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을 읽다/다시 읽고 깊이 읽기

2. 다시 읽고 깊이 읽기-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김부현(김중순) 2012. 3. 23. 16:38

다시 읽고 깊이 읽기-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제 1 장  나를 찾아가는 시간
 제 2 장  세상과의 대화
 제 3 장  나를 감동시키는 자기혁명
 제 4 장  자기혁명을 위한 배움과 성장
 제 5 장  미래를 여는 변화와 도전


 

당신은 지금 삶의 주인인가? (.....)

공감력 부재의 현장이었다. 필자는 나름대로 학생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고민을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한 채 상투적으로 대했던 것이다. 시골아이들의 가슴에 얼음 기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미래를 이미 그려놓았고, 꽤 많은 수가 벌써 자신들이 이 사회에서 변방에 불과하다는 자조와 체념에 지배되고 있었다. (프롤로그 중에서)

 

 제 1 장  나를 찾아가는 시간


 

방황은 노력의 다른 이름이다. (.....)

여기서 핵심은 '방황은 노력의 증거'라는 것이다. 생의 과정에서 온갖 유혹과 욕망에 의해 무너지고, 죄를 짓고, 심지어 악행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결국 인간은 '노력하는 한' 구원의 길을 찾아가게 되어 있는 존재다. 인생에서 방황은 곧 시행착오일 뿐인데 우리는 이것을 죄악시하곤 한다. 방황은 죄악이 아니다. 인간에게 방황이 없다는 것은 나아가려는 의지가 없다는 말과 같다. 방황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실험이며 그것을 넘어선 것이 성취다.

(16-18쪽)

 

관습을 깨려면 나쁜 습관부터 버려라.

그러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좋은 습관을 만드려는 것보다 나쁜 습관을 버리려는 의지요, 노력이다. 우리는 먼 길을 가는 여행자다. 그런데 그 긴 여정을 떠나면서 모래주머니를 주렁주렁 달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잘 돌아보면 우리의 어깨는 나쁜 습관이라는 모래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당연히 걸음은 무겁고 몸은 지친다. 이때 아무리 좋은 습관이라는 물을 마셔도 걸음은 점점 무거워질 뿐이다. 길을 떠나는 자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불필요한 짐을 내려놓는 것이듯, 우리도 나쁜 습관을 하나씩 내려놓아야 한다. (25)


 

 현실을 제치고 본질을 통찰하는 능력 (.....)

하지만 문제는 본질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상은 복잡하지만 본질은 단순하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현상의 포로가 되기 쉽다. 일주일만 뉴스를 멀리해도 마치 외딴 섬에 떨어진 것과 같은 소외감을 느낄 정도니 정보 습득에 대한 두려움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많은 정보가 실제로 나에게 필요한 것인가라는 점이다.(.....) 이렇게 현상에 속지 않고 본질을 들여다보면서 대상을 명확히 하는 태도는 항상 중요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현실의 포로가 되는 이유는 현상이 살갑기 때문이다. (28) 


 

 

침묵은 또 다른 형태의 열정이다.

침묵은 나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각하는 나는 사실상 침묵 안에 존재하며, 침묵을 통해 나를 관찰하면서 '자아' 혹은 '내면'이 성장한다. 침묵은 온갖 충동과 감정, 유혹에 흔들리는 나를 관찰하고 경고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침묵의 순간, 세계에 대한 나만의 사색이 시작되는 것이다. 침묵은 단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침묵하는 순간 외부와 나를 분리시키므로, 침묵한다는 것은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것 이상이며 관성에 의한 모든 행위를 멈춘다는 의미다. 그래서 타인에 대해 외부에 대해 침묵한다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열정이다.

(.....)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침묵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침묵한다는 것은 시작과 끝을 인식하는 것으로, 사람을 겸허하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또한 말로 표현되는 모든 것의 허무를 알아차리고 진실과 거짓 사이이서 기만당하는 나를 보호하는 중요한 장치이기도 하다. (.....) 진정한 침묵은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맞이하는 것이다. (34-35)

 

교육에 대한 데카르트의 통찰 (.....)

'격물치지'라는 말이 떠올려지는 데카르트판 공부법인 셈인데, 지금 돌이켜 봐도 이보다 윗길은 없는 듯싶다. 어쨌든 데카르트는 이 학문 대한 네 가지 규칙과 함께, 사회인의 태도에 대해서도 네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1. 나 스스로 명확하게 '참'이라고 인정한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참'이라고 받아들이지 마라. -> 계속 의문을 가져라.

2. 모든 문제를 큰 덩어리로만 바라보지 말고 가능한 작게 세분하라. -> 건너뛰지 말고 완전히 이해하라.

3. 가장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대상에서 점차 단계를 밟아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에 접근 하라. -> 토대가 중요하다.

4. 어떤 항목도 빠지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모든 항목을 열거하고, 그것에 대해 광범위하게 재검토하라. -> 완전할 때까지 복습하라.


 

진실을 무력화시키는 키치의 비겁성 (.....)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한 장의 설계도에 의존해 세포 분열하듯 대량으로 찍어낸, 비슷한 모양의 성냥갑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진짜가 사라진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도 복제되고,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도 정밀한 화소의 사진에 의해 대체된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보다 복제품이나 대체물에 기반해 살아가는 것이다. (55)

 

정작 예술에서만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삶도 그렇다.

사람들은 삶이 지향하는 가치를 잃어버리고, 수단인 돈과 명예와 권력만이 목표가 되어 버렸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생존이라는 당위를 목적으로 삼은 채 살아가고, 시스템은 민주공화국을 외치고 있지만. 이제는 어느새 '민주'나 공화국'이라는 말의 의미조차 희미해진 지 오래다.

이런 가치혼란의 시대에 우리는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창의성은 새로운 재능이 아니다.(.....)

즉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관점에서 보면, 기존의 것을 새롭게 해석하고 실마리를 찾아 조합하고 재창조하는 능력은 창의성에 가깝고, 특정 분야에서 평균 이상의 뛰어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타고난 기초능력이 큰 것은 천재성에 가깝다. 창의성은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새로운 물결을 만들고 시대를 선도하는 새로운 시각과 독특한 해석능력을 가리키는 셈이다. (56)

 

과정이 있을 때만 찾아오는 행복 (.....)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원하던 것을 손에 넣었을 때 느끼는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고 한다. 자동차, 집, 돈... 그 모든 것이 막상 손에 들어온 다음에는 뛸 듯했던 처음의 기쁨이 금새 사라지고 새로운 갈망이 시작되기 마련인데, 이것을 보통 권태라 부른다. 그러니 권태가 수반되지 않는 진짜 행복을 얻으려면 시간이 경과해도 처음의 기쁨이 퇴색하지 않는 대상을 획득해야 한다. (65-66)

 

예를 들어, 로또에 맞아 10억 원의 당첨금을 받았다면 그 기쁨은 충격적이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기쁨은 감소되고 다시 새로운 갈망에 의해 불행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권태가 따르지 않는 필연적 행복의 대상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대부분이 오늘도 열심히 추구하고 있는 돈이나 명예 등이 아니라 지식, 사상, 철학, 재능, 기능처럼 함께함으로써 더욱 빛나고 가치가 변하지 않으며 새로운 가치를 끊임없이 창조해 내는 것들이다.(.....)

결국 행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는 셈이다.

 

관계 속의 나 (.....)

이렇듯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목표들도 어쩌면 이런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피라미드의 좀 더 상위에 서고자 하는 욕망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래서 혹여 우리가 피나는 노력으로 스스로의 성취에 도달했다 해도, 그때부터 우리를 덮치는 것은 고독이다. 마이클 잭슨이 앙상하게 말라버린 육체를 추슬러며 살다가, 위장을 음식물 대신 약물로 가득 채우고서야 하루하루의 삶이 가능했던 것은, 그만큼 그의 존재를 괴롭히는 실존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계 최고의 가수라는 명예는 결국 관계 속에서의 정점을 의미하고, 그것은 무수한 인간 혹은 사회와 얽히고설킨 관계를 유지할 것을 강요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정점에 선 대가다. (74-75)

 

관계망 속의 내가 아닌 나를 유지하는 법 (.....)

관계 속에서 우리를 규정하는 속성은 거부하면 거부할수록 강하게 우리를 압박한다. 결국 해법은 속성과 실존적인 고민을 함께 병렬로 처리하는 것이다. 속성이건 실존이건 무엇이 우선하면 어떤가. 우리가 철학자의 논쟁에 놀아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우리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열심히 뛰고 있지만, 그 안에서 우리 자신을 덫치는 고독과 소외와 갈등 역시 두려워하지 말고 받아내야 한다. 만약 그것이 힘들다면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일어나면 된다. 누군가 말했듯, 넘어짐은 단지 일어나기 위한 방법을 배우기 위한 것일 뿐이다. (77-78)


 

 

가치를 느끼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또 일찌감치 가치의 잣대를 갖고 있었던 사람이 있는가 하면, 뒤늦게 가치를 발견하는 사람도 있고, 영원히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 중 가장 불행한 사람은 뒤늦게 가치를 발견하는 사람이다. 차라리 영원히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구슬이든 보석이든 내게 가득 주어졌다는 것으로 미소를 지으며 행복하게 눈을 감을 수도 있다. 운이 좋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치의 잣대를 가지고 있지만 가치지향적 선택이 아닌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다른 것을 노력해야 하는 사람과, 뒤늦게 가치를 인식하고 자신의 성과를 전면적으로 부인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극도의 불행에 빠진다. 전자의 불행은 지속적이고 일상적이지만, 후자의 불행은 급작스럽게 다가온다. 어느 순간 벼락처럼 뇌를 파고들어 극도의 충격과 허무에 빠지게 된다. (81-82)

 

가치부재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

흔히 인생은 성공과 실패의 연속이라고 한다. 하지만 가치의 실패는 단 한 번으로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 결과론으로만 보면, 아흔아홉 번의 성공을 거듭했어도 백 번 째의 실패는 완전한 실패다. 그 한 번의 실패로 인생에서 되돌릴 수 없는 치명적인 결과를 떠안는 것이다. 하지만 과정의 실패는 굳은살이 되어 단단한 발판이 된다. 영화 <쿵푸펜더2>를 보면 "Inner Peace!"라는 대사가 반복된다. 내면의 평화, 그것은 가치지향을 가리킨다. (85)


 

발산하지 말고 응축하라.(.....)

청춘의 시기에는 열정이 앞서고, 열정은 신중함과 병립할 수 없다.

열정이란 좌고우면하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가서 꽝 하고 부닥치는 충동과 자신감이다.

청년의 시기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적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일단 행동이 생각보다 많고 깊은 생각보다는 즉흥적 충동이 앞선다.

이 점은 청년기의 장점이기도 하다.

사람은 모두 태어나서 죽는다.

삶의 시작과 끝은 모두 같은 것이다.

하지만 삶에 특별한 흔적을 남긴 사람들은 다르다.

그가 걸어온 길은 다른 사람들에게 떠밀려온 길이 아니고,

그가 생각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주입한 생각이 아니다.

청년기는 뜨거운 시기이며 청춘은 발산하는 것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인생에서 원없이 발산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시기라고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청년기에 필요한 것은,

누구나 생각하는 발산이 아닌 응축이다.

 

청년의 가슴에는 창의와 존재의 불덩어리가 돌아다니는데, 그중에서 창의의 불꽃은 새로운 것을 열망하는 뜨거움이다. 청년은 싫증을 빨리 내는데, 그것은 새로움에 대한 갈구와 지루한 것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난다. 이는 변화를 거부하지 않는 혁신의 모습이고 세상의 모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힘이 된다. 또 다른 불덩어리인 존재의 불꽃은 내가 주인임을 깨닫는 힘이다. 청년기는 굴종하지 않고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려는 의지가 가장 강한 시기이다. 이런 의지와 자존심은 청년으로 하여금 도전하게 하는 힘의 근원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싹튼 뜨거운 기운을 직시하지 못하면, 그저 가슴이 다 타버릴 듯 답답해 아무데나 토해내고 싶어진다. 하지만 내 안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무엇을 향하는지 모르고, 단지 뜨겁다는 이유로 그 불꽃을 뱉어버린다면, 삶은 탄식과 방황으로 이어진다. 이런 청춘의 방황은 도피에 불과할 뿐, 경험도 추억도 아니다.

 

우리의 삶에서 20대는 준비, 30대는 질주, 40대는 수확의 시기다.

20대에 준비하지 않으면 30대에 질주할 힘이 없다. 사회에 나가 자신이 준비한 모든 것들을 쏟아내기 위해서는 20대에 지구력과 근력을 키워야 한다.

많은 지식을 쌓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깊이있는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질주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나가는 시기가 바로 20대인 것이다. 20대에 힘을 비축해 두지 않으면 30대는 질주는커녕 출발선에 주저앉기 십상이다. (87-91)

 

2012년 3월 19일 <중앙일보>에 나온 한 기사에 눈동자가 멈췄다.

삼성그룹 직무적성검사, 일명 ‘싸트(SSAT)’를 보러 온 젊은이들이 무려 5만 명이었다고 한다. 전국 46개 시험장에서 동시에 시험이 치뤄졌는데, 이를 위해 한두 달 전부터 각 대학 도서관은 SSAT 준비생으로 넘쳐났다. 취업학원들은 특별 강좌를 앞다퉈 개설했다. ‘삼성고시’라는 말이 실감 나는 상황이다.

 

이렇듯 기업과 취업 희망자들의 이해가 맞물려 벌어진 진풍경, 그러나 개인적으로 좀 놀랐다. 좀 불편했다. 취업예비생 20만명 중 4분의 1인 5만 명이 응시했다는 사실에 놀랐고, 삼성이 아무리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에다 청년 취업난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진풍경이 불편했다. 마치 삶에 대한 방향성과 주체성 없이 '좋다'는 곳에 몰려다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모든 베스트셀러가 모두에게 베스트셀러는 아니다.

삼성이 누구에게나 최고의 직장일까?

 

취업은 자신의 일을 찾는 것이다. 잘하고 좋아하는 일, 자신의 지향과 가치관에 맞는 일을 찾는 게 정석이다.

더군다나 사회에 첫 발을 들이는 젊은이라면 긴 호흡으로 그런 원칙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다소간의 불안감을 뚫고 안정된 직장 대신 꿈과 야망을 택한 젊은이들이 더 많아져야 우리 경제와 사회가 한 단계 진화할 수 있다. 청춘들의 주체성 결핍으로 우리는 훌륭한 도예가와 철학자, 벤처기업가들을 잃어버리고 있다. 불안한 현실에 순응하기보다는 올곧게 자신의 길을 가라는 자기계발서와 기성세대들의 충고를 가슴 깊이 새겼으면 한다. 

 

 

제 2 장 세상과의 대화


 

많은 말에는 반드시 득과 실이 있다.(.....)

말에서 중요한 덕목 6가지이다.

 

 

1. 호흡을 고르라

호흡을 고르기 위해서는 대화 도중 말을 하고 싶을 때 딱 2초만 쉬면 된다. (....)

말은 늦추되 일단 내뱉는 말은 충만해야 한다.

촌철살인의 비유가 있고, 그것으로 상대의 마음을 흔들 수 있어야 한다.

 

2. 설득하라

나는 과연 그를 설득하고 있는가, 아니면 스스로를 과시하고 있는가, 그것도 아니면 말로써 부족함을 달래고 있는가? (...)

원래 말의 목적은 설득이다.

즉 말의 대상은 타인이다. (.....)

우리는 보통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때 신중해 보이는 사람의 의견에 더 귀를 기울인다.

 

3. 분노를 다스려라

나를 분노하게 하는 일에 대해 즉각적으로 화를 내는 것은 분노의 상대를 확실하게 적으로 돌리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누군가 나를 화나게 했을 때 한번 숨을 고르고 상황을 돌아본 후, 다음 국면에서 문제를 다시 생각하는 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용기다.

 

4. 진실하라

<진서>라는 책을 보면 '수석침류(漱石枕流)'의 고사가 나온다.

진나라 때 손초라는 사람이 노장사상에 빠져, 윌든 호수가의 데이빗 소로우처럼 살아가기로 결심하고는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 왕제에게 "돌을 베게 삼아 자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하는 삶을 살고 싶다(침석수류)"라고 말해야 할 것을 "돌로 양치질하고 물을 베게로 삼겠다(수석침류)"라고 말하는 실수를 범한다.

이 말을 들은 왕제가 웃으면서 말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자, 손초는 금세 "물을 베개로 삼겠다는 것은 옛날 성인인 허유처럼 부질없는 말을 들었을 때 귀를 씻으려는 것이고, 돌로 양치질을 한다는 것은 조약돌로 얀치질을 하겠다는 뜻이라네."라고 변명한다. 이 일화는 단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말의 신뢰를 잃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요컨대 말이 진실하려면 겸허하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겸양의 자세로 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5. 평가를 자제하라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특히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극히 주의해야 한다.

타인의 단점을 장점보다 먼저 지적하는 것은 상대방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고 자신의 경박함을 드러내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 누군가를 쉽게 평가하는 사람은 가급적 멀리하는 것이 좋다.

 

6. 같은 말을 반복하지 마라

말을 잘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평소에 많이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다.

대화 중 모든 것에 대해 의견을 말하기보다 내가 평소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에서는 듣기만 하고 생각이 정리되어 있는 부분에서만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다. 그러면 타인은 내가 하는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

말은 한 사람이 살아온 흔적이기 때문에 거친 언행을 일삼아온 사람은 아무리 감추어도 그것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송곳은 언젠가 주머니를 뚫고 나오게 되어 있다. (97-102)


 

진실을 보고 행하는 참지식인이 되자. (.....)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가? 우리 사회는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친미와 반미, 자주와 외세, 냉전과 평화 등 무수한 관용어들에 둘러싸여 있다. 이런 혼란 속에서 '말하기의 무능성'에 빠진 누군가는 스스로 내뱉은 말이 어떤 의미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국가와 국민, 애국, 좌빨과 수꼴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밷는다. '생각의 무능성'에 빠진 누군가는, 주류가 내세우는 프레임에 걸려 비판적 분석의 능력을 잃어버렸다. 또 '판단의 무능성'에 빠진 누군가는 조국에 대한 충성이라는 자의적 판단으로 다른 누군가를 적으로 규벙하며 모욕하고 공격하기도 한다. 그럼 과연 이들 중에 누가 악이고 누가 선이라는 것일까. (107)

 

프레임, 나를 가두는 감옥 (.....)

우리는 사물이나 현상을 대게 프레임으로 해석하는데, 이것은 곧 현상을 이해하는 특정한 맥락이 사회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렇게 맥락화된 사고는 사상의 전면적인 발전을 저해하고, 나를 주류의 논리에 종속되도록 만드는 나쁜 습관이다. (111)

 

그러니 스스로 사안의 본질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는 한, 이런 프레임들에 갇혀 상대를 무조건 '틀렸다'고 규정하며 적으로 삼게 된다. 즉 나는 없고 그물에 걸려든 가엾은 물고기만 남게 되는 것이다. 사물은 내가 인식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인데, 나의 인식이 정교한 프레임에 걸려 오작동한다면 나에게 사물은 혹은 우주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고, '바람풍'을 '바담풍'이라고 부르는 우를 범하게 된다.

 

시장만능주의가 청년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기업들이 자신의 이익만 증가하면 그만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시장만능주의를 견제하지 못하면 우리 청년들의 미래는 앞으로 더욱 어두워질 것이다. 그나마 남아있던 전문분야, 첨단분야의 일자리마저 중국이 흡수해 버릴게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한편 이처럼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에서 모두가 나만 살아남겠다고 사회문제를 등한시하고 패배주의에 젖어 나의 생존을 위한 스펙경쟁에만 몰두한다면 남은 길은 공멸뿐이다. (122)

 

공정거래위원회 직원들이 휴대전화 유통 관련 조사를 위해 한 전자회사를 급습했다.

사내 무선사업부로 가려던 공정위 조사관 5명은 정문출입구에서 보안용역업체 직원들에게 가로막혔다.

사전 약속을 하지 않으면 담당자가 나와야만 들어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조사 공문을 내밀었지만 "대통령도 사전 약속 안하고 오면 못 들어간다"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출입을 지연시키는 동안 해당 부서에서는 자료를 폐기하고 조사 대상자의 PC를 교체하는 동영상이 9시 뉴스에 보도되었다.

뿐만 아니라 출입을 저지한 경위를 공정위에 소명하면서 PC를 교체한 직원의 출입 기록을 삭제하는 등 허위 기록을 제출하기도 했다.

 

이것은 약 1년 전인 2011년 3월 24일 눈만 뜨면 세계 일류를 외치는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대통령도 약속 없이 오면 입장할 수 없다는 오만함이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에서 일어난 것이다.

대통령은 물론 국가와 국민 전체를 보는 삼성전자의 시각을 그대로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공정위는 공권력이다.

공권력은 국민이 부여한 것이다.

따라서 국민을 우롱하고 공권력을 우습게 아는 삼성전자의 초우월적 권력을 누가 바로잡을 수 있을까?

심히 걱정스럽다.

항간에 떠도는 '삼성공화국'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일개 기업이 국가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있다.

 

이 사건은 바로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가 지적한 '기업사회'의 폐해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그는 <1997년 이후의 한국사회의 성찰>이라는 책에서 한국사회를 기업사회로 규정하면서 기업사회의 특징을 14가지로 제시하였다.

 

1. 자본의 고유한 권력인 생산지휘권이 극대화되고 사회영역으로 확대된다.

2. 정치·사회가 기업 활동을 통제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에 봉사하는 역할을 한다.

3. 기업의 생산성이 곧 국가나 사회의 생산성으로 간주된다.

4. 1인1표의 원리가 아닌 소유 지분 만큼의 권리 원칙이 기업 외의 사회조직에도 적용된다

5. 대기업 및 기업가단체가 단순한 경제문제뿐만 아니라 정치·사회 영역까지 간섭한다.

 

6. 정치활동, 정책생산, 법원, 미디어 등은 주로 대기업의 이익을 보호하는 쪽으로 기울어진다.

7. 국민·시민·주민 혹은 기업의 판매망의 모든 사람들은 곧 소비자로 불린다.

8. 모든 정부·사회조직의 우두머리는 경영자 CEO를 이상적인 역할 모델로 설정한다.

9. 조직의 목표가 기업과는 가장 거리가 먼 조직, 예를 들면 교회와 학교까지도 기업의 모델에 따라 자신을 재조직한다.

10. 정치·사회 엘리트층까지도 주로 기업 경영자출신이 차지하게 된다.

 

11. 노조활동은 대체로 기업 활동의 방해물로 간주된다.

12. 행정부는 기업조직을 모델로 한다. 정부 부처 중에서는 경제부처가 다른 모든 부처를 압도한다.

13. 경제학이 사회과학중의 사회과학이 되고 , 또 다시 회계학과 경영학이 경제학을 대체한다.

14. 경쟁력이 없는 것은 곧 부도덕한 것으로 간주된다. 공공성은 곧 무책임과 동일시된다.

 

칼 폴라니는 기업사회를 "시장이 사회로 부터 분리되어 자율적인 것에 머물지 않고 시장이 사회를 식민화한 상태를 말한다."고 했다. 시장이 사회조직의 일부가 아니라 사회가 시장의 일부인 것으로 나타나는 상황, 기업이 하나의 사회조직이 아니라 모든 조직의 이상형으로 부각되는 현실을 지칭하는 말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기업이 국가를 좌지우지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공존을 위한 패러다임의 대두 (.....)

따라서 미래를 주도할 인재는 기계가 아닌 사람이 만드는 부가가치를 이해하고 새로운 사회변화에 민감하며 그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많은 지식을 암기한 하드디스크형 인재가 아니라, 다양한 지식을 결합하고 창의적인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CPU형 인재로 스스로를 바꿔나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지금 청년에게 주어진 과제다. (132)

 

 

환경은 새로운 패러다임이며 기회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기존의 산업사회는 이제 거의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당면한 자원고갈 같은 한정된 자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증가한 무질서의 증가, 즉 지구온난화와 환경오염 문제 등은 바로 이 '엔트로피의 저주'가 코앞에 다가와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136) 

 

기계중심에서 사람중심으로의 변화 (.....)

이제 시작이다. 기계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세상은 사람의 재능과 불꽃, 그 창의성이 빛을 발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그 질주는 오늘 아니면 내일 시작되거나 이미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 (138)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불행하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기상이 드높아야 할 청년학생이 절망하고, 그들의 부모가 웃음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거시지표는 숨가쁘게 상승하고 있는데 대체 왜 그럴까?

일찍이 경제학자 새뮤얼슨이 이 질문에 답을 던진바 있다.

그는 '행복'을 '가진 것/욕망'으로 규정했다.

가진 것을 늘리거나 욕망을 줄이는 것이 행복의 척도라는 의미다. 

 

행복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는 선인들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 행복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개인은 돈과 권력을 쫓고, 국가는 도를 넘어선 복지를 운운하고 있다.

복지를 낳은 건 정치다.

시작도 좌파가 아니라 우파다.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창시자다.

그는 1880년 건강보험과 노령연금을 첫 도입했는데 목적도 이유도 정치적이다. 어찌 보면 교활하다 싶을 정도다.

 

그는 “연금 받는 이들이 느끼는 보수적인 심리 상태를 수많은 무산자로부터 끌어내는 것”이 목적이며, 이유는 “노령연금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다루기 쉽기 때문”이라고 했다. 비스마르크에게 복지는 권력 쟁취의 수단이었던 셈이다. 그는 “누구든 이 개념을 포용하는 자가 권력을 잡는다”고 말했다. 곧 따라 한 게 영국이다. 영국은 1908년 국가 연금제를 도입했다. 좌파인 자유당 출신 재무장관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가 주도했다. 독일 우파에 이어 영국 좌파까지 복지를 수용하면서, 이후 복지경쟁엔 좌우가 따로 없게 됐다.

 

이렇게 보면 요즘 국내 정치권의 복지경쟁도 이해는 간다. 총선용으로만 새누리당은 5년간 89조원, 민주통합당은 164조 8000억원의 복지공약을 내놨다. ‘복지=표’로 보는 여야가 퍼주기 시합 중인 셈이다. 대선 때면 더 늘어날 게 뻔하다. 문제는 부작용이다. 벌써 복지에 밀려 평화·정의·성장 등 중요한 국가 담론들이 왕따 신세다. 집권 후 국가 운영 그림도 잘 안 보인다. 

 

아무튼 분배가 더 큰 걱정이다. 공정하게 나눠야 한다. "공정=‘누구나 똑같이"와는 좀 다르다. 있는 사람에겐 덜 줄 것인지, 모두 똑같이 줄 것인지 잘 따져봐야 한다. 무상 보육이냐 무상 급식이냐, 사안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잘못 다루면 큰 혼란이 온다. 빵 하나를 둘이 나누긴 비교적 쉽다. 그러나 100명이 나누는 데는 큰 지혜가 필요하다. 

 

 

 

 제 3 장 나를 감동시키는 자기혁명


 

말이 아닌 실천을 통한 증명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당신이 정말로 UN에서 일하는 국제관계 전문가가 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학원에 등록하고 교재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내일 아침부터 10분 일찍 일어나는 것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첫 번째 발걸음은 무언가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지금 손에 쥐고 있는 나태함의 달콤함을 버리지 않은 채 긍정적인 것을 손에 넣기란 불가능하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첫 걸음은 지금 내가 반복하고 있는 나쁜 습관 하나를 버리는 것이다. (154)

 

보편성을 깨는 것이 진보의 시작이다. (.....)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권태를 느끼면서도 직접 변화를 이끌 용기를 내지는 않는다. 들판에서 살던 원시시대에 무리 속에서 보호받으며 무리와 함께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인식이 인간의 DNA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홀로 살길을 찾아나서기보다는 무난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다. (163)

 

사회와의 긴장과 협력을 유지한 초월 (.....)

사람은 애벌레가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듯 자기변화의 과정을 수차례 겪으면서 성숙한다. 그러나 사회적 존재라는 특성상 그 과정에서 일정 부분 내가 속한 사회와의 긴장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만약 나의 초월성이 그것마저 완전히 넘어서기를 바란다면. 내가 속한 사회적 한계를 넘어 사회와 창조적인 관계를 수립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사회적 파탄자, 반사회적 인간형으로 분류될 수도 있다. (165)

 

열정은 인생이라는 여정의 동반자다. (.....)

이때 필요한 것은 바로 침묵과 사색, 교양과 문화다. 이런 것들은 대개 호흡을 가다듬는 역할을 한다. 청년기에는 무의식에 자리잡은 충동적 욕망이 자아의 어리섞은 선택을 계속 유도하는데 이때 의식을 집중해서 무의식을 누르고 자아를 곧추세우게 하는 것이 바로 사색과 교양이다. 사색을 통해 정열을 쏟아부을 대상을 가리고 그것이 열정이 되어 나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도록 할 때, 나는 비로소 끓어 오르는 사람이 되고 전방위적 발전을 향해 나아가는 살아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169)


 

청춘은 발산이 아니라 응축의 시기다.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말은 좌충우돌에 대해 책임질 필요까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청춘의 가슴에는 활활 타는 불길이 있지만,

그것이 뜨겁다고 함부로 토해내며 이리저리 방황하는 것은 의미 없는 소진에 불과하다.

뜨거운 불길을 쉽게 토하지 말고 뱃속 깊이 삼켜라.

그리고 다듬고 응축해라.

그 불길이 뜨거운 구슬이 되어 가슴속에 여의주를 품게 될 때,

어느 한순간 벼락처럼 쪼개며 천둥처럼 울리는 것이 청춘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은 이때 쓰는 말이다.

 

돌아보니 그랬다.

청춘은 특권이다.

실패는 경험이 되고 기회는 늘 손에 닿는 거리에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청년의 도전은 미숙하기 쉽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은 어떤 좌충우돌도 용인된다는 말이 아니다.

치열하게 뜻을 세우고 뜨거운 열정으로 내달리다가 자신의 노력이 자신을 감동시키는 순간,

일거에 함성을 지르며 벼락처럼 쪼개는 것이 청년의 도전이다.

행운의 여신은 바로 그런 도전에만 깃드는 까다로운 수호신이다.

 

철학은 사유의 방법을 알게 해준다. (.....)

책은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 중에서 부실한 부분을 지우고 새로운 지식을 입력하는 메모리반도체 갗은 것이다. 새로운 지식이 들어오면 기존의 지식 중에서 진부한 것이 지워지고 그 위에 새로운 지식이 덧입혀지는 것이다. 좋은 책을 읽고 새로운 사유를 만나 지식을 얻게 되면 기존의 지식체계가 수정되고 덧칠된다. 그렇게 독서를 통해 내가 가진 지식체계를 계속 수정해 나가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책읽기는 나를 연마하는 것이다. 때문에 좋은 책이 아닌 나쁜 책은 이미 갖추어진 나의 지성에 오물을 덧씌우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 정보사회가 되면서 지식은 점점 세분화되고 깊어졌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남에게 배우는 공부는 넘쳐나지만 스스로 익히는 공부가 사라졌다. 그 결과 '통섭(統攝)'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한여름 나무를 뒤덮고 있는 보이지 않는 수백 개의 가지가 하나의 둥치로 합쳐진다는 사실을 아는 것, 각각의 현상을 합쳐서 이해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바로 통섭의 사유다. (177) 

 

인문학의 존재 이유 (.....)

철학이 바탕이 되는 학문의 특징은 수평적이고 산발적이다. 문학, 사학, 철학 같은 인문학들이 그러하다. 이런 인문학들의 특징은 드넓은 들판에 넓게 펼쳐지는 것이다. 데카르트 철학의 바탕위에 칸트를 쌓아올리고 그 위에 다시 헤겔과 라캉을 올리는 것이 아니다. 철학적 사유는 각각의 사유 그 자체다.

강신주 선생의 말을 빌리면 데카르트의 철학이 있고 칸트의 철학이 있으며 소쉬르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 개별적으로 존재한다. 미적분을 모르면 로케트를 발사할 수 없지만, 데카르트를 몰라도 데리다(J. Derrida)를 논할 수 있다. 철학적 사유의 특징은 자못 독립적이며 수평적이며 자유롭다. 인문학은 이런 철학적 특징을 바탕으로 한다. (178-179)


 

결과가 아닌 과정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게 철학이다.

철학은 문자 그대로 사유의 학문이다. 자연과학 실험실이 약품과 기구들을 이용해 결과를 낸다면, 인간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사유의 실험실은 그가 사용하기에 따라 우주를 창조하기도 하고 세상을 가로지르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철학은 그런 사유의 실험실이다. 하지만 철학은 자연과학처럼 결과를 두고 평할 수 없다. '절대적 진리'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형이고 실체가 없다. (180)

 

규율을 통해 사회를 배우다. (.....)

아기가 자라 8세가 되면 정규교육을 받는다. '학교'라는 울타리에 들어가 작은 '사회'를 배우는 것이다. 친구라는 수평적 개념, 스승과 제자라는 수직접 개념, 공동체 훈련, 윤리와 정의에 대한 인식 등 사회생활을 해 나가는데 필요한 제도들을 습득하는 과정이다. 이전까지는 가정이라는 좁은 영역에서 무한의 배려를 받다가 비로소 좀 더 큰 사회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각종 전문 과목을 배우기 위한 기초에 불과하다.

 

사회적 의미에서 볼 때 이때의 학교교육은 공동체훈련이다. 여기서도 물론 우선되는 것은 금지다. 무엇을 '하라'보다는 무엇을 해서는 '안 된다'는 규율이 더 강력하게 교육된다. 지각을 하면 안 된다, 공부 시간에 졸지 마라, 선생님께 버릇없이 굴면 큰일 난다, 나쁜 친구를 사귀면 안 된다......

다음에 기다리는 것은 사회다. '사회'라고 불리는 성인의 세계에 진입하면 이런 금지가 사라질까? 자유롭게 내 마음대로 하며 살 수 있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자율'이라는 이름의 더 무거운 금지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186-187)

 

뜨거운 반항은 청춘의 특권이다. (.....)

청년은 줄기세포와 같은 존재이다. 사회의 머리가 될지 다리가 될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의 청년들 중에서 장차 나라를 이끌고 갈 리더도 나오고, 세상을 바꿀 혁명가도 나올 것이다. 그러나 청년이 스스로의 꿈을 펼치기 위해서는 뜨거운 열정과 그 열정을 길들일 수 있는 이성적인 태도를 키워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꿈을 이루고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다. (189)  

 

 

자신의 잠재력을 스스로 찾아라. (.....)

사람들은 제각각 손재주, 말재주, 그리는 재주, 쓰는 재주, 공부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공부라는 재주를 가진 사람만 성실근면하고 우수한 자원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다른 분야에 빛나는 재주를 가진 사람들까지 모두 공부라는 재능의 줄에 서서 자신의 재주를 사장시키고 있다. 이는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낭비다. 이런 사회는 공부에 재능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실패의 구렁텅이로 몰고 가는 자기파괴적 사회다. 세상은 이미 대량생산의 시대를 지나 각자가 가진 다양한 창의성이 씨줄과 날줄로 엮이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는 셈이다. (195)


 

 

사람은 각자 다른 우주다.

또 누구나 자신의 눈으로 타인을 바라본다. 따라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잠재력을 정말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가늠하기란 기본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 현실이 이렇다해도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는 길은 다양한 체험뿐이다. 체험을 통해 성과를 가늠해봄으로써만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다. 피카소 옆에 스케치북이 없었거나 모차르트에게 피아노가 없었다면 지극히 평범하게 삶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기회를 찾지 않고 기회를 잡을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모든 일을 체험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때 중요한 것이 바로 간접 체험이다. 광범위한 독서를 통해 다양한 분야를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고, 문화예술을 접함으로써 자신의 영감을 테스트해볼 수도 있으며, 새로운 곳에 여행을 다니고 봉사활동에 참여해서 다양한 사람들과 사귀고 어울리는 재능이 있는지 가늠해 볼 수도 있다.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준비는 호기심이다. (196-198)

 

스스로를 감동시키는 게 노력이다. 헤밍웨이(E. Hemingway)는 노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모든 길을 다 갈 수는 없다.

성공은 단지 한 분야에서만 얻을 수 있으며, 우리가 선택한 직업은 일생을 통해 오직 한 개의 인생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 외의 다른 것들은 모두 이것에 종속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일을 적당하게 생각하는 것을 싫어한다.

자신의 일은 반드시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만약 내가 선택한 길이 옳다면 대담하게 행해야 한다.

사람이 이상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성공적인 삶이다.

어떤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요인은 그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그 일을 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선택과 딜레마 (.....)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특히 청년기의 선택은 더욱 중요하다. 로켓의 궤도가 1도만 어긋나도 달가ㅗ 화성만큼의 오차가 생기듯, 청년기의 잘못된 선택은 인생에 큰 오류를 낳는다. 그래서 선택은 늘 딜레마다. 세상의 모든 선택에는 딜레마적 요소가 있고, 그 딜레마는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선택의 딜레마를 조금이라도 완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선택을 강요받지 않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즉, 나를 둘러싼 환경이 나에게 선택을 강요하도록 놔두지 말고, 스스로 상황을 만들어가면서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다양하게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210) 

 

 

상황에 이끌려 하는 선택은 위험하다. (.....)

우리의 선택은 대부분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프로크루스테스 침대'가 되기 쉽다. 나그네를 집에 데려와서 키가 침대보다 짧으면 다리를 잡아 늘리고 길면 잘랐다는 이 끔찍한 이야기는, 인생의 중요한 선택이 상황에 의해 강요될 경우 우리가 처할 수 있는 난관을 상징한다.

그래서 청년들에게 선택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 무언가 새로운 길을 탐색할 때 무조건 현재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할 것이 아니라, 먼저 지금 하는 일에 대한 자신의 노력 부족을 감추기 위해 내가 이 일에 재능이 없거나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그리고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일이 아닌 다른 일에 도전하겠다는 판단이 선다고 해도 지금 당장 현재를 버리고 그 일에 뛰어들 것이 아니라 현재를 바탕으로 새로운 일을 위한 준비를 충실히 한 다음 선택의 상황에 서라고 조언한다. (213)


 

시간이 없다는 말은 위선이다. (.....)

시간은 늘 충분하다. 단지 우리가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도전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무언가 새로운 도전을 꿈꾼다면 잠을 희생하든 놀이를 포기하든 달콤하지만 의미없는 일들을 포기하고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서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만 상황을 만들어가면서 후회없는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선택했다면 산을 옮기는 우공의 태도로 그 일에 몰두하는 것이 진정한 도전이다. (214) 

 

자본의 탐욕이 만든 기회의 상실 (.....)

지금 우리 시대는 험난한 시대다.

희망의 세대인 청년이 절망하고 사회는 분열되어 증오의 언어들이 난무한다.

원인은 여러 가지고 원인의 원인 역시 복잡하지만 본질은 탐욕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회의 문제는 자본의 탐욕이다.

누군가 공장을 여러 개 지어 돈을 많이 벌게 되면 그것에 감사하기보다는 새로운 탐욕에 사로잡힌다.

공장을 지키는 일을 남에게 맡기지 않고 내가 경비회사를 하나 차려 그 돈까지 벌고 싶고, 노동자들의 점심값으로 식당에 돈을 주느니 내가 식당을 차려 그 돈도 벌고 싶고, 광고를 맡기느니 그것도 직접 하고 싶고, 나중에는 공장에서 쓰는 문방구도 직접 조달해서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탐욕에 빠져드는 것이다. (214-215)

 

 

청년은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삶이 이미 많은 사람이 줄지어 가고 있는 길의 끝에 서서 그들과의 경쟁에 몰두하는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그 길 위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뜻을 펼치는 사회의 중심으로 살아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남이 가는 길을 따라가면 종속되지만 남이 가지 않은 길은 험난하다.

당신은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

그 답은 당신의 안목이 아니라 그 안목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준비를 얼마나 충실히 해왔는가에 달려 있다.

 

가장 극적인 인생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

삶도 연극처럼 다양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비극도 있고 희극도 있다. 처음부터 몰입하는 이야기도 있고 마지막에 뜨거운 눈물을 쏟나애는 감동도 있다. 처음에는 희극이지만 비극적 결말로 마무리하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인생이 연극과 다른 점은 작가도 연출도 배우도 관객도 모두 나 자신이라는 점이다. 내 삶의 관객은 바로 나인 셈이다. 따라서 나의 이야기는 남이 아닌 내게 설명되어야 하고 내게 공감되어야 한다. 주연인 내가 플롯의 개연성을 무시하고 편법으로 건너뛰기나 막연한 행운을 기대하면 관객인 나의 호응을 얻을 수 없다. 나는 철저한 주관이자 완전한 객관이다. (220)

 

금 이 순간 바로 여기, 내 삶이 있다. (.....)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이 외친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지금을 즐기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바로 당신의 미래요, 꿈이라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인생은 '지금'의 가치를 너무 간과하고 있다. 우리는 늘 과거에 사로잡혀 있거나 미래에 대한 망상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늘 지금이다. 지금은 순식간에 과거가 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이 책장을 덮는 순간 바로 과거다. 지금이라는 것은 찰라이며 섬광처럼 사라지는 존재다. 하지만 사라진 섬광의 다음에는 새로운 섬광이 등장한다. 그 섬광과 섬광이 이어지면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고 그 빛의 밝기는 지금 이 순간의 선광과 다음 섬광의 밝기에 달려 있다. 그래서 늘 지금 이 순간이다. (221)


 

 

 제 4 장 자기혁명을 위한 배움과 성장


 

버트란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인간을 원죄형, 자아도취형, 과대망상형 인간으로 구분했다.

1. 원죄형 인간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유형으로 나름의 도덕률을 알고 있으면서 이를 지키지 못하였을 때 깊은 죄의식을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동료의 어려움을 무의식적으로 외면했을 때, 지하철에서 노인에게소리 지르는 젊은이를 제지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을 때, 열심히 공부하기로 결심하였지만 곧 바로 주변의 유혹에 빠져 버렸을 때 자신의 나약함을 책망하고 죄의식을 느낀다.

 

2. 자아도취형 인간은 약간 비겁한 출세주의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타인에게 칭송 받고 선망 받는 것에 관심이 많다. 이런 유형의 모든 행동은 타인의 시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옷과 가방은 명품으로 치장되어야 하고, 약점은 철저히 자기를 위장하는데 급급하다.

 

3. 과대망상형 인간은자신이 완전하거나 스스로 꾸미지 않아도 약점이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과 견해가 다른 사람은 어리석다고 여긴다. 그래서 적극적이고 자신감에 넘치지만 리더십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면 부작용을 드러내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어느 한 유형에 깊이 빠지지 말고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인생을 사는 제 4유형을 제시한다. 주변의 시선, 주변의 기대, 주변과의 비교 등 늘 외부를 의식하며 자신의 승패를 규정해야 할 때가 많지만, 지나치게 주변을 의식하다보면 자기 존재를 잃어버리기 쉽다. 즉 네 번째 유형은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이다. 만약 청년이 한 번의 실패가 두려워 망설인다면 그는 청년이 아니다. 반대로 기성세대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면 그는 아직 청년이다.

사무엘 울만의 <청춘>의 시에서 정의하는 청춘의 정의다.

Youth is not a time of life it is a state of mind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다)

 

경쟁심 부추기는 사회 (.....)

경쟁은 인간의 본성이고, 우리가 가늠하는 모든 성공과 실패는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인 것이다. 이런 상대성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자연을 지배할 수 있게 된 주요 원인이지만, 대신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경쟁심은 인간의 무의식에 뿌리를 내리고 평생 감정을 지배한다. 그 결과 사람은 위를 보고 결핍을 느낄 뿐, 아래를 보고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평생을 무한경쟁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이다. 경쟁의 결과 생산성과 효율성이 증가하고 발전과 진보가 이루어지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적당한 상한선만 존재한다면 경쟁심이 사회적인 측면에서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쟁심은 한계가 없고 욕망은 무한한 것이 문제다. (235)

 

 

안과 밖의 태도가 나를 말해준다. (.....)

어떤 사람은 저녁에 집에 가면 무조건 TV부터 틀고 소파에 드러눕는 습관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책상에 앉으면 일단 컴퓨터를 켜고 실시간검색어를 모두 눌러본 후에야 다른 일을 시작한다. 또 내일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이 잠자리에 누우면서 스마트폰을 잡고, 퇴근할 때는 누군가를 붙들고 "한잔 어때?"를 남발하며 술친구를 찾는다. 모두 나쁜 습관의 찌꺼기들이다. (.....)

이런 사람에게는 '아우라(Aura)'가 없다. 사람은 누구나 고유한 분위기가 있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의 긍정적인 호기심을 이끌어낼 만한 특성이 없을 때는 아우라라 부를 수 없는 것이다. (243)


 

 

자기만의 아우라를 만들어보자. (.....)

아우라는 나에 대한 타인의 관대함을 이끌어낸다. 어떤 사람에게 그만의 독특한 아우라가 있다면 우리는 그를 존경하거나 존중하고 때로는 그를 위해 무언가 기꺼이 도와주고 싶어진다. 아우라는 한 가지 장점이 아닌, 사람을 대하는 정중하고 우아한 태도와 미소, 일을 처리하는 열정과 집중력, 언어에서 느껴지는 신뢰감 등 여러 가지 요소가 결합되어 나타나므로 좋은 습관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인 퇴적물과 같다. (244)

 

예전에 독일을 갔을 때 문을 연지 350년 된 맥주집을 간 적이 있었다.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 아버지의 그 아버지 때부터 몇 대를 거쳐 가업을 이어온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화려하지도 않았고 요란하지도 않은 허름한 집이었다.

하지만 고풍스런 인테리어와 깔끔한 위생상태, 종업원의 행복한 표정이 어우러져 350년이라는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외형적으로는 특별한 것이 없어보였지만 특별하게 느껴지는 묵직함이 있었다.

아우라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아우라는 가슴을 울리는 그 잔잔한 감동이다.

 

관념이 아닌 관성이 태도를 만든다. (.....)

태도는 환경의 중요한 요소다. 대개 자신의 능력을 효과적으로 발휘하는 사람들의 주변은 단정하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멀리서 봐도 누가 우수한 학생인지 금세 알 수 있다. (.....) 이처럼 자세와 주변의 모습에 나의 마음가짐이 드러난다. 그것은 역으로 마음가짐을 다잡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혈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책상정리, 작은 화분 하나 키우기, 자세 바로하기, 좋은 언어 골라 사용하기 같은 습관의 변화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가 된다. (248)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어떤 사람은 시간을 아코디언처럼 접어서 밀도를 높이지만 어떤 이는 엿가락처럼 늘려서 밀도를 낮춘다. 시계시간으로는 똑같은 시간이지만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인간의 평균수명이 80년이라고 해도 그것은 시계시간의 문제일 뿐, 각각의 실제 삶의 길이는 열 배 또는 백 배 차이가 날 수도 있다. (.....)

 

시간의 가치는 집중력과 밀도에서 나온다. 삶의 태도에서도 마찬가지다. 팔자는 '시간이 없어서'라고 변명하는 사람을 가장 싫어한다. 해야 할 일을 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다면 그것은 곧 나태함이다. 시간은 누구든 열 배, 백 배로 압축할 수 있다. 파편처럼 흩어져버리는 수많은 시간의 조각과 망상의 시간을 붙들거나 정돈함으로써 더 많은 시간을 낼 수 있으며, 집중력과 밀도를 높임으로써 시간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254)


 

 

시간 활용, 계획보다 금기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

결국 시간활용은 계획이 아니라 금기를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먼저 정하고 해야 할 것을 계획하면 그것은 실천 가능한 계획이 되지만, 해야 할 것만 정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버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알콜중독자가 소주공장에서 일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 다음 해야 할 것들은 비중을 정해서 하루 중 어느때든 반드시 그만큼 수행하면 된다. (260)

 

지식과 지혜 (....)

청년기에 우리가 익혀야 할 것은 지식과 지혜다.

지식은 특정한 이론을 배워나가는 것이다.

공학이라면 반도체, 기계기술, 전기전자에 대한 이론들을 배우는 것이고, 인문학이라면 대가들의 사상과 철학, 사회구조와 심리 등을 배우는 것이다. 지식은 계주다.

누군가가 앞서 증명한 이론을 익히고 배워서 내 것으로 만든 다음, 내가 다시 이어달리면서 그것을 늘려가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이 이런 식으로 발전해왔다.

 

반면 지혜는 그것을 활용하는 역할을 한다.

지혜가 없다면 불필요한 것을 만들고 어리석은 기술을 발전시키게 된다.

이를 테면 원자력 발전을 연구하고 건설하는 것이 지식이라면, 인간이 통제하기 어려운 원자력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그것에 제동을 걸 수 있는 판단은 지혜에 속한다.

 

그래서 지식은 사회적이고 지혜는 개인적이며, 지식은 전해줄 수 있지만 지혜는 가르칠 수 없다. (.....)

 

지식은 외부와 관계된다.

지식은 누군가로부터 배우고 다른 사람과 교류해야 하기 때문에 혼자만 쌓은 지식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사회가 쌓아 놓은 업적들, 즉 역사 속의 인류가 이어달리며 남긴 업적을 계승 발전시켜야 제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반면 지혜는 내부적이고 개인적인 것이어서 배우거나 가르친다고 이어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지혜를 사랑한다'는 뜻의 철학이라는 학문을 대면하면 아주 복잡한 생각이 든다. 철학을 아무리 공부해도 자격증이나 일자리를 얻을 수 없다. 심지어 자기소개서에 철학이 관심이 많다고 적었다가는 생각이 복잡한 친구라며 제일 먼저 제외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워렌 버핏과 함께 '세계 최고의 투자 구루'라 불리는 찰리 멍거는 하버드대 학생들에게 투자강연을 하러 가서 네 시간 동안 철학사를 강의했다고 한다. (263-265)

 

고민은 더 나은 선택을 위한 의례다. (.....)

지식을 쌓기 위해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면 되지만 지혜를 늘리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대로 이질적인 것들을 만나야 한다. 새로운 생각은 이질적인 환경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 뒤집어 생각하면 '고민을 하지 않는다'거나 '고민이 없다'는 것은 안주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더 이상 달라질 것도 없고 나아질 것도 없다는 뜻이다. (.....) 지식은 사물을 대상으로 하지만 지혜는 삶 자체를 대상으로 한다. 또 지식은 나에게 할당된 분야의 기술을 내 것으로 삼는 것이지만, 지혜는 내가 주체적으로 외부와 맞서면서 키워나가는 것이다. (266-267)


 

깨달음이 있어야 진짜 공부다.

공자는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항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라고 했다. 이는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구절로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리석어지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는 뜻이다. (276)

 

신분상승의 욕구가 만들어낸 스펙문화

지금 우리 사회의 스펙문화도 그렇다.

과거 개발시대에 효율적이었던 수단들, 이를테면 줄을 세워 순서를 정하는 방식들은 단지 평가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공부 역시 그중 하나다.

다만 개발시대에는 창의성과 혁신보다는 모방하고 따라잡는 일이 중요했기 때문에 이런 질서가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잘 유지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모방의 시대가 아니라 창의의 시대다. 다른 사람들이 시작한 일을 무작정 뒤따라가면 낙오자가 되기 십상이다. 시대의 선두에 서서 혁신으로 이끌고 창의로 개척해야 하는 시대에 단지 배우기만 해서 쌓아올린 지식은 별 소용이 없다. 

 

스펙경쟁은 물론 겉으로는 공정해 보인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출발선이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따라잡을 수가 없는 불공정이 존재한다. 기성세대가 과거의 성공방식을 지금도 강요하는 이면에는 바로 이런 신분세습의 욕구가 자리잡고 있다. 이런 문화가 국가 불행을 잉태했다.

사회적인 불균형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성장한 인재들이 찬의성과 혁신성의 부재로 국제적인 경쟁에서 속속 밀려나면서 기업과 사회의 경쟁력을 떨어뜨린 것이다. 배우는 데는 능하지만 생각하지 못하는 인재, 많이 배웠지만 그것을 내면화하지 못한 젊은이들에게서는 새로운 싹이 트지 않는다. (279) 

 

공부는 늘 학과 습이 함께하는 것인데, 요즘 우리는 오로지 학만 중시하며 습의 중요성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청년의 공부는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가슴 뛰는 열정을 품고 근육을 길들이며 시야가 꽉 차도록 넓은 세상을 탐험하며 그것을 내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진짜 공부다. (282) 

 

책을 통해 방대한 우주와 만나다. (.....)

독서는 타인의 지식을 빌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지식의 변별력이다.

소위 공통의 교육과정에서는 성과의 높낮이, 즉 차이만 강조된다. 그러나 독서는 완전히 차별적인 성과의 잣대를 제공한다. 더구나 독서는 간접체험을 통해 정규교육에서 얻을 수 없는 지혜를 연마하게 해 주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주며, 다양한 분야를 통섭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뿐만 아니다. 독서를 통해 사람들이 각자 다르게 생각하는 언어와 말하는 언어를 배우고, 내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

 

독서가 이처럼 방대한 기회를 주는데도 독서를 통해 발전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독서의 대상이 편협하거나 생각을 읽지 않고 문자에만 의존하는 기계적인 독서를 하거나 저자의 논좀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히 사건이나 이야기에만 몰입하는 나쁜 독서 습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독서는 문자를 읽고 거기에 담긴 저자의 생각과 사상과 지식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이해한 것들을 기반으로 나를 변화시키는 내면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287)


 

독서는 도전이고 좋은 경험이며 가능성이다.

하지만 대개 우리가 어떤 책을 읽고 해석한 결과는 비슷하다. 왜냐하면 독자들의 해석은 당시의 억압적인 질서에 따르기 때문이다. 좀 어려운 이야기지만 텍스트를 해석하는 방식은 무의식적으로 그 시대의 주류 해석을 따라간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것은 저자의 진짜 의도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288)

 

독서는 우연의 씨앗을 뿌리는 과정이다.

스티브 잡스에게 아이폰을 만들 기회가 주어진 것은 이전에 그가 디자인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결과다.

찰리 멍거가 위대한 투자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동안 쌓아온 인문, 사회, 철학에 대한 방대한 관심이 시대의 패러다임을 읽는 통찰적인 안목으로 발상된 결과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일생을 통해 독서를 해나간다는 것은 언젠가 새로운 기회를 만날 씨앗을 뿌리는 행위이며 나를 준비된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독서는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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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르는 요령

책을 고를 때는 또 신간과 고전을 교대로 읽는 것이 좋다. 특히 고전읽기는 대단히 중요하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고전'이라 불리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1. 고전은 시대를 넘어 언제든 읽혀야 한다. 고전은 당대성이 아닌 시대성을 갖고 있어서,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당대의 언어로 재해석되고 당대의 의미로 다시 이해된다.

 

2. 고전은 인류의 사상이 오늘에 이르게끔 한 책이다. 오늘 그책이 있든 없든 미래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책이라면 고전이 아니다. 고전은 만약 그 책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사상이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을 만큼 역사발전과정에 중요한 고리를 형성하는 책이다.

 

3. 고전은 살아남은 책이다. 우리가 좋은 책을 고르는 것은 책을 잘 읽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지만, 고전은 이미 오랜 기간 검증되고 살아남아온, 말하자면 감정평가를 마친 책이다.

 

글쓰기의 방법

글쓰기에서 중요한 것은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시선을 고정하고 응시하여 나만의 색깔로 대상을 분해할 수 있을 때, 그것을 글로 옮기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 시인과 작가의 빛나는 재능에도 불구하고 철학자의 글이 더 가슴에 와닿기도 한다.

철학자의 시선은 대상을 분해할 뿐만 아니라 그 너머를 보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는 먼저 말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해충분한 숙고를 거쳐야 한다. 우리가 글을 쓴다고 할 때 가장 먼저 범하는 오류 중 하나가 일단 '나는 ....'이라고 무조건 시작해 놓고 보는 습관이다. 반드시 기승전결의 얼개를 미리 머릿속에 그리고 시작해야 한다. 글을 쓰기 전에 '시선'을 먼저 가다듬는 것이다. (304)


 

글쓰기에서는 좋은 글을 모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흔히 책을  많이 읽으면 글을 잘 쓰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극서은 착각이다. 생각하기와 말하기가 다르듯, 읽기와 쓰기는 다르다. 해석과 창작은 엄연히 다른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글을 쓰는 연습으로 가장 먼저 할 일은 좋은 글이 아닌 잘 씌어진 글을 필사하는 것이다. 글이 내공을 담고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글쓰기 연습에서 중요한 것은 분장을 다루는 능력이지 작가의 영감을 흉내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필사를 할 때는 열 번 이상 반복해서 그대로 베껴써야 한다.

키보드를 이용해도 좋고 연필을 쥐어도 좋다. 앞으로 워드프로세스를 통해 글을 쓸 작정이라면 굳이 연필을 잡지 않아도 된다. 특정 글을 이렇게 열 번 이상 반복해서 쓰면 어느 순간 대상의 문체가 내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든다. 이때 글을 써보면 그 문체가 내 글에서 배어나오고, 어느 순간에는 그의 어법이나 문장을 흉내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

 

처음에는 필사하고 다음에는 축약과 삭제와 가필을 하고, 마지막으로 내가 직접 쓰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세 개의 글이 나란히 놓이게 된다. 필사한 글, 내가 고쳐쓴 글, 내가 새로 쓴 글. 이 가눙데 내가 새로 쓴 글이 가장 훌륭하거나 최소한 그와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을 때, 글을 다루는 훈련은 얼추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305-307)


 

 

 제 5 장 미래를 여는 변화와 도전


 

희망 부재가 가져온 우울증, 사회구조에 원인이 있다. (.....)

기본적으로 우울증이 급증하는 원인은 사회구조에 있다.

 

1. 외로움이다.

우리나라는 향우회, 동창회, 동우회 등 온오프라인상의 네트워크가 시계 어느 나라보다 발달해 있다. 일견 외로움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지만 군중속의 개인은 고독하다. 그 이유는 신뢰부족이다. OECD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보건식품 문제, 금융사기범죄 등이 세계 최상위임을 알 수 있다. 겉으로는 한없이 친밀한 척하지만 차인은 언제나 경계의 대상이 된다. 공존이 아닌 독존의 사고를 해온 우리 시스템이 문제의 원인이다.

 

2. 희망 부재다.

행복이 소득수준에 비례하지 않는 것은 통계만 봐도 알 수 있다. 부탄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알려져 있지만, 부탄은 세계 최빈국 중 하나다.

 

3. 개인의 문제다.

우뇌형 인간이 지배적인 사회가 되면 사회는 개인화된다. 개인화된 사회는 다시 우뇌형 우세를 촉진한다. 악순환의 연결고리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물론 우뇌형 인간은 학문이나 특정 과학 기술 분야에서 독특한 성과를 낼 수 있다. (.....) 개인의 문제로 보면 우뇌 활동이 왕성한 경우 우울의 소인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17-320)

 

거듭된 실패가 만들어낸 운명론적 사고

지금은 우리의 인생이 신의 설계에 따라 레일을 달리는 장남감기차와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즉 인간이라고 해서 생물학과 물리학의 법칙에서 예외가 될 수 없지만, 그래도 각자의 삶은 자유의지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성적 사고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흔들리곤 한다.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도 실패를 거듭하는 경우에 특히 그렇다.

더구나 이런 운명론적 사고가 사회적 운명론으로 이어질 위태로운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갈수록 심해지는 청년들의 기회상실과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양극화 속에서 부가 세습되고 신분이 고착되는 부조리를 보자.

이런 부조리에 반복적으로 직면하게 되면,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사회의 변혁은 불가능하다는 체념의 동기가 되는 것이다. 이런 순간 인간은 도전의지를 잃어버리고 좌절에 빠져들며, 본의 아니게 현상황의 동조자가 되어 버린다. (324-325)

 

민주사회 시민의 책임과 의무 (.....)

문제는 이 시스템에서 수혜를 받고 있는 주류들이 스스로 문제를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시스템을 고칠 수 있는 힘은 주류에게 있지만, 주류가 스스로의 이익을 보장해주는 시스템을 포기할 리 없다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딜레마다.

이때 시민의 자각과 힘이 중요하다.

지금은 낫과 창의 시대도 혁명의 시대도 아니다. 그리고 인류가 만들어온 사회시스템 중에서 자본부의를 뛰어넘는 체제를 발견하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문제가 있는 시스템을 고쳐서 영속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시민의 임무가 될 것이다. (331)

 

분노는 개선의 노력이며 시민의 의무다. (.....)

이러한 자기파괴적인 시스템은 현대 시장자본주의의 가장 큰 숙제다. 굶어죽는 사람이 늘어간다면 만석꾼의 창고는 약탈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문제를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다.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차가 절벽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당장은 떨어지지 않을테니 말을 멈추거나 방향을 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사고방식이다. (333)


 

이제 필요한 것은 사회적 공감력이다. (.....)

문제는 이제부터다. 앞으로도 이런 방식으로 성장률을 높이는 방향성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효율성과 성장성이 떨어지는 중소기업과 가계,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 다다른 것이다. 국가의 인적, 물적 자원을 지금처럼 대기업의 성장에만 투하한다면 경제의 지표는 좋아지지만 질은 악화되는 양극화는 더 심화할 것이고, 이 구조는 궁극적으로 사회안정성에 치명적인 독이 되고 만다.

이제 필요한 것은 사회적 공감력이다. 이 문제에 대해 모두가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이해할 줄 알아야만 영속 가능한 사회가 될 수 있다. 삼투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작동하듯 공감과 이해의 물결 역시 그렇게 작동되어야 하는 것이다. (356)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나 많은 사람이 좌절과 체념에 빠져 있다.

청년이 '희망'이라는 말을 포기한 지 오래고, 사회 전반적으로 우울과 체념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기다림이다.

결국 볕이 든다는 역사성을 믿으며 변화의 희망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기다림을 넘어 변화를 부르는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체념 대신 희망을, 기다림 대신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간절한 시대다. (366-367)

 

정의란 이상이 아니라 현실 참여의 도구다.

 

그런데 이익을 내기 위해서 존재하는 기업의 경우, 이익만을 위해서 어떤 탐욕을 부리더라도 그것은 전체에 충실한 것이니 정의라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기업의 전제를 잘못 해석한 데서 오는 문제다. 기업은 물론 이익을 추구해야 하지만 이익 추구가 기업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기업의 전제는 그렇게 천박한 것이 아니다. 기업의 전제는 구성원들을 행복하게 하고, 사회에 고용과 투자의 기회를 제공하며 함께 이익을 나누는 것이다.

(392)


 

우리는 늘 두근거리는 시작 앞에 있다. (.....)

청년들에게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외부 요인들만 가득해서 좋아보이는 것,

기발하고 멋져 보이는 목표들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나의 좌펴를 설정하는데, 나를 소외시키고 남들에게 성공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추상적인 망상만 가득한 것이다.

목표를 세울 때는 먼저 나를 들여다봐야 한다.

의식을 집중해서 무의식을 가만히 탐색하고, 나의 장점과 단점을 잘 비교한 다음, 최소한 장점 항목이 단점을 능가할 때, 장점들을 잘 모아서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분야를 결정한 다음, 그 분야에서 가장 가능성 있는 것을 찾아 그것을 나의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에필로그 중에서)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다.

나는 자유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으로 글을 마무리했다.

철학적이기는 하지만 저자는 이 묘비글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닐었을까?

당신의 자기혁명, 이제 시작이다. 자유를 위해.....

See you at the Top!

 

p.s. 흔적 남겨주시는 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