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요셉’글자 자체로도 종교성과 상상력을 자극한다. 카톨릭 성자의 이름이다. 서울 중구 중림동 149번지, 서소문역사공원으로 가는 길목에 나지막히 자리한 성요셉 아파트, 1971년 6월에 약현성당이 지은 1개 동 67세대이다. 약초가 많아 약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약현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성당인데, 명동 성당보다도 6년 앞선 1892년에 세워졌다.
사적252호로 지정되어 있는 약현성당은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 지은 것이 특이하다. 드라마 <열혈사제>의 구담성당이 바로 약현성당이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할 정도다. 건물은 휘어진 길을 따라 비스듬하게 휘어져 있으며 경사진 언덕에 위치해서인지 건물마다 입구가 있는 층이 다르다. 한 개 동으로 구성된 아파트지만 전면부에 3개의 출입구가 있다. 언덕 하단부에 설치된 첫 번째 입구의 경우 2층 1가구와 그 외 전 층을 출입할 수 있고, 중앙 입구는 2층 일부 가구만 출입이 가능하다.
이외 출입구는 3층 이상 출입이 가능한 구조다. 저층부 1개 층은 상가로 이용되고 있으며 저층부 다음부터 최고 층인 6층까지는 주거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당시의 주거환경을 살펴볼 수 있는 건물인데다 독특한 건축 형태 덕에 서울시가 미래유산 아파트로 지정해 보호 중이다. 지은 지 50년이 다 되어 가는 건물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층간 소음이나 건물 하자가 없다고 전해진다. 홍콩의 구룡성채를 방불케 할 만큼 건물 내부가 좁고 미로같이 이어진 것도 특징이다.
지하철 2호선 충정로역 4번 출구를 나와 오른쪽에 보이는 언덕을 올라가면 먼저 중림동 주민센터가 나온다. 언덕을 내려가는 길을 따라 지어진 분홍색 건물이 바로 성요셉 아파트다. 원래 약현성당 성도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지은 아파트라 아직도 성직자나 수도사가 많이 거주하고 있다.
인근 중림시장 근처에는 조세희의 책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무대인 중림동 일대 판자촌의 자취가 지금도 남아있다. 또한 선형식아파트의 최대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서소문아파트도 지척이다. 두 아파트는 여러 모로 비교 대상이다. 일단 지어진 시기도 비슷하다. 서소문 아파트는 1971년 1월 23일에, 성요셉 아파트는 1971년 6월 20일에 사용 승인을 받았으니 둘은 동갑내기이다. 게다가 마치 자로 잰 것처럼 두 건물의 길이도 115m 내외로 비슷하다. 꼭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화려하고 눈에 띄는 건물만이 우리에게 감동과 의미를 주는 것은 아니다. 두 아파트 공히 설계자가 누구인지도 명확치 않은 것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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