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남의 꿈을 방해하고 짓밟는 것이 주특기인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떡 하나"이다.
그의 주특기는 "유혹"이다.
이들은 인간 세상에 내려와 살고 있는 인간의 탈을 쓴 악마다.
악마들은 누군가 무슨 일을 이루려 하거나 어떤 일에 도전하려 하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을 방해하는 사람들이다.
인간에 빌붙어 사는 이러한 악마들의 특징은,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게 하는 '게으름',
어떠한 시도나 도전 없이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습관',
그리고 한 일보다 자랑함이 높은 '우쭐대기',
하나의 얄팍한 앎으로 지껄이기 좋아하는 '교만함'
그리고 달콤한 사탕발림으로 사람들을 구렁텅이로 내모는 달콤한 '유혹'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토마스 아 캠피스는 그의 저서 <준수성범>에서, "불은 쇠를 시험하고 유혹은 바른 사람을 시험한다."고 했다.
우리의 삶은 크고 거창한 것보다는 사소한 방심과 유혹으로 그 방향이 달라진다.
"부녀자 57명 성폭행 발바리, 무기징역 선고"라는 기사가 하루 종일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이 발바리는 무려 7년 동안 여성의 나이에 관계없이 닥치는대로 금품을 갈취하고 성폭행을 일삼아 왔다고 한다.
그도 처음에는 약간의 호기심과 순간적 쾌락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못이겨 결국 자신의 삶을 돌이킬 수 없는 수렁으로 밀어 넣고 말았다.
꿈을 이룬 사람들이 대단한 것은 결코 이러한 달콤한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어쩌면 바깥의 유혹보다는 내 안의 유혹이 더 겁나고 무서운 것이다.
2001년 작고한 아동문학가인 정채봉님의 선집 <나 내가 잊고 있던 단 한 사람>에서 그는 '유혹'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10대 때는 유혹이 눈에 몰려 있는 듯했다. 보는 것, 그것에 대한 탐이 어느 때보다도 강했다.
20대에 들어서는 유혹이 귀로 쏠렸다. 귀가 유난히 밝았던 것 같았고, 들리는 것마다에 호기심을 느꼈다.
30대에 들어서는 혀에 유혹을 느꼈다. 입만 열면 교만과 모함이 쏟아져 나왔다.
40대에 이르러서야 남이 나를 유혹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유혹하고 있슴을 깨달았다."고.
그렇다.
나태와 게으름, 미룸의 습관 같은 달콤한 악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저 몸이 편한대로 살아오지 않았는지 반문해 볼 일이다.
'모든 것은 내 탓이다'라는 것을 인정하는데서부터 해결책이 나타난다.
내 스스로 나를 다스리고 지배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꿈을 이룬 사람인지도 모른다.
만물이 꿈틀거리는 신록의 계절....
만물이 쉼표를 찍고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하는 계절이다.
늘 삶에 회의가 일어 고개 들어 푸른 하늘을 보는 것조차 잊고 지내왔지만 녹음 짙은 푸르름과 겨드랑이 사이로 스쳐가는 상큼한 바람을 느끼며, "그래, 그래도 살아보자, 그래. 다시 시작하는거야."하고 다짐을 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세상 탓하며 먼지 나는 뒷골목 포장마차에서 살아온 날을 원망하며 소주잔을 기울이기보다는, 살아갈 날에 대한 결심을 해 보자.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 대한민국은 이른바 각계각층의 '시국선언'으로 혼란스럽다.
시국선언이란 현재 당면한 국내 및 국제 정세나 대세 그 나라의 시대상황 특히 정치나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있거나 뭔가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때 교수들이나 재야인사들 같은 지식인들이나 종교계 인사들이 자신들의 우려를 표명하며 해결하기를 촉구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시국선언문 발표가 자주 있었다.
하지만 작금의 시국선언은 이른바 교수나 종교계와 같은 지식인들 뿐만 아니라 그간 사회적 약자로 치부되었던 일반 주부, 개인들까지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그만큼 지금의 시국이 절박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주 내용은 민주주의 후퇴와 인권탄압이다.
어찌됐던 시국선언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이럴때일수록
정부는 정부대로,
고위층은 고위층대로,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그리고 지식인은 지식인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달콤한 유혹이나 지름길로 빠지지 말고, 자신의 역할에 더욱 충실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특히 정부는, 옛날 이야기 중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 나오는 호랑이가 여인을 유혹하는 것처럼,
더 이상 우리 국민들을 "떡 하나"로 유혹해서는 안 된다.
외딴 두메에 홀로 어린 오누이를 키우며 사는 여인이 있었다.
논밭 한 뙈기도 없어 여인은 품삯 일을 하러 다녔다.
찬바람이 매섭게 불던 어느 날,
그 날도 여인은 아랫마을에서 품삯 일을 하고 떡을 하는 일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별이 초롱초롱 떴을 때서야 떡을 머리에 이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여인이 고갯마루를 지나자 배고픈 호랑이가 턱 버티고 앉아서 여인에게 수작을 걸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여인은 떡 하나를 호랑이에게 건네고 몇 걸음을 옮기자, 엉큼한 호랑이는 졸졸 따라오며
또 다시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를 연발했다.
마침내 여인의 떡 바구니가 바닥이 나자, 그 다음 호랑이가 요구한 것은 "팔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였다.
그리하여 그 여인은 두 팔과 두 다리를 모두 잃고서야 오누이가 기다리고 있는 오두막 앞에 도착했다.
호랑이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는 말로 오누이까지 잡아먹으려 했다.
물론 이 이야기는 호랑이가 오누이까지 잡아 먹으려다 수수깡에 똥구멍이 찔려 죽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오누이는 무사히 하늘에 올라가 해와 달이 되었다.
그렇다.
호랑이가 여인을 보자마자 냉큼 잡아먹었다면, 결코 오누이가 사는 곳을 알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호랑이는 끊임없이 여인을 유혹하여 모든 것을 여인 스스로 내 놓게 했다. 어찌 보면 호랑이는 참으로 똑똑했다.
그런데 요즘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가 변질되어 이른바 "떡값"이라는 은어로 쓰이고 있다.
여기 저기 떡값뇌물이니 떡값검사니 하는 말로 시끄럽다.
하지만 이제 우리들은 "떡 하나"에 유혹될 만큼 어리석지 않다.
세상이 아무리 시끄럽고 덜컹거려도 "그래도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는 세상"이다.
부디 "떡 하나"라는 악마의 달콤한 유혹에 빠지지 말자.
"떡 하나"의 달콤한 유혹에 한 눈 팔기보다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작은 일부터 시작해 봄은 어떨까?
더 이상 "떡 하나"에 속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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