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1년 <런던 매거진>에서 “누가 고래에서 철학을 찾았을 것이며, 고래 기름에서 시를 찾았겠는가?” 라는 찬사를 받은 19세기 최고의 미국 소설이자 인류 역사상 최고의 소설 중 하나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허먼 멜빌의 <모비딕>, 정치학의 고전이자 근대 정치학의 선구자인 마키아벨리가 역사상의 여러 군주 및 군주국을 분석해 군주의 자리에는 어떻게 오르며, 군주가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현실적으로 논한 명저인 <군주론>, 당대 최고의 고전들이 그러하듯 출간 당시에는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다.
2001년, 우리나라의 아파트 가격의 변천사를 담은 최명철의 <아파트값 5차파동>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그러나 출간 당시에는 업계의 주목을 그다지 끌지 못했다. 사실 부동산 관련 책이나 자료는 시기가 중요하다. 과거의 책이나 통계는 이미 철지난 정보가 되어 현실감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20여 년이 흐른 최근 들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경제민주화를 논하는 눈부신 사회적 진보를 거듭하고 있지만 역사가 돌고 돌 듯 당시의 부동산시장이 지금의 상황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 그대로 증명되고 있다. 주요 부동산 카페나 모임에서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추천되고 있고 토론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성냥갑 같은 콘크리트 덩어리인 아파트가 최초로 생긴 1958년부터 2001년까지의 아파트값의 오르내림을 ‘아파트값 파동’으로 정의하여 1차부터 5차 파동으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당시 부동산의 시대적 배경과 어떤 요인에 의해 아파트 값이 상승하고 하락하는지를 분석했다. 아파트값 변동 요인은 복합적이지만 수요와 공급이라는 기본 경제 원리에 의해 가격이 오르고 내린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종잡을 수 없는 인간의 심리다. 시시각각 변하는 심리가 더해지면서 폭등과 폭락을 반복하는 파동을 겪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도돌이표처럼 반복되고 있다. 1차에서 5차 파동의 배경과 특징을 분석해보면, 최근 몇 년 간의 부동산시장 분위기와 유사한 부분이 많고 이를 토대로 미래를 조망해 볼 수도 있다.
급속한 산업화를 통한 ‘한강의 기적’이면에는 서울의 급격한 팽창이 있었다. 다른 나라들이 겪었던 것처럼 산업화로 인한 도시의 인구 집중은 필연적으로 주거문제를 야기시켰다. 단독주택이 대부분이었던 당시 이상한 콘크리트 덩어리인 아파트가 등장했지만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처음엔 꿀벌집 같은 아파트에 별로 관심이 없다가 아파트값이 계속 상승하다보니 일순간 사재기로 이어졌다. 강 건너 불 구경 하던 서민들까지 동참하게 된다. 우리가 철지난 고전과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인간은 좀처럼 변하지 않고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파트 투자의 출발점은 화려한 지식이나 통계가 아닌 아파트의 역사를 고찰하는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저자는 먼저 주택시장을 움직이는 변수들로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으로 구분하였는데, 내부적 요인으로는 공급량, 정부 정책, 전세 가격 비율, 대기수요 즉, 주택청약 관련 예금가입자 및 미분양 아파트 증감 추이, 그리고 외부적 요인으로는 실물경기 동향, 금리, 시중자금 규모, 물가와 가계소득을 꼽았다. 이를 토대로 아파트값을 1차 파동에서 4차 파동까지 년도별로 구분하여 부동산시장 동향과 그에 대한 정부의 대응 정책 등을 세부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1차 파동은 1973년부터 1974년까지, 2차 파동은 1977년에서 1978년, 3차 파동은 1982년에서 1983년, 마지막으로 1987년부터 1991년까지를 4차 파동으로 보았고, 2001년부터 시작된 5차 파동은 진행중이라면서 글을 맺는다.
부동산 관련 정부 정책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급격한 상승기 땐 규제하고 침체기엔 완화하는 식의 패턴을 보인다는 것이다.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우리나라 아파트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투기의 기저에 깔린 인간 본성 역시 시대적 진보만큼 변하지 못했다. 가격을 불문하고 우량 기업 주식을 사는 것이야말로 건전한 투자라는 새로운 시대의 교리가 등장했다. 도박 열풍에 굴복하는 것을 ‘투자’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합리화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영업권, 경영, 기대수익 창출능력 등 가치를 이루는 무형 요소들이 최근 더 중요해진 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가치요소들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수학적으로 계산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임의적이고 지배적인 심리에 따라 가치요소를 평가하는 기준이 큰 편차를 보인다는 약점이 있다.-오인석의 번역서, <통섭과 투자>
이처럼 복잡한 인간군상이 돈놀이를 즐기는 투자시장에서는 이성은 온대간데 없고 감정적 본성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다. 여기서는우리나라 아파트 시장의 변천을 5차 파동을 넘어 8차 파동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참고로 1차에서 4차 파동은 <아파트값 5차파동>의 내용을 일부 참조하여 각색하였음을 밝혀둔다.
1. 1차 파동 : 오일쇼크
강남시대 개막, 오일쇼크, 환물심리 확산 | ||
년도 | 부동산시장 동향 및 시대적 상황 | 정부정책 |
1971 | 강남시대 시작, 경기침체로 인한 주택시장 찬바람, 반포지구아파트 미분양, 전세가 상승 | 법인소유 비업무용부동산에 대한 과세 |
1972 | 본격적인 강남개발, 거시경제지표 상승, 주식시장 기지개 | 부동산투기억제세 완화 및 기업사채동결, 개발촉진지구 지정(5월) |
1973 | 실물경기 호황, 철근, 원자재가격 상승, 반포아파트 추첨에 의한 첫 공개경쟁 입찰, 중동전쟁으로 인한 오일쇼크 | 5년간 전매 금지(5월), 채권입찰제 실시(7월) |
1974 | 환물심리, 인플레이션 헷지로 실물자산 선호, 주식시장 호황, 인플레이션 절정으로 아파트 집단최면 효과, 요요현상 | 광역 아산만 개발계획 발표(1월), 부동산투기억제세 폐지(토지에 대한 양도차익만 과세), 건물 양도소득세 신설(9월) |
*환물심리(換物心理) : 인플레이션 또는 통화 팽창 등으로 화폐가치가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될 때, 현금을 줄이고 일단‘사 놓기만 하면 손해는 보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현물에 투자하려는 심리
*요요현상YoYo effect : 원래 다이어트를 통해 줄어든 체중이 곧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가거나, 오히려 다이어트 전보다 체중이 증가하는 것을 말하는데, 부동산시장에서 규제대책 발표 후 일정 기간이 지난 뒤 원래의 가격으로 되돌아가는 현상.
*오일쇼크 oil shock : 1973년과 1978년 두 차례에 걸쳐 있었던 석유 공급의 부족과 가격 폭등으로 인한 세계 경제의 혼란을 말하는데, 최근 전 세계적인 코로나19로 석유 가격이 폭락하여 또다른 석유파동을 우려
*강남시대 : 1969년 12월 25일 개통한 한남대교는 강남시대를 연 기념비적인 다리로 불리는데, 경부고속도로·서울고속버스터미널과 함께 강남시대를 연 ‘삼총사’로 불린다. 서울 강북 사대문 안이 ‘조선의 수도’였다면 강남은 ‘대한민국의 수도’라고 불릴 정도로 현재 우리나라 부동산시장의 로망이자 대표선수가 되었다.
1차 파동은 이른바 ‘강남시대’를 연 1971년 9월부터 1974년 9월까지 약 3년간이다. 당시에는 발을 땅바닥에 디딜 수 있는 주택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 아파트는 외계인 취급을 받았다. 1971년 9월 반포지구아파트가 야심차게 분양에 들어갔으나 시장의 반응은 냉랭했고 결국 미분양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1972년 5월에 분양한 영동신시가지 시영 단독주택, 즉 청담동, 신사동, 논현동 등 10여 곳의 1,400채는 게눈 감추듯 분양이 완료될 정도였다. 미분양이 많았던 탓인지 아파트의 전세가는 매매가의 70%까지 치솟았다. 당시 전세계약은 대부분 6개월 단위로 이루어졌는데 특히 봄, 가을 이사철을 감안한 계절적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지지부진한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정부는 부양책을 발표했다. 부동산 투기억제세를 완화하고 기업의 금리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기업사채를 동결하는 것은 물론 개발촉진지구를 지정하여 일정 규모의 주택 건설 시 부동산 관련 세금을 면제해 주는 조치를 취했다. 이에 덩달아 주식시장도 기지개를 켜고 거시 경제지표들도 회복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해가 바뀌어 1973년 봄이 되자 미분양으로 골머리를 앓았던 반포아파트는 정부의 부양정책에 힘입어 차츰 프리미엄이 붙기 시작하더니 금새 분양시장이 과열되기 시작했다. 역사가 돌고 돌 듯이 부동산 관련 정부 정책도 돌고 돈다. 부동산시장이 뜨거워지자 이번에는 억제책을 들고 나왔다. 처음으로 공개경쟁 입찰과 컴퓨터 추첨이 실시된 반포2차아파트의 경우 5년간 전매를 금지했고, 뒤이어 반포주공아파트는 채권입찰제로 분양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1차 파동의 주요 원인은 원자재값 상승 때문이었다. 철근가격 상승은 석유값이 무려 82%나 오르는 석유파동으로 이어졌고 이것이 아파트값에 파동을 불러와 1년간 100%가 올랐다. 아파트 가격이 계속 오르자 시큰둥했던 건설사들은 이때다 싶어 우후죽순 아파트 공급을 늘였다. 그러나 소득은 그대로인데 아파트값만 상승했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어 매입을 주저하게 되자 시세보다 싸게 분양되는 단지가 속출하자 너도나도 분양시장에 뛰어드는 ‘아파트 집단최면 상태’에 빠지게 된다. 사실 1차 파동시 정부는 시장에 충격을 줄만한 별다른 정책을 휘두르지 않았다. 정부의 시장개입 없이 철저히 ‘보이지 않는 손’, 즉 시장경제 원리에 따른 가장 모범적이고 교과서적인 파동이라고 볼 수 있다.
월남 특수로 반짝 햇살이 비춘 이후 불황이 장기화 되자 이번에는 경기 부양정책을 잇달아 발표했다. 점차 경기가 회복되면서 원자재 가격도 덩달아 상승하기 시작하면서 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났다. 인플레이션 헷지 수단으로는 부동산 만한 것이 없다. 일단 ‘사 놓기만 하면 손해는 안 본다’는 환물심리가 활개를 쳤다. 그러자 정부는 다시 부동산 투기억제세를 도입하고 광역 아산만 개발계획을 발표하여 시장을 진정시키려는 대책을 내놓았다. 이내 분양시장은 싸늘해졌고 미분양아파트가 속출하고 마이너스 프리미엄까지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결국 실수요가 받쳐주지 못하자 원래 가격으로 돌아가려는 ‘요요현상’이 발생했다.
특히 철근 파동, 유류 파동, 물가 불안 등으로 1973년~1974년 1년 동안 아파트 가격이 200% 올랐다. 실물경기가 호황 국면으로 들어서면서, 철근, 목재, 그리고, 시멘트 값이 올라서 아파트 가격도 덩달아 오른 것이다. 즉 철근 파동과 1973년 중동 전쟁에 의한 1차 유류 파동으로 아파트 가격이 오름세를 탄 것이다. 아파트라는 상품의 상태가 아직 "미지의 첨단품"인데다가 예기치못한 원자재 파동과 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나자 아무런 저항 없이 훌쩍 2배의 벽을 넘어버린 것이다. 서울의 경우, 1970년대 초반은 이른바 이촌동 시대였다. 서울 중심부의 평지에 주택공사가 한강맨션, 삼익건설이 로얄맨션을 지었고, 리버뷰, 렉스, 타워, 골드, 코스모스맨션 등이 줄줄이 들어섰다. 입식형 주방과 기름을 때는 중앙난방, 엘리베이터 등은 주거생활의 일대 혁명을 가져왔다. 아파트는 소파를 처음으로 생활필수품으로 만들었고, 흑백TV, 냉장고, 침대, 커튼 등 서양식 생활 아이템을 보급시키면서, 새로운 주거 문화를 만들어 갔다. 1973년는 현대건설이 주택사업을 시작하여 서빙고 현대아파트를 짓기 시작하였고, 건설 경기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정책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양도소득세라는 것도 없었고, 맨션아파트라는 것 자체가 신기루이며, 최고의 히트 상품이었다.
2. 2차 파동 : 중동특수
로열층 등장, 복부인 전성시대, 헌 집 팔고 새집 사기 열풍 | ||
년도 | 부동산시장 동향 및 시대적 상황 | 정부정책 |
1975 | 핵가족화의 확산으로 공급량이 부족하지 않은데도 주택보급률 하락, 연탄난방이 중앙난방으로 교체되고 고층 선호 현상, | 호화아파트 매수자금출처조사(7월), 주택난 해결을 위해 잠실개발(8월) |
1976 | 공모주 청약 열기로 주식시장 호황이었으나 주택시장은 침체, 분양시장 과열, 전세가율 70% 이상으로 과열, 분양실적이 미미하자 스타마케팅 등장 | <주택건설촉진법> 개정으로 전체 공정이 20%이상 진행된 후 분양(4월), 반월 신도시(안산시) 계획 발표(8월) |
1977 | ‘아파트 신드롬’으로 주택청약시장 열기가 높아 ‘묻지마 청약’(여의도 목화아프트 45:1의 최고 경쟁률, 프리미엄 급상승, 최고 시세인 평당 40만 원 돌파), 물가상승률 10% 상승한 반면 아파트가격 100% 상승, 전국적인 주택 투기현상으로 초과수요 발생, 서울 아파트 규제가 심해지자 단독주택이 오르는 풍선효과 발생, 처음으로 지방인 부산으로 투기세력들이 모임, 중동 특수 | 자금출처조사, 미등기 전매 강화, 국민주택규모 분양제도 변경(청약부금가입자 1순위)(1월), 1세대 1주택 우대정책 실시, 부가가치세 시행, 용적률을 300%에서 200%로 낮춤, 보존등기의무화(7월) |
1978 | 아파트 브랜드 가치 선호 현상, 양극화 현상, 대기업 주택사업 대거 참여, 대형아파트 가격 급등, 압구정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 | 주택청약예금제도 신설(서울, 부산, 대구), 부동산투기지역 고시(여의도, 잠실, 반포, 영동), 복덕방 세무조사 처음 실시, 3년간 청약재당 첨 금지(1월), 양도소득세 기본 세율 인상 등 ‘8.8조치’로 주택시장 급랭(8월) |
*로열층 : 고층 아파트에서 볕이 잘 들고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아 살기에 좋은 층을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 20층짜리일 경우 10~15층을 로열층이라 부르지만 최근 들어 바뀌고 있다.
*복부인 : 부동산 투기를 하여 금전적으로 큰 이익을 꾀하는 가정부인
*공모주 : 주식시장에서 널리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발행하여 청약자를 모집하는 주식
*풍선효과 : 풍선의 한 곳을 누르면 다른 곳이 불거져 나오는 것처럼 문제 하나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나는 현상을 말하는데, 최근 정부가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재건축 아파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자 수요가 일반아파트로 몰려 집값이 오르는 현상을 빗대 말한다.
*미등기전매 : 주로 부동산을 탈세, 투기목적으로 계약금만 지급한 후 잔금 지급일전에 제3자에게 매도하는 거래를 말하는데,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미등기 전매는 무조건 범죄이다. 투기방지를 위해 1995년 제정된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에 의거 부동산 명의신탁은 불법이며, 법을 위반하고 약정을 했더라도 전부 무효이며, 미등기 전매가 적발된 경우 거래당사자에게 형사처벌, 과징금 부과, 중과세 등 막대한 불이익이 따른다.
*주택청약제도 : 1977년 8월 18일 <국민주택 우선공급에 관한 규칙>을 신설하면서 시작되었는데, 청약부금에 가입하고 일정기간 일정액을 납입하면 아파트 청약 1순위 자격을 주는 제도. 그동안 주택의 절대부족 시대에 과열된 청약열기를 진정시키고, 금융위기 등으로 침체된 분양시장을 부양시키기 위한 경기 조절수단으로써 주역을 담당해 왔다.
*부동산투기지역 : 직전월 주택가격 상승률이 전국 소비자물가 상승률 130%를 초과하는 등 정량요건을 갖추면서 부동산 가격 급등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된 지역에 지정되는데, 양도소득세를 기준시가 대신 실거래가액으로 부과하기 위해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정하는 지역이다.
*중동특수 : 1973년 이후 중동지역 건설을 통한 한국의 경제적 이득과 부흥을 지칭하는 용어로서, 박정희 정권이 ‘10월 유신’을 통해 1980년까지 '1년 수출 100억 달러, 1인당 국민 소득 1000달러'라는 목표를 세워 1977년에 앞당겨 이 목표를 달성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이 중동특수였다.
1975년 1월부터 1978년 8월까지의 3년 6개월여의 기간이 2차 파동이다. 아파트에 처음으로 ‘로열층’ 개념이 등장하였고, 아파트 사재기와 미등기전매의 표상이었던 이른바‘복부인’들이 대거 등장했다. 잠실지구 개발 등 계속된 아파트 공급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분양시장은 과열 양상을 보이자 공모주 청약 열기로 이어져 주식시장에도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덩달아 전세시장도 출렁여 전세가격이 계속 상승하여 매매가의 70%를 상회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2차 파동 기간은 중동특수로 인한 외환 인플레이션이 심했고 시중의 갈 곳 잃은 유동자금이 2,000억 원을 넘어섰다. 계속된 주택공급의 부족으로 이중계약서가 만연하고 양도소득세를 매수자에게 전가시키는 등의 불법이 비일비재했을 뿐만 아니라 프리미엄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신규 분양아파트의 청약경쟁률도 엄청났다. 여의도 목화아파트 45 대 1, 화곡동 주공아파트 178 대 1, 여의도 화랑아파트 70 대 1, 그리고 여의도 진주아파트가 30 대 1이라는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보였다. 이에 정부는 ‘8.8조치’ 카드를 꺼내 들었다. 공급으로 아파트값을 잡기 위해 반월신도시 건설계획을 발표하고 <주택건설촉진법>을 개정하여 자금출처조사를 강화하고 미등기전매 조사를 벌였음은 물론 처음으로 복덕방 세무조사라는 히든카드까지 꺼내들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손절매 매물이 넘쳐 가격이 하락하더니 급기야 주택시장 전체가 폭삭 주저 앉았다. 그 후로도 지금까지 이어지는 정부의 부동산시장 개입은 이른바 당시 ‘8.8조치’의 달콤했던 학습효과 때문인 듯하다. 전체적으로 보면, 2차 파동의 시작은 경기회복으로 먼저 분양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이다. 게다가 오일 머니의 유입으로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르자 정부에서 자금출처조사 강화, 양도소득세 비과세 기간을 6개월에서 1년으로 연장, 청약제도 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강력한 규제책에 주택시장은 한 풀 꺽이게 된다. 그렇지만 당시 여의도 아파트는 평당 35만 원에서 110만 원까지 치솟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강남은 평당 30만 원에 불과했고, 명동 땅값은 평당 600만 원에서 1,000만 원까지 치솟기도 했지만 제2차 오일쇼크 등으로 상승세가 마감되었다.
1977년~1979년 2년 동안 아파트 가격은 200% 상승했다. 오일달러 유입에 의한 고성장으로 자금이 풍부했을 뿐만 아니라 3저 호황에 따른 사상 최고의 무역 수지 흑자와 더불어 아파트가 고급 주택의 대명사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른바 “아파트 신드롬”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복부인”이라는 유행어가 생기면서 주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재테크가 시작된 것이다. 그 와중에 영동, 잠실 등에서 상당량의 신규 분양 아파트가 쏟아졌고, 당첨은 곧 로또에 버금가는 프리미엄으로 이어졌다. 영동과 말죽거리 땅, 반포, 잠실아파트로 “졸부”라는 벼락 부자가 탄생하게 되었고 날마다 새로운 “굿모닝 영동” 그 중심에 바로 최고급 아파트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가 있었다.
그리고 1978년 8월 8일 우리나라 최초의 부동산 종합대책인 ‘부동산 투기 억제 및 지가 안정을 위한 대책’이 발표됐다. 이 때 최초로 토지거래허가제 및 신고제가 등장했다. 당시 복부인들의 주특기는 미등기 전매였다. 투기가 만연하여 심지어 하루에 10번씩 사고 팔기까지 하자 1979년 초강수로 부동산을 규제하면서 부동산 가격은 서서히 하락하기 시작했다.
3. 3차 파동 : 채권입찰제 실시
학군이 아파트 선택 기준으로 등장, 1억이 넘는 아파트 및 고급빌라 등장 | ||
년도 | 부동산시장 동향 및 시대적 상황 | 정부정책 |
1979 | 8.8조치로 부동산 시장 위축, 깐간해진 수요자, 학군이 아파트의 선택 기준으로 등장, 미분양아파트 속출, 율산부도사건으로 금융시장 마비 | 재당첨 금지 규정 폐지했다가 복부인들이 사재기에 나서자 5일 만에 취소(5월) |
1980 | ‘광주민주화 운동’으로 인한 정국위축으로 투자심리 얼어붙음, 실물경기 침체로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률 기록, 고급빌라 등장 | 투기조사반 구성 및 미등기 전매 세무조사 실시(1월), 주택거래활성화를 위해 양도소득세율과 과세기준을 2차례에 걸쳐 대폭 인하(12월) |
1981 | 개포동 일대 개발 시작 | 주택활성화대책 발표(투기억제지역 전면 해제, 소형주택의무건설지율 폐지, 자금출처조사 완화, 국민주택규모 이하의 분양가자율화(6월) |
1982 | 저금리시대 진입으로 시중유동자금이 부동산으로 대거 유입, 개포지구가 주택가격 상승을 이끔, 78년 8.8조치 이후 4년여 만에 침체되었던 주택경기가 반등, 0순위 통장 사재기 기승, 강남8학군 프리미엄 형성, 투기과열 현상 | 투기억제제도 일부 완화(공공주택 전매금지 기간을 2년에서 6개월로 단축, 신규주택 매입시 양도소득세 대폭 완화)(6월), 82.6월 주택경기활성화 대책 이후 6개월 만에 투기억제책 발표(주택청약 0순위 제도 페지, 주택청약 1순위 자격을 가입후 3개월에서 9개월로 변경, 국민주택 전매제한 기간을 6개월에서 1년으로 연장)(10월) |
1983 | 개포동 현대, 압구정동 한양아파트 분양을 노린 통장거래 활발, 개포 현대아파트 채권입찰제 적용하자 투자심리 위축되어 아파트가격하락 | 채권입찰제 실시(5월), 투기억제2단계 조치(중과세 적용, , 25,000가구 규모의 목동신시가지 개발계획 발표(6월) |
*채권입찰제(債券入札制) : 민영 아파트를 분양받을 때 분양예정가격이 인근 아파트 가격과의 차이가 30% 이상 발생할 경우 이 차액을 채권으로 흡수하여 소형 국민주택을 건설하는 자금으로 활용키 위해 1983년 5월 1일 처음 도입된 제도로소, 아파트 투기를 막는 순기능과 함께 아파트 분양가격을 상승시키는 부작용을 동시에 안고 있다.
*율산부도사건 : 1975년 6월 17일 서울대 공대 출신 신선호가 27세에 오퍼상으로 벌어들인 5백만 원으로 '율산실업'을 세워 4년 7개월만에 14개 계열사에 8천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그룹으로 성장했던 율산신화였다. 초기에는 중동 붐을 타고 건축자재 수출을 하면서 사세를 확장시켜 나갔으나, 1978년 '8.8 투기억제 조치'와 건자재 금수조치로 인해 자금압박이 심해지자, 자금난 해결을 위해 서울신탁은행에서 무신용장 방식 'DA제도'를 이용해 돈을 빌려다가 부실기업 대한전자 및 광성피혁을 불하받으면서 빚이 눈덩이처럼 늘어 1979년 4월 신선호 사장의 구속과 그룹 부도로 막을 내렸다. 당시 율산이 급성장할 때 언론은 '재계 신데렐라의 탄생'이라고 끝없는 찬사를 보냈다가 율산이 부도를 맞았을 때는 '철없는 어린아이들의 무모한 모험'으로 매도했다. 1988년 KBS2 미니시리즈 <훠어이 훠어이>로 드라마화되기도 했다.
*0순위 통장 : 국민청약부금이나 청약예금에 가입해 일정기간 일정액을 넣으면 민영아파트도 1가구 1계좌 원칙에 따라 1순위로 분양받았다. 청약예금 가입자 중 6회 이상 떨어진 가구에 대해 우선당첨권을 주는 것이 0순위 통장이었다. 1980년대 들어 당첨권 전매,0순위 통장 불법거래 등이 성행하면서 제도의 허점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1983년에는 0순위 통장제도가 폐지되었다.
3차 파동은 1979년 1월부터 1983년 5월까지다. 아파트의 선택 기준에 처음으로 ‘학군’이 등장하여 오늘날 강남8학군을 탄생시킨 계기가 되었다. 1차와 2차 파동이 물가상승에 따른 환물심리가 큰 영향을 준 반면, 3차 파동은 분양가 현실화를 위한 채권입찰제, 저금리정책 및 강남8학군 프리미엄에다 누적된 공급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났다. 특히‘장영자어음사기사건’으로 금융시장이 초토화되어 갈 곳을 잃은 시중자금이 부동산시장으로 급격하게 유입되었다.‘8.8조치’의 효과가 계속 이어져 부동산시장은 더욱 침체되었고 미분양이 속출했다.
1980년 들어 투기억제제도 완화와 양도소득세 인하 등을 골자로 하는 부동산 완화정책으로 쌓여있던 미분양 아파트가 소진되기 시작했으나, 광주민주화운동 등으로 잠깐 반짝했던 매수심리는 다시 위축되기 시작했다. 이에 정부는 1981년 투기억제지역을 전면 해제하고 소형주택 의무건설비율을 폐지하는 등 주택경기활성화 대책을 쏟아내자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1982년 들어서면서 30평대 계단식 아파트가 등장하고 개포지구 민영아파트가 완판되어 부동산시장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왠만한 상가 건물은 복덕방으로 채워졌고 명문고교들이 강남8학군으로 이전하면서 주변 집값을 올리는 촉매제가 되었다.
그러자 정부는 주택경기 활성화 대책을 발표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다시 규제 대책을 발표했다. 청약예금 0순위 제도를 폐지하고 청약부금 1순위 자격을 3개월에서 9개월로 늘리고 착공과 동시에 분양이 가능했던 것을 전체 공정이 10% 이상 되고 분양할 수 있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주택규모의 전매금지기간을 6개월에서 1년으로 연장했다. 개포지구 아파트 분양에도 채권입찰제를 적용하면서 아파트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어 파장 분위기로 돌아서면서 집값은 더 이상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경계심리가 극에 달하면서 매물이 늘자 서서히 내림세로 돌아섰다.
이에 정부는 다급히 가수요 억제를 위한 기존 정책들을 철회하는 등의 조치들을 내놓았으나 시장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더구나 경제 불황 와중에 율산그룹 부도 사건으로 시중에 돈이 풀린 이후에야 점차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서 분양시장에도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무주택자 등 서민생활 안정을 위해 청약통장 순위에 우선하는 다양한 제도를 도입했지만, 아파트 청약에서 청약통장 1순위 자격보다 끗발이 센 0순위 통장(5년 이상 무주택 세대주, 65세 이상 노인부양 세대 및 지역거주자 우선)의 거래가 빈번해지자 적극 단속에 나섰다. 분양시장까지 계속 달아 올라 단속을 강화해도 효과는 미미했다. 게다가 장영자어음사건 이후 금융시장 활성화대책이 쏟아지고 본격적인 저금리시대(연 24% 금리가 8%까지 급락)가 시작되자 시중의 유동자금이 다시 부동산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개포지구가 주택가격 상승을 이끌었다. 0순위 청약통장은 10배의 프리미엄이 형성되기도 했다. 이처럼 시장이 과열되자 정부는 또 찬물을 끼얹었다. 투기과열지구를 지정하고 채권입찰제 시행을 확대 했으나 오히려 판교 신도시의 분양가만 급등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지금까지도 정부 정책은 이같은 패턴을 반복하지만 반짝효과에 그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1982년에는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되었다. 게다가 시중에 너무 많은 돈이 풀려 유동성 장세가 지속되면서 정부의 규제 정책 완화와 맞물려 아파트 가격은 6개월만에 100% 올랐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8%대의 저금리와 실물 경기의 침체 등은 현재의 부동산 상승과 궤적을 같이 한다. 규제 정책이 변경되자 다시 부동산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개포동 주공아파트와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가 분양시장에 불을 당겼다. 정부는 다시 부랴부랴 ‘부동산 투기 억제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의 빠른 대응이 부동산 값을 진정시켰다. 세무조사를 강화하고, 미등기 전매를 부추기는 부동산 중개 업소를 단속하기 시작했다. 6번 아파트 청약에 떨어지면 최우선 당첨 순위를 주는 0순위 통장의 인기는 최고조에 달했고, 강북의 명문 고교들이 8학군이라는 강남으로 옮겨가면서 본격적인 강남 시대를 열었다.
4. 4차 파동 : 3저 호황과 88올림픽 특수
신도시 신드롬, 묻지마 청약, 강남전성시대, 3저시대, 한강개발로 자연환경 프리미엄 등장 | ||
년도 | 부동산시장 동향 및 시대적 상황 | 정부정책 |
1987 | 강남아파트 평당 200만 원 돌파, 미분양아파트 증가, 전국적 노사분규, 3저호황과 올림픽 특수로 4년만에 아파트가격 회복 | |
1988 | 통화팽창에 따른 인플레이션 심리 확산, 강남아파트 평당 300만 원 돌파, 계속된 3저호황에 올림픽 특수까지 겹쳐 시중유동자금이 급증하자 전 국민이 투자에 나서는 투자의 전성시대 | 부동산투기억제책(1세대 2주택 비과세 요건 3년이상 보유에서 3년이상 거주 또는 5년 이상 보유, 1세대 2주택 양도소득세 비과세 기간을 2년에서 6개월로 단축) 발표(8월) |
1989 | 오락가락하는 주택정책으로 구조적인 수급불균형 직면, 강남으로의 인구 유입 증가. 폭발적인 신도시 청약 신드롬, 강남 30평대 아파트 대부분이 1억원을 넘어섬 | 아파트분양가 자율화 추진, 주택청약부금제도 신설, 신도시(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건설계획 발표(4월), 1세대 2주택자에 대한 과세 강화, 민간아파트 전매금지 |
1990 | 신도시 청약 열풍으로 전세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전세수요가 매매가를 끌어올림, 다가구주택 등장, 서울 평당 아파트 분양가 300만 원 돌파, 평당 1000만원대 황제아파트(압구정동, 서초동, 대치동, 개포동, 잠실) 등장(불과 3년 전 평당 250만원에서 4배 급상승) | <임대차보호법> 2년 계약으로 개정, 다각적인 주택시장 안정정책 무용지물, 투기 합동조사, 소형아파트 건설 확대 |
1991 | 신도시 채권입찰제 대상아파트 확대, 골프전 발발로 오일쇼크에 대한 위기감 팽배, 평당 1300만원대 및 분양가 500만원대 아파트 등장, 서울 아파트 평당 분양가 500만 원 돌파, 주택청약 예금 가입자 250만 명 돌파, 신도시 입주 쇼크, 88년부터 91년까지 약3년간 서울 주요 아파트값 평균 160% 상승하였으며 강남의 경우 206% 상승 | 1세대 2주택 양도소득세 비과세를 받으려면 기존주택 6개월 내 처분, 신도시 당첨자 반드시 입주(10월) |
*분양가 상한제 : 부동산 가격의 급등을 규제하기 위한 정부 정책의 하나로서 분양가 자율화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 분양가의 책정을 건축비와 택지비, 적정 이윤을 포함하여 법으로 규제하는 제도. 분양가 상한제의 전신은 공공택지를 공급받아 건설·공급하는 공동주택에 한해 실시되었던 '분양원가연동제'로, 1989년 <주택법>에 의해 처음 실시되었다.
*임대차보호법 : 주택이나 상가 건물의 임대차에 대한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로서, <주택임대차보호법>과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으로 별도 구분하여 제정ㆍ시행하고 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함으로써 국민 주거생활의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법률로서 주거용 건물의 임대차에 관한 민법 특례를 규정하고 있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건물주와 상가 세입자 간의 점포 임대차 계약에서 약자인 세입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로서 2001년 12월 제정되어 계약 갱신 요구권 등 임차인의 권리를 보장했으며 소규모 점포에 대한 월세 인상률 제한 규정을 두고 있다.
1987년부터 1991년까지 약 3년 8개월이 4차 파동에 해당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1984년 들어 30평대 아파트가 비로소 중산층의 상징이 되었다. 당시 한 조사를 보면 국민의 60%가 중산층이라고 답했다. 지지부진하던 서울의 재개발은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빈부격차 확대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었고 ‘마이카 시대’로 자동차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1985년 우리나라 부동산 중개업에도 대변화가 일어났는데, 복덕방에서 국가공인자격증 제도인 공인중개사로 중개업계가 개편된 것이다.
당시 대단지인 목동 2차 아파트가 야심차게 분양에 나섰지만 학군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별로 인기가 없었다. 1986년은 본격적인 3저 시대로 접어들어 수출증대와 경기회복, 한강개발로 인한 ‘자연환경 프리미엄’이 아파트 가격 결정의 새로운 요인으로 등장했다. 신세대는 주택을 매수하기 보다는 ‘집 없어도 폼나게 살자’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적으로 만연하여 집보다 차를 먼저 구매하고 주식투자에 관심을 가졌던 시기였다. 이 무렵 전문가들과 언론들은 하나같이 주택에 대한 패러다임이 ‘소유에서 거주로 바뀌었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짒값은 이내 상승했다. 사실 집값이 안정기에 들어설 때마다 써먹는 단골메뉴에 불과했다.
4차 파동이 시작된 1987년은 88서울올림픽을 목전에 둔 시점이어서 상반기에 강남아파트 가격이 평당 200만 원을 돌파했지만, 전국적인 노사분규 등으로 미분양 아파트가 증가하기 시작하여 올림픽특수 효과가 그다지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건설사들은 지하주차장을 설치, 지상 녹지공간 확대, 30평대 아파트에 화장실을 2개 설치, 그리고 서비스면적을 늘리기 시작하는 등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아파트를 속속 선보였지만 올림픽선수촌 아파트의 계약률은 31%에 그쳤다. 그러나 하반기에 접어들자 3저 호황과 올림픽특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면서 4년 만에 아파트 가격이 비로소 회복세로 돌아서 강남 중대형 아파트가 가격 상승을 주도하여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강남아파트 평당 가격이 300만 원을 돌파하고 강남8학군 신드롬까지 더해져 처음으로 1억 원이 넘는 아파트가 등장하여 강남의 전성시대를 맞이했다.
반면 목동은 미분양이 넘치고 가락동은 흥행하는 등 주택 양극화도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아파트값이 상승하자 채권입찰제를 다시 부활시키고 양도소득세 비과세 요건을 대폭 강화하는 등의 조치로 집값을 안정시키는 듯 했으나 별다른 효과가 없자 분당, 일산 등 신도시로 공급을 대폭 늘리면서 상승세에 제동이 걸렸다. 그러나 전세 제도를 2년으로 연장하면서 전세값이 폭등했고, 다시 집값은 상승하기 시작했다. 신도시 청약 열풍으로 분양시장이 지나치게 과열되자 어느 순간 '지금은 너무 올랐다'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분양한 신도시의 입주가 시작되면서 집값은 서시히 안정세로 돌아서 다시 하락하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은 손, 시장의 힘으로 자연적으로 하락할 시기에 규제 정책이 나와서 오히려 가격을 상승시키는 역효과가 난 것이다. 실수요와 투자목적의 가수요가 뒤엉키며 오르기 시작한 아파트 가격은 가파른 오름세를 이어갔다. 아파트가격을 자극하는 요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는데다 이사철 수요와 맞물려 계단식으로 오르는 에스컬레이터 현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정리하면, 4차 파동인 1988년~1991년 3년 동안 집값은 300% 상승했다. 올림픽특수에 따른 저금리, 저달러, 저유가의 3저 호황 덕분이었다. 국제 수지가 흑자로 돌아섰고, 경제 성장률은 연 10%를 기록했다. 분양가 자율화 검토설을 빌미로 목동, 상계동 등 미분양 아파트가 몇 달 새 모두 팔려나가고 일주일에 수십만 원, 수백만 원씩 집값이 뛰기 시작했다. 지금도 서울은 공급이 부족하지만 당시에도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정부는 채권입찰제, 토지공개념, 청약배수제, 5개 신도시 조성 등 각종 대책들을 연이어 쏟아냈다. 결국 4차 파동도 주택 가격을 300% 상승시키고 나서야 멈추어 섰다. 1989년 11월 분당 신도시가 분양되었고, 분양가는 180만 원 안팎이었다. 당시 강남 아파트 가격의 평균가는 약 500만 원, 전세가는 200만 원이었다. 분당 시범단지 53평형이 9천 3백만 원이어서 32평형 강남 아파트를 팔고 분당아파트로 갈아타겠다는 심리가 청약 열기를 더해서 지금의 판교 분위기를 능가했다. 전세가격 폭등으로 전세 대란이 일어나고, 자살자들까지 생겨났다. 1991년 강남 아파트 평균 가격이 1천만 원을 넘기고, 신도시 입주가 가까워지면서 겨우 아파트 가격이 잡혔다.
4차 파동은 1991년 끝나고 5차 파동은 2001년부터 시작되었다. 따라서 4차 파동에서 5차 파동 사이의 기간이 상당히 길다. 즉 4차 파동과 5차 파동 사이의 기간인 1992년부터 2000년까지의 시대적 상황 및 부동산 시장 동향 및 정부정책에 대해 별도로 정리하여 부동산 시장 및 정부정책의 연속성을 이어가고자 한다.
<1992년~2000년 부동산시장 상황 및 정부정책>
년도 | 부동산시장 동향 및 시대적 상황 | 정부정책 |
1992 | -상반기: 3저 호황이 이어지지 못하고 경기불황에 부동산시장도 침체, 청약가입자 수가 급감하고 미분양이 증가하였으나 서울과 수도권은 무풍지대, 전세를 선호하여 전세가격은 오름세 -하반기: 계속 하락하던 아파트값이 보합세로 돌아서고 서초동 법원단지 일대가 새로운 주거중심으로 급부상, 대선과 총선이 있던 ‘선거의 해’였지만 경기침체로 중소기업들의 줄도산, 종합주가지수 500선 붕괴, 재건축 1호 서울 개명아파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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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 -상반기: 경기불황에도 불구하고 한 번 오른 집값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하방경직성’이 나타남, 전체적으로 분양률이 저조했지만 서울과 신도시는 예외, 재건축에 대한 기대심리가 더해져 오래된 집일수록 가격이 오르는 현상이 나타남. -하반기 : 금융실명제가 실시되어 투자심리는 최악이었으나 한강조망권 프리미엄이 치솟음, 대입전형에서 내신 반영비율이 높아지자 ‘탈8학군’현상, 신도시(6년간 28만여 가구) 분양 마감 |
금융실명제(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 명령) 실시(8월) |
1994 | 미분양아파트가 급속히 증가하여 10만 가구에 육박했으나 전세값은 계속 상승, 수도권 준농림지에 난개발 시작, 틈새시장으로 원룸 주택 등장 | 1세대1주택 우대정책 포기, 주택임대사업자 제도(25.7평 이하 5채 이상 매입하여 5년 이상 임대하면 양도소득세 면제) 시행(11월) |
1995 | 부동산실명제로 ‘이제 부동산은 끝났다’는 심리가 팽배하여 집값 급락, 서울 동시 분양 아파트 미분양 발생 | 부동산실명제(7월), 주택경기부양대책(11월) |
1996 | -상반기 : 신도시아파트 가격은 오르고 서울 아파트가격은 내리는 신도시 우세 현상이 나타나 신도시 아파트가격이 웬만한 서울 아파트 가격에 근접 -하반기 : 실물경기가 내리막으로 치닫고 부동산 시장도 후퇴하였으나 전세가격은 꾸준히 상승, 지하철 5,7,8호선 구간이 연달아 개통하면서 목동신시가지 아파트 값이 치솟음, 주5일제 근무제 확산되고 탈도시화 현상이 나타나 도시근교 전원주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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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 -상반기 : 재건축·한강조망권·역세권이 3대 테마로 급부상, 집값이 지역별, 평형별로 차등화되는 양극화 현상 이 가속화되어 강남, 목동, 신도시는 큰폭으로 상승하고 강북과 지방은 약보합 -하반기 : ‘IMF사태’로 살인적인 고금리와 미처날뛰는 물가로 실질소득은 대폭 줄어들고 집값과 전사값이 동반 하락하면서 거래중단이 도미노현상처럼 전국적으로 확대됨, 한보철강 부도로 명예퇴직자 급증하여 ‘명퇴시리즈’ 유행, 용인 수지가 제2의 분당으로 급부상 ‘미분양아파트가 넘쳐나고 국가 전체적으로 경기침제가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아파트값이 상승한다’는 아파트가격 상승의 새로운 패턴이 처음 나타남, sell korea현상으로 주가 폭락 |
IMF외환위기(11월)-외부충격 |
1998 | IMF사태의 후폭풍으로 사상 유례없는 집값 폭락으로 상반기에는 심리적 공황상태에 직면, 기업도산과 실직 만연하여 중산층의 기반이 무너짐, 고금리현상으로 부동산보다 금융자산 선호, 집값 폭락으로 투매현상, 종합주가지수 300포인트 붕괴, 그러나 현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투자기회 하반기 들어서면서 정부의 완화정책이 효과를 보이면서 금리도 차츰 떨어지고 투자심리가 조금씩 살아남, 경기회복에 대한 보상심리로 집값 폭락이 멈추고 IMF사태 이후 9개월 만에 오름세를 보였으나 추가하락에 대한 불안심리가 팽배하였지만 IMF사태로 인한 부동산 빙하기가 예상보다 길지 않았고 연말이 되면서 미분양이 빠르게 해소되고 수급불균형에 따른 전세값이 대폭 상승 IMF사태를 계기로 아파트는 ‘차별화, 고급화, 첨단화, 환경친화’라는 무기로 제2의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함, 평촌조합아파트(현 귀인마을 현대홈타운) 분양 인기 과열 |
서울 및 수도권 민간택지 아파트 분양가 자율화(1월), 민간택지 및 소형주택 의무건설비율 폐지, 민영주택 재당첨 금지규정 폐지, 우성청약매수제 폐지, 미분양주택에 대한 양도소득세 한시적 면제(4월) 분양권 점내 부분적 허용(8월) |
1999 | 정부가 분양권 전매를 허용하자 시장은 즉각 반응을 보여 단기 투자대상으로 아파트가 각광, 저금리 저물가 정책으로 실물경기가 빠르게 회복되어 소비심리도 살아나 중대형아파트상승률 높음, 2년만에 IMF사타 이전 수준으로 집값 회복되었으나 연말에 터진 대우그룹 부도 사태로 회복기미를 보이던 경제전반이 위축되었으나 주식시장은 buy korea 현상으로 종합주가지수 1000 회복 | 분양권 전매 전면 허용, 청약자격 완화, 1가구 1주택 이상자 1순위 자격제한 폐지, 민영주택 재당첨 제한 2년 규정 폐지, 떳다방 단속(3월), 임대주택활성화(5가구 이상에서 2가구 이상) 대책, 저밀도 아파트지구 재건축계획 발표(7월) |
2000 | 전세난이 심화되고 현대사태까지 터져 경제의 악순환이 계속됨, 경제위기설, 부도괴담에 건설사들이 퇴출되자 투자심리는 꽁꽁 얼어붙음, 주택시장 역시 호가만 있고 거래가 뜸했지만 서울은 오르고 그동안 인기가 많았던 신도시 아파트 값이 하락, 저금리로 전세보다 월세로 전환 | 청약예금 가입자격(20세 이상이면 누구나 1세대 다통장 보유 가능) 완화, 용적률 축소, 난개발을 막기 위해 준농림지 제도 폐지(1월) |
*주택경기부양대책 : 1세대 2주택 양도소득세 면제기간을 6개월에서 1년, 분양가자율화(강원도, 충북, 전북, 제주도 등 4개 지역 전용면적 25.7평 초과), 후분양제(전체 공정률 80% 이상 진척되었을 때 분양가격을 자율적으로 정해 분양) 도입, 소형주택의무건설비율 일부 완화, 미분양아파트 구입시 자금지원 및 세금감면 혜택, 1가구 1주택 양도소득세 면제 요건 완화(5년 보유 또는 3년 거주에서 3년 보유)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곧잘 관객의 흥미를 잡아끈다. 그 실화가 사회적 반향을 불러온 사안일수록 관심은 증폭된다. 현실감은 관객의 몰입감을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에 영화는 종종 실제 사건에다 적절한 허구를 섞는데 이때 어떤 관객은 영화 전부를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은 국가 부도까지 남은 일주일 간 위기를 막으려는 사람과 위기에 베팅하는 사람, 그리고 회사와 가족을 지키려는 평범한 사람까지, 1997년 IMF 위기 속 서로 다른 선택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1960년대 이후 속성산업화를 구가하면서 남부러울 것 없이 고도성장을 하던 한국 경제는 1997년 11월 대혼란에 빠졌다. IMF 외환위기였다. 처음 겪어보는 외부의 충격으로 정부는 물론 국민들도 우왕좌왕했다. 외환 보유고가 바닥나 하루아침에 위기에 빠진 한국 경제의 모습을 그린 영화는 실제 뉴스 화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해 "금 모으기 운동으로 모인 금은 기업의 부채를 갚는 데 쓰였다"는 자막으로 끝난다.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외환위기의 경우, 사건이 벌어진 지 21년밖에 지나지 않았고 경제적으로 워낙 큰 사건이었기 때문에 당시 상황이 실제로 어떠했는지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영화 제작사와 감독은 이 영화가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영화 속 직책이나 사건들은 당시 실제로 존재했던 것을 살짝 바꿔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법적인 문제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한 나름의 방안으로 통화정책국을 통화정책팀으로, 재정경제원을 재정경제국으로, 한국은행 총재를 한국은행 총장으로 바꾼 식이다. 당시를 살았던 관객이라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감정을 느끼면서 그때의 상황과 영화가 묘사하는 가상의 과거를 비교해보게 된다. 특히 대부분의 시민들은 영화 속 허준호가 연기한 갑수처럼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이기에 그에게 공감하면서 당시의 고통을 떠올려 보게 된다.
영화 속 정학(유아인)의 대사인데 "국가가 망하는 이유는 딱 두 글자입니다. “여신與信, 금융기관에서 개인이나 기업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을 여신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돈이 아닌 믿음으로 거래가 되고 있죠.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오가는 것. 하지만 이 근거 없고 불신한 믿음으로 균열은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하고 곧 휘청거리기 시작합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미국발 서브 프라임모기지 사태의 시초는 여신, 즉 과도한 대출 때문이었다. 금리가 낮아 저신용자들까지 대출을 받아 흥청망청 하다 금리가 인상되자 급격히 무너진 것이다.
5. 5차 파동 : 월드컵 특수
년도 | 부동산시장 동향 및 시대적 상황 | 정부정책 |
2001 | ‘저금리증후군 현상’으로 경기침체와 건설사 퇴출 등으로 맥을 못추던 전년과는 달리 저금리가 지속되고 주식시장이 침체되자 신규아파트는 물론 기존아파트와 신규분양시장 모두 웃었다. 특히 서울 재건축아파트 가격은 30%이상 폭등했고, 소형아파트가격은 강세를 보였고, 수급불균형에따른 전세값이 급등했다. 특히 저금리에 따른 월세 시장이 빠르게 증가 | |
2002 | 전국적으로 주택시장에 훈풍, 전국 아파트값은 22% 상승했는데 서울은 29% 상승(재건축은 40%에 육박, 서울 입주물량 52,000여 가구로 사상 최저), 강남권 재건축 강세 지속, 서울에서도 지역별(강남과 강북) 가격 격차 심화, 전세값은 상대적으로 약세 | |
2003 | 재건축을 중심으로 상승세 지속되면서 기존아파트와 분양권가격을 동반 상승시킴, 가수요까지 더해지자 정부는 열기를 식히기 위해 10.29대책을 발표하여 일시적으로 시장을 안정시킴 | 부동산시장 안정대책(9월), 부동산 종합대책(10월) |
*저금리증후군 : 실질금리가 떨어지면 기대수익률이 낮아져 부동산 투자 수요가 증가하여 집값이 상승
*부동산 재건축시장 안정대책(9.5일) : 1가구 2주택자 양도소득세 비과세 요건을 3년보유, 1년거주에서 3년 보유, 2년 거주로 강화, 재건축조합원 지분 분양권 조합설립인가 후부터 전매 금지, 재건축아파트 중소형평형 의무건설비율 60% 이상으로 확대, 그동안 의무건설비율에서 제외되었던 1:1재건축 아파트 중소형의무건설비율 적용
*부동산종합대책(10.29일) : 종합부동산세 2005년 도입, 1가구 3주택 이상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60%로 중과, 주택담보대출 기준 강화 및 투기지역 담보대출 비율 LTV 40%로 하양 조정, 판교신도시 개발 등 공급대책, 강북뉴타운 12-13개 추가 지정,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추진, 투기과열지구 분양권 전매 제한 300세대 미만 소규모주상복합까지 확대, 무주택자 우선 공급 50%에서 75%로 확대, 주택거래신고제 도입
5차 파동은 2001년부터 2003년까지의 기간이다. 이 시기에는 전체적으로 저금리 기조와 규제 완화 및 월드컵 특수가 어우러져 부동산시장에는 훈풍이 불었다. 경기침체와 건설사 퇴출 등으로 맥을 못추던 2000년과는 달리 저금리가 지속되고 주식시장이 얼어붙자 부동산으로 자금이 몰려 기존 아파트는 물론 신규 분양아파트도 모처럼 기지개를 켰다. 집값이 안정되면 주택을 소유하기보다 이용하려는 경향이 강했던 4차 파동에서 나타났던 현상이 다시 나타나기도 했다. 전세 수요가 많아져 전세값이 폭등하자 새로운 월세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2002년 월드컵 특수를 맞아 주택시장에도 훈풍이 불어 전국 아파트값은 한 해에만 무려 22% 폭등(서울 29%, 재건축 40%) 했다. 물론 월드컵 특수의 영향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서울 입주물량이 52,000여 가구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한 영향도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강남권 재건축아파트의 강세가 지속되었고, 서울에서도 강남과 강북간 지역별 가격 격차가 양극화되기 시작했다. 전세값은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였고 지하철이 개통되면서 본격적으로 역세권 아파트들이 오르기 시작했다.
시장이 과열되자 정부는 2003년 9월 ‘부동산시장 안정대책’, 10월 ‘주택시장안정 종합 대책’을 연이어 발표하며 시장에 개입했다. 업계에서는 참여정부 시절 가장 강력했던 ‘10.29대책’은 오늘날까지의 부동산 대책을 통틀어 봐도 초기에 가장 효과가 컸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무시무시한 정책 역시 결국 집값을 안정시키지는 못했다. 반짝효과가 끝나자 강남을 중심으로 다시 반등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회자되는 ‘정부 정책의 효과는 3개월을 못 간다’는 말은 당시에 생겨났다. 사실 공급이 부족할 경우 그 어떤 정책도 효과를 내기 어렵다. 이 시기에 아파트값이 폭등한 이유는 결국 공급부족 때문이었다. 돌이켜 보면, 1998년에서 2000년 ‘IMF 사태’ 기간에는 경기불황으로 연간 30~40만 호의 아파트 밖에 짓지 못했다. 즉 그전처럼 연간 50에서 60만호를 지었다면 폭등현상은 없었을 것이다.
IMF 외환위기 시절이었던 1997년에서 1998년에 아파트 가격은 평균 30% 하락했다. 1998년 말이 아파트 가격의 최저점 이었다. 시중 금리는 폭등하고, 환율은 평가 절하되었으며, 신용 등급은 급강하했다. 부실 채권의 매물화로 부동산 가격이 폭락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자금여력이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부동산 매수의 적기이기도 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먼저 IMF와 같은 외부충격으로 인한 경기불황은 일시적으로 아파트 가격을 하락시키지만 경기가 회복되면 금방 가격이 상승한다는 점이다. 이는 1970~1980년대 오일쇼크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경기불황이라고 해서 아파트를 짓지 않으면 공급부족으로 머지않아 반드시 아파트 가격이 오른다는 점이다.
<아파트값 5차파동>을 통해 부동산시장은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정부는 경기불황기 때는 경기활성화를 위해 금리를 낮추고 유동성을 확대하는 동시에 부동산 완화 정책을 펼친다. 1차, 4차, 그리고 5차 파동이 여기에 해당된다. 정권과 정책입안자들은 바뀌었지만 정책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고 과거의 정책을 재탕, 삼탕하는 데 그치고 있어 그 효과도 미미하다.
둘째, 시중에 유동성이 풍부해지고 물가가 오르면 부동산 상승의 클라이막스다. 중동특수로 오일달러가 유입되어 3저 호황 및 88올림픽 특수가 뒷받침된 3차와 4차 파동이 이에 해당한다.
셋째, 부동산 상승기에는 규제책을, 하락기에는 완화책을 내놓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처럼 정부가 부동산에 개입하는 이유는 부동산시장의 특성상 오롯이 보이지 않는 손, 시장에만 맡겨둘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동산은 정부가 개입하여 단기적으로나마 효과를 볼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넷째, 아파트 가격은 먼저 강남에서 출발해 인근 신도시로 상승세가 확산된다. 신도시 중에서도 분당이 먼저 움직이고, 분당 중에서도 제일 비싼 서현동과 정자동이 먼저 오른다. 그 후 신도시를 넘어 강북과 수도권 전체로 확산된다. 이것이 지속되면 상가와 오피스텔, 마지막에는 환금성이 가장 떨어지는 토지까지 이동하며 부동산 시장 전체를 움직인다.
다섯째, 서울 아파트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대장은 강남아파트이고 대구는 수성구, 그리고 부산은 해운대구인데 이는 앞으로도 좀처럼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주택시장은 과거 30년 동안 4~5년을 주기로 일정한 궤적을 그리며 호황과 침체를 반복했다. 반복하지만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IMF와 같은 외부충격으로 인한 불황은 일시적으로는 아파트 가격을 떨어뜨리지만 머지않아 곧바로 회복된다는 점이다. 경기불황이나 외부충격이 아파트 가격을 장기간 진정시키는데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경기불황과 건설경기 위축으로 공급량이 부족할 경우 더 빨리 가격이 오른다는 점이다. 1차에서 5차 파동을 정리해보면, 주택시장이 움직이는 기본원리는‘주택시장의 징크스’라는 이름으로 다음과 같은 1~7단계로 순차적으로 움직인다.
<아파트값 상승 7단계 프로세스>
단계 | 시장의 징후 | 시장동향 |
1 | 전세가격이 상승한다 | 아파트가격 상승의 씨앗이 싹튼다 |
2 | 이사철에 소형아파트 가격이 상승한다 | 전세가 상승이 아파트 가격을 밀어올린다 |
3 | 미분양 아파트가 빠르게 소진된다 | 아파트가격 상승이 본격화된다 |
4 | 분양시장이 달아오르면서 분양가를 끌어 올린다 | ‘묻지마 청약’이 성행하여 아파트가격 상승을 이끈다 |
5 | 서울 강남과 신도시를 중심으로 오른다 | 강남과 강북의 양극화 |
6 | 서울 강북과 수도권으로 확산된다 | 강북과 수도권으로 확산 |
7 | 광역시과 지방으로 확대된다 | 전국적으로 확산 |
(1) 전세 가격이 상승한다
동틀 무렵이 가장 어둡다. 부동산시장 전망이 암울할 때, 기다렸다는 듯이 언론에서는 폭락을 경고하며 호들갑을 떤다. 화들짝 놀란 개미들은 숨을 죽이지만 최악의 시기에 아파트값 상승의 씨앗은 싹튼다. 급매물이 시세를 주도하며 집값이 하향 안정세를 보이면 집값 상승률이 은행 이자율보다도 낮아져 기대수익률에 못 미치기 때문에 집을 굳이 사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매물이 쌓일수록 매수자들은 한발 물러선다. 일시적으로 주택을 소유하기 보다는 이용하려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집 없이 재미있게 살자’며 전세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는 값이 떨어지는 기존 아파트보다 품질이 좋은 새 아파트를 분양 받기 위해 전세살이를 자청하기도 한다.
사실 전세가격 역시 철저하게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전세수요가 증가하고 물건이 부족하면 시장기능에 의해 가격이 오르게 된다. 이 경우 집값 대비 전세값 비율도 높아진다. 흔히 전세를 선호하는 수요자들이 많아지면 ‘주택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거주하는 것’으로 주택에 대한 패러다임 자체가 전환된 것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단순히 집값 안정기에 나타나는 과도기적이고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 하지만 개미들은 집값이 떨어지고 투자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여 전세시장으로 몰려가지만 이때가 상승의 시작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중의 반대쪽으로 가라’는 투자격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2) 이사 철에 소형 아파트 값이 상승한다
‘밀집모자는 겨울에 사라’는 투자격언이 딱 맞아 떨어지는 시점이다. 집값보다 한 걸음 앞서 가는 전세값 비율은 집값 상승을 예고하는 선행지표다. 소형아파트의 전세값 비율이 높아져 매매가의 70%를 상회하게 되면 돈을 조금 보태 아예 집을 사려고 하기 때문에 집값을 밀어올릴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전세값 비율이 높아지면 집값이 오른다‘는 통설은 한 차례의 전세대란과 네 차례의 전세난을 겪으며 입증되었다. 주택시장을 둘러싼 여건에 따라 조금 늦게 나타나기도 했지만 높아진 전세값은 어김없이 집값을 떠받치며 밀어올렸다. 일종의 징크스가 된 셈이다.
(3) 미분양 아파트가 빠르게 소진된다
미분양 아파트가 샇이는 시기에는 남들보다 한발 앞서는 선투자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모든 부동산 투자가 그러하듯 주택에 대한 투자 역시 처음부터 불이 붙지는 않는다. 미분양아파트가 조금씩 팔려나가는 작은 호재가 이어지면 투자환경이 좋아져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심리가 강해진다. 일부 여유계층은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선매수를 한다. 그러나 개미나 실수요자들은 집값에 불이 활활 타올랐을 때 뒤늦게 매수에 나선다. 당연히 미분양아파트가 소진될수록 부동산에 대한 시장의 에너지가 응축되어 집값을 끔틀거리게 하고 분양권이나 입주권에 대한 프리미엄도 올라가기 마련이다. 미분양 아파트의 증감은 주택시장의 흐름을 판단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나침반 역할을 한다.
(4) 분양시장이 달아오르면서 분양가를 끌어 올린다
미분양 아파트가 빠르게 소진되면서 단기 전매차익을 노린 투기성 자금이 상대적으로 싼 분양시장으로 유입되어 분양가를 끌어올리고 분양가에 대한 프리미엄까지 띄워 기존 아파트 가격까지 영향을 미친다. 매수자들은 기존 아파트와 상대적으로 낮은 분양시장을 오가며 집값을 동반 상승시킨다. 수요가 몰리면 당연히 분양시장은 수요자 시장에서 공급자 시장으로 바뀌고 공급자는 분양가를 인상하여 결국 기존 아파트 가격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단기 전매차익을 노린 투기성자금이 유입되며 중소형 아파트 분양권 시세가 강세를 보이는 ’소강대약 현상‘이 나타난다. 분양권 전매 허용으로 소액투자가 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유동성과 환금성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또 모델하우스 앞에 파라솔을 친 떴다방들의 활동도 극성스러워진다. 과장된 소문을 퍼뜨리며 바람을 잡아 가수요까지 끌어들여 아파트를 분양받기는 점점 힘들어진다. 청약 열기는 전체 주택시장에 영향을 미치는데 서울지역 동시분양 아파트 청약경쟁률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수요가 몰리면 분양률이 높아지고 분양시장이 수요자 시장에서 공급자 시장으로 바뀌어 자연히 분양가격이 인상되는데, 이는 필히 기존 아파트 가격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수요자들은 상대적으로 싸게 느껴지는 분양시장과 기존 주택시장을 시계추처럼 오가며 집값을 동반 상승시키게 된다. 2차 파동과 3차 파동 때도 분양시장이 달아오르면서 아파트 가격이 크게 올랐다.
(5) 서울 강남과 신도시를 중심으로 오른다
분양시장이 활기를 띠면 언론과 매스컴에서는 일제히 ‘카더라 뉴스’를 생산해 낸다.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뉴스를 쏟아내면 개미들은 괜히 조바심이 생기고 부하뇌동하여 심리적 멘붕상태에 빠진다. 매물은 게눈 감추듯 사라져 품귀현상을 보이고 아파트 가격에 거품이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가격이 상승한다. 동물의 세계에서 우두머리가 이끄는대로 다른 동물들이 떼지어 움직이는 것을 ‘무리효과’라고 한다. 투자자들의 행동도 이와 복사판이다.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심리가 발동하면 물불 안가리고,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이 찍어주는 곳으로 우르르 몰려다니기 때문에 10%가 움직이면 90%가 요란하게 먼지를 내며 레밍쥐처럼 뒤를 좇는다. 경험이 많은 어부는 고기가 모여드는 곳에 그물을 던진다. 경험이 많은 투자자는 개미들이 몰려들 곳에 밑밥을 던져놓고 기다린다. 실수요가 뒷받침되면 시세차익을 노리는 가수요도 본격적으로 활동하는데 이 때 매수자가 증가해 매물이 자취를 감추고 아파트값에 거품이 생기는 가격 상승기의 증후군이 나타난다. 이쯤되면 ’투자‘라는 개념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투기‘만이 있을 뿐이다. 기존 아파트 가격이 들썩거리면 이미 대세 상승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야할 때이다. 뭉칫돈도 공격적으로 움직인다. 기다리면 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심리까지 더해져 매물품귀 현상이 나타타고 매도가도 높게 불러 호가공백이 벌어지지만 매수자가 호가를 인정하고 추격매수해 집값과 분양권 프리미엄이 동반 상승하게 된다. 집값이 상승기류를 타게 되면 성수기와 비수기를 가리지 않지만 주로 이사철과 맞물려 오름세를 보인다. 아파트 가격은 사람들을 끌어 들이는 요인이 많고 쾌적한 주거환경을 갖춘 지역일수록 상승 잠재력이 높다. 서울 강남지역과 신도시를 중심으로 희소가치가 있는 중대형 아파트와 역세권 아파트, 한강변 아파트, 재건축대상 아파트, 환경친화형 아파트 등이 높은 상승률을 보이며 한단계 레벨업 될 것이다.
(6) 서울 강북과 수도권으로 확산된다
서울 외곽지역과 수도권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실물경기가 살아나고 소비심리와 투자심리가 함께 살아나야 가능하다. 실수요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결국 원래 가격으로 돌아가는 이른바 ‘요요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내외적인 대형 호재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1973년 오일쇼크, 1977년 중동 특수, 1983년 채권입찰제 실시 그리고 1988년 올림픽 특수와 같은 굵직한 재료가 바탕이 되어 있어야 가능하다.
(7) 광역시와 지방으로 확대된다
서울과 수도권의 상승 흐름에 편승하는 지역은 집값이 꿈틀대고 그렇지 않은 지역은 잠잠한 지방의 양극화 현상이 나타난다. 이는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이에 더해 지방도 그 지방 내에서 양극화 현상이 발생하여 이른바 ‘똘똘한 한 채’선호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부산의 경우 해운대 바닷가 lct더샵아파트, 남천삼익비치 재건축 GS그랑자이더비치와 전통적인 부촌이자 학군이 좋은 동래구 일부와 서부권 일대의 대변혁을 몰고올 에코델타시티 등이 ‘똘똘한 한 채’로 선호될 지역이다.
2004년 카드대란
‘카드대란’이란 신용 카드를 무분별하게 발급하여 신용 카드 회사가 부도를 맞고 신용불량자가 급증한 현상을 말하는데, 2002년에 소비를 늘려 경기를 활성화하고자 신용 카드 규제를 완화한 결과였다.
년도 | 부동산시장 동향 및 시대적 상황 | 정부정책 |
2004 | 10.29대책(2003년)의 효과로 집값 안정, 주택거래신고제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의 조치로 부동산시장은 얼어붙었고 수도권을 넘어 지방으로 확산, 행정수도 이전에 따른 충청권 땅투기 열풍 지속, ‘카드대란’으로 신용불량자 양산, 아파트값 6년만에 하락 | 5월 : 분양가원가연동제, 공공택지 채권입찰제 7월 :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입법 예고 11월 : 부동산보유세 개편 전매금지기간 완화 12월 : 11곳 투기지역 해제 |
2004년 부동산시장은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연초부터 숨통을 조이다 하반기에는 숨통 틔우기와 같은 오락가락 정책에 따른 혼란과 부작용이 겹쳐진 한 해였다. 재테크 격언 가운데 ‘정부 정책을 거스르지 말라’는 말이 있다. 특히 부동산 시장에 잘 들어맞는 말이다. 각종 규제와 개발 정책 등 정부 정책이 갖는 파괴력이 부동산 시장에서 때로는 큰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2004년은 정부 정책과 맞서려 했던 투자자들이 심하게 피해를 본 한 해였다. ‘행정수도이전’이라는 정부 정책을 지나치게 맹신하고 뒤늦게 ‘투기’에 나섰던 사람들도 손해를 크게 봤다. 헌법재판소에서 수도이전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났기 때문이다. 때로 정부 정책은 이렇게 양날의 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른바 ‘입신(入神)’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프로 9단 기사들도 대국이 끝나면 꼭 복기(復棋)를 통해 대국을 정리한다. 2004년 부동산시장을 복기해 보면, 결국 재건축 아파트가 가격 하락을 주도했다. 애초부터 정부정책의 초점은 정해져 있었다. 바로 부동산 시장 폭등의 진원지였던 재건축 아파트를 잡겠다는 의도였다. 이렇듯 정부의 부동산 규제가 재건축 아파트에 집중되다 보니 자연스레 재건축 아파트의 가격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개발이익 환수제, 임대주택 건설 의무비율 강화, 소형평형 건설의무화, 강남지역에 대한 주택거래 신고제 도입 등 각종 규제는 재건축 아파트 가격을 떨어뜨려 놓기에 충분했다. 서울지역 재건축 아파트 가격은 한해 동안 10% 이상 떨어지며 전체 주택시장 가격 하락을 주도했다.
그러나 정부정책이 집값에 집중되자 엉뚱한 토지시장이 강세를 보이는 풍선효과가 나타났다. 아파트, 오피스텔, 상가 등 주요 부동산 상품들이 침체를 면치 못한 데 비해 토지 시장의 가격 오름세는 두드러졌다. 저금리 기조로 시중 부동자금이 쉽게 부동산을 떠나지 못하고 아파트, 상가에 대한 대안으로 토지를 택했기 때문인데 한 마디로 ‘돈의 힘’으로 토지 가격이 올랐다. 특히 수도권 일대 부동산 가격이 큰 폭의 오름세를 보였다. 오랜 기간 잠잠했던 경기 북부지역은 파주지역을 중심으로 정부 보상비가 대거 풀리면서 연천, 포천, 강원도 철원 지역 땅값 상승으로까지 확대됐다. 경기 남부지역도 화성, 평택 등을 중심으로 가격이 급등했고 충청도 지역도 기업도시, 각종 개발 계획에 따라 강세를 보였다.
하지만 오피스텔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오피스텔 가격 하락은 정부 규제 영향도 컸지만 전반적인 수급 불균형에서 비롯됐다. 2001년부터 2003년 부동산시장 활황기를 이용해 건설사들이 대거 오피스텔 분양에 나서면서 공급 물량이 크게 증가했다. 반면 극심한 내수경기 침체로 창업 열기가 꺼지면서 오피스텔 수요는 대폭 감소해 인기 지역에서조차 세입자를 잡지 못해 고전하는 시기였다. 체감 공실률이 30% 선에 육박할 정도로 사정이 심각했다. ‘수급은 모든 재료에 우선한다’는 주식시장 투자 원칙이 2004년 오피스텔 시장에도 꼭 들어맞은 셈이다. 2000년부터 2004년 11월 까지의 주택 매매가격 변동률율을 보면, 2004년은 6년만에 집값이 하락세로 돌아섰다. 주택거래신고제 도입을 기점으로 줄곧 하향 안정세를 걷다 단독주택까지 포함한 전국 집값이 1.7% 떨어지면서 1999년 이후 지속됐던 상승세가 처음으로 꺾였다.
6. 6차 파동 : 중대형아파트 급증
년도 | 부동산시장 동향 | 정부정책 |
2005 | 부동산거품을 잡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강함, 주택가격 안정, 토지가격 상승 | -2.17 판교투기방지 대책 : 분양가상승 억제를 위한 채권입찰제 실시, 강남 등 6개 주택거래신고지역 실태조사(2월), -5.4대책 : 부동산 보유세율 단계적 강화, 1가구 2주택자 양도소득세 실가과세(5월), -8.31부동산대책(8월) |
2006 | 부동산광풍, 중대형아파트가 가격상승 주도, 신규아파트 분양가 전년 대비 55% 급등, 재건축 매매가 상승, 전세가 폭등 | -3.30부동산대책(3월) -11.15부동산 안정화 대책(11월) |
2004년 이른바 ‘카드대란’으로 총체적인 경기불황이라는 난리통을 겪으면서 집값이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2005~2006년 다시 한 번 아파트 가격은 요동치게 된다. 2년간 진행된 6차 파동은 한 마디로 ‘부동산 광풍’이 불어 닥친 시기였다. 강남의 대체주거지로 판교와 송파신도시가 혜성처럼 등장했고 재건축 규제강화로 공급부족이 심화되면서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정부의 의지도 그 어느 때보다 강했지만 쓰나미처럼 몰려온 광풍은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았다. 서민주거생활 안정과 자산불균형 해소라는 명제가 부동산 정책의 표면적 이유였다. 2005년 ‘8.31부동산대책’ 역시 자산소득의 불균형으로 인한 계층간 갈등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것이었다. 거래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등기부에 실거래가 기재, 종합부동산세 과세기준 하향 및 세대별 합산과세, 1세대 2주택 양도소득세 50%, 3주택은 60%의 단일 세율 적용, 종합부동산세 과세대상 9억 원에서 6억 원으로 강화, 강북뉴타운 광역개발을 통한 공급확대, 판교 등 공공택지를 활용하여 공영개발을 추진하겠다는 주요 골자였다. 어느 때보다 강력한 정책이라는 시중의 판단과는 달리 시장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2006년에도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들을 계속 이어졌는데, ‘3.30대책’은 DTI도입,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도입, 투기지역 총부채상환비율 40%로 규제, 수도권공공택지 공급확대 등이 핵심이었다. 그런데도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지 않자 ‘11.15부동산시장 안정화 대책’을 발표한다. 공공택지 주택 12만 5천 가구 추가공급, DTI적용 대상을 수도권 투기과열지구로 확대했다. ‘집값은 반드시 잡겠다’며 전쟁을 선포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역대 그 어느 정부보다 부동산 규제대책을 많이 발표했고 의지도 강했지만 그 효과는 반짝에 그쳤다.
실제 2003년 ‘10.29대책’ 후 주택가격은 3개월 단기하락 후 곧장 회복세로 돌아섰고, 2005년 ‘8.31대책’의 경우에도 발표 후 1개월만에 회복세로 돌아섰다. 그리고 2006년 ‘3.30대책’ 역시 2개월 단기 안정후 급등했고, 이어 2006년 ‘11.15대책’은 참여정부 들어 8번째로 내놓은 부동산 대책 역시 발표 후 오히려 상승세가 지속되어 반짝 효과에 그치고 말았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6개월에 한 번 꼴로 쏟아져 나왔다. 노무현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강력한 부동산 대책들을 쏟아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역대 정부 중 집값이 가장 많이 올랐다는 오명을 쓰고 말았다. 노무현 정부의 집값 성적표를 보면, 전국적으로는 24.1%가 상승했지만, 서울은 무려 42.9%가 상승했다. 노태우 정부의 전국 평균 43.3%와 서울 42.2%의 상승 이후 가장 큰 상승률을 보였다. 언급한 바와 같이 2004년 우리나라 금융시장은 일대 혼란을 겪게 된다. ‘카드대란’ 때문이었다.
그로 인한 폐혜는 엄청났다. 졸지에 400만 명에 이르는 국민들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경제는 암흑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아파트 가격도 잠잠한가 싶더니 2005년에서 2006년 다시 한 번 요동치게 된다. IMF 당시 1억 5천만 원이었던 은마아파트는 12억 원까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2019년 12월 현재 매매가는 84㎡가 23억 5천만 원이다. 물론 전국적으로 모든 아파트값이 오른 것은 아니고 고가아파트와 중대형아파트만 오르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었다. 중대형아파트가 집중적으로 상승한 이유는 ‘베이비붐 세대’들 때문이었다. 한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일생에 평균 두 번 집을 구입한다고 한다. 1차 구입은 30년대 초반 결혼할 때, 2차 구입은 사회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40대 중후반이라고 한다.
주택시장의 주요 고객인 45세에서 49세의 사이의 인구는 1975년부터 2000년까지는 5년마다 10만~50만 명 정도 증가했지만, 2000~2005년 사이에는 갑자기 95만 명으로 증가했다. 2005년 45~49세 사이의 인구는 바로 1차 베이비붐 세대들인데 바로 80년대 말 아파트 가격을 폭등시켰던 장본인들이다. 이들이 새 아파트를 중대형으로 늘려가면서 중대형 아파트를 싹쓸이 하다시피 하자 중대형아파트 값이 폭등한 것이다.
2007~2012년 부동산 시장 동향 및 정부 정책
그리고 이어지는 7차 파동은 2013년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부동산시장 상황과 정부정책의 연속성을 살펴보기 위해 6차 파동과 7차 파동 사이의 기간, 즉 2007년부터 2012년까지의 부동산시장 특징 및 정부 정책을 별도로 정리했다.
년도 | 부동산시장 동향 | 정부정책 |
2007 | 정부의 강력한 규제정책으로 주택시장은 안정, 수요위축, 거래 감소로 하향 안정세 차별화와 양극화 현상 : 실수요자, 중소형아파트, 재개발 및 비강남권 중심으로 상승, 지방 침체 미분양아파트 사상 최고치인 10만 호에 육박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승(2005년 3.5%이던 대출금리가 2007년말8%까지 상승) |
1.11부동산대책 -민간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민간택지 분양원가 공개 -청약추첨제가 청약가점제로 변경 -채권매입 상한액 조정 -전매제한 기간 확대 1.31부동산대책 -공급확대 -서민 금융지원 확대 |
2008 | 투자자들에게 최악의 해, 중대형아파트 폭락, 1~2인가구 증가로 소형아파트 강세, 4대강 정비사업 발표,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하우스푸어 등장 | 6.11.지방미분양대책 -지방 미분양 구입시 11.3 경제위기 종합대책 -투기지역 및 투기과열지구 해제 -재건축 규제완화 -지방 미분양아파트 세제지원 |
2009 | 분양시장 호황, 강남 재건축 아파트값 상승, 수도권 전세난 심화, 한강변 초고층 재건축 허용, 지역별로 롤러코스트 가격 형성, 정부정책은 규제와 완화를 반복 | 상반기 : 각종 규제 완화책 연달아 발표 -하반기 : 금융규제를 강화하여 규제 시작 |
2010 | 거품론이 횡행하여 아파트 구매심리 크게 위축, 반면 전세시장 강세, 수도권 침체 지방은 강세 현상 | 4.23부동산대책 -비강남권 DTI규제 완화 -준공전 2만 가구, 준공후 100가구 정부가 직접 매입 -건설업계를 지원하기 위해 미분앵 해소와 유동성자금 지원 8.29대책 -미분앵해소 -주택거래활성화 -금융세제지원 -민영주택공급비율 상향 조정 -건설사 유동성 지원 |
2011 | 전세난 심화와 수익형 부동산의 부상, 지방 분양시장 열풍, 재개발·재건축 시장 위축 지방 아파트 분양시장 열풍, 서울 주택시장에 박원순 리스크 |
-전월세시장 안정화 방안(1월) -주택거래활성화(3월) -서민주거안정 지원대책(12월) |
2012 | 재개발 재건축 날개없는 추락, 분양 입주물량 동반 감소, 매매시장 양극화와 전세난 계속 | 5.18부동산대책(5.10 후곳조치) -분양가상한제 폐지 -전매제한제도 9.10 제5차경제활력대책회의 -양도소득세감면 -취득세 감면 |
2013 | 박근혜 정부의 첫 부동산 대책인 4.1대책은 표면적으로‘서민 주거 안정’을 내세웠지만 실제 내용은 시장 정상화를 위한 거래 활성화에 초점, 9억 이하 신축, 1주택자 주택 5년간 양도세 면제,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자금 지원규모 2.5조 원에서 5조 원으로 확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폐지, 그리고 연말까지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 한시적 취득세 면제 그 밖에 보금자리 분양주택 공급 7만에서 2만 호로 축소, 행복주택 5년간 20만 호 공급, 기업임대사업 육성, 분양가상한제 신축적용 등이 포함 거래활성화를 위한 8·28 대책은 전월세 대책에 집중, 전·월세 문제로 한정한 점에서 8·28 대책은 시장 정상화를 겨냥했던 4·1대책과는 차별화. |
-4·1대책(7.27 후속 대책) : 서민주거안정 -8.28대책 : ‘서민·중산층 주거안정을 위한 전·월세 대책 마련’, 전·월세 문제에 집중, 전세수요의 매매로 전환, 임대주택 공급 확대, 전·월세 부담 완화, 매입·전세임대주택 2.3만 가구 공급, 민간임대 사업자 지원확대, 월세 공제율 및 공제 한도 상향, 주택 바우처 시행, 저소득가구 전세자금 지원 요건 완화 |
우리나라 부동산시장에 외부에서 충격과 공포를 준 것은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였다. 무수히 많은 내부충격에는 끄떡하지 않던 부동산 시장이 두 번의 외부충격으로 위기를 맞았던 것이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는 법, 위기였지만 투자 측면에서 보면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전통적인 부자와 크고 작은 기업들이 줄도산했지만 새로운 신흥부자들이 탄생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는 2007년 들어서면서 ‘1.11부동산대책’을 통해 부동산시장 안정화를 도모하기 시작했다. 민간아파트의 분양원가가 공개되고, 지난 30년 동안 시행됐던 ‘청약추첨제’가 ‘청약가점제’로 바뀌었다. 수도권 전역과 지방의 투기과열지구에서 2007년 9월 이후 사업승인신청을 하는 민간택지 아파트는 분양원가를 공개하도록 했다. 공개항목은 택지비, 직접공사비, 간접공사비, 설계비, 감리비, 부대비용, 가산비 등 7개로 정해졌다. 이중 택지비와 가산비는 ‘분양가심사위원회’ 검증 후 사업장 별로 공개하고, 나머지 5개 항목은 관할구역에 공통 적용되는 기본형 건축비만 공개하게 했다.이미 원가를 공개하고 있는 공공택지에서는 7개 항목에서 61개 항목으로 전면 확대되었다.
분양가상한제의 경우 공공택지는 그대로 적용되고, 민간택지는 9월부터 지방자치단체별 기본형 건축비를 바탕으로 적용하도록 했는데 이에 따라 민간아파트 분양가는 공공택지와 마찬가지로 ‘택지비+기본형 건축비+가산비’의 범위 안에서 책정하도록 한 것이다. 택지비는 공신력 있는 평가기관의 ‘감정평가 금액’을 적용해 계산하도록 했고, 분양가상한제는 재개발, 재건축, 주상복합, 비도시 지역(계획관리지역)내 택지 등을 포함한 전국의 모든 민간 공동주택에 적용되도록 했다. 아울러 채권입찰제도 확대시행되었다. 물론 이전에도 공공택지 내 25.7평 이상 중대형 주택에서 과도한 시세차익을 방지하기 위해 시행되고 있었지만, 1.11대책으로 9월 이후에는 공공택지는 물론 재개발∙재건축, 주상복합 등의 민간택지도 적용하게 하였다. 여기에 분양가 인하효과를 위해 채권매입 상한액을 현재 주변시세의 90%에서 80%로 하향 조정하였다.
세 번째로는 분양주택에 대한 전매제한 기간을 확대하여 민간택지에도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면서 수도권 민간택지에 공급되는 주택에도 전매 제한 조치를 취했다. 이는 채권입찰제 상한액의 하향조정과 민간택지내 분양가상한제 도입에 따른 청약과열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따라 전용면적 85㎡ 이하는 계약일로부터 7년, 85㎡초과는 5년 동안 전매가 금지되었다.
또한 수도권 공공택지 내 중소형 전매 제한은 종전과 그대로 10년, 25.7평형 초과는 5년에서 7년으로 늘어나 전매제한이 강화되었다. 청약가점제 대상은 공공택지와 민간택지 내에서 분양하는 모든 주택으로, 특히 전용면적 25.7평 초과 주택은 청약 가점제와 채권입찰제가 동시에 적용돼 채권 상한액이 같을 경우 무주택기간, 부양가족수 등을 고려한 가점이 높은 순으로 입주자가 선정되었다.
이어 정부는 ‘1.31대책’을 통해 아예 부동산 시장의 흐름에 말뚝을 박으려 했다. 민간부분의 공급물량 축소를 우려한 장기임대 주택 공급 확대, 분양주택 공급확대 위한 공공부문 역할 강화, 서민층 주거안정 위한 금융지원 확대 등의 내용을 담았는데, 연이은 정부의 안정대책과 금리 인상, 대출규제 강화, 세금 부담 증가 등이 서서히 효과를 발휘하면서 2007년 부동산시장은 특히 아파트시장을 중심으로 수요 위축과 거래 감소, 가격 안정세가 이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2007년도의 시작부터 여러 가지 청약제도에 관한 정부의 정책이 발표 되면서 실제 아파트 투자를 통한 내 집 마련과 재테크 수단으로서의 부동산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거의 사라져버리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2007년도의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사상 최고치를 나타냈는데 9월에 전국의 미분양 아파트가 9만 8000호였던 미분양 아파트의 물량은 10만 호를 넘어섰고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의 증가세도 확연하게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기존 아파트를 매도해서 새 아파트의 입주를 계획했다가 기존 아파트의 매도가 여의치 않게 된 가구들이 많았다는 것과 함께 전세를 놔도 전세가 나가지 않은 물량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2007년 주택시장은 한 마디로 안정된 한 해였다. 주식시장도 그 어느 때보다 활황이었다. 종합주가지수 2000포인트 시대의 개막을 알린 한 해였다. 간단하게 정리해 보면, 1.11 및 1,31부동산 규제 대책을 연이어 발표하면서 안정세가 지속 되었다. 중소형 아파트, 재개발 및 비강남권을 중심으로 실수요자 위주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본격적인 분양가상한제 물량이 확대되고 대출 규제가 강화되는 등 강도 높은 부동산 대책이 주택시장에 찬물을 끼얹었다. 분양가상한제로 인해 집값이 내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진 데다 대출까지 어려워졌다. 수요 위축은 곧장 거래 감소로 이어져 거래량이 대폭줄었고 공급 초과와 수도권 규제의 후폭풍 속에 지방도 약세를 면하지 못했다. 하반기 들어 분양시장은 공급량이 넘쳐났지만 분양가상한제가 민간 택지로 확대되면서 상한제를 피하려는 물량이 대거 쏟아진 까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돈되는 지역인 송도와 은평뉴타운지역 위주로 청약자가 대거 몰리는 청약쏠림화 현상도 두드러졌다. 공식적인 미분양물량도 10만 호가 넘어서고 주택담보 대출금리도 계속 오르고 있어 수도권 지역 주택시장까지 사면초가에 빠져들었다.
2007년의 주식시장과 주택시장의 활황은 2008년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로 직격탄을 맞았다. 10년 전 IMF 외환위기의 악몽을 떠올릴 만큼 침체가 뚜렷한 한 해였다. 특히 강남3구와 목동, 분당, 용인 등 이른바 '버블세븐' 지역 아파트의 충격이 컸다. 다른 지역에 비해 가격이 유난히 가파르게 폭락했는데 가격 하락이 너무 빨랐고 폭도 컸다. 고점을 찍었던 2006년 말에 비해 최고 50%까지 떨어진 '반값 아파트'는 물론 청약률 o아파트도 등장했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2008년 공급된 아파트 사업지 435개 중 114곳에서 정식 청약 기간에 청약통장을 사용해 접수한 신청자가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청약률 제로 사업장이 가장 많은 지역은 경기도로 전체의 21%를 차지했고, 서울과 인천은 각각 3개, 2개 단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정부는 그간의 규제를 완화하는 11.3대책을 발표했다. 서울 강남3구를 제외한 수도권 모든 지역을 투기 및 투기과열지구에서 해제하고 수도둰 전매제한 기간을 완화하고 재건축 규제 완화를 위해 소형주택 의무건설비율을 낮추고 용적률도 상향해 주었다.
2008년 주택시장은 규모별로는 소형의 강세와 중대형의 약세로 나타났다. 수요부족과 각종 규제 등의 영향으로 대형은 연초대비 –6.76% 하락한 반면 소형은 공급부족과 실수요층의 유입으로 8.10% 상승했다. 중형의 경우에도 대형과 마찬가지로 약세를 보였지만 하락폭은 –2.66%에 그쳤다. 소형아파트가 상승한 이유는 이번에도 공급부족 때문이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건설사들은 중대형이 인기가 있자 중대형아파트 위주로 공급한 것이다. 게다가 뉴타운개발로 인한 이주수요가 겹쳤가 때문이었다.
소형아파트와는 달리 2008년 특히 중대형아파트가 폭락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역시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2000년대 중반 베이비붐 세대가 40대 후반이 되면서 중대형아파트가 턱없이 부족하게 되자 중대형아파트 값이 치솟기 시작했다. 당연히 건설사들도 인기있는 중대형아파트 공급에만 열을 올렸다. 당시 분양아파트의 현황을 보면, 대부분 전체 세대수의 약 80%를 중대형으로 공급하는 추세였다. 그와 더불어 3~4인 가구는 줄고 1~2인 가구가 증가하는 것과 맞물려 중대형이 약세를 면치 못했다. 2005년부터 2006년 당시 아파트값이 폭등하자 건설사들은 일제히 공급을 늘렸고, 한 발 더 나아가 노무현 정부는 10개의 2기 신도시를 짓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당시 공급과잉에 따른 후유증으로 2008년에는 미분양이 16만 호에 달하기도 했다.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영화 <빅쇼트>에서 답을 찾아라
모두가 ‘예스’할 때, ‘노’라고 하고 개미들과 반대로 움직이는 소수가 돈을 번다고 주장하면서 월스트리트 금융권을 상대로 20조의 판돈을 걸고 도박을 한 네 명의 괴짜 천재들, 이들의 투자 비법은 바로 ‘빅쇼트Big Short’였다. 즉 가치가 저평가 되어 있는 쪽에 ‘몰빵’하는 집중투자 전략이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는 투자 격언은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 놀랍게도 ‘미국 경제가 무너진다’에 모든 돈을 걸었다.
영화 <빅쇼트 The Big Short>에 나오는 괴짜 천재들, 2015년 개봉되었지만 2008년 미국 서브 프라임 모기지사태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부동산으로 시작된 작은 날개짓이 금융시장까지 초토화시키는 후폭풍을 몰고 왔던 재앙이었다. 수백만 가구가 집을 잃고, 실업률이 10%까지 치솟는 불편한 현실과 마주했기 때문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그것도 한 치의 오차 없이 말이다. 주택 시장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했던 미국 경제가 한순간에 붕괴된 이유는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금리 정책에 대출 문턱을 낮추자 그동안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을 수 없었던 저신용자들이 너도나도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 그러나 2004년부터 은행 금리가 오르자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저신용자들이 하나둘 파산하게 된다. 당시 미국인들은 집을 현금인출기였다. 영화 속 스트리퍼처럼 신용도가 낮아도 여러 채 집을 사거나, 심지어 죽은 사람의 이름으로 담보대출을 받기도 했다. 대다수가 집값에 맞춰 생활비를 늘렸고, 돈이 부족하면 그때마다 추가 담보대출로 메꾸어 나갔다. 결국 깡통주택이 속출하자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들까지 연쇄 부도가 났고, 이는 세계 경제 위기의 촉매제가 되엇던 것이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붕괴되기 직전 미국 사회와 금융시장 책임자들의 무능함을 고발하는 영화이기에 내내 복잡한 경제 용어와 파생 상품 거래가 나온다. 하지만 그때마다 설명을 잘 해주어 금융 관련 영화지만 그렇게 이해가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그래도 MBS, CDO, 합성CDO, CDS, Naked CDS, 공매도, Long(=Buy, Up) or Short(=Sell, Down)와 같은 금융용어들을 미리 알고 보면 더 재미가 있다.
뛰어난 편집, 연출 덕분에 영화의 전개는 생동감이 있고, 고발 다큐멘터리적 측면과 영화 본연의 재미 사이의 완급 조절이 잘 되어 있는 편이다. 많은 경제 용어가 등장하여 초반에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으나, 적절한 나레이션과 재밌는 비유, 배우들의 연기, 자극적인 시선 구성으로 비교적 쉽게 설명해준다. 어려운 경제학 용어 설명을 위해 특별출연한 마고 로비, 셀레나 고메즈 등도 이 영화를 보는 재미 중의 하나이다. 관객들은 스크린 속 카메오가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오는 짜릿함도 느낄 수 있고, 샴페인 한잔과 거품 목욕을 즐기며 모기지채권을 설명하는 마고 로비, 자산담보부증권의 도미노 효과를 카지노 베팅에 비유한 장면에서는 셀레나 고메즈를 만나볼 수 있다. 그것 말고도 미국 증권 포럼이 열린 라스베가스의 전경과 함께, ‘The Phantom Of The Opera’가 배경음악으로 쓰이는 숨은 묘미들을 찾을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 포인트는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철학적 메시지다.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It ain't what you don't know that gets you into trouble. It's what you know for sure that just ain't so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에 삶을 반추해 보게 된다.
2009년 주택시장에서 최대의 이슈는 호황을 이룬 분양시장이었다. 모든 정책이나 이슈들이 분양시장에 맞춰져 있었다. 서울과 수도권 청약시장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서 수백 대 일의 청약경쟁률을 보인 곳도 있어 청약1순위에 마감되는 ‘청약대박’인 사업장이 많았다. 용적률 완화 등에 따른 규제 완화 조치로 서울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값도 상승하여 수도권 전체 아파트값을 상승시키는 역할을 했다. 결과적으로 정부 정책에 따라 웃고 울었던 해였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 단기적으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부동산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출범 초기부터 경기불황을 타개하고자 경제살리기를 최우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MB정부의 부동산정책은 당연히 규제 완화 및 공급확대를 중요시하는 시장경제 위주였다.
상반기에는 연이어 규제완화 정책이 이어졌고 하반기에는 다시 금융규제를 중심으로 억제 정책을 발표했다. 상반기에는 먼저 1월 8일 도심역세권과 뉴타운에 1~2인용 소형주택을 집중 공급하고,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도 완화하는 대책을 발표했고, 20일에는 재건축안전진단 기준을 완화, 그리고 2월 4일에는 수도권 분양가상한제 적용단지의 전매제한 기간을 완화하는 대책이 발표됐다. 뒤이어 12일에는 침체된 주택시장 정상화를 위한 미분양활성화 대책을 내놓았고, 13일에는 주택청약종합저축 신설 3월 24일에는 재정비촉진사업 활성화를 위한 대책이 줄중이 발표되었다. 또한 4월 7일에는 임대주택 입주 5년 후 분양전환 가능, 8일에는 리모델링 연한 및 증축규모 확대, 5.27일에는 서울 미분양주택 취득시 지방세 75% 감면해 주는 일련의 대책들을 쏟아냈다.
이에 더해 금융규제를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주택시장 규제 정책으로 7월 6일에는 수도권 전지역의 LTV를 60% 이내에서 50% 이내로 강화했지만, 집값 상승세가 이어져 효과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하반기 들어 전세가가 급등하자 8월 4일 재건축조합원 지위양도금지 예외 규정 확대, 24일 전세자금지원 확대, 민간 전세대출 보증한도 확대, 도시형생활주택과 오피스텔 규제 완화, 그리고 27일에는 보금자리주택 공급확대 방안이 발표되었고. 7월에는 LTV규제를 강화하는 대책을 발표했지만 집값상승세가 좀처럼 꺽이지 않자 9월 4일 수도권 전 지역의 은행권으로 DTI 규제를 강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10월 8일에는 비은행권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은행권 DTI 기본비율을 제2금융권까지 확대 적용하는 대책을 발표하는 등 줄대책이 연이어 발표되었다.
2010년 주택시장은 양극화 현상의 심화로 대별된다. 즉 ‘수도권 침체, 지방 강세’ 라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한 부동산정보업체 조사 결과를 보면, 2010년 집값 하락으로 전국 아파트 시가총액이 25조 원 이상 감소했다. 지역별로는 수도권이 전체 시가총액을 끌어내리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경기도가 전국에서 하락폭이 가장 컸고, 서울과 인천이 그 뒤를 이었다. 반면 지방은 현재도 집값이 약세인 대구와 경북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시가총액이 증가했다. 2010년 집값이 급등한 부산이 시가총액이 가장 많이 늘었고, 경남도 증가했다. 이어 대전과 전북이 그 뒤를 이었다.
반면 전세시장은 큰 폭의 상승을 보였다. 2010년 하반기 서울지역 아파트의 매매가 대비 전세금 비중은 2005년 4분기(41%) 이후 4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었고, 경기 지역은 2006년 1분기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전세난으로 서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강남권보다 상대적으로 인기가 떨어졌던 비강남권이 상대적으로 높은 상승률을 보이며 전세 시장의 흐름을 이끌었다. 그러나 집값 거품론이 횡행하여 구매심리를 크게 위축시켰다. 2010년 주택시장은 어느 때보다도 버블론에 대한 논의가 많은 한해였다. 이로 인해 주택 구매 대기수요자들이 주택시장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면서 매매가 하락, 전세값 상승의 한 원인이 되었다. 우리나라 주택시장의 버블가능성을 거론하는 논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나라는 일본이다. 우리보다 앞서 주택시장 버블과 붕괴를 경험했던 일본처럼 우리도 같은 과정을 따라갈 것이란 예측이다. 이에 대한 자료는 제0장을 참조하면 된다. 2010년에도 정부의 대책이 연이어 나왔는데 그중 핵심은 미분양해소와 주택거래활성화로 대별되는 ‘4.23대책’과 주택거래활성화와 서민주거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금융, 세제지원과 건설사 유동자금 지원이 핵심인 ‘8.28대책’이었다.
2011년에도 전년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부동산시장 개입은 멈추지 않았다. 전월세시장 안정화 방안을 위해 전세자금 대출 규모를 1조 3천억 원 증액하고 주택거래활성화를 위해 생애최초 주택구입자금대출을 연장하고 취득세도 50% 감면해주기로 했다. 대부분의 부동산 대책이 그러하듯 주택공급 활성화방안도 추가되었다. 법인의 신규주택사업을 허용해주고 과밀억제권역 양도소득세 비과세요건 중 2년 거주 요건을 폐지하였다. 그리고 12월에는 주택시장정상화를 위해 강남3구를 투기과열지구에서 해제하고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세 적용도 폐지하였다.
특히 2011년은 ‘양극화, 낮은 분양가, 소형화’라는 3대 트렌드가 자리 잡으면서 다양한 기록들을 남겼다. 대내외의 불확실성과 주택시장 침체가 장기화됨에도 불구하고 실수요 위주로 물량이 소화되면서 전국에 민간아파트 22만 가구가 분양되었는데 이는 2008년 이후 최대치였다. 그런데도 치솟는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한 세입자들은 오른 전셋값을 월세로 전환하는 반전세 계약으로 돌아섰고, 목돈으로 고수익을 얻기 힘든 집주인들 역시 매달 고정적으로 현금이 들어오는 반전세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주택시장이 전반적으로 침체국면에 빠져 있었지만 지방의 아파트 분양 시장은 예외였다. 부산과 경남에서 불기 시작한 아파트 청약 열풍이 대구, 광주, 전북 전주, 대전, 강원 춘천, 세종시 등으로 확산되었다. 지방은 2007년 이후 공급이 크게 위축돼 수급불균형이 이어지면서 전세난이 가중되다가 신규 주택수요가 늘어나면서 분양시장이 호조를 보인 것이다. 특히 분양시장 열풍의 '진원지'로 꼽히는 부산지역의 경우 당시 삼성물산의 '래미안 해운대'가 일반분양 348가구 모집에 무려 2만 8345명이 몰려 평균 81.45대 1의 놀라운 경쟁률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의 경우에는 박원순 시장 취임에 따른 서울 주택시장에 ‘박원순 리스크’가 등장했다. 박 시장은 10·26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뉴타운 및 재개발·재건축에 대한 속도 조절과 한강르네상스 사업의 전면 재검토, 임대주택 8만가구 공급 등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취임한 뒤 강남권 재건축아파트 값이 하락폭을 키우며 평균 1억 원 가량 빠졌고, 이어 공공성 부족 등을 이유로 개포주공2·4단지 및 개포시영 아파트 등에 대한 정비구역 지정안을 보류하면서 '박원순 리스크'는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나 임대 수요의 증가와 1∼2인 가구 급증, 700만 명에 달하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로 수익형 부동산은 큰 인기를 끌었다.
2012년 들어, 부동산 경기가 꽁꽁 얼어붙어 있는데도 정부의 대책은 거북이였다. 인위적인 부동산 경기 부양책은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각종 세제 혜택과 금융 정책에 손댈 경우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가계부채 문제가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럼에도 현 정부 들어서도 크고 작은 부동산대책은 17차례나 발표됐다. 2012년만 해도 서울시의 뉴타운 재개발 재검토 추진에서 정부의 5·10 부동산 대책까지 다양한 정책이 쏟아졌다. 이번 부동산 정책의 주요 내용은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세금 감면 혜택이 주요 골자였다. 올해까지 구입하는 미분양 주택에 대해 5년간 발생하는 양도차익에 대해 양도소득세 100%를 감면해 주는 등 여러 정책들을 쏟아냈지만 역시 실효성은 없었다. 수도권에 남아 있는 미분양 주택 물량은 2만 5000~2만 9000선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었고, 2기 신도시를 비롯한 수도권 공급 물량이 꾸준히 이어지는 것이 주요 원인이지만, 미분양 주택의 매력이 낮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특히 2012년은 재개발 재건축 관련 주요 이슈들이 많았다.
<표 >에서 보듯이 뉴타운 출구전략과 소형주택 비율 확대 등으로 2012년은 재개발·재건축이 날개 없는 추락을 계속했다. 수차례 이어진 부동산 활성화 대책으로 규제가 대거 풀렸지만 재개발·재건축 시장의 거래침체가 뚜렷했다.
2013년 역시 박원순 서울시장의 뉴타운 출구전략 핵심인 이처럼 전반적인 부동산 침체 속에 재개발·재건축 시장 하락세가 두드러지는 것은 박 시장의 뉴타운 출구전략과 소형주택 비율 확대 등으로 인한 정책 리스크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구지정 해제가 본격화되고 새 정부 출범에 따른 정책 불확실성이 더해져 약세가 이어졌다.
2012년 1월 뉴타운과 재개발, 재건축을 전면 재검토하는 내용을 담은 서울시 뉴타운·정비사업 신정책구상이 발표됐다. 지방의 아파트 청약 범위가 도단위로 확대됐고, 4월 총선 이후 거래 활성화를 위한 5·10 부동산대책까지 발표되어 강남3구의 투기지역 해제가 이어졌다. 5·10 후속대책으로 분양가상한제 폐지, 재건축 부담금 부과중지, 재건축 사업 용적률 인센티브제 확대 적용 등 구체안을 담은 입법계획을 밝혔지만 위축된 부동산 심리를 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13년 부동산시장은 박근혜 정부의 출범과 맞물려 있다. 2012년 대선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는 크게 네 가지 부동산정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먼저 렌트 푸어를 위한 대책으로 집주인이 세입자를 대신해 은행에서 전세대출금을 일으키는 ‘목돈 안 들이는 전세제도’의 도입이다. 둘째는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집주인이 소유 지분 일부를 매각한 후 임대로 사는 ‘주택지분매각제도’도입인데, 이는 하우스푸어를 위한 것이다. 셋째는 노인의 주거복지 대책의 일환으로 ‘주택연금 사전가입제도’를 도입하여 가입 연령을 낮추어 주는 대책이다. 마지막으로 철도부지 위에 주택단지를 조성하는 ‘행복주택’공급인데, 이는 젊은 세대들의 주거안정을 위한 임대주택 공급정책이다.
그러나 후보 시절의 부동산공약의 기조는 당선 후 2013년 1월 27일 경제분과 토론회에서 ‘아파트 가격이 자꾸 하락해 주택 구입 여력이 있는 계층까지도 전·월세를 선호하면서 정작 서민들의 주거 안정이 위협받고 있다’면서 전·월세에만 수요가 집중되는 비정상적인 주택시장을 정상화할 방안을 연구해 보라고 지시했다. 얼핏 보기엔 무주택 세입자를 위한 주거 안정화 정책 강구로 들릴 수 있지만, 내용은유주택자들이 주로 참여하는 거래시장 활성화 쪽으로 정책의 방향 선회를 주문한 것이었다. 이는 이미 예고된 것이었고 기대되었던 바였다.
출범 첫 해인 2013년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세 차례 발표되었다. 4·1대책, 4·1대책의 7.24 후속조치, 8·28대책이 그것이다. 첫 대책은 4월 1일 ‘서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시장 정상화 종합대책’으로 발표되었다. ‘서민 주거 안정’을 대책의 명분상 목적으로 했지만, 실제 내용은 시장 정상화를 위한 거래 활성화에 맞추어 있었다. 그 밖에 보금자리 분양주택 공급 7만에서 2만 호로 축소하고 행복주택을 5년간 20만 호 공급 및 기업임대사업(뉴스테이) 육성 등이 포함되었다. 서민주거안정을 내세우면서 다양하고도 파격적인 방안들을 제시한 4.1대책은 결과적으로 무주택자 보다 유주택자 중심의 매매 거래 활성화를 지원하는 데 집중되어 있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4·1대책의 효과를 연장하고, 나아가 거래 활성화를 시장 정상화로 안착시키기 위해 8월 28일 추가대책을 내놓았다. 8·28 대책은 전·월세 문제로 한정한 점에서 시장 정상화를 겨냥했던 4·1대책과는 차이가 있다. 주 내용은 전세수요의 매매로 전환, 임대주택 공급 확대 및 전·월세 부담 완화였다. 또한 매입·전세임대주택 2.3만 가구 공급, 민간임대 사업자 지원확대, 월세 공제율 및 공제 한도 상향, 주택 바우처 시행, 저소득가구 전세자금 지원 요건 완화 등이 포함되어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전체가구의 46%를 차지하는 820만 전·월세가구를 매매시장으로 끌어들여 집을 사도록 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당시 한 경제 TV에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2013년 주택 구입자 중 44.4%는 집값이 많이 떨어져 내 집 마련용 또는 투자용으로 집을 구매했다고 답했다. 정부 정책의 의도대로 집값이 너무 올라 전세 대신 집을 샀다는 응답자는 23.5%에 불과했다. 역대 정부와 마찬기지로 대책은 화려했지만 2013년 부동산 대책 역시 당초 의도했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지 못했다. 매매 활성화에 실패했고, 전·월세도 못 잡았다. 특히 거래가 매매에서 임대로 빠르게 옮겨가면서, 전·월세 가격 상승이 66주 이상 계속 이어진 것은 매매활성화를 통해 전·월세를 잡겠다는 정책목표가 현실에서 전혀 먹히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해 준다.
‘아파트값 파동’이란 결국 주택시장을 둘러싼 여건의 변화로 수요가 일시에 집중되어 수급불균형이 발생하면서 시장에너지가 강해져 아파트값이 짧은 기간 동안 큰 폭으로 오르는 현상이다. 이는 부동산뿐만 아니라 모든 경제 현상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아파트값 파동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모죽毛竹’이라는 대나무가 성장하는 것과 같다. 모죽은 심은 지 4년 동안은 아무리 물을 주고 정성을 다해도 큰 변화가 없다가 4년이 지나면 하루 30cm씩, 쉬지 않고 성장해서 나중에는 30m까지 자란다. 4년 내내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뿌리를 뻗어 기초를 튼튼히 다졌던 것이다. 아파트값 파동도 작은 호재들이 쌓이고 쌓여 폭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 작은 호재들을 스쳐 지나간다.
역대 정부의 주택정책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결국‘역사는 반복된다’는 메시지로 귀결된다. 아파트가 처음 만들어진 시점부터 가격이 오르면 개미들이 레밍쥐처럼 우르르 몰려가 버블을 일으켰다가, 가격이 떨어지면 거들떠 보지도 않는 냄비근성은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아파트값이 폭락할 때마다 집은 사는 곳(live)이지 사는 것(buy)이 아니라며 ’아파트의 시대는 끝났다‘고 포장해 왔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로 머지않아 본격적으로 인구가 줄어들고 주택보급률도 높아져 ’부동산은 끝났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다. 매매가가 바닥을 치면 실수요자들은 전세로 몰려 전세가를 올리고, 전세가율이 시장의 임계치를 넘으면 매매가를 끌어올리는 것 역시 반복되었다. 매매가가 폭등하면 영원히 오를 것처럼 개미들이 달려들어 상투를 잡는 역사는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를 보지 않고 보고 싶은 것만을 보려고 한다. 아파트값 파동을 겪게 되면 얻는 것만큼 잃는 것도 많아 모두가 피해자가 되기 때문에 다시는 발생하지 않아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같은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아파트값 파동은 예고 없이 찾아와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고, 시간이 흘러 마음의 상처가 아물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집단 건망증의 악순환 속에 거듭되고 있다. 그리고 아파트값 파동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아파트값 파동에는 마침표가 없다. 단지 쉼표가 있을 뿐이다.
7. 아파트값 7차 파동(2014년~2019년)-호황
우리나라 아파트의 7차 파동은 2014년부터 2019년까지 길게 이어졌다. 7차 파동 전인 2013년의 부동산시장은 전체적으로 전셋값 고공행진에 신규 분양시장은 특히 세종시가 호조세를 띠었고 정부는 4.1대책으로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를 폐지하고 이를 한시적으로 면제했을 뿐만 아니라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허용했다. 이어 8.28대책에서는 공유형 모기지 도입과 취득세율을 영구 인하하는 방안을 발표했지만 결과적으로 정책의 효과는 미미했다. 전세시장은 재계약, 월세전환 등으로 전세물건 부족 현상이 이어지면서 1년 내내 전국적으로 높은 상승세를 보였다. 한국감정원 자료에 의하면, 전국 전세변동률은 4.75% 상승했다. 또한 전국 매매변동률은 전체적으로 0.63%가 하락했다. 지역별로는 서울, 경기, 신도시, 인천을 포함한 수도권 -1.41%, 5대 광역시 1.68%, 기타 지방 0.79%의 변동률을 보였다.
화폐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시스템인 자본주의에서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시장은 오르고 내리는 것을 반복하기 마련이다. IMF 외환위기나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외부의 강력한 충격이 없는 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등락을 반복하는 것이 시장의 작동원리다. 그러나 부동산시장은 정부의 정책과 경기순환 사이클에 따라 일시적으로 오르내림이 심하다. 거기다 고질적인 수급불균형과 주문에서부터 납품까지의 소요 시간이 긴 리드타임(lead time)이 3~4년 정도로 길어 즉각 시장에 반영할 수 없어 시장의 변동성 또한 크다. 따라서 그 누구도 부동산 재테크의 지름길을 제시하기란 쉽지 않다. 호황의 절정기에서 ‘하락의 씨앗’이 싹트고 하락의 밑바닥에서 ‘상승의 싹’이 자란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전체적으로 부동산시장에 훈풍이 분 것은 결국 저금리로 인한 풍부한 유동성에 기인한 수요증가 때문이다. <인구와 부동산의 미래>에서 홍춘욱은 임금피크제로 인한 베이비붐 세대들의 정년연장도 부동산시장을 활성화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즉 저금리에다 임금피크제가 맞물린 결과라고 보는 것이다. 전체 인구의 15% 가량인 1955년에서 1963년생 베이비붐 세대들의 경우 임금피크제가 시행되지 않았으면 만55세로 정년퇴직을 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퇴직 대신 직장을 더 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들의 고용 연장이 중요한 이유는 이들이 보유한 주요 자산인 부동산을 당장 처분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월급 삭감은 있지만 60세까지는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가계자금 유동성 유지에 큰 역할을 한다. 적어도 5년 동안 250~300만여 명이 은퇴 대신 일자리를 지킨 것은 부동산시장의 안정과 상승에 큰 영향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한 청년층들의 취업이나 집사기는 더 어려워진 측면이 있기도 하지만 말이다.
<부동산시장 동향 및 정부 정책>(2014~2019)
년도 | 부동산시장 동향 | 정부정책 |
2014 | 아파트값 3년만에 반전, 분양시장 쾌청했으나 양극화 쏠림심화, 재건축 하락반전, 전세대란 지속 | -2.26대책 전월세 임대소득 과세 -9.1대책 재정비규제 완화 청약제도 개편 공급조절 |
2015 | 전세난 가중 및 강남권 재건축 붐에 기인해 지역별, 부동산 유형별 구분없이 대체로 강세, 반면 임대용 부동산은 초저금리기조 속에 침체 2006년 이후 10년 만에 찾아온 주택시장 강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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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수도권과 부산, 세종은 오르고 그외에는 조정기에 들어섰지만 전체적으로는 뜨거웠다. 박근혜 정부는 3개 권역에 대한 맞춤식 11.3부동산대책 즉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부동산대책인 ‘실수요자 중심 부동산 안정화 대책’이 발표되었다. 청약제도를 조정하여 전매제한기간을 1년 또는 소유권이전 등기시까지로 연장, 1~5년간 재당첨 제한, 2순위 청약도 청약통장 필요, 실수요자 금융지원을 위해 디딤돌대출을 지원하고 부적격당첨자 청약제한 기간을 3개월에서 1년으로 연장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 11.3부동산대책 -전매제한기간 연장 -재당첨제한 -2순위 청약통장 필요 |
2017 | 공급과잉과 버블우려, 역대급 규제에도 불구하고 정권 교체에 대한 기대감 등으로 강남을 중심으로 집값 상승 | -6.19대책 -8.2대책 |
2018 | 서울을 중심으로 잡값 폭등, 공급정책으로 3기 신도시 확정 | -8.27대책 -9.13대책 |
2019 | 저금리기조와 풍부한 유동성, 3기 신도시의 토지보상금 등으로 정부의 고강도 민간택지분양가상한제 실시에도 불구하고 집값 상승 | -5.7대책 -8.12대책 -12.16대책 |
2014년에서 2019년 전국 주택시장은 전반적으로 가격이 상승했다. 2013년을 다시 정리해 보면, 박근혜 정부 출범으로 시장 회복에 대한 기대가 높았지만 부동산시장은 전셋값 고공행진이 지속되어 수급불균형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신규분양 시장은 특히 세종시를 중심으로 호조세를 띠었다. ‘4·1대책’에 따라 리모델링 수직증축 허용과 취득세 감면, 그리고 전·월세 안정화와 매매 활성화에 초점을 맞춘 ‘8·28대책’, 공유형 모기지 확대가 포함된 ‘12·3후속조치’ 등 크고 작은 대책들을 발표했다. 2012년 말 대비 주상복합을 포함한 전국 아파트 가격은 세종시 4.99%, 충남 1.42% 순으로 올랐다. 2012년 말 총리실을 비롯해 6개 정부 부처가 이전한 세종시도 매매가 상승에 한 몫을 했다. 세종시의 아파트 전셋값은 전년 대비 무려 12.23% 뛰며 고공 행진했다. 정부의 공공기관 이전과 탕정산업단지의 근로자 유입으로 전세물건 부족으로 전세가격이 상승한 것이다.
2008년부터 시작된 주택거래가 위축되면서 2013년은 가격이 하락했고 그 결과로 주택은 투자재로서의 특성이 퇴색하면서 소비재로서의 특성이 제대로 부각되기도 했다. 1960년대 이후 경제성장기에 형성되었던 주택의 개념이 바뀐 것이다. 주택을 샀다 팔기만 하면 한몫을 잡던 시절은 가고 자칫 집을 잘못 샀다가는 만만치 않은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돈이 있어도 손해 볼지 모르니 집을 사지 않고, 집값이 떨어져도 본전은 건질 수 있는 전세를 선택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여파로 전세 시장에 수요가 몰리면서 전세가가 수직상승 했다. 집 살 돈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했던 전세가 돈이 있어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안전하고, 비용이 절약되는 소비재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 오르는 전세값을 부담할 수 없는 서민들은 다달이 상당한 돈을 치루어야 하는 월세로 밀려나면서 서민들의 고통이 가중되었다.
주택시장의 위축이 지속되면서 일본식 장기불황의 우려가 커지는 한편 주택거래가 실종되자 부동산중개업소, 이삿짐센터, 인테리어, 도배 등 소위 밑바닥 경제에 종사하는 900여만 명이 불황으로 고통을 겪기도 했다. 집이 팔리지 않아서 새집으로 옮겨가지도 못하고, 대출받아 산 집값이 하락해서 하우스 푸어로 전락할 위험도 상존하고 있었다. 이에 정부는 부동산 경기를 살려 경기를 회생시키고자 ‘4·1대책’, ‘7·24 보완 대책’, ‘8·28 대책’ 등을 연이어 발표하면서 취득세율의 영구 인하,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 분양가 상한제 탄력 적용 등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책의 집행을 위한 선결조건인 법률개정을 위한 <소득세법>, <주택법> 등 26개 법률 개정안이 결국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부동산시장의 불확실성은 오히려 커졌고, 시장의 불신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2014년 주택시장은 정부의 각종 부양책이 힘을 받은 한 해였다. 잇단 부동산대책 발표로 전국 아파트값이 3년 만에 상승으로 돌아섰고 거래량도 크게 늘었다. 전국적으로는 전년 대비 2.51% 올랐는데, 2012년과 2013년 각각 3.27%, 0.29% 하락하다가 3년 만에 상승세로 돌아선 것이다. 그러나 연말로 접어들면서 집값이 다시 하락, 이른바 '초이노믹스'의 약발은 오래 가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연이어 발표된 정부 대책이 어느 정도 주효했다는 평가였다. 비록 ‘2.26 주택임대차시장 선진화방안 발표’에 따른 임대소득 노출 우려 등으로 시장이 잠시 주춤하기는 했지만 7.24 경제정책방향과 8.1 주택담보인정비율(LTV) 및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재건축 연한 10년 단축 등을 담은 ‘9.1대책’이 발표되면서 시장이 상승세로 돌아섰다. 실제 서울도 9.1대책 이후 집값이 오르고 주택 거래량도 크게 늘었다. 아파트 거래량은 2.26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 발표 이후 6월까지는 감소했으나 7월부터 10월까지는 꾸준히 상승세를 보였다. 특히 서울 강남권은 재건축단지들이 수천만 원씩 호가를 높이며 기존 주택시장을 상승세로 견인했고 강북권에서는 노원구나 강북구 등에서 전세난으로 인한 매매수요 증가로 거래량이 늘어났다.
<서울 재건축, 일반아파트 매매가 변동률 추이>(2014년)
<그림>에서 보듯이, 서울 재건축 아파트값은 10월 이후 마이너스 변동률만 이어가고 있고 일반아파트 가격도 보합세다. 업계 전문가들은 부동산 규제 완화가 약발을 잃은데다 연내 처리를 기대했던 부동산 3법(분양가 상한제 탄력적용,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폐지, 재건축 조합원 1인 1가구제 폐지)의 국회 통과 지연도 한 몫 했다는 설명이다.
반면 분양시장은 뜨거웠다. 부동산시장 규제 완화에 따른 호재가 이어져 사상 최대 1순위 청약자 몰려 일반분양 물량이 26만9636가구로, 2008년 조사 이후 가장 많았다. 특히 신도시·재개발 등 특정지역 1순위 청약이 80%를 초과하는 '쏠림현상'이 심했다. 게다가 신규 아파트 분양시장의 기상도는 '쾌청'했다. 역대 가장 많은 물량이 쏟아졌을 뿐 아니라 청약성적도 양호했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의 9·1 부동산대책 이후 청약시장으로 수요자들이 몰리며 2007년 인터넷 청약시행 이후 사상 최다 1순위 청약자가 몰렸다. 여기에다 미분양 아파트도 급속히 감소했다. 그러나 신규 물량의 가격 및 입지요건에 따라 '되는 지역'과 '안 되는 지역간' 쏠림현상이 뚜렷해 지면서 부작용도 곳곳에서 나타났다. 하지만 일반분양 물량은 총 26만9636가구로 2008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일부 특정 지역에만 청약자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수도권에서는 재건축, 신도시, 택지지구에 수요자가 몰렸고 지방도 재개발, 재건축, 혁신도시 등 개발 호재가 있거나 입지가 양호한 곳만 열기를 이어갔다. 반면 소규모 단지나 입지가 좋지 않은 곳은 철저하게 외면받았다. 전세 시장 또한 강세가 지속 되었다.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자 임대사업자 등이 전세 물량을 월세로 전환, 전세 품귀현상까지 빚어지면서 전셋값 상승세가 멈출 줄 몰랐다. 11월 기준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3.48% 상승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상승률 6.04%를 밑도는 수준이었지만 2004년(-1.86%) 이후 10년 연속 전셋값 상승세를 보였다.
2015년 부동산시장은 어려운 거시경제 여건과 달리 전반적인 호황세를 보였다. 특히, 주택시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신규 분양시장의 열기와 함께 재고 주택 시장의 가격도 상승하고 거래는 활발했다. 지역적으로도 수도권, 광역시, 기타 지방 모두 양호한 흐름을 보였다. 상가, 오피스텔 등 수익형 부동산시장에 대한 관심도 집중되었다. 이렇듯 뜨거웠던 2015년 부동산 시장 열기는 저금리로 대변되는 유동성 장세에서 그 첫 번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수익형 부동산시장은 저금리의 고착화로 임대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오피스텔, 상가 등 수익형 부동산에 대한 관심도 뜨거웠다.
이러한 관심과는 별개로 가격은 보합세를 보고 임대수익률은 하락세가 이어졌다. 부동산114 기준 2015년 전국 오피스텔 가격은 전년대비 1% 내외의 변동률을 보였다. 주택의 경우 전세난 및 강남권 재건축 붐에 기인해 지역별, 부동산 유형별 구분 없이 대체로 강세를 보였던 반면, 임대용 부동산은 초저금리 기조 속에 부동산 유형별로 투자자의 관심도가 다소 달랐다. 정부의 부동산거래 활성화 대책, 전세난, 초저금리, 분양시장 호조, 강남권 재건축 붐 등에 힘입어 부동산가격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특히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주택시장의 경우 2006년 부동산시장 호황기 이후 10년 만에 찾아온 봄날이었다.
최근 몇 년간 지속되어온 전국적인 전세난이 초저금리 기조 여파로 더욱 심화 되면서 비자발적인 내 집 마련 수요를 확산시켰고, 이는 매매가격 상승의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 또한 강남권 재건축 붐이 크게 일면서 강남 3구의 재건축 신규분양가격을 3.3㎡당 4천만 원 이상 크게 올려놓았음은 물론, 재건축 이주 수요로 인한 전세가격이 급등하여 인근 지역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을 가져왔다. 분양시장도 분양가상한제 탄력적용, 청약제도 간소화, 초저금리영향, 분양권 전매규제완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강남권 재건축단지, 위례·마곡·광교신도시 등을 중심으로 강세를 보였다. 특히 소형아파트의 경우 도심지 역세권을 중심으로 강세를 보였는데, 이는 매물 품귀 및 전세난과 맞물리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결과적으로 2015년 부동산시장을 이끈 것은 저금리와 금융여건 완화에 따른 풍부한 유동성이었다.
2016년 들어서는 수도권과 부산, 세종을 제외하고는 모두 조정기에 들어갔다. 예상과는 달리 미국의 기준금리는 변동이 없었고 저금리 기조는 계속되었다. LTV와 DTI 규제 완화가 1년 연장되면서 체감 규제 강도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2016년 9월까지 전국 아파트 매매 실거래가격은 2.8% 상승하였다. 수도권은 5.1%, 지방은 1.3% 상승하여 수도권이 더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수도권의 아파트 매매 실거래가격은 금융위기 전 고점이었던 2008년 7월 수준을 2016년 6월에 넘어섰다. 분양시장을 보면, 2016년 청약경쟁률은 고공행진을 지속하여 전국의 청약경쟁률은 15 : 1에 달했다. 전국에서 청약시장이 가장 뜨거웠던 부산은 100 : 1을 넘어서기도 했다. 2015년 총 청약자 수가 416만 명에 이르렀다는 점을 고려하면, 2년 연속 분양시장의 열기는 지속되었다. 특히, 강남권과 서울 내의 재건축 분양, 하남미사, 동탄2 등 공공택지에서 높은 청약경쟁률을 이어갔다.
<그림> 역대 정부별 아파트값 변동률 추이(노태우~박근혜 정부)
2017년 부동산시장은 공급증가가 눈에 뛴다. 전국에서 57만 가구의 주택이 공급됐는데 이는 전년 대비 6만여 가구가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각종 규제에도 불구하고 부동산시장은 강세를 보였다. 역사상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5월 10일 조기 등판한 문재인 정부는 취임하면서부터 규제 일변도의 정책을 연이어 쏟아냈다. 강력한 6.19대책을 시작으로 2019년 12월 현재까지 총 18번의 규제 위주의 대책들을 연이어 쏟아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많은 규제에도 불구하고 집값은 계속 상승했다. 그만큼 부동산시장이 과열되었다는 반증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전 상황을 보면, 2016년 11.3대책과 함께 대통령이 탄핵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겹치면서 태풍 전 고요처럼 불안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지만,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취임하자 불확실성이 일거에 제거되고 새로운 기대심리가 발동하면서 집값은 급등하기 시작했다. 특히 서울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한 초고강도 대책이었던 8.2대책에도 불구하고 2017년 강남권 집값은 2006~2007년 찍었던 고점을 회복했다. 결과적으로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규제를 위한 규제’는 강남 부동산 불패 신화의 ‘씨’까지 말릴 수는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던 노무현 정부의 처절한 패배의 경험을 가지고 있던 문재인 정부는 취임 첫해인 2017년 첫 대책으로 조정대상지역 추가지정과 전매제한 및 대출과 재건축 규제를 강화하는 6.19대책을 발표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미적지근했고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오히려 상승 폭을 키웠다. 뒤이어 투기지역, 투기과열지구 추가지정 및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부활 등을 포함하는 더 강력한 8.2대책을 발표했다. 여느 정부 정책과 마찬가지로 반짝 효과에 그쳤다. 한 달 정도 숨죽였던 부동산시장은 강남을 중심으로 다시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오히려 시장의 부작용만 더 키우는 결과가 되었다.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자 수요자들은 보유가치가 낮은 주택은 정리하고 보유가치가 높은 이른바 ‘똘똘한 한 채’ 전략으로 강남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똘똘한 한 채 열풍은 투자자들의 서울 집중화 현상을 더 심화시키고 있다.
2018년 부동산시장은 냉탕과 온탕을 오간 초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졌다. 상반기에 잠깐 숨죽이던 서울 주택시장은 박원순 시장의 ‘여의도 마스터플랜’ 발언으로 다시 불붙었다. 2018년 7월, 서울시는 ‘리콴유 세계 도시상’을 수상했다. 싱가포르 도시재개발청이 2년마다 살기 좋고 활기찬 지속 가능한 도시를 선정하는 상으로 2010년 스페인 빌바오, 2012년 미국 뉴욕, 2014년 중국 쑤저우, 2016년 콜롬비아 메데인에 이어 2018년에는 서울시가 수상했다. 이들 도시에 이어 서울이 해당 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서울의 성공적인 도시 개발 사례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이 상을 수상하러 간 박원순 시장이 싱가포르에서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 말이 ‘나비 효과’를 일으켜 순식간에 여의도의 부동산가격을 들썩이게 했다. 여의도를 뉴욕의 맨해튼, 싱가포르의 마리나 베이 지역처럼 공원 및 수변에 인접한 문화, 관광, 숙박 시설이 통합된 고밀도의 금융 지구로 재개발하겠다는 이른바 ‘여의도 마스터플랜’에 관한 기사가 언론을 통해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여의도 지역 전체를 통합 개발하겠다는 이야기가 언론에 언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의도 지역 아파트 가격이 수억 원씩 오르는 현상이 나타났다.
여의도뿐만 아니라 용산 지역까지 부동산가격이 계속해서 급등하자 여의도 마스터플랜이 언론에 언급된 지 50일만인 2018년 8월 26일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역행한다는 이유로 기자회견을 통해 이를 보류한다고 전격 발표하여 한바탕 헤프닝으로 끝났다. 그러나 보류한 상태이지 취소된 것이 아니기에 시장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의 여의도 마스터플랜 계획은 즉흥적으로 나왔다고 보지는 않는다.
일제 강점기 시절 간이 비행장으로 사용되던 여의도는 1970년대 여의도 개발계획에 의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1971년 지어진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국내 최초로 엘리베이터와 스팀 난방 시설을 갖춰 그 당시 최첨단 시설의 아파트였다. 이후 여의도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과 함께 여의도를 상징하는 건물들이 지어졌다. 1975년에 국회의사당이 들어섰고 1976년 KBS 방송국, 1979년에는 증권거래소 건물 등이 차례대로 완공됐다. 특히 증권의 중심인 한국거래소가 여의도에 들어오면서 각종 증권사와 금융기관들도 여의도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이후 도시계획은 강남에 초점이 맞춰졌고 최첨단 시설을 갖춘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은 현재 대부분 40년이 지난 노후 단지가 됐다.
박원순 시장은 여의도를 통으로 재개발해 새로운 업무와 주택지로 바꿔 신도시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에 맞춰 서울시는 `여의도 일대 종합적 재구조화 방안(여의도 마스터플랜)` 발표를 앞두고 있다. 여의도 일대 아파트들의 재건축 방향도 이 계획과 연동돼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 시장은 "공원과 커뮤니티 공간을 보장하면서 건물의 높이는 높일 계획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의도는 서울시의 최상위 도시계획인 `2030 서울플랜`에서 강남ㆍ광화문과 함께 3대 도심으로 지정된 곳으로 상업지구는 최고 50층의 초고층 주상복합 개발이 가능하다.-<아유경제>, 2018.7.27.
2018년 6월 ‘집값 잡는 저승사자’라던 종합부동산세 인상안이 생각보다는 약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불확실성을 상쇄시켜 주었고 박원순 시장은 여의도와 용산을 개발하겠다는 마스터플랜 계획을 보류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부동산가격 상승에 기름을 부은 겪이었다.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서울 집값은 폭등했다. 한 달 만에 2~3억원 씩 오르고 그 상승은 강남 외 동대문 관악, 은평 등의 서울 전역으로 확대되자 다시 8.27대책을 통해 투기지역을 추가 지정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다시 종합부동산세 강화, 주택임대사업자 혜택 축소, 주택 보유자 대출 원천 봉쇄 등을 담은 9.13대책을 발표하였다. 그동안 수요억제에만 역점을 두었던 정책이 공급확대를 위해 3기 신도시와 30만 호 대규모 주택공급계획을 담은 9.21대책을 통해 공급확대 카드도 꺼내 들었다. 그리고 12.9대책에서는 남양주 왕숙과 하남 교산 등 4곳의 3기 신도시를 확정했지만 청약시장은 뜨거웠다. 수도권은 미친 집값과 정부의 분양가 통제가 맞물리면서 '로또아파트' 붐이 일었다.
특히 일부 서울 강남권 재건축·재개발아파트 청약시장은 강력한 대출 규제로 현금부자들이 독식하며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했다. 다만 수도권과 5대 광역시 등 일부 지역으로 청약 쏠림이 나타나면서 그 외 지역에서는 미분양이 점차 늘어나 향후 지방 분양시장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2019년 들어서면서 부동산시장은 그동안 발표된 정부 정책이 효과를 보는 듯 시장은 잠시 조용했다. 공시가격 현실화를 통해 종합부동산세 부담을 늘렸고 5.7대책에서는 공급확대를 위해 고양 창릉과 부천 대장 지구를 3기 신도시로 추가 지정하면서 수요억제와 공급확대의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했다. 참여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의지는 아예 부동산 투기의 씨앗을 뿌리 뽑기 위해 8.12대책으로 민간택지분양가상한제까지 발표했다. 시장에서는 마지막 레드카드인 민간택지분양가상한제를 너무 일찍 뽑아든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월 이후 스멀스멀 오르던 집값이 점차 상승 폭을 키워나가면서 ‘시장이 미쳤다’는 말이 딱 맞을 정도로 계속 상승했다. 놀란 정부는 15억 원 이상 주택의 담보대출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역대급 초고강도 대책인 12.16대책까지 발표했다.
그러자 강남을 중심으로 숨고르기와 눈치보기에 들어가는 듯 했지만 2020년까지 그 효과가 지속될지는 의문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정부의 역대급 규제정책에도 불구하고 저금리 기조로 인한 갈 곳 없는 과잉 유동성과 3기 신도시의 막대한 토지보상금에다 공급은 부족하고 수요가 넘치는 서울의 상황을 고려하면 머지않아 다시 상승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과거 정책들을 분석해 보면 규제 일변도의 정책은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켰다. 서울과 일부 광역시에는 똘똘한 한 채로 주택 수요가 쏠리고 있지만, 지방 대부분 도시는 오히려 집값 하락과 미분양 누적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정부의 잇단 규제 정책에도 상승일변도였던 부동산시장이 중국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 공포로 급격히 위축되기 시작했다. 강남아파트도 일단 하락세로 돌아섰지만 장기화 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혹자는 IMF외환위기와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심각하다고 경고한다. 부동산시장 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에 걸쳐 전 세계적으로 불황의 골이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불확실성이 세계 전체를 휩쓸고 있다는 것과 언제 끝날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시장을 공포와 충격으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의 제로금리에 맞춰 한국은행도 역대 최저인 0.75%로 대폭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코로나19의 불확실성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다.
2000년 전, 역사학자 사마천은 "최상의 정치는 백성들이 원하는 대로 하게 하는 자연스러움을 따르는 것이고, 다음은 백성을 이롭게 하는 것이며, 다음은 백성을 직접 다스리는 것이고, 최하의 정치는 백성과 다투는 것이다."라고 했다. 최근 부동산시장과 정부는 빙탄지간(氷炭之間)이라는 고사성어처럼 서로 다투고 있는 형국이다. 사마천의 말을 빌리면 최하의 정치다. 정부는 잡겠다고 하고 부동산시장은 안 잡히겠다고 다투고 있는 상황이다.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규제만으로는 부동산가격을 잡겠다는 것은 최하책이다.
8. 아파트값 8차 파동(2024~2025)?
“인류의 역사에서 권력은 언제나 미래를 예측하는 자 또는 미래를 예측하는 자를 관리하는 이의 것이었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사회가 다양화되고 속도화 되면서 어떤 분야에서건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설령 전문가인 미래학자라 해도 신이 아닌 이상 정확한 예측을 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미래 예측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과거와 현재의 사실과 데이터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을 근거로 하기 때문이다. 정해진 미래에 순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의 리스크를 관리하고 자신의 삶의 방향을 스스로 정하기 위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4지선다형, 정답 메꾸기와 같은 방식에서 벗어나 이성과 직관이 함께 뒷받침되어야 한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는 <어떻게 미래를 예측할 것인가>에서 “미래에 대한 예측은 삐걱거리게 되었고, 역사의 흐름은 하나같이 예측을 비껴갔다. 자본주의건, 사회주의건, 민주주의건, 시장이건, 예상했던 방향대로 진행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 세상은 점점 예측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모든 것이 한없이 복잡하고, 상호의존적이고, 불안정하고, 변덕스러워졌으며, 점점 많은 요인들이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유와 환상에 취한 대부분은 더이상 다른 사람이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은 채 체념하고 현재를 살아간다. 인간들은 이제 그들의 미래변화를 예언하는 책무를 기계에 맡긴 채 자신이 갇혀 있는 감옥의 벽 안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빛의 속도로 변화는 흐름 속에서는 이성과 직관이 반영되지 않은 채 단순히 기계와 통계에 의존한 예측으로는 미래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파트값 8차 파동은 미래의 이야기다. 2029년이 되면 우리나라 총인구가 정점에 달하고 가구 수와 강력한 주택 매수세력인 30대 이상 인구수도 증가한다. 게다가 2020년 이후 10여 년간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의 재건축사업 물량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쏟아져 나오는 데다 저금리에 유동성은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이외에도 17년마다 반복되는 한센 주기설, 부동산 10년 주기설 등을 근거로 2024~2025년 무렵 강력한 부동산 상승 흐름을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다.
2025년 폭락장 온다.
2025년 급등장 온다.
2025년 조정장 온다.
이처럼 전문가들의 의견도 분분하다. 그러나 대다수 전문가들은 2024년~2025년 무렵 상승장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8차 파동이다. 이는 부동산 10년 주기설, 한센 주기설을 대입해 봐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금리는 약 11년을 주기로 움직였다. 지난번 금리하락은 2008년 이후였는데 그로부터 4년 정도 침체기를 맞았다. 그렇다면 다음번 금리 인하는 2019년 무렵이었다. 연말에 코로나19라는 암초를 만나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저금리기조에 양적완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코로나19라는 변수가 생기긴 했지만 경험칙으로 볼 때 다음번 금리 인상기는 2025년~2030년이 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통계청에서 수정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인구수의 정점은 당초 2032년에서 2029년으로 3년 앞당겨질 것으로 예측했다. 인구수와 가구 수가 최대치가 되는 시기와 금리 인상 사이클이 겹칠 가능성이 많아 가격 상승 압력이 심해질 것이다. 따라서 2030년부터는 인구 감소가 뚜렷해져 주택가격 상승 여력이 부족해져 양극화는 심화되고 똘똘한 한 채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다. 물론 변수는 있다. 우리나라가 선진화될수록 일본과는 달리 저임금 노동자 유입이 가속화되어 외국인 비중이 증가할 수 있다. 또 북한과의 교류 활성화 정도에 따라 부동산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당장 통일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교류가 활발해진다면 부동산시장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러한 변수가 없다면 2030년 이후부터는 공급량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서울수도권 중심으로 우선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2025년 아파트 가격 상승을 예측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재건축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국내 주택시장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노후화는 향후 주택시장 변화의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재건축의 경우 과거에는 주택가격 상승이 주요 이슈였으나 이제는 노후화로 인한 도심 재정비가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1980년대 아파트뿐만 아니라 1기 신도시를 포함한 1990년대 아파트의 노후 시기 도래는 향후 시장의 중요한 변화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아파트 노후화는 2010년 후반부터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2013년 기준 1984년 이전 건축한 아파트, 즉 준공 후 30년 이상이 되는 노후 아파트는 전국적으로 약 30만1200호이다.
이중 서울이 약 14만1500호로 절반에 가까운 47%를 차지하고 있으며, 부산이 4만 3000호로 그 뒤를 잇고 있다. 2020년이 되면 30년 이상 노후 아파트는 122만5000호로 2013년 대비 4배 이상 증가한다. 수도권 68만7000호, 비수도권 53만8000호로 각각 282.7%, 342.1% 증가한다. 이중 37만5000호인 서울이 가장 많다. 특히 2020년 이후 재건축 대상 물량은 1기 신도시를 포함하여 374만 호에 달한다. 2020년부터 시작되는 재건축은 2030년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다. 특히 2024~2028년에는 우리나라 전체 아파트의 50% 가까이 30년 이상 노후화된 아파트에 포함되는 시기이다. 향후 10년을 재건축 르네상스 시대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래프1, 2>에서 보듯, 30년 이상 노후 아파트는 2020년 이후 더욱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경기도는 1990년대 초에 준공된 아파트가 노후화되는 2020년 들어 가파르게 증가하기 시작하며, 2025년을 기점으로 서울보다 노후 아파트가 많아질 전망이다. 40년 이상 아파트의 경우, 2013년 기준 전국적으로 약 1만8000호 수준이며 서울이 약 1만5000호로 82%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20년에는 40년 경과 아파트는 약 14만7000호로 2013년 대비 8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센주기설
일반적으로 경기변동을 예측하는 대표적인 사이클이 몇 가지 있는데 기간별로 보면, 40개월 주기로 움직이는 키친사이클, 10년 주기의 주글라사이클, 17년 주기의 한센사이클, 20년 주기의 쿠즈네츠 사이클, 45년~60년 주기의 콘트라티예프 사이클을 들 수 있다. 주기가 가장 짧은 키친사이클의 경우 시장예측과 매출의 불일치에서 오는 재고변동이나 물가와 금리 등을 기준으로 하는 소순환 파동이며, 주 파동인 주글라사이클은 기업의 설비투자 주기를 기준으로 나타나는 파동이다. 보통 주식시장에서는 기업의 설비투자 사이클과 관련이 있는 주글라 파동을 기준으로 경기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쿠즈네츠 파동은 국민소득의 사이클 변동을, 콘트라티예프 파동은 신기술, 자원, 전쟁 등의 변동을 파악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석탄에서 석유 그리고 원자력으로 넘어가는 각 단계나 큰 전쟁 주기 등이 이 사이클을 따라 움직인다고 보고 있다. 여기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소파동과 중기파동인 키친사이클과 주글라사이클 사이에서 14~17년마다 움직이는 한센 주기다.
1965년 경제학자 한센은 세계의 부동산시장은 17년을 주기로 등락한다는 한센주기설을 주장했다. 그는 1860년부터 1930년까지의 부동산 가격 등락을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17년 주기설을 내놓았다. 부동산 가격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 주택 수급 때문에 임대료가 오르면서 가격이 함께 오른다는 것이다.
<그림>에서 보듯이 미국의 경우, 1973년 정점을 만들고 17년 후인 1990년 다시 고점을 이로부터 17년 후인 2007년 주택시장의 고점을 찍었다. 영국과 캐나다도 마찬가지 사이클을 보여주고 있고, 우리나라의 경우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80년 이후를 적용해보면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한센 주기대로 우리나라 주택시장이 움직인다면 다음 정점은 2024년 전후가 된다.
부동산 가치투자를 주장하는 오윤섭씨도 ‘부동산시장 17년 주기설’을 주장했다. 이른바 ‘한센사이클’이다. 17년간 봄(침체기)-여름(회복기)-가을(상승기)-겨울(후퇴기)이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현재는 2007~2024년 사이클이 진행 중이라는 설명도 덧붙인다. 그는 2025년 전후까지 상승장이 계속되는 ‘가을’이 이어지고 이후엔 쇠퇴기가 올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럼 왜 경기순환 사이클 중 주택시장 사이클은 17년일까? 이는 다른 여러 요인이 있지만 신규 주택공급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아시다시피 당장 아파트가 부족하다고 공산품처럼 바로 입주할 수 있는 새 아파트를 공급할 수가 없다. 아파트는 여타으 공산품과는 달리 리드타임이 길다. 착공하고서도 3~4년 걸린다. 신규 주택사업을 계획해서 새 아파트를 완공하는 데는 평균 7년 정도 걸린다. 더 큰 문제는 당장 공급이 부족하다고 건설사들이 바로 아파트를 짓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파트를 지어서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이 돼야 집을 짓는다. 규제 일변도의 문재인 정부가 공급을 늘리는 수도권 3기 신도시를 발표했지만 먼 훗날의 이야기다. 부지 매입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아파트를 짓는다 하더라도 적어도 2025년 정도 돼야 공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임대사업자 등록으로 묶여 있던 주택이 2025년경부터 시장에 나오기 때문에 시장이 요동칠 수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다시 부동산을 생각한다>에서 애널리스트 채상욱은 이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먼저 임대사업자 등록은 2017년 12월 13일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으로 시작됐다. 핵심은 주택 소유자에게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각종 세제 혜택 등을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8.2대책 이후, 임대사업자 등록을 하고 8년의 임대의무기간을 거치면 양도소득세 과세표준의 80%를 면제해주게 되어, 투자 대상인 주택의 임대주택 등록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국토교통부에 의하면 2018년 기준 38만3000명이 임대사업자로 등록했고 등록된 임대주택 수는 130만1000채다. 등록하더라도 임대의무기간 준수 등의 요건을 갖추어야 세제 혜택 등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임대주택으로 등록한 임대주택 130만1000채의 임대의무기간이 끝나는 시점이 2025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임대주택들은 엄청난 양도소득세 혜택으로 한꺼번에 시장에 나올 수 있다. 매물폭탄이 쏟아지더라도 이러한 매물을 투자수요가 받쳐준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언급한 것처럼 30대가 강력한 매수세력으로 등장하고 가구 수와 인구수도 정점을 향해 가기 때문에 크게 문제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25년에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폭등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1986~1996년에 지어진 주택 260만 채가 재건축 연한을 채우고 멸실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문제는 있다. 현 정부는 특히 서울지역 재건축에 대해 규제를 강화하고 있어 공급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 초과이익환수제와 분양가상한제 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전문가들 간에도 폭등의 원인은 조금씩 다르지만 2025년경에 폭등할 수 있다고 예측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또한 역대 진보 정권이 집권하면 서울 아파트 가격이 급등한다는 공식이 있는데 문재인 정권에서도 같은 패턴을 보일지 시장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재건축 르네상스를 앞두고
우리나라는 급속한 산업화의 결과로 대도시에서는 한동네 건너 재개발·재건축이 진행되고 있다. 산업화 시대에 무질서한 도심과 우후죽순 생겨난 주택들이 많았다는 반증이다. 특히 오는 2022년부터 우리나라 주택시장은 한바탕 회오리가 닥칠 예정이다. 부동산 투기 열풍과 함께 1980년대 우후죽순 건설됐던 아파트가 재건축이 가능한 노후·불량주택 대열에 합류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재건축 연한을 채운 주택이 연간 10~15만 가구 정도였지만 2022년부터는 그 3배를 넘는 연간 45만 가구가 쏟아져 나올 예정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 전체 주택 수는 1,669만 2,000가구다. 이 중 20년 이상 된 주택이 762만 9,000가구로 45.7%에 달한다. 이를 아파트로 국한해 보면, 1,003만 가구 가운데 362만, 6,000가구가 20년 이상 되었다. 따라서 2022년부터 노후주택이 큰 폭으로 증가하다 2030년 전후가 되면 노후주택 대체수요가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에서도 2030년 전후로 재개발·재건축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이주수요도 급증하고 2042년까지는 주택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흔히들 인구가 줄어드는 데 왜 계속 주택을 공급해야 하는지를 궁금해한다. 우리나라는 출생률 감소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계속 증가하여 2029년 5290만 명을 정점으로 점차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를 가구 수 기준으로 주택수요를 계산하면 2020년까지 1,770만 가구, 2042년엔 1,917만 가구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주택수요 증가의 가장 큰 요인으로는 1~2인 가구의 증가다. 2015년부터 2045년까지 1~2인 가구가 577만 가구가 늘어나는데, 4인 이상 가구는 279만 가구가 감소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따라서 소형가구 증가가 신규주택 수요의 핵심이다. 주택은 인구 단위가 아닌 가구 단위로 소비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소형가구가 늘어날수록 주거사용면적도 오히려 증가한다. <2014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는 평균 71.4㎡의 면적을 주거에 사용하는데 비해 4인 가구의 1인당 주거면적은 18.8㎡에 불과했다. 결국 소형가구가 증가하면서 1인당 주거면적도 함께 늘어나 주택수요 의 증가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출생률 감소에도 불구하고 출생자수보다 사망자 수가 적을 뿐만 아니라 소형가구로 분화되어 2042년까지 주택을 계속 공급해야 한다. 따라서 대도시에서 신규 대규모 택지 공급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재개발·재건축을 통해서 주택을 공급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서울과 부산은 주택물량의 50% 이상이 재개발·재건축으로 공급되고 있다.
<도시정비법>상 재개발 재건축사업을 할지 말지를 결정짓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건축물의 노후·불량화 정도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상 가장 많은 아파트가 지어진 1990년대(1990년~1999년)에 건축된 주택이 무려 552만 호로 전체 주택의 33.7%에 이른다. 전체 주택 중 동 기간에 지어진 아파트만 374만 호에 이를 정도로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지어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준공 20년 이상된 주택은 762만 8,843가구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전국 1,669만 2,230가구 중 46%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10년~15년 미만과 15년~20년 미만이 각각 15%로 뒤를 이었으며, 신규주택이라 할 수 있는 5년 미만은 13%에 불과했다. 46%가 20년 이상 된 노후주택으로 나타나 향후 재건축이 활발해질 수밖에 없다. 지역별로는 경기도가 136만 5,551가구로 가장 많았으며, 이어 서울 121만 9,207가구, 부산 60만 1,598가구, 경남 56만 9,152가구, 경북 55만 7,629가구 그리고 전남 45만 7,089가구, 인천 44만 7,885가구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재건축 가능한 주택연수를 두고 20년이니 30년이지 논란이 있지만 30년 이상 된 노후주택도 16%나 된다.
현재 재건축 대상이 되는 아파트는 대부분 1980~1989년 사이에 지어진 아파트인데 96만 호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재건축이 집값을 올린다면서 연신 목을 조르고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재건축 르네상스는 아직 도래하지도 않았다. 대도시에서 신규 대규모 택지 공급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재건축을 통해서 주택을 공급할 수밖에 없다. 투자 측면에서도 재건축사업을 눈여겨 봐야 할 이유다.
주택시장의 핵심 지표, 인구 1,000명당 주택 수
인구 천 명당 주택 수를 봐도 서울과 수도권의 주택 부족은 두드러진다. 주택시장 지표 중 ‘인구 1,000명당 주택 수’를 간과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주요 선진국에서는 중요한 주택시장 흐름을 나타내는 지표이자 정부 정책의 기초가 되고 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인구 1,000명당 지역별 주택 수(2016년)를 보면, 여전히 주택수는 부족하다. 특히 서울, 경기도는 절대적인 주택수가 부족하다.
인구 1,000명당 주택수 산식은 비교적 간단하다. 분모는 총인구, 분자는 총 주택 수를 넣고 곱하기 1,000을 하면 된다. 즉, ‘(총 주택 수/총 인구)x1,000명’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여전히 우리나라는 주택부족 국가이며 특히 서울과 수도권은 주택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앞서 우리나라의 주택보급률은 102.6%로 100%가 넘었는데 왜 주택이 부족하다는 것이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적정주택보급률은 120% 정도로 보고 있다. 그 이유는 다주택자에다 공실률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추어 보면 주택보급률이 102.6%에 불과한 우리나라는 주택이 여전히 부족하다.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주택 수는 지역별로 편차가 심하다. 전국 평균은 387호인데 서울은 371호, 수도권 360호, 경기 350호이다. 400호가 넘는 지역도 있다. 가장 높은 경북 453호를 비롯하여 전남 448호, 강원 430호, 충북 426호, 전북 424호를 이어 충남 416호, 세종 404호 등이다. 중요한 것은 서울과 수도권이 우리나라 평균인 387에 한참 못 미친다는 것이다. 서울과 수도권 및 경기가 우리나라에서 상대적으로 주택 수가 적다. 서울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 정책이 도돌이표가 되고 약효가 없는 이유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의 기본 경제원칙에서 공급이 부족하면 아무리 좋은 정책도 효과를 내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정부는 야심차게 ‘서울 집값’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신통치 않은 이유는 공급량 자체가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10년 주기설
한센 주기설 외에 부동산시장에는 10년 주기설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8년 IMF외환위기와 그로부터 10년 뒤 2008년에는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다. 10년 주기로 두 번 같은 경험을 한 것이다. 공히 내부시장의 문제라기보다는 외부 충격에 의한 위기였다. 한 번은 우연이라고 할 수 있지만 두 번은 우연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 사야 하나요>의 저자 우용표는 두 번의 외부 충격에는 공통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기준금리에 의해 촉발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1998년 IMF 외환위기 이전 1994년 1월 5%였던 미국의 기준금리가 12월에는 7.8%까지 치솟았다. 불과 1년 만에 2.8%라는 급격한 금리 인상이 있었다. 이로부터 4년 후 1998년 우리나라에 IMF 외환위기가 닥쳤다. 국난극복이 취미라는 해외 언론의 보도처럼 우리나라는 전 국민들이 금 모으기 운동까지 벌여 예상보다 2년 빨리 IMF로부터 빌린 돈을 모두 상환하여 조기 졸업을 했다. 그러다 보니 부동산 가격도 안정되어 상승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다. 2004년 미국발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악재를 또 만났다. 2004년 1월 3.1%였던 기준금리가 2006년 5월에는 5.03%까지 올랐다. 역시 4년 후인 2008년 금융위기가 닥쳤다. 우연의 일치일까? 이같은 논리를 받아들인다면 미국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 후 4년이 지나면 우리나라 부동산시장에 악재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부터 11년 후 2019년에는 중국발 코로나19라는 신종 바이러스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를 암흑기로 몰아넣고 있다. 이 역시 외부의 요인에 의한 충격이지만 앞서 두 번의 경우와는 달리 저금리 기조 속에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의 파급력은 어느 누구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경제에서 가장 큰 적은 두려움이 아니라 불확실성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언제 종식될지, 백신은 언제 나올지 등 온통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지금이다.
거품이 없다면 부동산이 아니다
대부분‘거품이 낀 아파트’는 매수하지 않으려 하지만 결과적으로 거품이 낀 아파트를 산 사람들은 부자가 되었고, 거품 낀 아파트를 거품이라고 치부한 채 웅크린 사람들은 그 대열에 합류하지 못했다. 항간에 떠도는 아파트 시장의 3대 바보는‘첫째 바보는 강남아파트 팔아 분당아파트 산 사람이고, 두 번째 바보는 분당아파트 팔아 용인아파트 산 사람이고, 세 번째 바보는 용인아파트 팔아 지방아파트 산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단순히 비싸다고 거품은 아니다. 거품은 꺼질 때까지는 거품이 아니다. 거품이 없는 부동산은 투자하지 말고 거품이 있는 곳에 투자하라는 격언도 있다.
거품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라면 생각해보라. 1990년대 휴대폰이 처음 나왔을 때 한 대 값이 당시 가격으로 150만 원 정도였다. 디지털 카메라 기능도 없었고 MP3 기능이나 녹음기능도 없었다. 거기다 크기는 필통보다 커서 자랑스럽게 허리춤에 차고 다녔다. 그러나 10년이 지나 소득은 두 배 이상 늘었지만 휴대폰 값은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국민소득에 비해 휴대폰 값이 내렸으므로 휴대폰 값이 다시 오를까? 단언컨대, 그럴 일은 없다. 더 좋은 성능을 가진 휴대폰이 갈수록 더 낮은 가격으로 출시되고 있다. 그럼 아파트는 왜 휴대폰처럼 내리지 않는 것일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한 마디로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었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리드 타임이 4~5년 정도로 길다. 즉 집이 100채 부족해 당장 짓기 시작해도 입주까지는 4년 이상이 걸린다. 4년이 지나 입주 시점이 되자 또다시 집이 100채가 더 필요한 상황이 반복되어 져 온 것이다. 여기에는 정부 탓이 크다. 건설사로 하여금 집을 많이 공급하게 해야 하는데 자꾸 공급과잉을 우려해 공급을 제한했기 때문에 계속 공급이 부족하자 집값은 오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과 수도권이 대표적이다.
세계 최고의 부동산 거품 도시는?
스위스 최대 은행인 UBS는 2018년 9월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홍콩이 세계 부동산시장에서 거품이 가장 많이 낀 도시로 나타났다. USB는 세계 주요 20개 도시를 대상으로 주택가격과 소득, 경제성장률 등을 비교해서 세계부동산거품지수(GREBI, Global Real Estate Bubble Index)를 발표하고 있는데, 홍콩의 GREBI는 2.03으로 조사대상 20개 도시 중 가장 높았다. 2위는 1.99인 독일의 뮌헨, 캐나다 토론토1.95, 밴쿠버 1.92,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1.65, 그리고 1.61인 영국 런던 순으로 부동산 거품이 위험하다고 진단했다. 반면 미국의 시카고는 -0.62로 부동산가격이 저평가된 도시로 나타났다. 이 지수는 1.5보다 높을 때 거품 위험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0.5~1.5는 과대평가, -0.5~0.5는 적정 수준, -1.5~-0.5는 저평가를 뜻한다. UBS에 따르면 홍콩의 주택가격은 2012년 이후 매년 약 10% 가까이 상승했지만 부동산시장이 주택공급 부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부동산가격을 잡으려는 당국의 정책들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일본의 도쿄는 1.09로 나타나 부동산가격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 부동산 가격이 정점을 찍었던 2006년 수준에 미치지 못했지만 뉴욕(0.68), 로스앤젤레스(1.15), 샌프란시스코(1.44)는 부동산시장이 과열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런던의 경우 가격하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대평가되어 있으며 숙련된 직장인이 런던 도심의 60㎡ 아파트를 구입하려면 14년 동안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다.
서울은 가중치가 낮아서인지 단기간 이상 과열현상이어서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조사 대상 도시에 포함되지 않아서 이번 조사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2018년 대외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세계 주요 도시 소득대비 주택가격비율(PIR)을 기준으로 보면 8.5의 런던, 5.7의 뉴욕보다 높은 11.2로 벤쿠버의 12.6과 비슷한 수준으로 주택가격이 상당히 높은 도시임을 반증해 준다. 실제 지난 5년간 도시의 주택가격은 35%나 올랐다.
그러나 세계 주요 도시 대비 서울 집값 상승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 5년 서울의 집값 상승률이 19%로 40%인 런던과 63%인 베를린 등 세계 주요 도시의 상승률보다 확연히 낮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국토교통부와 국토연구원이 2019년 5월 28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문재인 정부 주택정책 2년의 성과와 과제' 정책 세미나에서 서순탁 서울시립대 총장은 서울을 중심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였던 주택매매 가격이 9·13 대책 이후 안정세로 전환됐다고 평가 했다.
‘주요 글로벌 도시의 최근 5년(2014∼2018년) 주택매매가격 변화’라는 세미나에서 “전국 주택매매가격 변동률은 2017년 1.48%에서 2018년 1.1%로 낮아졌고 2019년 들어 4월까지 누적 기준으로 -0.63%까지 떨어져 안정세를 나타내고 있다”며 “서울만 따지면 2018년 9월 1.25%였던 변동률이 같은 해 12월과 올해 4월 각 0.04%, -0.18%로 내려앉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장기적 분석에서도 한국의 주택가격은 OECD 국가들과 비교해 안정적이다. 2014∼2018년 최근 5년 집값 상승률은 서울 18.9%, 런던 39.6%, 베를린 63.1%, 시드니 54.8%, 상하이52.5% 등 세계 주요 도시의 주택매매가격 변동률보다 낮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0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의 실질 주택매매가격 변동률 역시 0.9%로, OECD 평균인 14.4%를 크게 밑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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