곡을 따라 오르면 희운각 대피소로 오르는 세 갈래 길이 나온다. 십이선녀탕 계곡과 함께 단풍철에 인기 있는 곳이다.

 

 

 

 

 

 

 

 

 

 

 

 

 

 

 

용손폭포다.

용손(龍孫)이라는 명칭은 '쌍용폭포의 종손 격으로 딸린'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아래로는 만수폭포를 거쳐 수렴동 계곡으로 이어지며,

위로는 관음폭포와 쌍용폭포를 거쳐 봉정암으로 이어진다.

 

 

 

 

 

 

관음폭포다.

수렴동대피소~봉정암 가는 도중

세 번째 만나는 관음폭포 역시

수렴동대피소에서 봉정암으로 향하는 도중에 있는

구곡담 계곡의 폭포 가운데 하나이다.

하류 쪽으로 용손폭포와 만수폭포가 흐르고,

상류 쪽으로는 쌍용폭포(쌍폭)가 흐른다.

 

 

 

 

 

 

 

 

 

 

정말 많은 불자들이 봉정암을 찾는다.

유독 연세많은 분들이 찾는다.

다리도 성치 않은데도

오직 불심 하나로

봉정암으로 봉정암으로...

불교의 성지순례길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바위틈에서 뿌리를 내리는

초록의 힘이 경이롭다.

 

 

 

 

 

 

 

 

 

 

 

 

 

마음은 모든 법의 근본이라

주인도 되고 심부름꾼도 되나니

늘 마음으로 선을 생각해 그대로 행하면

복과 즐거움은 저절로 따르리라.

-법구경

 

 

 

 

 

가장 잘 알려진 쌍용폭포다.

내설악의 구곡담 계곡에 흐르는 폭포로 보통 쌍폭(雙瀑)이라고 약칭한다.

구곡담 계곡 상류에서 흘러내리는 폭포와 쌍폭 골에서 흘러내리는 폭포가 이곳에서 만나서 'Y' 자 모양으로 떨어지는데,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Y자 모양의 쌍폭이다. 높이 46m의 왼쪽 것을 남폭(男瀑), 높이 22m의 오른쪽 것을 여폭(女瀑)이라 부르며, 아래쪽에 종손 격인 용자폭포(龍子瀑布)와 용손폭포(龍孫)를 거느리고 있다.

폭포 앞에 전망대다.

 

 

 

 

 

 

 

 

 

구곡담계곡은 내설악의 수렴동대피소~봉정암에 이르는 계곡으로 봉정골이라고도 한다.

‘구곡담’이라는 명칭은 계곡 굽이굽이에 9개의 못[潭]이 있다 하여 붙여진 것인데,

첫번 째 못을 방원폭(方圓瀑)이라 부르며, 나머지는 이름이 없다.

네 번째 못 부근에 사자암(獅子岩)이 있고, 마지막 못 오른쪽에 백담대(百潭臺)라고 부르는 큰 바윗돌 층계가 있다.

계곡 위쪽으로 만수폭포·용손폭포·관음폭포·쌍용폭포 등이 흐르고,

봉정암을 거쳐 소청봉~대청봉에 이를 수 있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

-<화엄경>

 

 

 

 

 

 

 

 

 

 

 

 

 

새벽 안개를 헤치며

봉정골에

햇살이 솟아오르고 있다.

 

 

 

 

 

 

 

 

 

 

 

 

 

내가 만난 많은 산객들 중 가장 연세가 많은 82세 할머니...

경로당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연세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모양이다. 

요즘도 1년에 3번은 봉정암을 찾는다고...

경의를 표했다.

봉정암을 오르는 것, 그 자체가 불심이요, 순례요, 공부다.

 

나-무-관-세-음....

 

 

 

 

 

 

봉정암을 500미터 앞둔

깔딱고개를 오르다 본 풍광이다.

 

 

 

 

 

 

 

 

 

 

 

 

 

 

 

우리나라 불교의 성지이자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봉정암(鳳頂庵)...

08:00에 도착...

수렴동대피소에서 2시간 40분 소요.

 

 

 

꼬불꼬불한 오솔길을 따라

산길을 갔다

그곳엔 작은 암자가 있었다

참으로 조용했다

밤새 울어대는 소쩍새 소리뿐

밖에는 등불만 깜박인다

이른 새벽 모두가 잠든 밤 탑을 돌며

외우는 낭랑한 여승의 염불소리 잠깨어 가만히 귀기울여 본다

애절한 듯 여린 목소리가

가슴을 파고들고 몇 번의 종이 울리고

법당에 밝혀진 촛불 아래

백팔배 절을 하며 쌓인 업보 풀어낸다

나무아미타불

-고은의 시 <산사에서의 하루>

 

 

 

 

 

불자들 사이에서

죽기 전에 꼭 한 번은 참배해야 할 곳으로

칭송받고 있는 봉정암과 사리탑이다.

봉정암은 두 발과 몸으로 왕복 8시간 이상을 걸어야 다녀올 수 있는

높은 곳에 있는 암자다.

다리가 아프고 몸이 성치 않으면 가보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봉점암 가는 길을 순례길이라고 칭하며,

년중 불자들로 들끓는다.

 

 

 

 

 

 

 

 

 

 

 

 

 

봉정암은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불심이 깃든 성지를 순례하다가

이곳에 잠시 머물려 암자를 새로 지었고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참배하고 중건하여

모두 9차례에 걸쳐 중건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봉정암은 공사중인 경우가 많다.

참배객들이 워낙 많다보니 기도도량이나 부속건물을 계속 신축하고 있다.

 

 

 

 

 

 

 

 

 

봉정암은 백담사에 딸린 암자로

설악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해발 1,224m에 위치한 암자로서,

 “봉황이 부처님의 이마로 사라졌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봉정암을 두 발로 오르는 것 자체가 수양이요 순례라고 할 수 있다.

봉정암은 터도 끝내준다.

내설악 최고의 비경을 자랑하는 용아장성 기암괴석 속에 파묻혀 있다.

 

 

 

 

 

 

 

 

 

 

봉정암은 당일치기보다는 1박을 하는 경우가 많다.

당일치기도 가능하지만 산사에서의 하룻밤도 의미 있는 일이다.

봉점암에서 묵으려면 봉정암 인터넷 사이트에 예약을 해야 한다.  

 

 

 

 

 

봉정암을 찾은 사람들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 바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사리탑이다.

우리나라의 5대 적멸보궁은 설악산 봉정암, 양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영월 사자산 법흥사 그리고 태백산 정암사가 꼽힌다.

봉정암 적멸보궁은 신라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 온 부처님 뇌사리를 오층석탑에 봉안한 곳이다.

그래서 모든 불자들이 꼭 참배하고 싶은 성지로 추앙받는 봉점암 사리탑으로 불려지는 정확한 명칭은 “불뇌사리보탑(佛腦舍利寶塔)”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외설스러운 것인데

커다란 엉덩이를 가만히 내렸다가 엉덩이만 남기고 납작 엎디는 것은

자기도 평생 볼 수 없는 부분을 세상에 오롯이 드러내어 보여주는 일인데

엉덩이 굴곡과 항문 샅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뒤로 다 드러내는데, 그래서 어찌 보면 수치스럽기도 한 것인데

일어섰다가 다시 엎디는 반복동작이 성교하는 모습을 떠올리기도 하는데

일어서면 없어졌다가 엎디면 둥그런 돌덩어리 되고

둥근 돌덩어리가 올라가면 반구면(半球面)이 되었다가

다시 둥글고 부드러운 호박덩어리가 되는 수 없는 반복

다리가 후들거리고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 삼천 배쯤이면

엉덩이는 없어지고 둥근 마음만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하여 계속하면 외설도 착해지는 길목쯤만 같은데

착해지지 않으면 어찌

계속할 수 있으랴, 아주 착하게

-이성이 시인의 <삼천 배를 하며>

 

 

 

 

 

 

 

봉정암 사리탑에서 본 풍경을 묘사해 본다.

멀리 병풍처럼 둘러쳐진 서북주능선.

그 아래로는 올라온 구곡담 계곡

그리고 구곡담 계곡을 호위하는 용아장성.

고개를 동쪽으로 돌리면 가야동 계곡과 공룡능선.

멀리 울산바위와 동해까지….

오직 막힌 곳은 대청봉쪽뿐이고

모든 것이 발 아래로 펼쳐지는 장엄한 파노라마.

저 돌탑은 비바람 거센 봉우리의 정수리에서

천년도 더 된 세월을 이겨내고 오늘도 변함없이

제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일까?

 

 

봉정암 오층석탑은 다른 여느 사찰의 탑과 달리 탑 기저부가 용아능선의 바위다.

 즉 용아릉 나아가 설악산 전체가 이 탑을 떠받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사리탑 전면에 일명 봉황령 고개라는 가야동계곡과 오세암으로 가는 절 길이 있다.

사리탑 바로 옆에서부터 용아장성陵이 시작되고, 끝이 난다.

봉정암 아래의 사자바위는 봉정암을 지키는 수문장이다. 

그 누가 ‘시계는 살 수 있지만 시간은 살 수 없다’고 하던가.

오늘 우리는 모두 설악산이라는 공간 속에서 꿈을 꾸는 사람이었다.

여럿이 함께 꾸는 꿈은 이루어진다고 한다.

오늘, 지금 이 시간, 용아장성을 얻은 설악의 정기를 활력으로 삼아 속세의 세상을 그렇게 헤쳐 나가야지...

그저 모든 것이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어디서봐도 용아장성의

자태는 단연 으뜸이다.

 

 

 

 

 

사리탑에서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용아장성에 뒤지지 않는 암릉구간,

공룡능선이 춤을 춘다.

 

 

 

 

 

설악의 지존, 용아장성(龍牙長城)이다.

용아장성은 내설악 지구의 ‘소청봉~봉정암~1224봉~칠형제봉~옥녀봉’에 이르는 능선을 말한다.

공룡능선과 함께 설악산의 대표적 암봉 능선으로 꼽힌다.

명칭은 용의 이빨[龍牙]처럼 뾰족하게 솟은 수십 개의 암봉이 성처럼 길게 이어진 데서 유래하였다.

북쪽으로는 가야동계곡을 끼고 공룡능선과 마주보고 있으며, 남쪽으로 수렴동의 구곡담 계곡을 끼고 있다.

가을이면 수렴동과 가야동이 붉은 단풍바다를 이루는 등 절경을 이루는 곳이지만,

바위로 이루어진 산세가 험난하여 역시 현재는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비법정탐방로이지만 몰래 몰래 산행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곳이다.

국립공원 직원들과 산객들의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이 빈번한 구간이다.

이러다가는 용아장성에도 CCTV를 설치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실제로 비법정탐방로인 화채능선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헐...

 

 

 

 

 

사리탑에서 본

중청의 축구공 모형 시설물....

 

 

 

 

 

봉정암 사리탑에서

오세암으로 향한다.

봉정암~오세암은

대한민국 최고의 불교순례길이다.

 

 

 

 

 

사리탑에서

이 고개를 넘어 500미터를

수직으로 내려간다.

 

 

 

 

 

 

 

 

 

 

 

 

좌측은 용아장성,

우측으로는 공룡능선이

조망된다.

 

 

 

 

 

봉정암~오세암 구간의 특징은 세 가지로 대별된다.

 

1. 해가 눈을 찌르지 않는다. 그만큼 숲이 울창하다는 반증이다.

2. 탁 트이는 비경은 볼 수 없다. 그래서 좀 답답하기도 하지만 깊은 오지의 숲내음을 가장 진하게 맡을 수 있는 청정구간이다.

3. 크고 작은 봉우리를 4개 넘어야 한다. 땀과 인내를 필요로하는 순례길이다.

 

 

 

 

 

 

 

 

 

 

 

 

 

사람은 본래 걷는 존재다.

두 손 두 발 도합 4개로 걸었던 존재다.

네 발로 걸었던 당시에는 병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을 사는 대부분의 도시화된 우리들은 걷는 것을 잃어버렸다.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걷기가 싫어진 것이다.

구태여 편한 걸 두고 힘들게 걷는 게 억지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놓은 편리한 생활양식은

우리에게서 걷기를 빼앗아 간 측면이 있다.

도토리 줍는 걸 포기하고 오가는 산객들에게 먹을 것을 얻고 있는

설악산 다람쥐를 욕할 수가 없다.

자본주의 문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고층아파트에서

공중 부양한 채 먹고 자며 살아가게 되었고,

이동할 때에도 더 이상 걷지 않고

자동차를 타고 빠르게 이동하게 되었다.

 

 

 

 

 

 

걷지 않게 되면서 발과 몸으로 자연을 느끼고 다른 생명들과 교감하는 소중한 시간들도 자연스럽게 잃어버리게 되었다.

생명의 바탕인 자연을 잃어버리고 하늘의 지혜가 깃든 산도 잃어버렸다.

걷지 않게 되며 당연히 사유하고 성찰하는 삶 또한 잃어버리게 된다.

깊은 숲길을 마음 내려놓고 유유자적 걸으며 자연과 교감함으로 얻게 되는 사유와 성찰의 시간들 역시 멀어져 가고 있다.

위로와 치유, 자유함과 평안함, 생명력과 충만함 등 또한 잃어버렸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 요즘 힐링과 치유가 난무하고 있다.

산에 들면 굳이 돈을 들여 힐링을 할 필요가 없다.

산이 곧 힐링이요 치유다.

 

 

 

 

 

이렇게 잃어버린 것들을 우리 삶에 회복하기 위해 자연으로 더 깊이 더 자주 들어가야 한다.

깊은 숲길을 걸어야 한다.

때로 나무늘보처럼 느리게 걸으며 자연과의 교감을 회복해야 하고,

때로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몸의 한계를 넘어서곤 해야 한다.

왜냐하면 몸이 열려야 마음이 열리기 때문이다.

마음이 먼저가 아니라 몸이 먼저다.

걷는 것은 몸을 여는 과정이며 마음을 만나는 촉매제다.

 

 

 

봉정암~오세암 순례길은

2시간 40분 소요되었다.

 

 

 

 

 

 

오세암(五歲庵)이다.

오세암 역시 백담사의 부속 암자의 하나다.

자장율사가 창건한 해발 900m에 위치한 암자다. 

연꽃이 피어나는 형상을 한 오세암은

전방으로 사자봉이

뒤로는 칠선병풍암이

바람을 막아주고 있다.

 

 

 

 

 

 

오세암 역시 봉점암 못지않게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오세암에 있는 ‘만경대’는 설악의 비경 중 하나다.

만경대 옆으로 관음봉, 천왕문 등 기암괴석이 군집해 있다.

설악산에는 만경대가 세 곳 있다.

만경대는 ‘10000가지 경치를 두루 굽어볼 수 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만경대에 오르면 정말 만 가지 풍경이 나타난다.

 

1. 오세암의 내설악 만경대

2. 천불동 구.양폭산장 상부 화채능선에 있는 외설악 만경대(비법정탐방로)

3. 오색 흘림골의 외설악 만경대

 

오세암에 가면 만경대를 꼭 올라가보길 권한다.

풍경이 압권이다.

공룡능선과 용아장성을 한 번에 품을 수 있는 곳이다.

내설악 만경대가 깊은 맛이 있다면, 외설악 만경대는 눈이 멀도록 화려하다. 그

리고 남설악 만경대는 가장 늦게 생긴 탓에 아는 이가 드물다.

세 개의 만경대 중에서 가장 찾기 쉬우면서도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 오세암 내설악 만경대다.

 

보이는 봉우리가 만경대다.

 

 

 

 

 

 

 

오세암은 다섯 살 난 아이가

부처가 된 절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다섯 살에 득도한 신동 때문에 붙여진 이름답게

오세암에 들면 누구나 득도를 할 수 있을 듯...

 

 

 

 

 

 

오세암은 백담사와 봉정암 중간쯤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백담사에서 봉점암을 오르다가 들리기도 하고,

봉점암에서 백담사로 내려오다 들리기도 하는 ‘참새 방앗간’ 같은 암자다.

불자들 사이에서는 봉점암~오세암 구간을 불교성지순례길이라고 명명되어 지고 있다.

이 구간은 거리도 거리지만 봉우리를 네 번 오르내리는 것이 반복되어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린다.

 

 

 

 

 

그리고

백담사~영시암~오세암의 12km는 “님의 침묵길”로 이름 붙여진 구간이다.

“님의 침묵길”이란 김영재 시인이 <외로우면 걸어라>는 책에서 처음 언급했다.

깊은 오지 산행이지만 널널하게 걸을 수 있고

백담계곡을 따라 걷는 스토리가 가득한 고즈넉한 구간이다.

 

 

 

 

 

 

 매월당 김시습이 들어와 오세암에 오래 거처를 했고,

동학운동에 가담하기도 했던 만해 한용운 선사가

동학운동이 실패하자 몸을 숨긴 곳이기도 하다.

한용운은 1896년 오세암으로 들어가 백담사를 오가다

10년 후 백담사에서 머리를 깎았다.

 

 

 

 

 

 

 

 

시인 신경림은 ‘여행은 떠남’이라고 했다.

“여행이란 일상으로부터 떠나고, 우리가 의지했던 안락에서 떠나고, 진리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떠나고, 상식에서 떠나고…”.

떠남으로써 돌아올 수 있는 것이 길이고 비움으로써 다시 채울 수 있는 것이 마음이라는데….

그래서 “산행은 만남“이라고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늘과 바람과 별과 시와 돌멩이를 만날 수 있으니까.

먼저 만나야 버릴 수 있다.

만나야 버릴꺼리가 생긴다.

 

 

 

 

 

나는 때로 걷는 것이 지겨웠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의 노예가 됐고,

끝없이 펼쳐진 숲에 신물이 났지만

그들의 광대무변함에 매혹됐다.

나는 그만두고 싶었지만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싶기도 했다.

 

 

 

 

출입금지 팻말이 있는 이곳이

만경대 올라가는 곳이다.

오세암에서 200미터쯤에 있는 작은 고개쉼터가 나온다.

고갯마루에 이 이정표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오세암에 있는 남설악 만경대를

아는 산객은 거의 없다.

 

 

 

 

 

 

 

 

모든 것의 참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알 수도 없고,

실체도 없다.

-석가모니

 

 

 

 

만경대에서 본 설악의 풍광들이다.

설악의 대부분이 조망되는 환상적인 곳이다.

설악에서 가을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날씨가 우중충했지만

설악의 몸매는 그대로 나타난다.

 

 

 

 

 

 

 

용아장성이다.

가장 앞쪽이 용아의 마지막 봉우리 옥녀봉이다.

내설악 지구의 대표적 능선인 용아장성의 마지막 봉우리다.

해발 1,424m이다.

용아장성은 소청봉~봉정암~칠형제봉을 거쳐 옥녀봉에서 마무리된다.

옥녀봉이라는 명칭은 산세가 순하고 아름다운 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정규 탐방로가 없는 출입금지 지역으로 봉우리 아래쪽에 수렴동대피소가 있다.

 

 

 

 

 

 

 

멀리 아스라히 중청이 보인다.

 

 

 

 

 

만경대에서 본 오세암 전경이다.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사리자여,

이 모든 법의 공한 모양은 생기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은 것이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은 것이며,

불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은 것이다.

-<반야심경>, 모든 것은 언제나 그대로다

 

 

 

 

 

 

 

 

 

 

“인생이란

당신이 숨 쉬어온

그 모든 날들이 아니라,

당신의 숨이 멎을 것 같았던

바로 그 순간들의 합이다.“

-영화 <미스터 히치>

 

 

만경대 정면으로

조망되는 공룡능선의 자태다.

 

 

 

 

 

 

모든 사물과 순간은 문득 자신만의 생명을 가진 것처럼 스스로 빛났고

나 역시 오로지 존재 자체만으로 빛났다.

잠시 속도를 줄이고 느리게 가자

숨죽이고 있던 것들이 생명을 띠면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급하게 여행했다면 결코 맛보지 못할 기쁨들이 베니스의 거리 곳곳에 널려 있었다.

-이지상의 <낯선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난다면>중에서,

 

 

 

가야동계곡의 시작점

천왕문이다.

 

 

 

 

서북주능과

귀때기청봉도 조망된다.

 

 

 

 

 

 

우리는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는 데 익숙하지 않다.

세상에서 떠밀려 나왔다는 조바심 때문일까?

아니면, 다수의 무리에서 뛰쳐나왔을 때의 두려움 때문일까?

끊임없이 전화를 하고,

메신저를 하고,

문자메시지를 날린다.

그래야 살아있음을, 혼자가 아님을 느끼기 때문인가.

며칠쯤은 세상으로부터 떠밀려 나와 보는 건 어떨까.

일부러 혼자가 되는 건 어떨까.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길을 걷고,

혼자서 잠을 자보는 건 어떨까.

그러면 또 다른 나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어디에 있느냐보다 어디로 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올리버 웬델 홈스

 

 

등산스틱에,

밀짚모자에,

등산화에,

배낭까지...

설악에서 흔치 않게 볼 수 있는

현대식 스님들의 복장이다.

하긴 이런 힘든 길을 올라다니려면

꼭 필요한 장비들이다.

 

 

 

 

 

 

 

 

 

 

 

 

 

 

 

 

 

어제 해거름녘에 스쳐갔던

영시암에 다시 도착했다.

방문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출입금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계곡에도 인산인해다.

 

 

 

 

 

 

 

희망은 언제나

힘든 언덕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과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

 

 

 

 

 

 

 

4개의 절과 암자를 순환하는 성지순례 산행을 마쳤다

간단하게, 신흥사, 백담사, 봉정암, 오세암, 영시암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신흥사는 백담사를 낳고

백담사는 봉정암, 오세암, 영시암을 낳았다.

 

 

심경호의 <산문기행-조선의 선비, 산길을 가다>에서는

설악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신흥사에서 오세암까지 40리,

오세암에서 사자봉까지 40리,

사자봉에서 영시암까지 40리,

영시암에서 한계까지 30리, 백담사에서 신흥사까지 40리이다.

설악을 전부 둘러 도보로 갈 수 있는 거리가 220리이다.”

40리마다 설악의 중요한 포인트가 있는 셈이다.

 

 

 

 

 

 

돌탑들 사이에

동심이 가득하다.

백담사 돌탑들의 염원을 뒤로하고

속세로 들기 위해 셔틀버스에 올랐다.

 

 

 

 

 

 

소박하게 떠나보고 싶었다.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채, 동행자 없이 혼자...

그런 길에 서고 싶었다.

그 길엔 외로움보다 풍요로움이 넘칠 것이었기에.

번잡함의 대가로 평온함이 넘치는 길,

그런 길에 서고 싶었다.

설악산 봉정암 가는 길이

그것을 대신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 걷다보면 어느새 풍경과 내가 하나가 된다.

세상이 온통 설악의 푸른 초록처럼 인화되듯이

일상의 초점이 흐려지는 날이면

누구나 설악에 들어볼 일이다.

가슴 저 너머에 숨어 있던 그리움들이

깊은 숨을 내쉬며 달려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