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치와 발렌베리 그리고 삼성
삼성의 롤 모델,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
메디치 가문(Medici Family) : 사려깊은 행동-로키전략(low key 전략)
메디치 가문은 사회 전면에 나서지 않는 '사려 깊은 행동'으로 은밀히 피렌체를 움직였다. 학문·예술을 적극 후원히여 세계사에 길이 빛나는 르네상스의 꽃을 피게 한 장본인이다.
중세 유럽 문화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위치에 있는 메디치 가문은 1400년경 역사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후로 약 350년간 지속되있고, 15~16세기 피렌체 공화국에서 가장 유력한 가문이었다. 특히 학문과 예술 분야에 후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피렌체에서 르네상스가 꽃을 피울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피렌체가 이탈리아의 중심이 되었다.
-메디치가문의 문장
원래 메디치 가문은 이탈리아 중부 피렌체의 평범한 중산층 가문이었다.
창업자 조반니 디 메디치부터 상업을 통해 재물을 축적한 평범한 가문이었던 이 가문은 코시모 데 메디치(1389~1464)에 이르러 강력한 권력을 손에 넣게 된다. 한때 귀족들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수년 동안 추방당하기도 했던 코시모 데 메디치는 민중의 지지와 상업자본에 힘입어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이때 교황청의 자금 흐름을 담당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메디치 가문은 막대한 사재를 시정(市政)에 투입하는 한편 학예(學藝)를 보호하고 장려했다.
-메디치 가문 주요 인물을 곳곳에 그려 놓은 동방박사들의 행렬, 베노초 고촐리, 프레스코, 1459년경.
미켈로초, 도나텔로, 기베르티 등의 예술가가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수많은 예술가들이 피렌체로 몰려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피렌체는 르네상스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게 됐고 코시모의 손자 로렌토 데 메디치에 이르러 피렌체와 메디치 가문의 번영은 정점에 달하게 된다. 이때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보티첼리, 미켈란젤로와 같은 예술가들이 탄생하기도 했다.
-피에로 데 메디치의 가족을 그려넣은 산드로 보티첼리의 마니피캇의 성모
메디치 가문은 조반니 데 메디치에서 시작되어 마지막 직계후손인 안나 마리아 루이사 데 메디치까지 약 350년간 엄청난 영화를 누린 가문으로, 메디치 가문에선 세 명의 교황과 한 명의 대공을 배출했다. 르네상스는 유럽 전역으로 퍼졌지만, 그것이 시작되고 무르익고 끝난 곳은 바로 피렌체다. 피렌체가 르네상스와 이탈리아의 중심이 된 것은 결코 우연아 아니다. 르네상스를 이끈 예술가들은 거의 대부분, 어떤 식으로든 메디치 가문과 인연이 있었다.
아비뇽 유수가 종료되면서, 서방에선 세 명의 교황이 등장하게 되다. 로마의 우르바노 6세에 반대해서 프랑스와 피사에서 각각 추기경들이 대립교황을 선출한다. 조반니 데 메디치는 피사교황 이었던 교황 요하네스 23세를 구출하기 위해 무려 3만 8천 플로린, 지금으로 치면 약 150억 원이란 엄청난 거금을 썼다. 당연한 말이지만 폐위된 교황에게 돈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바보 같은 행동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메디치 가문의 수장이었던 조반니는 얼핏 그런 무모한 행동을 벌였고, 폐위당한 교황을 잘 모셨을 뿐만 아니라 요하네스 23세가 운명하자, 르네상스의 장인을 불러다가 영묘까지 만들어 주었다.
메디치 가문은 15~16세기 피렌체공화국에서 가장 유력하고 영향력이 높았던 시민 가문이며 공화국의 실질적으로 은밀히 통치한 통치자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문과 예술을 후원하여 르네상스시대가 피렌체에서 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탈리아의 상업도시 피렌체, 이탈리아 수도도 아닌 인구 30여만 명에 불과한 피렌체만큼 세계적인 예술의 집합소이자 우아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곳도 드물다.
-메디치 가문의 도서관 실내 전경. 미켈란젤로의 설계와 공사로 작업이 시작돼 1571년에 완성된 세계 최초 공공 도서관
이러한 이미지가 형성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이 메디치 가문 때문이다.
출신도 보잘것없는 한 가문이 이탈리아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문(물론 그 영향력은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 전역에 걸친 것이었지만), 더 나아가 세계적인 가문으로 성장했다. 그것은 그 영향력이 상업과 정치라는 현세적인 분야뿐 아니라 종교적 분야, 그리고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을 만큼 뛰어난 안목을 바탕으로 한 예술가들에 대한 후원을 통해 급기야 르네상스에까지 미쳤다는 면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메디치 가문의 존재로 인해 피렌체 또한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부상할 수 있었고 지금은 메디치 가문의 후광에 힘입어 수많은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특히 메디치 가문은 르네상스 전성기의 피렌체를 이끈 로렌초 데 메디치를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일 마그니피코(il Magnifico, 위대한 자)’라고 불리기까지 한 그는 시를 쓰기도 하면서 메디치 가문의 전성기를 이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남긴 시 한 편이다.
Whoever wants to be happy,
let him be so:about tomorrow there’s no knowing.
행복해지고자 하는 자들이여,행복을 즐겨라.
내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니.
가문의 창립자-조반니 데 메디치
모직업으로 부활한 메디치 가문은 은행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러나 ‘사려 깊은 행동, 정중한 태도, 공부하는 습관’으로 대별되는 ‘로키(low key) 전략’으로 결코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전략을 취했다.
이탈리아의 국부-코시모 데 메디치
조반니의 장남인 코시모는 메디치 가문의 권력을 확고하게 다진 주역으로 그가 사망한 후 피렌체 시민들로부터 국부(國父)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는 도나텔로 뿐만 아니라 프라 안젤리코, 루카 델라 로비아, 필리포 리피 등을 적극 후원하여 르네상스의 아침을 열렀던 아버지의 전통을 더욱 계승 발전시켜 나갔다.
위대한 자-로렌초 데 메디치
조반니, 코시모, 피에로로 이어져 내려오던 메디치 가문의 전통은 ‘위대한 자’ 로렌초 데 메디치에 의해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파치가의 음모에 휩쓸려 죽을 고비를 넘겼고 혼란했던 피렌체를 23년간 실질적으로 통치하면서 피렌체를 이탈리아의 중심으로 키워 르네상스의 중심도시로 만들었다.
한 마디로 메디치 가문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사려 깊은 행동’으로 피렌체를 은밀히 통치했다. ‘존재하되 드러내지 않는다’는 모토를 가진 북유럽의 메디치 가문으로 불리는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도 메디치 가문의 시스템을 따르고 있다. 우리나라 삼성이 롤모델로 발렌베리 가문의 전통을 꿈꾸고 있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로렌초 데 메디치
그러나 삼성이 발렌베리 가문을 따라가기에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겉으로가 아닌 내면적, 실질적으로 발렌베리 가문을 꿈꾼다면 세 가지가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세습경영체제를 버리고 노조를 인정하고 세금을 제대로 내는 것이다.
아주 기본적인 것이다.
-크눌프 발렌베리
삼성은 발렌베리가 될 수 있을까?
과연 삼성은 한국판 발렌베리가 될 수 있을까?
발렌베리 가문 역시 삼성처럼 세습 경영체제를 이어오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발렌베리 가문은 복수 대표이사 체제로 경영의 내부견제시스템이 확보되어 있다.
또한 노조를 경영파트너로 생각하고,
심지어 노조 대표를 이사회에 중용시키고 있다.
삼성의 대물림 경영과는 태생이 다를 뿐만 아니라 노조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세습 경영체제를 가속화시키고 있는 삼성이 발렌베리 가문을 꿈꾼다는 것은 모순처럼 보인다.
그리고 다른 비교 대상도 많지만 법인세 납부의 경우를 보면,
발렌베리 가문은 이익의 85%를 법인세로 낸다.
정말 엄청나다.
그러나 삼성의 법인세 실제납부세율은 20%가 채 안 된다.
삼성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10대 그룹들이 대부분 그렇다.
-스웨덴 제2의 군주라 불리는 안드레 오스카 발렌베리 창시자
불법은 아니지만 이리저리 법의 허점을 파고들어 각종 감면 혜택을 독차지 하는 통에 납부하는 법인세 실효세율은 미미하다. 우리나라는 대기업일수록 법인세 실효세율은 낮은 편이다. 투자세액공제와 같은 각종 감면 혜택들을 독차지하기 때문이다.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에 대한 자세한 정보 : http://blog.daum.net/kjs1906/1801
그렇다고 발렌베리 가문이 세금만 왕창 내고 사회 공헌활동을 안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공헌 활동을 활발하게 하다보니 가문 중 그 어느 누구도 부자의 반열에 드는 사람이 없다.
스웨던 GDP의 30%를 차지하고
주식시가총액이 50%를 차지하기도 했던
발렌베리는 삼성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엄청난 부자지만
가문의 후계자들 중 그 누구도 세계 1,000대 부자 명단에도 한 번 오른 적 없고,
스웨덴에서조차 100대 부자에 든 적도 없다.
직접적인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아무튼 삼성이 발렌베리에 비해 납부세율이 턱없이 낮은 것은 분명하다.
일본 소니가 삼성을 이길 수 없는 이유로 한국 정부의 삼성에 대한 간접적인 지원 탓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일본은 우리와 달리 대기업의 경우 감면 받는 것은 없고 법인세를 40% 가까이 낸다. 작은 기업보다 더 많이 세금을 내는 것이다. 이것이 당연한데 우리는 여러 가지 세금감면 정책으로 대기업들의 실효세율은 아주 낮은 편이다. 삼성은 법인세 실효세율이 20%가 채 안되는 반면, 일본 소니는 40%에 육박하니 그 차이가 수 조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세금을 적게 내고 요란하게 다른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것은 ‘보여주기’ 에 불과하다.
스웨덴 내에서조차 100대 부자에도 들지 못하는 발렌베리와 달리 우리나라 부자 서열에서 가장 앞서 있는 가문이 삼성이다. 이건희 회장을 필두로 아들, 딸들이 모두 서열 상위권이다. 발렌베리는 삼성과 추구하는 가치관이 근본적으로 다르고 태생도 다르다. 지금까지 무려 158년간 5대에 걸쳐 발렌베리는 가문 세습경영을 해 오고 있지만 여전히 스웨덴 국민들의 영웅으로 칭송받고 존경받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삼성이 '한국판 발렌베리 가문'으로 재탄생 하기를 기대해 본다.
큰 재물에는 반드시 큰 불평등이 따른다.
한 사람의 부자가 있기 위해서는 200명의 가난뱅이가 필요하다.
-아담 스미스
부는 온갖 범죄를 감싸주는 외투다.
-메난드로스, 고대 그리스 극작가
-사진출처 : 위키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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