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ADISE WAY/기업문화-기업이념

바보들의 배 & 바보들의 기업

김부현(김중순) 2014. 3. 31. 16:08

바보들의 배 & 바보들의 기업 

 

 

 

 

 

 

 

 

 

 

 

 

 

 

 

 

 

 

 

 

 

 

이윽고 작은 배가 항구를 떠난다. 사람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는 배 안은 벌써 아수라장이다. 배 주위에는 여전히 배에 올라타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인간들로 인해 배가 심하게 흔들리고 금방 가라앉을 모양새다.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수도사와 수녀는 물론이고 가운데 돛대 대신 세워진 나무에는 빵 한 조각이 매달려 있다. 그 밑에서 수녀와 수도사는 입을 벌리고 그걸 서로 먼저 먹겠다고 아우성이다. 왼쪽 옆에 있는 수녀는 아예 한 손에는 술병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다른 사람과 멱살잡이를 하고 있다. 심지어 맨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바다에 먹은 걸 토해내고 있다. 무엇이든 절제하고 금욕해야 할 수도사와 수녀들이 이럴진대, 다른 사람들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배 위에는 온통 탐욕에 물든 광기어린 바보들뿐이다. 배는 돛대도 사공도 없으니 그냥 정처 없이 흘러갈 뿐이다. 어떤 목적지도 없고 미래도 없이 그저 오늘의 쾌락만을 위해 살아가는 바보들로 가득하다.

 

15세기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의 그림 <바보들의 배 The Ship of Fools>가 묘사하는 풍경이다. 부조리와 부패가 만연했던 당시 유럽은 광기어린 바보들의 시대였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인간군상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에도 배에 탄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를 상상하지도 인지하지도 못한 채 습관적인 향락잔치에 빠져 있다.

 

보쉬의 그림은 오늘날 기업들에게도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진다. 많은 기업들이 새로운 르네상스를 향해 출항하지 못하고 산업사회의 달콤한 성공에 안주한 채 자만에 빠져있는 배에 탄 바보들의 모습을 닮았다. 찰나의 향락을 찾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불나방 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산업사회의 미래가 어떤 파국을 가져올지, 그동안 기업경영의 근간을 이루었던 전략이나 자원들이 어떤 한계에 직면하는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기업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보라.

부조리와 퇴폐는 늘 새로운 시대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혼돈과 향락의 시대적 어둠을 뚫고 찬란한 르네상스가 꽃피었고, 총칼이 난무했던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성인들의 등장이 그랬다. 하나같이 그 바탕에는 창조정신이 있었고, 상상력이 나래를 펼쳤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나무 돛대 위 한 사람,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연상하게 하는 단 한 사람만이 깊은 사색에 빠져 있다. 그는 이미 다가온 문예 부흥기를 직감하고 깊은 고뇌에 빠져 있다. 그는 쾌락에 물든 중세인 이기를 거부한 르네상스인의 참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창조적 선각자의 모습이다. 산업사회의 달콤한 성공을 뿌리치고 창조사회로 전진하기 위해 고뇌하는 CEO의 모습이다. 다른 기업들이 산업사회의 전략을 맹신하고 있을 때, 혼자서 창조적 가치를 추구하는 현자의 모습이다.

 

전 세계 인구의 0.25%에 불과한 유태인이 세계적인 과학자의 17.6%, 미국 명문대학 교수의 20%, 미국 변호사의 40%, 1991년 이후 총 270명의 노벨상 수상자 중 45%122명이나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 즉 하나님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은 유일신 하나님의 존재를 구체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존재하지만 구체화 될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유대인들의 초월적 신이었다. 따라서 초월적 신을 경외하는 것은 순전히 각자의 상상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가들은 이 초월적 상상력이야말로 오늘날 유대인들을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기업도 이른바 초월적 상상력을 통한 초월적 존재를 만들어야 한다.

초월적 존재란 초월적 가치에서 나온다. 초월적 가치는 이념이나 철학으로 나타나는 기업문화다. 지금과는 다른 미래가 도래한다는 것을 믿고 그 믿음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문화는 산업사회의 지식이나 기술로 측정할 수 없다. 유대인들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신을 창조해 낸 것처럼 기업문화는 구성원들의 상상력을 통해 창조기업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 상상력과 창조력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 CEO는 기업구성원들이 초월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도록 이념과 철학을 체계화하여 그것을 기업문화로 정착시킬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는 산업사회의 항구에 정박해 있는 기업들보다는 창조사회를 향해서 과감히 출항하는 기업들이 더 높은 점수를 받는다. 산업사회의 방식은 단기효율과 생산성에 국한되지만 창조사회는 성장성에 더해 고용성과, 고객 만족, 사회공헌, 협력사와의 동반성장, 지배구조의 투명성, 친환경 경영 등의 다면적이고 입체적인 면으로 확장된다.

 

배를 타고 정처 없이 세월의 바다를 항해하는 인간의 모습을 다양한 상징성을 통해 표현하고 있는 보슈의 그림은 슬프지만 인간군상의 바보스러운 모습이다. 새로운 트랜드를 잊고, 술을 마시고, 희희덕 거리고, 사기를 치고, 쓸데없는 게임이나 하고, 가질 수 없는 물건이나 추구하면서 사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바보들의 배바보들의 기업(The Company of Fools)’으로 오버랩 된다. 기업에 존재하는 바보들을 창조형 인간으로 바꾸는 것이 CEO들에게 주어진 과제다.

 

일찍이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를 주장한 바 있다. 이것은 점진적 변화가 아니라 밥상을 뒤집어 엎는 것이다.

기존에 통하던 전략이나 방식, 작은 성공을 겉포장만 그럴듯하게 꾸며서 재탕 삼탕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산업사회와 지식정보화사회가 가고 창조사회가 도래하자 다급해진 경영자들은 인문학을 들먹이고 아인슈타인을 찾고 피카소 그림을 뒤적이고 있다.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이나 MBO와 같은 시스템화가 가능한 영역은 컨설팅업체에 맡길 수 있지만 시스템화가 불가능하고 객관적 측정 도구가 없는 창조성이나 상상력, 예술적 감성은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기업마다 처한 환경이나 가용할 수 있는 자원, 그리고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창조성, 상상력, 기업문화와 같은 정형화 되기 어려운 것들을 정착시킬 수 있어야 바보기업에서 탈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