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경영/꿈과 비전

나태함과 여유로움은 1cm 차이다

김부현(김중순) 2009. 4. 9. 22:07

왜 그랬을까?

내 나이 마흔이 될 때까지 누가 있건 없건 늘 무엇인가 바쁘게 하면서 늘 차렷자세를 취하고 있어야 마음이 편했다.

따라서 항상 '~하는 척'을 하며 살아왔다.

공부하는 척, 일하는 척, 아는 척, 잘 난 척, 바쁜 척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었기에 심각하게 고민해 보지도 않았고, 또 고민할 이유도 없었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그랬으니까.

그들도 '~하는 척'을 했으니 누가 누구를 탓하랴.

그러니 서로 묻혀서 간 탓에 그 놈이 그 놈 같고, 이 놈이 이 놈 같았다. 똥 묻은 개가 누굴 나무랄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함께 간다는 그 보편적 상식에 어울려 그냥 갔다.

소위 군중의 편에 서서 말이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군중의 뒤를 따랐다. 그럴듯해 보였고 또 안전하기는 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동참하지 않는 소수를 이상한 놈으로 손가락질하기도 했다. 이상한 놈은 오히려 우리들이었는데도 말이다.

 

니체의 말이다.

"너는 안이하게 살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항상 군중 속에 머물러 있어라. 그리고 군중에 섞여 너 자신을 잃어버려라."

 

소위 내가 속한 군중 속은 도전과 선택을 피해가는 삶의 연속이었다.

우리는 분명 태어날 땐 두 주먹 불끈 쥐고 태어났는데 어느 순간 주먹은 힘없이 펴져 있다. 무엇이든 쓰지 않으면 망가지게 마련이다.

어떤 생물학자는 이를 용불용설이라고 했던가.

 

이유야 어떻든 나는 인간은 끊임없이 더 나은 존재가 되고자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주위를 보면 안타깝게도 변화에 도전장을 내밀기보다는 현실에 머무르려는 사람이 많기는 하지만 이들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닐테다.

살아가면서 현실과 타협하면서 꺾이고 뒤틀린 모습에 불과하다.

제 풀에 꺾여 우리는 더 이상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나태해 질 수 밖에 없다.

 

나태함은 위장술의 대가이다. 대놓고 나태하다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과 중요한 일을 미룬 채, 급한 일에 매달리고 있는 것도 나태한 것이다.

나태함과 부지런함은 운동량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많이 움직인다고 부지런하고, 움직이지 않는다고 나태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많이 움직이고는 있지만 무엇 때문에, 왜 움직이는지 방향성이 없다면 이 역시 위장된 나태함이다.

 

반대로 움직임 없이 쉬고 있더라도 그 자체를 재충전의 기회로 삼아 온전히 즐기고 있다면 이것은 나태함이 아니다. 나태함은 방향성이 없어 마음의 에너지가 분산된 상태를 말하기 때문이다.

꿈을 이룬 사람들도 모든 면에서 완벽하지는 않았다.

그들도 분명 다른 면에서는 나태한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방향성이다.

에너지가 무궁무진 하지 않을진대 모든 영역에서 다 잘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열심히 할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답이다.

오늘 하루 열심히 사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성에 맞게 오늘이 내일로 연결되느냐가 중요하다.

열심히만 하고 방향성이 없다면 이처럼 허무한 일이 또 있을까?

이런 사람들이 흔히 즐겨하는 말이 '나는 열심히 살았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와 같은 말이다.

초점 없이 열심히 사는 것은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니라, 우왕좌왕 살았다는 말이다. 목적 없이 여기 저기 기웃거리지 마라.

 

오늘과 내일을 연결할 고리를 가지려면 삶의 방향성과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그리고 적당한 휴식도 필요하다. 최고의 휴식은 잠을 잘 자는 것이다. 하지만 잠을 지나치게 많이 자는 것도 좋지 않다.

 

짐 로허와 토니 슈워츠의 저서 <몸과 영혼의 에너지 발전소>에 보면, 심리학자인 댄 크립케(Dan Kirp ke)와 그의 동료들은 6년여에 걸쳐 100만명의 수면패턴을 연구한 바 있는데, 그 결과는 아주 드라마틱하다.

평균 7~8시간을 찬 사람들의 사망률이 가장 낮았고, 4시간 정도 자는 사람들은 이들보다 2~2.5배 사망률이 높았으며, 10시간 이상 자는 사람들 역시 사망률이 1.5배 높았다.

회복시간이 너무 길거나 너무 짧은 쪽 모두 사망률 증가의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적절한 수면량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위의 연구결과를 참조해보면, 성인의 경우 일반적으로 하루 평균 7시간 정도가 최상이 기억과 정신건강 상태를 유지시켜주는 것으로 보인다.

잠자는 것도 스스로 통제해야 한다. 잠은 나태함의 도피처가 아니다.

아침에 조금만 일찍 일어나 보자. 출근길이 활기찰 것이다. 일을 할 때도 시키고 맡기는 일만 잘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서 하자.

의외로 시키는 일은 잘 하지만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좋은 말로 하면 욕심이 없는 사람들이고, 안 좋은 말로 하면 경쟁을 포기한 사람들이다.

욕심이 없다기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일 수 있다.

다르게 생각해보고 조금 빨리 움직여 보려고 하지 않았으니, 자신이 정말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

 

나태하다는 것은 머리 아프고 어려운 일은 '내일'로 미루고, 내일이 되면 '다음'으로 미루는 것이다.

하지만 달력에 '다음'이라는 날은 없다.

그리고는 준비가 되면 시작하겠다고 한다. 누군가 물으면 그는 항상 '준비 중'이다.

선택의 가짓수를 무한정 늘려 놓고 그 안에서 최상의 것을 고르겠다고 하는 것 역시 그 어떤 것도 고르지 않겠다는 말이다.

당신이 선택하지 않으면 결국 다른 사람에게 선택을 당할 수밖에 없다.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철학자 '요다'의 말을 되새겨 보라.

"하거나 하지 않는 것만 존재할 뿐, 하려고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하면 하는 것이고, 안하면 안하는 것'이지 '할 것이다'라는 말은 핑계다. 죽을 때까지 '늘 준비만' 할텐가.

 

완벽한 업무계획서를 만들기 위해 준비만 한다면, 출발은 항상 늦어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완벽주의자 역시 나태한 것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준비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시간을 지나치게 분, 초 단위로 짜는데 정신을 팔지 마라. 이 역시 계획에 너무 집착하는 모양새가 된다. 어쩌면 우리는 시간의 노예가 아니라 시계의 노예이다.

시계의 등장으로 시간관리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문명비평가인 루이스 멈포드는 '산업혁명의 가장 핵심적인 기계장치는 증기기관차가 아니라 시계'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시계의 발명으로 정확한 시간관리가 가능해져 사람들로 하여금 일정한 시간에 동시에 움직이게 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통제와 표준화의 확실한 기초가 된 것이다.

 

옛말에 "부지런하기만 하면, 열심히만 하면 밥은 먹고 산다"고 했다.

우리 부모님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그렇게 말씀하셨다. 하긴 그 덕분에 난 지금 밥은 먹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지금은 나태해졌다는 말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나태해졌다기보다는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고 할 수 있겠다. 행동의 여유가 아닌 마음의 여유 말이다.

사실 나태함과 여유로움은 회수권 한 장 차이다. 쉬운 말로 '그게 그거'다. 하지만 이제는 '그게 그것'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느림의 미학'과 'LOHAS족'으로 대별되는 여유로움은 할 일을 하면서도 충분히 쉬는 라이프스타일을 말한다.

나태함은 할 일도 하지 않으면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것을 말한다. 삶의 목표와 방향성이 한 곳으로 집중되어 있다면 여유로움이 생기고, 방향성이 없이 매사에 바쁘기만 하다면 이 또한 나태한 것이다.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당위성에서 벗어나 '무엇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하는가?'를 자문해 보라.

물론 나태한 사람들도 나름의 무기가 있다.

그들의 가장 큰 무기는 핵무기도 권총도 아니다. 바로 '잔머리'와 '입'이다.

잔머리와 입으로 모든 변명과 핑계를 합리화 하는 뛰어난 능력이 있다. 행동하지 않은 것을 잔머리와 입으로 대체하는 귀재들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아주 신중한 척을 한다.

 

"좀 더 신중해야 돼, 아직 확실치가 않아. 실패하면 끝장이야, 좀 더 알아보고 다음에 해야지."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다음'은 하느님의 달력에도 없는 날이다. 또한 '오늘까지만 준비하고 내일부터 하자.'고 한다.

그러나 내일은 또 다른 내일...

내일 또 내일...

내일 또 내일....

내일 또 내일....

 

그들은 '내일타령'을 하면서 늘 가능성보다는 위험성과 실패할 확률을 먼저 따진다.

확률은 이럴 때 써먹으라고 배운 것이 아닌데 말이다.

수학을 제외한 분야에서의 확률이란 100% 아니면 0% 두 가지 뿐이라고 생각한다. 뭔가를 시도하면 100%, 하지 않는다면 0%이다.

50%란 없다.

하면 하는 것이고, 안 하면 안하는 것이다. 어정쩡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닌 상태는 말할 필요도 없이 '안 하는 것'이다.

양다리 걸치기는 연애할 때 써먹는 걸로도 충분하다. 어정쩡함 역시 나태함의 사촌이다..

 

우리는 한 번 실패하면 모든 것이 끝장난다고 배웠던 탓에 뭔가를 시작하기 전에 지나치게 기/승/전/결로 인수분해 하려고 한다.

자꾸 파헤치다보면 답은 두 가지 뿐이다.

'성공하면 좋은데, 실패하면 끝장이다' 라는 막장 시나리오이다.

그러다 더 깊이 파고들면 '실수 없이 완벽하게 하는 것'과 '차라리 안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리고는 온갖 자료를 들이대며 불가능하다고, 또 안 하는 것이 낫다고 자기합리화를 한다. 소위 있는 거라도 잘 지키자는 심보다.

 

이들에게는 거창한 목표만 있고 도전은 없다. 끝없는 준비의 연속, 준비의 천재다.

준비하다 지치고, 준비를 채 하기도 전에 포기한다.

중요한 것은 실패가 아니라 실패를 통해 적극적으로 배우려는 마음 자세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내가 할 줄 몰라서 도전하지 않는 게 아니야. 그런 도전이 의미가 없기 때문에 안 하는 거야!'라며, 잔머리와 입으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사실 꿈을 이루는 과정은 실수와 실패의 연속이다.

우리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이지만 그 기초는 실패가 제공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자. 실패를 두려워한다면 정말 아무 것도 시작할 수가 없다.

 

사고가 겁이 나서 운전을 하지 않을텐가?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담그지 않을텐가?

위험이 많은 일일수록 가치는 그에 비례하여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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