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라, 그러나 변하지 마라(Change it, But do not change it)-MBA가 경영을 망친다
20세기 최고의 영화라 불리는 1972년 산(産) <대부1(Godfather)>를 보면, 대부 말론 브란도는 푹신한 쇼파에 몸을 파묻은 채 여러 똘마니들로부터 보고를 받는다. 그게 전부다.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쇼파에 누워서 그저 ‘조용히’ 있는 것이다.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씻고 봐도 말론 브란도가 소리를 지르거나 성질을 부리거나 아니면 사람을 때려눕힌 장면은 없다. 하지만 피비린내나는 현장의 배후에는 모두 그의 아바타들이 아른거린다. 이처럼 힘이 센 사람일수록 대개 몸은 느리다. 몸도 빠르고 힘까지 세다면 그것은 불공평하다. 게다가 주먹도 느리다. 대부에게는 주먹이 빠를 필요가 없다. 주먹 빠른 행동원을 부리면 된다.
그러나 기업은 주먹이 빨라야 한다. 주먹뿐만 아니라 몸도, 의사결정도, 변화의 속도도 빨라야 한다. 스피드가 가장 큰 무기이자 경쟁력이다. 음식이 맛없는 것은 용서할 수 있지만 주문한 음식이 빨리 나오지 않으면 용서할 수 없다. 스피드 없는 고객만족은 어불성설이다. 시스코 시스템즈(Cisco Systems) 존 챔버스(John Chambers) 회장도 “덩치가 크다고 해서 항상 작은 기업을 이기는 것은 아니지만, 빠른 기업은 언제나 느린 기업을 이긴다.”고 했다.
환경변화가 미미하던 과거와 달리 작금의 기업 환경은 덩치가 아니라 속도에 의해 판가름 난다.
시시각각 변하는 고객의 트랜드 역시 기업들의 속도경쟁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이제 기업은 트랜드를 따라가기보다는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시장의 트랜드에 수동적으로 맞춰가는 기업은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변화는 가치가 동반될 때 가치가 있다. 가치는 곧 기업의 창업철학에서 나온다. 창업철학은 경영이념에서 나온다. 가치(value)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흔들리지 않는 의사결정의 기준이자 행동 규범이다. “바꿔라, 그러나 바꾸지 마라(Change it, But do not change it)”, 세계적인 자동차 포르쉐(Porsche)의 디자인 철학이 보여주듯 기업철학과 이념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다. 변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 ‘바꾸라’고 해놓고 ‘바꾸지 말라’고 하는 말은 언뜻 보면 논리적 모순처럼 보인다.
지구상 그 어떤 기업도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기업은 없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폭과 깊이다. 포르쉐 자동차 역시 끊임없이 변화를 추진해왔지만 디자인 철학과 근본은 유지한 채 모든 것을 바꿔왔다. 변했지만 변한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변화야말로 포르셰 자동차가 추구하는 변화의 철학이다. 유영만 교수는 “`가치`는 `같이(together)` 공유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했다. 공유되지 않는 가치, 액자에 걸어두는 선언적 가치, 실천하지 않고 지키지 않는 가치, 가치에 위배되는 행동을 해도 묵인하거나 방관하는 가치는 위장된 가치다.
철학이나 이념과 달리 비전이나 목표는 시장 환경에 따라 변해야 한다.
기업의 궁극적 역할은 고객들의 삶을 변화시켜 풍요로운 세상을 창조해 내는 데 있다. 기업은 고객의 풍요와 행복을 책임지는 놀이터다. 이 놀이터가 활발하게 작동되기 위해서는 고객이 몸담고 있는 삶의 터전을 행복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문화로 바꿔나가야 한다. 공동체문화는 기업으로 치면 기업문화다. 기업문화는 사풍과 다르다. 사풍은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반면 기업문화는 기업의 목표달성을 위해 의도적·인위적인 요소들을 가하는 것이다. 고객의 요구에 맞춰나가는 것이 사풍이라면 기업의 요구에 고객이 따라오게 하는 것은 기업 문화적 측면이다. 결과적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사풍이라면, 기업문화는 필요에 의해 의도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총칭하는 것이다.
그럼, 기업에서 바꿔야 할 것과 바꾸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해 보자.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바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창업철학과 경영이념이 필요하다. 철학과 이념은 곧 가치다. 이것은 조직 구성원 각자의 의사결정 기준이자 행동 규범인 동시에 ‘언제나, 누구나’ 지켜야 하는 일종의 기업헌법이다. 실제로 삼성에는 이른바 ‘삼성헌법’이라는 것이 있다. 1993년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과 함께 삼성 내에서 쓰여지는 용어를 말하는데 이것을 곧 "삼성헌법"이라 부른다.
*삼성헌법*
1. 인간미 : 상대방을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
상대가 싫어하는 소리를 안 하는 게 인간미가 아니라, 부하의 잘못을 상사가 지적하고 꾸짖는 것이 진정한 인간미라는 것이다. 따라서 “좋은 게 좋다”라거나, “우리가 남이가!”를 남발하는 식의 자세는 부하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인간미 없는 행동에 속한다는 것이다.
2. 도덕성 : 인간의 기본양심으로 규범에 따라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
3. 예의범절 : 생활의 기본.
4. 에티켓 : 다른 나라 문화를 이해하는 국제화 자세.
삼성헌법에 담긴 이건희 회장의 철학은 “일류가 되려면 인간미와 도덕성을 회복하고, 예의범절과 에티켓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류가 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올바로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우리는 인간미가 있고 도덕과 예의범절을 지켜온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암울한 시기를 거치면서 모르는 사이에 인간미와 도덕성의 불감증에 걸리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우리 사회, 우리 조직에 만연된 불감증을 바로잡는 한편, 국제화의 시대적 흐름에 적응하기 위한 에티켓을 알고 지켜가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인간미, 도덕성, 예의범절, 에티켓’의 네 가지 덕목은 삼성인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이자 '헌법'이다. 기업의 영혼이자 존재이유다. 바꿔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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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다움’을 위해 근본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기업들이 많다.
대기업은 대기업다워야 하고, 경영자는 경영자다워야 하고, 어른은 어른다워야 하고, 아이는 아이다워야 한다는 논리다. ‘~다움’이란 흉내 내기에 불과하다. 내가 아닌 ‘~다움 화(化)’된다는 의미다. 기존의 틀에 들어가는 것이다. 효과적으로 인간을 통제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 바로 ‘~다움’이다.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저자 김애란은 말했다.
나는 아이'다운 아이'에게 끌리지 않는다.
같은 이유로 어른다운 어른'에게도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답다> 라는 이데올로기는 가부장 중심 사회가 만든 폭력적인 시선일 뿐이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하고, 어른은 어른다워야 하며,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는 사고는
주인이 노예를 길들이기 위한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다.
신입사원은 신입다워야 하고 대리는 대리다워야 하고 부장은 부장다워야 하고 CEO는 CEO다워야 한다는 말 역시, 효과적인 통제와 감시를 위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신입사원답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대리답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다시 한 번 묻자. 신입사원답다는 기준은 무엇인가, 정말 대리답다는 기준은 무엇인가? 경영학 교과서적으로 보면 조직의 목적이 공통의 목표달성을 위한 것이기에 어느 정도의 개별적 통제와 감시와 억압을 감수해야 하지만 개성과 자유를 분리하고 솎아내서 ‘끼리끼리’의 동종 군집을 만드는 것은 억압에 가깝다.
CEO가 앞장서서
입으로는 변화와 창조를 외치고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고 외치지만 뒤따르는 졸들의 마음은 콩밭에 가 있기 일쑤다. 경영은 기법이 아니다. 경영은 마음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인문학이다. 인문경영이다. 사람이 중요하고, 사람이 미래라는 것이다. 경영을 경영학만으로 접근하는 것은 재고해 봐야 한다. 경영은 인문이자 휴먼이다. 역사를 보라. 최초의 경영자는 철학자였다. 위대한 철학자는 위대한 경영자가 될 수 있지만 위대한 경영자는 위대한 철학자가 될 수 없다.
몇 년 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도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을 신봉했던 신고전학파의 경제모델에 거센 비판론이 제기되면서 경제학은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경영학계 역시 총체적 혼란에 빠졌다. 이른바 ‘현대 경영의 구루’라 불리는 톰 피터스(Tom Peters)와 저명한 경영컨설턴트 로버트 워터맨(Robert Waterman)이 공동 출간한 1982년 산(産) <초우량 기업의 조건>과 1994년 짐 콜린스(Jim Collins)와 제리 포라스(Jerry L. Porras)가 쓴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 역시 같은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당시 이러한 책들은 사내 필독서로, 업무 관련 보고서로, 토론회의 단골 메뉴로 활용되었다. 우리가 신주 단지 모시듯 하면서 색연필에 밑줄까지 그어가며 밤새워 공부했던 책들, 이제 유통기한이 지났다. 경영학의 본고장인 미국 MBA 역시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다. ‘MBA가 경영을 망친다’, ‘MBA 출신이 기업을 망친다’와 같은 막말을 듣고 있다. 도저히 바뀔 것 같지 않았던 경영 대가들의 책들도 비판 목록에 오르고 있다.
최근 철학을 전공한 컨설턴트 매튜 스튜어트(Matthew Stewart)가 쓴 <위험한 경영학>이 그 대표적 사례다.
저자는 자신이 직접 경험했던 컨설턴트들의 사기에 가까운 행각들을 실토하고,
경영 대가들이 주장한 정통 경영이론과 기법들을 싸잡아 비판한 후
진정한 경영학은 인문학에서 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때 포스코 정진양 회장 역시 ‘철을 깎는 인문학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미국 경영자들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경영학 책이 아니라 철학책이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두꺼운 경영학 책이 경영을 망치고 있다. 그렇다고 이전의 경영학 책들이 거짓이란 말은 아니다. 당시에는 최선이었다. 그러나 때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는 인문학이다. 말이 아닌 실천, 머리가 아닌 가슴이다. 우리는 거꾸로 공부한다. 경영학 기초를 먼저 쌓고 인문학을 공부한다. 인문학의 기초 위에서 경영학이 더해져야 한다. 경영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의 차원이다.
결국은 사람이니까. 그것도 마음.
결론은 간명하다.
-포르쉐 자동차의 디자인 철학에서 보듯 진정한 변화는 '변한듯, 변하지 않은 듯한' 변화가 바람직하다는 것과
-영화 <대부>의 주인공처럼 CEO는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 없어야 한다는 사실....
-가장 한가한 경영자가 유능한 경영자가 아닐까? 유능하기 때문에 한가한 것일까?
삼류 리더는 자기의 능력을 사용하고 이류 리더는 남의 힘을 사용하고 일류 리더는 남의 지혜을 사용한다.한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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