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현대건설에서 지은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강남개발의 신호탄이었다. 현대건설은 1975년 공유수면매립공사에 대한 대가 형식으로 땅을 불하받아 압구정 부지에 중대형 6,000여 세대의 아파트촌을 조성했는데 바로 압구정 현대아파트다. 현대아파트는 중ㆍ상류층의 아파트단지로 명성을 떨쳤고,‘강남 아파트’가 욕망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일조했다. 강남개발이 진행되면서 강남으로 인구가 집중되면서 도시가 극도로 팽창하자 주거시설이 부족했다.
지금은 ‘강남’이라고 불리는 영동지구를 중심으로 도시의 성장과 변화의 물결이 한강 변을 따라 퍼져 나갔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우리나라 산업화의 상징이자 고도 경제성장과 공간 팽창을 널리 알리는 표상이었다. 엘리베이터와 수세식 화장실을 갖춘 고층아파트는 우리나라 고도성장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1969년 만든 한남대교와 1970년 개통한 경부고속도로는 영동지구 개발과 아파트 건설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현대건설에게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건설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1975년 강남구가 탄생했고, 1976년에는 반포동, 압구정동, 청담동, 도곡동이 ‘아파트 지구’로 지정됐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혁신적인 디자인이나 고급스러운 시설을 도입한 건물은 아니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손꼽히는 고급아파트 단지로 자리 잡은 배경에는 1978년 7월의 특혜분양 사건 때문이다. 당시 건설사는 ‘50가구 이상의 주택을 건설하는 사업자는 공개 분양해야 한다’는 <주택건설촉진법>을 무시하고 아파트의 상당수를 정부 관리, 국회의원, 대학교수 등 고위급 인사들에게 주변 집값의 50% 수준으로 특혜 분양했다.
분양과 동시에 약 5000만 원의 프리미엄이 형성됐다. 분양가는 3.3m²당 44만 원. 5,000만 원은 당시 현대아파트 115m² 1채의 분양가에 해당했다. 160m² 이상의 대형 아파트를 국내에 처음으로 선보인 이 아파트 이후 건설회사의 이름을 따른 아파트 이름이 유행처럼 늘어났다. 1980년대 후반에는 현대아파트를 중심으로 압구정동 고소득층 주거지에 커다란 문화적 변화의 물결이 일었다. 고소득층 아파트의 상징이 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3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국내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가운데 하나다. 서울시의 한강변 정비 계획과 강변 아파트 촉진 계획에 따라 재건축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나오고 있지는 않다.
현대아파트를 시작으로 한강 조망권을 가진 한강변에 아파트 건설이 본격화되면서 전통적인 풍수지리 개념과는 다른 개념이 적용되기도 했다. 강남 한강변의 아파트는 풍수에서 이상적으로 꼽는 배산임수(背山臨水: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지세)가 거꾸로 북쪽의 한강을 등지고 대모산·우면산 등 남쪽의 산을 바라보는 배수임산(背水臨山)의 지형이었다. 그런데도 배수임산의 아파트는 얼마 가지 않아 서울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가 됐다.
1970~1980년대는 아파트를 소유했다는 그 자체가 부유층의 상징이었다. 당시 지어진 아파트의 내부 구조를 보면 40평형 이상의 아파트는 대부분 집 한 켠에 식모방이나 가정부방이 있었다. 침실, 거실 외에 주방 옆에 작은 1~2평 정도의 쪽방형태였다. 2020년인 지금은 대형 평형의 아파트에도 식모방이나 가정부방은 따로 있지는 않다. 개인의 사생활 침해와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파트타임 형식의 출퇴근하는 파출부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에 기족들과 함께 거주하면서 일하는 가정부는 거의 없다. 당시 고급아파트이자 대형 평형의 아파트들은 층간 소음도 거의 없고 방이 많은 게 특징이었다. 예를 들면 압구정 현대아파트 76동 80평형은 방이 무려 7개이다. 하지만 2009년 입주한 반포자이아파트는 91평형도 방이 4개에 불과하다.
강남개발을 그린 영화 <강남 1970>에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이, 재테크는 돈을 버는 사람이 있으면 누군가는 손해를 보는 제로섬게임이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우리가 부동산 공부를 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우선은 가진 돈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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