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재건축 르네상스
2000여 년 전 로마가 전 유럽을 지배하던 로마제국시대, 사람들은 로마로 로마로 몰려들었다. 사람이 몰리다 보니 로마는 당시의 문화와 생활양식의 표준이 되었다. 그래서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한다. 산업혁명 시기처럼 인구의 도시집중화 현상이 로마에서도 나타난 것이다. 당시 로마 시민이 500만 명이었는데, 이는 2017년 로마의 인구수 430만 명 보다 많은 수치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도시가 성장한다는 것은 한정된 땅에 인구가 밀집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땅이 부족한데 인구밀도가 높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거주할 공간이 필요했다. 결국 로마는 건축물을 높이 짓는 수밖에 없었다. 좁은 땅에 적은 돈으로 많은 사람들을 거주시킬 수 있는 묘책이 등장했는데 ‘인슐라Insula’라 불리는 세계 최초의 아파트다.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는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있는 1932년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충정아파트다. 80여 년간 버텨오던 충정아파트는 느닷없이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2008년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어 재개발사업이 추진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노후화되고 미관도 좋지 않아 별 어려움 없이 철거되고 고층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대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자 재개발이 지지부진해졌다. 재개발에 제동이 걸리자 충정아파트를 근현대 문화유산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아직 지정으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반면 부산에서 최초의 아파트는 충정아파트보다 9년이 늦은 1941년 일본인이 지은 청풍장 아파트다. 남포동 국도시네마 뒷골목에 위치하고 있지만 자갈치시장과 남항 바다조망이 일품이다. 70년이 넘어 역시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 했으나 주거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어 무산된 바 있다. 청풍장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세 번 놀란다고 한다. 너무 낡은 건물 외모에 놀라고, 외모와 달리 내부가 너무 튼튼해서 놀라고, 사는 사람들이 부자라서 놀란다.
2000년 전 로마시대 때부터 아파트는 사람이 몰리는 도시에 공통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좁은 땅에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주거공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아파트 사랑은 세계적으로도 유별나다. 프랑스 지리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발레리 줄레조(Valerie Gelezeau)는 우리나라를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불렀다.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거주하다보니 아파트값은 일시적 보합이나 하락은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올랐다. 우리나라의 재개발사업은 1973년 서울시에서 최초로 재개발구역을 지정한 이후 주로 도시재생차원에서 시작되었지만 전면 철거위주의 사업방식은 역사와 문화까지 철거하고 있다. ‘노후화=철거’가 아닌 ‘노후화=역사+가치’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대안으로 다양한 소규모 재개발 사업이 시도되고 있지만 효율성과 경제성이라는 숫자놀음에서 탈피하지 않는 한 철거방식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오는 2022년부터 우리나라 주택시장은 한바탕 회오리가 닥칠 것이다. 부동산 투기열풍과 함께 1980년대 우후죽순 건설됐던 아파트가 재건축이 가능한 노후·불량주택 대열에 합류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재건축 연한을 채운 주택이 연간 10~15만 가구 정도였지만 2022년부터는 그 3배를 넘는 연간 45만 가구가 쏟아져 나올 예정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 전체 주택 수는 1669만2000 가구다. 이 중 20년 이상 된 주택이 762만9000 가구로 45.7%에 달한다. 이를 아파트로 국한해 보면, 1003만 가구 가운데 362만6000가구가 20년 이상 되었다. 따라서 2022년부터 노후주택이 큰 폭으로 증가하다 2030년 전후가 되면 노후주택 대체수요가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에서도 2030년 전후로 재개발·재건축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이주수요도 급증하고 2042년까지는 주택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흔히들 인구가 줄어드는 데 왜 계속 주택을 공급해야 하는지를 궁금해 한다. 우리나라는 인구감소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계속 증가하여 2031년 5290만 명을 정점으로 점차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를 가구 수 기준으로 주택수요를 계산하면 2020년까지 1770만 가구, 2042년엔 1917만 가구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주택수요 증가의 가장 큰 요인으로는 1~인 가구의 증가다. 2015년부터 2045년까지 1~2인 가구가 577만 가구가 늘어나는데, 4인 이상 가구는 279만 가구가 감소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따라서 소형가구 증가가 신규주택 수요의 핵심이다. 주택은 인구 단위가 아닌 가구 단위로 소비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소형가구가 늘어날수록 주거사용면적도 오히려 증가한다.
<2014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는 평균 71.4㎡의 면적을 주거에 사용하는데 비해 4인가구의 1인당 주거면적은 18.8㎡에 불과했다. 결국 소형가구가 증가하면서 1인당 주거면적도 함께 늘어나 주택수요 의 증가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출생률 감소에도 불구하고 출생자수보다 사망자 수가 적을 뿐만 아니라 소형가구로 분화되어 2042년까지 주택을 계속 공급해야 한다. 따라서 대도시에서 신규 대규모 택지 공급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재개발·재건축을 통해서 주택을 공급을 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서울과 부산은 주택물량의 50% 이상이 재개발·재건축으로 공급되고 있다. 바야흐로 재개발·재건축 르네상스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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