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투자와 부동산중독 사이
‘중독中毒’하면 우리는 흔히 일, 게임, 알코올중독과 같은 물질적인 것을 떠올린다. 하지만 권력중독, 재테크중독, 관계중독, 부동산중독 등과 같은 비물질적인 중독도 심각하기는 매한가지다. 그래서 혹자는 작금의 시대를 ‘중독사회’라 부르기도 한다. 중독의 사전적 의미는 ‘술이나 마약 따위를 계속적으로 지나치게 복용하여 그것이 없이는 생활이나 활동을 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중독에 빠지게 하는 것일까? <중독의 시대>에서 저자들은 “중독의 심층적 원인은 결국 두려움 때문이다”라고 한다. 즉 중독은 내면의 두려움을 회피하거나 억압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시험, 취직, 업무 등에 대한 걱정을 잊기 위해 술이나 오락 등에 탐닉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앞서 언급한대로 중독은 비단 술이나 약물 같은 물질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면한 본질적인 문제를 억압하거나 회피하게 해주는 모든 것에 중독될 수 있다.
부동산 열풍으로 경제가 일어선 우리나라는 부동산중독도 심각하다. 투자를 가장한 중독이 시나브로 많은 사람들의 삶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열풍은 1970년대 후반 논밭이었던 강남이 개발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강남땅은 영화 <강남 1970>에서도 보여주듯이 오토바이를 타고 아무 대나 작대기만 꽂으면 ‘내 땅’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그런 강남이 서울 지역으로 편입되면서 열풍의 씨앗이 된 것이다. 이후 외환위기 때 약간의 조정이 있긴 했지만 부동산 불패신화는 여전히 건재해 보인다. 특히 우리나라 주택가격지수를 살펴보면 서울과 대도시의 주택가격은 1988년 이후 지금까지 큰 폭의 하락 없이 상승세가 유지되고 있다. 미국의 주택매매가격과 비교해 가격상승의 기울기가 거의 비슷하게 올라가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부터 쳐도 문재인 정부 들어 약간의 조정기를 맞고 있기는 하지만 큰 폭의 조정세는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이 열풍의 후유증은 크다. 잘 나가던 미국의 위기는 결국 부동산에서 시작되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발화점은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채권이었다. 일본 역시 1991년 부동산 버블이 터지면서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했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패턴으로 가고 있었지만 정부의 부양정책 덕분에 버티고 있다. 하지만 국가 위기의 시작은 부동산이라는 역사의 교훈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미국의 위기는 2000년대 들어 시작된 부동산 버블이 축적된 결과였다. 2000년대 들어 약 7년간 미국은 비정상적인 현상을 경험했다. 빚이 늘어나면 대체로 소비가 줄어드는 것이 경제상식인데 이 시기만큼은 빚과 소비가 동시에 늘었던 것이다. 저금리로 인해 풀린 엄청난 유동성 덕분에 사람들은 쉽게 빚을 내 부동산을 샀고 부동산 버블 덕분에 집값은 계속 올랐다. 내야 할 이자보다 집값 상승분이 더 크니 이른바 '부동산효과'가 힘을 발휘하면서 소비도 더욱 늘었다. 소비가 많아지니 경기는 활황이었다.
그러나 채 8년이 채 되지 않아 이러한 비정상적인 시스템은 작동을 멈추고 만다. 부동산 버블은 집을 사는 수요가 계속 있어야 지탱이 되는데 더 이상 새로운 수요를 찾지 못한 부동산 시장이 한순간에 곤두박질 친 것이다. 집값 폭락, 경기 추락, 일자리 상실, 개인 파산 등이 거짓말처럼 빠른 속도로 진행됐고, 서브프라임모기지채권 등으로 부동산에 얽혀 있던 금융사들이 파산하면서 미국 경제는 물론 전 세계를 위기에 빠트렸다.
일본의 부동산버블도 미국과 비슷한 기간 동안 축적됐다. 1970년대까지 안정적이었던 일본의 부동산 가격은 1983년부터 도쿄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상승하기 시작하더니 1980년대 후반기에 급등해 1991년 꺼지고 만다. 버블이 꺼지는 데 약 8년여가 걸린 셈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나라도 이 같은 전철을 밟고 있었지만 정부의 부동산 정책 덕분에 아직까지는 견디고 있다. 따라서 머지 않아 우리나라도 미국과 일본의 전철을 답습할 것이라는 의견과 우리는 미국이나 일본과는 다를 것이라는 의견이 팽팽하다. 무엇보다 부동산을 많이 가진 부자들의 태도와 부동산만이 경제적 자유를 가능케 해 준다는 사회적 인식이 계속 뒷받침 되는 한 우리나라의 부동산은 단기간에 '폭망'할 것 같지는 않다.
최근 KEB하나은행의 <2019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부자 절반이 앞으로 5년 내 부동산 경기가 꺾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보유한 부동산을 팔 계획이 없다는 데 있다. 문재인 정부가 그 어떤 정책을 펼치던 여전히 서울 집값은 유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 것으로 조사됐다. 부자의 46%가 현재의 자산 구성을 유지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하나은행이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프라이빗뱅킹(PB) 고객 922명을 대상으로 보유 부동산 종류와 지역, 자산 축적, 투자 행태 등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다.
1년 전 조사 때 비중(43%)보다는 소폭 늘어난 것이다. 부동산 경기를 관망하려는 부자가 다소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부동산 비중을 줄이고 금융자산을 늘리겠다는 비중은 오히려 1년 전 25%에서 18%로 축소됐다. 부동산 비중을 확대시키겠다는 비중은 13%로 1년 전(14%) 수준과 비슷했다. 하지만 지역별 온도차는 심했다. 서울 지역 부동산은 현 상태로 유지될 것이라는 답변이 46%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여전히 서울 집값은 크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남아있는 것으로 해석됐다. 반면 지방 부동산은 침체 전망이 82%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회복할 것이라는 전망은 4%로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자산에 대한 선호도는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자들의 자산 포트폴리오 중 부동산 비중이 53.1%로 1년 전 조사 때보다 2.5%p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수도권 거주자의 부동산 자산 비중은 48%에서 53%로 늘어난 반면 지방 거주자의 경우 46%에서 43%로 감소했다. 지역별 양극화 현상이 반영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보유 부동산 유형별로는 상업용 부동산 비중이 42%로 가장 많았고, 이어 거주목적주택(31%), 투자목적주택(15%)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부동산중독증 징후
1. 부동산부자를 교주처럼 따른다.
부자가 교주인 양 그의 스토리를 맹신하며 강연회에 따라다니고 그의 책 내용을 필터링없이 적극적으로 따른다. 지금도 카페나 강의를 통해 그들이 일명 '찍어주는' 지역이나 재개발구역에 맹목적으로 우루루 몰려다닌다. 자신만의 투자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투자 철학이 없다는 것은 공부가 안되어 있다는 것이고 공부가 안되어 있다는 것은 화려한 껍데기에 열광하고 요행수를 바라게 된다.
2. 부동산투자의 성공 사례만 눈에 들어온다.
부동산 투자는 성공한 사람보다 실패한 사람들이 더 많다. 그런데도 실패한 사례는 보지 않으려 한다. 부동산투자는 분명 위험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앞만보고 달린다. 주위의 조언을 잔소리로 치부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라쇼몽효과의 포로가 된다.
3. 거액의 돈을 주고 재테크세미나에 자주 참석한다.
화려한 언변과 언론플레이를 통해 브랜드 파워를 가진 부동산전문가라는 사람들의 강의는 강의료가 무척 비싸다. 무명강사에 비해 수십 배 비싼데도 그 돈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4. 일하기가 싫어지고 부동산만 머리에 맴돈다.
친구 따라 강의 몇 번 듣고 관련 책 몇 권 읽고 나면 하고 있는 일이 하찮게 여겨지고 일확천금을 노리게 된다. 진짜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확신도 없으면서 사람들이 몰려다니는 곳에 레밍처럼 따라가다 장렬하게 전사한다. 남의 철학이 아닌 나의 철학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5, 은행잔고를 가만두지 않는다.
은행계좌에 돈이 조금 모이면 부동산에 투자를 하기 때문이다. 부동산의 특성상 한 두 번 성공하면 중독성이 매우 강하다. 마약이나 아편과 마찬가지다. 재투자를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나머지 잔고가 없으면 은행 대출에 마이너스 대출까지 받아서 투자한다. 부동산투자는 양날의 칼이다. 적당한 수익을 내면서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장점도 있지만 투자의 본래 목적인 초심을 잃어버리고 중독에 이르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구렁텅이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인만의 투자 철학을 확립하는 것이 우선이다. 투자 철학을 확립하는 데 지름길은 없지만 정석은 있다. 공부하고 현장 분석을 통해 자신만의 결과물을 도출하는 것이다. 공부가 되어 있지 않으면 누군가의 말에 쉽게 현혹되기 때문이다. 투자하는 족족 돈을 벌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예측과 분석이 필요한 것이다. 만약 부동산투자가 사지선다형이라면 25%는 들어맞는다. 그러나 부동산투자는 100% 아니면 0%이다.
따라서 똑같은 정보라도 더 논리적으로 분석하여 해석할 수 있다면 투자에 성공할 확률은 그만큼 더 높아진다. 그러나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누구도 더 많은 정보를 얻는 것이 어려워지고 남들보다 더 정확한 분석을 한다고 해서 결과를 확신할 수도 없게 된다. 하지만 투자의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한 방법은 분명히 있다. 먼저 남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한 열정이 필요하다. 스스로 발로 뛰어 얻은 정보는 절대로 부정하게 취득한 것이 아니다. 부동산투자자라면 언론 기사나 통계만 보는 것이 아니라 현장을 답사하여 지역분석과 해당 부동산의 이력 등을 파악하여 가격에 영향을 미칠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얻고자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
그러나 투자의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중요한 것은 결국 자신만의 철학과 원칙을 갖는 것이다. 오를 것 같다고 사고 내릴 것 같다고 판다면 매우 자의적인 투자가 된다. 원칙 없이 감정적으로 매매하다 보면 결국 투자자 스스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반면 원칙을 세워둔 투자자는 흔들리지 않는 기준으로 매매한다. 투자의 결과는 어느 쪽이 좋을지 아무도 모른다. 오히려 즉흥적인 감정으로 투자한 쪽이 더 좋은 성적을 거둘 때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투자는 성공한다 하더라도 축적된 경험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칙을 갖고 투자했다면 비록 뼈아픈 실패를 하더라도 그 원인을 복기하는 과정을 통해 적어도 실패의 경험을 얻는다. 이후에 다시 투자할 때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게 된다. 결국 철학이 있는 투자는 오랜 시간이 지나면 축적된 노하우를 얻게 되며 투자의 전략은 단점을 제거해가면서 가다듬어진다. 투자의 명가는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다.
따라서 지나치게 수익에만 집착할 경우 조급함 때문에 부동산을 자주 갈아타거나, 어느 전문가가 추천하면 ‘친구 따라 강남 가듯’부화뇌동한다.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거액을 투자한다. 많은 사람들이 전문가라는 달콤한 유혹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투자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철학이 없다는 것은 목적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고, 목적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은 최소한의 학습이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공부를 하지 않으니 투자 철학이 있을 수 없고 전문가의 말에 현혹될 수밖에 없다. 주식시장에 이른바 ‘개미투자자’들이 있다. 소위 주식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종목에‘개미’들은 대부분 꼭지에서 산다. 결국 기관투자자들의 밥이 되고 만다. 그것이 최소한의 공부를 하는, 해야 하는 이유다.
심리학에도 ‘사회적 증거’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이 어떤 일에 확신이 없을 경우,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자신의 의사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맛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지만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음식점에서 먹고 싶은 심리, 쇼핑을 할 때에도 '가장 많이 팔린' 물건을, 책을 구매할 때에도 '베스트셀러'에 끌리게 되는 경우들이다. 이처럼 뭔가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데 그 판단의 지표가 없을 경우, 다른 사람의 행동을 모방해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고 리스크에서 최대한 멀어지려고 하는 것이다. 부동산 투자에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는 곳에는 파이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동산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이유는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부자가 되면 좋은 점이 너무 많다. 자신보다 못 사는 사람들을 멸시하는 것에 자기의 존재감을 부각시킬 수 있고 멸시의 강도를 높여갈수록 자신의 위신이 높아지는 것으로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개 나보다 부자인 사람들이 나를 멸시하는 것에 시정을 요구하기보다는, 나보다 가난한 사람에게 그 멸시를 전가시키는 편을 택한다. 그러는 사이 우리 사회에서 멸시는 합리화되고 있다. 종로 가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기는 격이다. 영화 <설국열차>는 태어날 때부터 탑승 칸과 자리가 정해져 있다. 뒤 칸의 승객이 앞 칸으로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불사하는 전투를 펼쳐야 한다.
마이크 데이비스Mike Davis는 <슬럼 지구를 뒤덥다>라는 책에서 절대적 보안을 강보하는 벙커 도시의 속성을 일컬어 ‘하이테크 성high-tech castle’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것은 부자들만 모여 살기 위한 공간이다. 즉 가난한 사람들을 얼씬도 못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백화점은 물론 쇼핑센터까지 그들만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더 심각하다. 공공장소까지 특정 계층이 독점하는 경우가 확산되고 있다. 누구는 소유했다는 것만으로 돈을 벌고 누구는 피땀을 넘겨준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런 특권과 반칙을 누리는 이윤이 지대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지대추구가 '사회 구성원 다수를 희생시켜 특정 세력에게 이익을 몰아주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부동산투자는 결국 지대논리의 극대화인데 부동산에 대한 지금 우리의 기본적 태도는 이른바 자본주의적 삶을 위한 가장 우수한 도구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 투자와 중독의 혼돈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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