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이 자유를 담보할 수 있을까?
전쟁의 폐허에서 세계사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한강의 기적'으로 대별되는 속성산업화를 일군 우리나라, 산업화시대에 주구장창 들었던 ‘대량생산, 대량소비’라는 경제용어가 산업계를 지배했었다. 만들기만 하면 팔린다는 그야말로 소비자들을 무시한 공급위주의 사고방식이었다. 하기야 운동화 한 켤레, 옷 한 벌이 귀했던 가난한 시절에는 신발 한 켤레 사기도 어려웠으니 물건에 대한 탐욕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신발을 수백 켤레씩 사서 집에 보관하는 사람은 없다. 식당에서는 심심찮게 '밥 조금만 주세요'라는 이야기가 일상화되었다. 대부분 생필품들은 공급이 수요를 훨씬 앞선다. 불과 몇 십 년 만에 물건이 남아돌아 처치 곤란인 시대에 살고 있다. 아이들 방에는 옷으로, 서랍에는 학용품으로 넘쳐난다. 한 번 입어보지도 않은 옷들이 재활용품 통으로 버려지고 있다. 어줍잖은 생필품을 선물 받으면 귀찮아 할 정도다.
그러나 부동산으로 넘어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당신에게 필요한 부동산은 어느 정도인가? 그 누구도 똑 부러지는 답을 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동산=돈’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돈을 얼마나 가지면 부자라고 할까? 한 조사에 의하면 부동산을 제외한 금융자산 10억 이상이면 부자라고 한다. 그래서 한동안 ‘10억 만들기 프로젝트’가 유행병처럼 휩쓸고 지나갔다. 2016년 기준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은 21만 명 정도라고 한다. 금융자산 10억 이상이면 부자라는 기준은 9년째 변함이 없지만 좀 더 자세히 보면 이 기준도 천차만별이다. 20억, 50억, 100억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옷을 장롱속에 가득 비축한다면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부동산이나 돈을 비축한 사람에게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죽을 때까지 필요한 돈이 20억이라면 20억을 가지면 돈에 관심이 없어지는 걸까? 그렇지 않다. 20억이 있는 사람은 30억 가진 사람이 부럽고, 50억을 가진 사람은 100억을 가진 사람이 부럽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100억짜리 빌딩을 가진 사람은 200억짜리 가진 사람이 부럽고, 500억짜리 가진 사람은 1000억 짜리 빌딩을 가진 사람이 부럽기는 마찬가지다. 한 쪽 발이 없는 사람은 두 발이 없는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늘 불평을 한다. 두 발이 없는 사람은 한 쪽 발을 가진 사람이 부러운거다.
신발이나 음식, 옷과는 달리 부동산이나 돈에 관한한 인간의 욕심은 멈추지 않는다. 부동산은 인간의 삶을 위해 꼭 필요한 존재다. 행복과 안전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업화를 거치면서 비정상적인 부동산공화국이 되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부동산을, 돈을 가지면 가질수록 더 큰 탐욕으로 이어지는 질주는 결코 멈출 것 같지 않다. 죽기 전에는.....
40개의 방과 수영장·사우나가 딸린 대저택에 살면서
100여 명의 하인이 24시간 대기했고
곁에선 항상 필리핀 여성들이 시중을 들었다
최고급 손톱 손질을 받으며
브라질의 전통 무술춤인 카포에이라는 물론
승마와 수영 등 원하는 모든 수업에 전속 강사가 따라 붙었다
이렇게 세상부러울게 없이 살았던 주인공은 아랍에미리트(UAE)의 연방국가인 두바이 공주 셰이카 라티파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세상 부러울 것이 없어 보이는 공주가 39분짜리 영상을 남기고 갑자기 사라져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요트를 타고 두바이를 탈출한 공주는 인도 고아주 해안 50㎞ 앞까지 접근했지만, 인도 해양경비대에 의해 체포돼 두바이로 송환된 것으로 알려졌다.그 후 공주는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그녀의 소셜미디어는 모두 차단된 상태다.
영상에는 공주의 아버지이자 두바이 국왕인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의 폭압을 폭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라티파는 영상에서 아버지에 의해 이동한 시간, 장소, 먹는 것까지 기록되는 '감시받는 삶'을 살았다고 했다. 공주는 의과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중학생 수준 이상의 교육은 받지 못했다고 했다. 공주는 아버지를 "명성을 위해선 무엇이든 하는 사람"이라며 "대드는 아내와 삼촌은 사람을 시켜 죽이기도 했다"고 했다.
공주는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햄버거 패티를 구우면서 살아도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결국 '자유'를 찾아 탈출한 것이다.
소시민들이 보기에는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자유를 찾아 떠난 공주를 보면서, <그리스인 조르바>로 잘 알려진 그리스 크레타섬에 묻힌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의 묘비명을 다시 떠올려 본다.
Δεν ελπίζω τίποτα.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Δε φοβούμαι τίποτα.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Είμαι λέφτερος. 나는 자유다
묘비명처럼 살았던 카잔차키스의 삶을 되새겨보면서 다시 자유를 생각한다. 원하지 않는 삶에서 자유가 나온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의 삶의 궁극적 이데아가 곧 자유일거니까. 자유가 자유롭지 못한 물질은 결코 온전한 자유가 될 수 없다는 반증이다. 박웅현의 <다시 책은 도끼다>에서 이 묘비명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무언가를 원하는 사람이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래서 '카잔차키스'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삶, 지금 내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여기는 삶을 살고 싶었던 것이다. 무언가를 원하면 자유가 아니다. 지금에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숨 쉴 수 있는 공기가 있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있고, 나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으로도 만족할 줄 아는 삶이어야 한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가 있듯이‘자유(自由)’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된다. 먼저 사전적 의미는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뜻에 따라 행동하는 것’, 법률적으로는 ‘범위 안에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행위’ 그리고 철학적으로는 ‘소극적으로는 외부의 모든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뜻하고, 적극적으로 자기의 본성을 좇아서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뜻한다.
많은 철학자들도 자유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깊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의 모든 사유와 행위는 예정되어 있고 신의 의지에 따른 것이지만 신이 자유롭기 때문에 인간의 예정에도 자유가 부여된다고 주장했다.
-스피노자는 한 사물이 자기 본성의 필연성에 따라 존재하고 움직일 때 그 사물은 자유롭다고 보았다.
-루소는 자유는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지니는 속성이며, 오직 개인에게만 속한다고 보았다.
-칸트는 자연과 자유를 같은 차원의 세계에서 조화시킨 것이 아니라 두 세계론에 근거해 각기 다른 세계의 원리로 보았다.
-헤겔에 따르면 자유는 ‘절대정신’의 속성으로 보았다.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자유는 자연법칙을 특정 목적을 위해 계획적으로 적용하고 활용함으로써 자연과 사회에 대한 지배력을 늘려가는 데서 성립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결과의 선악이나 타인에 미치는 영향은 논외로 하고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순수 의사의 발로가 곧 자유의 고유 속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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