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경영/꿈과 비전

꿈꾸지 말고 꿈에서 깨어나라

김부현(김중순) 2009. 3. 2. 20:30

 얼마전에 블로그를 통해 '꿈에 관한 글'을 보았다는 한 분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은 적이 있었다.

"꿈디자이너! 당신이 생각하는 <꿈꾸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요지의 메일이었다. 메일을 본 순간 뒤통수를 맞은 듯 어안이 벙벙했었다. 나 역시 나름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지만 무릎을 칠 정도의 답을 찾지 못했던 적이 여러번 있었기 때문이었다. 블로그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나 자신을 채찍질하기 위해 쓴 글일 뿐이다. 솔직히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끄적거린 것은 아니었다. 동시에 부족함 투성이인 내가 아직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만한 특별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관련 책 몇 권 읽고 어디서 몇 마디 주워들은 얄팍한 것들로 혹시 말장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거짓된 위선으로 본래의 나를 포장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는지에 대해 되돌아보고 반문도 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 떳떳해지기로 했다. 그저 나 자신에게 충실하기로 했다.

 

미리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대한 결과를 예상하여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말자고 다짐하고, 나의 생각을 전하기로 했다. 내 마음이 가는 데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그냥 맡겨 보기로 했다.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개의치 말자고 다짐했다. 상식이라는 것도 어쩌면 다수가 만들어 놓은 틀일 뿐,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여튼 마음이 시키는데로 흘러가 본 결과 소위 전부는 아니겠지만 '꿈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은 다음과 같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꿈에 대한 끄적거림

 

꿈꾸는 사람들의 모습 하나,

꿈을 가진 사람들은, 늘 책을 끼고 다니고 옷차림은 말끔하다. 아무리 기분이 나빠도 좀처럼 화를 내거나 쉽게 절망하지도 않는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다. 어떤 모임에서도 늘 대화를 주도하기 위해 격론을 벌이고 상대를 설득하여 제압하려고 한다. 설득하기가 어려우면 대화의 주제를 바꿔 버리기도 한다. 그리고는 그 모임과 관련한 이야기가 아닌 '거창한 꿈'과 같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한다. 아니면 며칠 전에 읽었던, 지금 읽고 있는 책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을 몇 권 읽었냐로 상대를 기죽이려 한다. 마치 다른 차원 높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과 차별화하기 위해 겉치장에 관심이 많을 뿐만 아니라, 말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스피치 기법을 배우는데 주력한다.

 

꿈꾸는 사람들의 모습 둘,

그들은 자주 말한다. '나도 처음부터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꿈을 가지면 매사에 열정이 생긴다'고, 그리고 '삶이 즐거워진다'고, 계속해서 '사람이 꿈이 없어서야 되겠느냐'고... 또한 '사람들이 왜 꿈을 가지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들을 이해하는 건 그들이 말하는 소위 '꿈을 가진 사람들', 그들뿐이다. 하지만 그들도 때로는 서로를 경멸하고 비웃기도 한다.

 

꿈꾸는 사람들의 모습 셋,

또한 그들은, 평범한 것을 거부하면서 행동으로 옮기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거창한 꿈'을 만들어 내는데 집착한다. 최고 영예의 왕관을 쓰기 위해 동료들과 치열하게 경쟁한다. 결국 마지막 승자는 행동으로 꿈을 향해 실천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어려운 꿈'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누가 더 '거창한 꿈'을 만들어 내느냐에 따라 승부가 판가름 난다.

 

꿈꾸는 사람들의 모습 넷,

게다가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 '꿈이 없으면 삶의 의미가 없다', '꿈꾸지 않으면 꿈을 이룰 수 없다'는 말을 자주 들먹인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은 기가 차고 아니꼽지만 그 자리를 뜨자마자, '꿈은 말로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일침을 가한다. 또한 '거창한 꿈을 가지는 것보다는 작은 일에 행동하는 게 우선이다'라고 결정타를 날린다.

 

꿈꾸는 사람들의 모습 다섯,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한 마디면 충분하다. 그것은 바로 "나는 꿈이 큰 사람이다"라는 말이다. 문제는 아직도 이 말이 우리 사회에서 항상 통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꿈을 가지지 않은 사람을 비판하고 조롱하기까지 한다. 두려움이 닥치면 의지로 극복하라고 말한다. 나의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따라서 그들은 늘 자신에게 충실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외모나 겉치레 그리고 능숙한 말솜씨 등과 같은 눈에 보이는 것들에 더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다.

  

 

내 마음을 글로 온전히 표현하지 못하는 국어실력이 원망스럽다. 그리고 오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다만 외부적으로 보여주는 것보다는 먼저 자신의 내면에 충실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뿐이다. 게다가 그들의 생각이나 행동들이 잘못되었다거나 옳지 않다는 식의 찬반논리는 더더욱 아니다.

 

바라건데, 꿈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무 자르듯 구분지어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을 뿐이다. 동시에 꿈을 가졌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그 사람의 가치관의 차원이지, 꿈을 이루는 것과는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작은 꿈이라도 꿈은 그 자체로 충분히 소중하기 때문이다.

 

꿈이란 그 사람의 가치관이자 철학을 반영해 주는 것이다. 결코 그 어떤 눈에 보이는 것들에 집착하거나,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내어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꿈이나 가치관, 철학을 거창하게 잘 만들고 계획을 잘 세우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올바른, 자신을 온전히 맡길 수 있는 자기만의 철학에 부합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자주,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의식한 꿈'에 열광하곤 한다. 반복하지만 정말 자신이 좋아하고 즐길 수 있고, 그리고 자신의 철학과 부합하는 것인지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꿈을 대신 꾸어주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거창한 꿈을 가졌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꿈을 가졌다면, 한 번 뿐인 인생에 이보다 더 불행한 일이 또 있겠는가!

 

거창하고 멋진 꿈을 가지는 것만이 꿈의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각자의 꿈을 가지고 있다. 단지 표현하지 않고 말하지 않을 뿐이다. '꿈은 다른 사람들에게 떠벌려야 이루어진다'는 그들만의 통념도 재점검 해봐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떠벌리는 순간, 즐거움보다는 의무감이 앞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무감이 생기면 하기가 싫어지기 마련이다. 의무감에 얽매여 억지로 가다 보면 쉽게 가던 길을 되돌아오거나, 아니면 중도에 포기해 버릴 가능성이 많다. 다른 사람들에게 떠벌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꿈 그 자체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자신만의 꿈을 가져야 하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 그리고 매사에 열정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는 것 모두가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그 모든 것들에 우선하여 '자기 자신에게 먼저 충실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꿈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과 다르게 생각하거나, 이분법적 흑백논리를 들이대서는 곤란하다.

 

파울로 코엘류의 <흐르는 강물처럼>에 이런 말이 있다.

"바보에게 천 가지 지혜를 가르쳐준들 그가 원하는 것은 정작 당신 것뿐이다."라는 아랍의 격언이 있다. 삶이라는 정원을 가꾸어 가다 보면 우리는 문득 어디선가 우리를 엿보는 이웃을 지나치게 의식하게 된다. 그는 제 할 일은 제쳐둔 채, 다른 사람들에게 언제 행동의 씨앗을 뿌려야 하는지, 언제 생각의 비료를 줘야 하는지, 언제 성취의 물을 부어야 하는지 충고하는 데 열을 올린다. 그의 말에 귀 기울이다 보면 결국 우리는 그를 위해 일하는 것이나 다름없게 되고, 우리 삶의 정원은 이웃의 뜻대로 되어간다.

 

남의 정원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결국 제 뜰의 꽃과 나무는 말라 죽는 것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꿈을 가지고 태어났다. 꿈을 이룰 능력도 함께.... 단지 누군가는 그 꿈이나 능력을 끄집어내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을 구별 짓는 가치판단의 기준이나, 성공여부를 가름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결과 못지않게 과정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느냐 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정말 자신에게 충실했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에 발맞춰 우리의 꿈에 대한 견해들도 재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산업화 시대의 마인드로 정보화 시대에 대처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아날로그로 디지털을 대신할 수는 없다.

'남을 따라하는 것에 성공하기보다는, 자신의 꿈에 실패하는 것이 낫다'는 말처럼, 이제는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것들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회의 변화와 더불어 우리의 꿈도 시대와 환경, 그리고 자신의 가치관이나 재능에 맞게 새롭게 디자인해야 할 필요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리모델링을 해야 할 전환점에 와 있다고 생각된다. 당신의 일상이 자꾸 울렁거리고, 덜컹거린다면 당신의 꿈을 리모델링하고 재점검해 봐야 한다. 이 때 고려해야 할 것은 자신에게 결코 부끄럽지 않도록 자신에게 충실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미 정해놓은 꿈이라고 해서 환경변화나 자신의 재능 등과 같은 현실의 상황을 모두 무시한다면, 그 꿈이 이루어지기는 요원할 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의 모습, 자체가 곧 꿈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꿈과 행동에 의해 만들어진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나의 내일 역시 오늘 하는 것들의 산물일 것이다.

 

애써 찾지 않아도 꿈은 이미 내 안에 있다. 단지 잠자고 있을 뿐이다.

꿈꾸지만 말고 꿈에서 깨어나라.

그래야 나아갈 수 있다.

잠자는 꿈은 죽은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