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후반부터 동부 이촌동에 백사장 등을 매립하여 외국인아파트와 공무원아파트, 지금도 남아있는 한강맨션 등이 지어지면서 우리나라에 비로소 현대적 의미의 아파트 단지들이 완성되기 시작했다. 특히 1971년 660세대 규모로 대한주택공사에서 지은 한강맨션은 그동안 날림공사로 문제가 많았던 시민아파트의 싸구려 이미지를 벗으려고 ‘아파트’ 대신 ‘맨션’이라는 명칭을 붙였는데 이것이 주효했다.
계약 1호는 27평형을 구입한 탤런트 강부자였다고 한다. 뒤이어 고은아, 문정숙, 패티 김 등 연예인들이 줄지어 입주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분양이 대박 나자 아파트 건설에 미온적이었던 현대건설 정주영 사장이 장동운 대한주택공사 총재에게 “아파트 사업 그거 돈이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현대, 삼호 등 굴지의 대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아파트사업에 뛰어드는 계기가 되었고 이를 통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며 덩치를 키워나갔다. 이에 대해 <아파트 공화국>의 저자 발레리 줄레조는 “서구의 아파트가 주로 노동자를 위한 국민주택으로 기획됐다면 한국의 아파트는 독재정권이 재벌과 손잡고 이루어낸 한국적 발전모델의 ‘압축적 표상’이다”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한강맨션은 우리나라 아파트 역사에 여러 가지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먼저 40여년 전에 지어진 아파트임에도 불구하고 상가, 학교 등 편의시설과 주거공간을 한 곳에 모아놓은 ‘근린주구론’을 바탕으로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중산층을 위한 아파트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로 모델하우스(견본주택, 주택관)를 선보인 상징적인 아파트다. 가짜 집을 통해 진짜 집을 보는 주택관은 우리나라 아파트 분양시장에 선분양제라는 독특한 제도를 정착시켜 지금까지 이어져 오면서 여러 폐해를 양산하고 있다. 서하진의 <모델하우스>를 보면 가짜 집을 통해 진짜 집을 선택하는 모델하우스 내의 실상이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곳은 축제의 날처럼 붐볐다. 성채처럼 화려한 건물 위에 푸르고 붉은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62평, 55평이라고 적힌 집을 지나 27평 모델하우스에 들어서자 남자 하나가 내게 따라붙으며 말을 걸었다. 사모님, 저쪽 주방으로 가보시죠. 사모님처럼 젊은 분께서 정말 좋아하실 완벽한 시스템 키친이거든요. 사모님? 내게는 그런 호칭으로 불린 기억이 없다. 식기세척기와 세탁기가 장착된 환한 부엌을 봄면서 나는 들떠 있었다. 흠 잡을 데 없이 꾸며진 세 개의 방, 베란다의 실내정원에는 물을 뿜는 작은 정원조차 있었다.저처럼 예쁜 공간에서 차를 마시면 남편과 나의 시계도 그렇게 환해 질 것 같았다. (...) 내 표정을 읽은 남자가 명함을 건네며 친절하게 말했다. 로열층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저희 사무실로 가시죠.”
1973년 소설가 조정래의 중편소설 <비탈진 음지>에도 한강맨션에 대한 대목이 나온다.
"처음 이 아파트촌을 먼발치에서 보고는 무슨 공장들이 저렇게 한 군데에 빽빽이 몰려있을까 싶었다. 머리 위에서 불을 때고, 그 머리 위에서 또 불을 때고, 오줌똥을 싸고, 그 아래에서 밥을 먹고...."
모델하우스를 내세워 인기를 끈 한강맨션 덕분에 아파트는 서민들이 사는 집이라는 이미지가 사라지고 중산층이 선호하는 집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단독주택에 비해 내부 마감재의 고급화와 마당을 대신하는 발코니 공간을 확보하고 모여 살면서도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집단성과 개인성이 조화를 이룬 아파트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우리나라 아파트 고급화의 원조였던 한강맨션은 2020년 지금 재건축이 진행되고 있는데 대지 지분율이 높아 조합원들의 추가분담금이 거의 없을 정도로 사업성이 우수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나대지, 놀이터, 상가동 관련 분쟁이 해결되지 못하고 있지만 재건축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엘지자이아파트, 우리나라 최초로 1:1 재건축의 시초였던 첼리투스와 더불어 이촌동 3대 한강변아파트가 될 것으로 보여져 많은 투자자들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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