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모든 이치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오직 한 사람, 바로 당신에게로 향해 있다."
-월터 휘트먼
<CONTENTS>
제1장 | 내 인생은 내가 지휘한다 |
제2장 | 첫 번째 자기사랑-먼저 자신을 사랑한다 |
제3장 | 두 번째 자기사랑-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
제4장 | 세 번째 자기사랑-자신에게 붙어 있는 꼬리표를 뗀다 |
제5장 | 네 번째 자기사랑-자책도 걱정도 없다 |
제6장 | 다섯 번째 자기사랑-미지의 세계를 즐긴다 |
제7장 | 여섯 번째 자기사랑-의무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
제8장 | 일곱 번째 자기사랑-정의의 덫을 피한다 |
제9장 | 여덟 번째 자기사랑-결코 뒤로 미루지 않는다 |
제10장 | 아홉 번째 자기사랑-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
제11장 | 열 번째 자기사랑-화에 휩쓸리지 않는다. |
제12장 | 행복한 이기주의자 |
행복한 이기주의자가 되기 위하여.....
정신과 의사여야만 효율적인 생활의 원칙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신의학 전공 학위도 필요 없다. 생활의 원칙은 강의실이나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행복을 얻기 위해 정성을 기울임으로써, 그리고 행복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정신 건강을 다룬다고 꼭 무거워야 할 필요는 없다. 뭔지 모를 전문용어로 가득 찬 따분한 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난해한 설명들을 피하려고 애썼다. 행복은 절대 복잡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 흐르는 주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가 자신의 감정을 선택할 수 있다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내린 선택의 총화다. 적당한 양의 동기부여와 노력만 있으면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본문에서 강조하는 두 번째 주제는 현재의 순간들을 통제하는 일이다. 이 문구 역시 여러 차례 반복되고 있다. 이는 행복을 만들어 내는데 필수적인 요소다. 내가 무언가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은 한 순간 뿐이다. 그것은 바로 지금이다.... (들어가며 중에서)
제1장 | 내 인생은 내가 지휘한다 |
위대함의 본질은 다른 사람들이 이성을 잃고 날뛰는 상황 속에서도 차곡차곡 자기실현을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이다.
뒤를 돌아다보라.
늘 나의 뒤를 따라다니는 또 다른 내가 보일 것이다. 딱히 붙일만한 이름도 없으니 그를 '죽어 있는 나'라고 부르자. 나는 그를 두려워할 수도 있고 나에게 독이 되는 방향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선택은 나의 몫이다.
죽음은 끝도 없이 우리의 어깨를 짓누르는 주제이다. 그리고 삶은 제대로 숨을 고를 여유도 없이 짧다. 그러니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라.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이렇듯 모른 척해도 되는 걸까?", "그토록 끌어안고 놓고 싶지 않을 만큼 물질이 소중한가?" 이러한 질문에 우리의 대답은 필시 다음 몇 마디로 요약될 것이다.
열심히 살자. 나는 나다. 인생을 즐기자. 사랑하자. 우리는 부질없이 죽음을 두려워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죽음을 방편삼아 제대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할 수도 있다. (15)
러시아의 문호 레프니 콜라예비치 톨스토이는(Lev Nikolaevich Tolstory)의 단편소설 <이반 일리지의 죽음>의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죽음의 신을 기다리며 다른 사람에게 철저히 지배당했던 자신의 과거를 회상한다. 그는 체제에 순응하기 위해 이제껏 자신의 인생을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체념해왔다. 모든 사람에게 죽음의 신을 기다리면서 그는 자신의 일생을 이렇게 회상한다.
"만일 내 일생이 모두 잘못된 것이라면".......
이전에는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었던 것, 다시 말해 그동안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느낌이 결국은 진실일지도 모른다고 그는 문득 생각했다. 이제껏 사소한 충동이 일어나면 그것을 곧바로 억제해왔는데, 실은 그런 충동이 오히려 진짜이고 그 외의 것들은 모두 가짜였던 것이 아닐까? 직책도, 생활과 가정사도, 사회적 또는 직무상의 이해관계도 모두가 가짜였는지도 모른다. 이런 것들을 모두 성실하게 지키고자 노력했던 그는 갑자기 그 모든 것들이 덧없게 느껴졌다. 지켜야 할 것 따위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 의지대로 살면서 내 인생을 스스로 선택해도 괜찮을까?"라는 쉽지 않은 결정을 앞에 두고 고민해야 할 상황에 처한다면 이렇게 자문해보라. "대체 언제까지 죽어 있을 작정인가?" 이렇듯 죽음을 넘나드는 통찰을 지니고 있으면 우리는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내가 실제로 감당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불안, 미심쩍음, 그리고 정말이지 제대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열등감도 떨쳐버릴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인생 수칙이랍시고 일러주는 대로 평생을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 세상에 머무는 기간이 너무도 짧은 것이 분명한데 적어도 즐겁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요컨대 나의 삶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자. (16-17)
행복한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다......
우리 사회에서의 똑똑함이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다시 말해 일정 수준으로 읽고 쓰고 계산하는 능력, 추상적인 등식을 빠른 시간 안에 해결하는 능력으로 저울질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똑똑함에 대한 그런 통념 때문에 정규교육과 우수한 성적을 자기성취의 진정한 잣대라고 단정 짓는 사람이 많다.
그렇게 되면 학식깨나 있다고 거들먹거리는 사람, 상대적으로 의기소침해지는 사람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우리들은 '빛나는 졸업장'을 더 많이 가진 사람들, 어떤 학문 분야-수학, 과학, 풍부한 어휘, 잡다한 기억력, 속독 등-에 귀재한 사람들이 '똑똑하다'고 믿게 됐다. 그러나 지금 정신병원은 번듯한 학력을 가진 환자들로 넘쳐난다. (17)
......애초에 신경질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신경은 성질을 부리지 않는다. 인체를 해부해 놓고 눈을 씻고 들여다봐도 성깔을 부리고 있는 신경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를 자신의 중심에 세우는 법을 배우는 데에는 완전히 새로운 사고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한 개인이 책임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작당하는 세력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에 그런 사고 과정을 체득하는 것이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18)
감정은 선택이다.......
감정을 통제할 수 없다는 그릇된 통념은 논리를 통해 깨뜨릴 수 있다. 간단한 삼단논법을 이용해 보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남성이다. 남성은 모두 수염이 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염이 있다."......
"나는 내 생각을 통제할 수 있다. 내 감정은 내 생각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나는 내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 (20)
"내가 내 생각을 통제하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하는가?" 배우자가? 직장 상사가? 아니면 어머니가? 만에 하나 그들이 당신의 생각을 통제한다면 그들이야말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그들만 병원으로 보내버리면 당신의 상태는 금방 나아질 것이다....... 먼저 생각을 거치지 않고서는 감정을 느낄 수 없다. 머리가 없다면 '느낄' 수 없는 것이다. 감정은 생각에 대한 신체적 반응이다. (21)
우리는 주위의 상황이나 사람들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내가 불행하다면 그 이유는 주위의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 때문이다. 거침없고 다부진 사람이 되려면 그 생각을 바꿀 줄 알아야 한다...... 태풍 같은 자연재해도 그 자체에는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드는 속성이 없다. 우울은 인간 특유의 감정일 뿐이다. 만약 내가 태풍 때문에 기분이 울적해졌다면 그것은 스스로 기분이 처지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억지로 태풍을 좋아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22-23)
"있는 힘껏 살아라.
그렇게 살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
살아갈 인생이 있는 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인생을 가졌거늘 도대체 무엇을 더 가지려 하는가?....
잃게 되어 있는 것은 잃는 법이다.
이 점을 명심하라.....
아직 운이 좋아 인생을 더 살아갈 수 있다면 모든 순간이 기회다.......
살아라!"
-미국 소설가 헨리 제임스, <사절들 The Ambassadors> 중에서,
행복을 선택하라.......
행복은 그나마 쉽다. 그러나 불행해지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행복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상태다. 그 증거는 어린아이들에게서 꾸밈없이 나타난다....... 우리는 감정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사고패턴에 길들여져 있다. 무수히 많은 시간을 들여 그런 사고방식을 단련시켜 왔으니 스스로의 감정에 대해 책임을 지는 새로운 사고방식에도 역시 그만한 시간을 들여 균형을 맞출 칠요가 있다. 이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어쩔 것인가? 어렵다고 그만둘 수는 없지 않은가? (25)
내가 인라인스케이트를 배울 당시를 떠올려 본다.
'처음에는 도대체 이걸 어떻게 탄다는 거야?'하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화 신고도 넘어지곤 하는데 한 쪽에 바퀴가 네 개씩 달린 신발을 신고 탈 수 있을까. 가만히 서 있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엉덩방아를 찧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바퀴에 내 몸을 의지하여 인라인스케이트를 탈 수 있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자 습관이 되어버렸다. 습관이 되면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몸이 스스로 그렇게 움직인다.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다. 마음의 습관이 필요하다. 내가 나도 모르게 불쾌해지고 화가 나고 상처받고 좌절하는 이유는 오랜 기간 동안 그런 교육을 받고 그런 사고방식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을 보듬는데 무관심했던 것이다.
생각을 바꿔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행복을 선택할 수 있는, 혹은 적어도 인생의 어느 순간에 불행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다. 불행보다 행복을 선택하는 당신 앞에 걸리적 거릴 것은 하나도 없다. 일상의 갖가지 상황에서 자기 파괴적인 행동보다는 자기 성취적인 행동을 택하는 것도 나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28)
차를 몰고 도로에 나서면 교통체증에 시달리기 일쑤다.
그러면 상당수는 화를 내고 다른 운전자에게 욕을 퍼붓고 동승자에게 화풀이를 하고 사정거리 안에 있는 주위 사람이나 사물에게 마구 짜증을 내곤 한다. 또 그런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런 교통체증 속에서 어떻게 흥분을 안 하고 배기겠느냐는 등 앞뒤로 차들이 꽉꽉 막혀 있으면 자제력을 잃는 수밖에 없다는 등 이런저런 항변을 늘어놓기도 한다. 나 역시 이런 경우가 있다.
그것은 어떤 정해진 사고방식이나 교통체증에 대한 일정한 행동방식이 익숙해져 있다는 증거다. 오롯이 내 탓이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보고 배운 탓도 있다. 이를 변화시키려면 화내고 짜증냈던 그에 상응하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더디겠지만 그런 상황에 처해지면 휘파람을 부르고 노래를 부르자. 음악을 듣고 숫자를 세어 보자. 화를 낸다고 차들이 모두 도망을 가진 않을 테니까.
병은 마음에서 온다......
인간의 뇌는 100억 개 정도의 뇌세포로 구성되어 있고 그중에 10억 개 정도가 활동하고 있다. 이는 매초 열 가지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기에 충분한 저장 용량이다. 이는 100조 개 단어에 상응하는 정보량이지만 사람들은 그 용량 가운데 극히 일부만을 사용하고 있다고 추산된다. 뇌는 어딜 가나 지니고 다닐 수 있는 막강한 도구로, 마음만 먹으면 지금껏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환상적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31)
인간의 뇌를 통해 본 우리의 독서량을 예측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은 수년 동안 두뇌의 능력에 대해 연구하여 그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는 "인간의 뇌는 2000만 권의 책을 가득 채울만한 정보를 수용할 수 있다. 즉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의 장서와 맞먹는 수의 책을 한 사람의 두뇌는 충분히 이해하고 저장할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을 우리나라 사람들의 독서량 상위에 해당하는 한 달에 3권 읽는 것으로 대입해 보자. 1년이면 36권이다. 60년 동안 충실하게 읽는다 해도 그렇게 읽어서는 평생 2160권 정도의 책을 읽는 것이 된다. 우리의 능력이 20,000,000권이라면 2160권은 10000분의 1에 불과하다. 10000분의 9999는 공동묘지로 가져간다는 이야기다.
나는 무기력한 사람은 아닐까......
당신은 화가 나면 말이나 감정 또는 행동을 아예 접어버리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무기력한 사람이다. 당신은 쑥스러워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과 접촉하기를 꺼려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무기력한 사람이다. 그러면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어야 할 경험까지 놓치게 된다......
무기력이란 '그 정도가 심각하든 경미하든 내가 원하는 정도로 기능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무기력은 화려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거의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이 결과적으로 어느 정도의 자기 매몰 상태를 일으키게 한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부정적인 감정을 제거해야 하는 탄탄한 이유가 되는 셈이다. (33-34)
지금 이 순간을 잡아라......
존재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뿐이다. 미래는 다가오면 맞아야 할 또 다른 지금 이 순간일 뿐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어떤 순간이 그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는 그 순간을 살 수 없다는 것! (34)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현재를 깎아내리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래에 대비하라, 뒷일을 먼저 생각하라, 쾌락주의자가 되지 말라, 내일을 생각하라, 은퇴를 준비하라'와 같은, 현재를 회피하는 것은 우리 문화의 병폐다. 우리는 끝도 없이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도록 강요당한다. 이것은 현재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영원히 행복을 피해 다니는 태도다.
미래가 다가와 현재가 될 때 우리는 그 현재를 도 다시 미래를 위한 준비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는 중학생이 되면, 중학생이 되면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고등학생이 되면 대학에 입학하면... 회사에 입사하면 승진한 후와 같이 끊임없이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오늘을 희생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미래는 오지 않는다. '현재기피증'이 결코 행복한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순간을 즐기자. 그것이 인생에 대한 예의다.
발전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
자신이 바라는 대로 행복하고 충실한 삶을 꾸려갈 때에는 두 가지 동기에 의해 자극을 받는다. 둘 중에 비교적 보편적인 동기는 부족한 면을 메우고자 하는 '미완' 또는 '미흡'의 동기다. 반면 좀 더 바람직한 또 다른 동기는 발전을 향한 '성장'의 동기다....... 성장을 동기로 삼는다는 것은 내가 인생의 모든 현재의 순간들을 직접 지휘한다는 의미다. 지휘를 한다는 것은 내가 나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39)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현 위치를 자신이 처한 환경 탓으로 돌린다.
나는 환경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스스로 일어서서 자신이 원하는 환경을 찾은 사람들이다.
만약 그런 환경을 찾을 수 없다면, 그런 환경을 만든다."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쇼, <워른 부인의 직업 Mrs. Warren's Profession>중에서,
제2장 | 첫 번째 자기사랑-먼저 자신을 사랑한다 |
나의 가치는 다른 사람에 의해 검증될 수 없다.
내가 소중한 이유는 내가 그렇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나의 가치를 구하려 든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의 가치가 될 뿐이다.
우리는 모두 사회병에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 그 병은 주사 한 방으로는 도저히 나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필시 '열등의식'이라는 전염병이다. 그 병에 대해 지금껏 알려진 유일한 치료 방법은 '자기사랑'이라는 약을 대량 복용하는 것뿐이다. 사회는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라고 가르친다. 교회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설교한다.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은 안중에도 없는듯 보인다. 하지만 진정 현재 순간들의 행복을 얻고자 한다면 자신을 사랑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우리는 자기사랑이 버릇없거나 조금은 건방진 일이라고 배웠다.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우선시하고 먼저 생각해주는 법도 배웠다. 그래야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내보일 수 있으니까..... 형제와 물건을 사이좋게 나누어 써라.....나서지 말아라.....분수를 알아라......
아이들은 본래 자신을 아름답고 매우 귀중한 사람이라 여기도록 타고났다. 그러나 사춘기에 이를 즈음 사회의 가르침이 개인에 뿌리를 내린다. 그때가 되면 자기 불신이 활개를 친다. 그리고 이는 세월이 갈수록 심해진다. 결국 자신을 사랑한다는 주장을 내세우지 않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라는 생각과 함께. (43-44)
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많이 공부하고
제일 똑똑하고, 외국어에도 능통하고
첨단전자제품도 레고블록 만지듯 다루는 세대야. 안 그래?
거의 모두 대학을 나왔고, 토익점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자막 없이도 할리우드 액션영화 정도는 볼 수 있고
타이핑도 분당 300타는 우습고 평균 신장도 크지.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고, 맞아, 너도 피아노 치지 않아?
독서량도 우리 윗세대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아.
우리 부모세대는 그 중에서 하나만 잘해도,
아니 비슷하게 하기만 해도 평생을 먹고살 수 있었어.
그런데 왜 지금 우리는 다 놀고 있는 거야?
왜 모두 실업자인 거야?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한 거지?
스물일곱의 한 청년을 주인공으로 한 김영하의 소설 <퀴즈쇼>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20대 후반이 된 청춘들의 내밀한 욕망과 이들의 눈에 비친 한국사회의 풍경을 여과 없이 담아내고 있다. 우리의 오랜 사회병 때문에 지금 우리나라에는 이름만 다른 획일화된 인재들로 넘쳐난다.
사랑이란.....
나는 독특하다. 또한 상대방도 독특하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순응하게 되면 그들 나름의 독특함을 잃게 된다. 내가 그들을 좋아했던 이유는 그들에게 남다른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일을 잘하게 되면 어느새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줄 알게 된다..... 나 스스로를 소중하지 않거나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 취급을 하면 다른 이들에게 사랑을 베푼다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내가 가치가 없는데 어떻게 남들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겠는가? (46)
내 자아상은 내가 가꾼다.....
우리는 활동의 수만큼 많은 자아상을 갖고 있으며 항상 그 모든 행동을 통해 '내'가 존재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다. 언제나 내 뒤를 따라다니는 친숙한 그림자이자 내 행복이나 나름의 뛰어난 부문에 대한 가치 평가가 나 자신과 한데 묶여서는 안 된다. 나는 존재한다. 나는 인간이다. 이것이 나에게 필요한 모든 조건이다. 나의 가치는 나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며 어느 누구에게도 설명할 필요가 없다. (49)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똑똑해질 수 있다.....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다....스스로를 과소평가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사회 통념에 넘어가 학교 성적을 기준으로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얼마든지 똑똑해질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똑똑해지기로 마음먹은 정도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기 경멸이다..... 자신에게 고쳐야 할 점이 있다고 해서 오로지 그것 때문에 자신을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55-56)
불평은 허탈감만 안겨줄 뿐이다.....
자기사랑이란 자신을 소중한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불만이 없다는 뜻이다. 알차게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절대 불평하는 법이 없다. 바위가 거칠다고, 하늘이 찌푸렸다고, 얼음이 너무 차갑다고 쓸데없이 불평을 늘어놓지 않는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불평하지 않는 것이며, 행복하다는 것은 자신이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일들을 놓고 한탄하지 않는 것이다. 불평은 자기신뢰가 없는 사람들의 피난처다.....
불평을 하면 주위의 관심을 끌 수 있을지 모르나 그렇게 해서 받은 관심은 자신의 행복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게 뻔하다....진정 자신을 사랑한다면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할 사람에게 불평을 늘어놓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사랑은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반드시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필 필요도 없다. 자기 인정만으로 충분하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말라. (59-61)
자신을 사랑하는 법....
자기사랑 훈련은 먼저 마음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생각을 통제하는 법을 몸에 익혀야 하는 것이다.... 자신을 비하하는 그 순간을 인식하고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결정을 내리면서 내딛는 첫걸음이다.(65)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어떤 단체에 가입하거나 즐길 만한 활동에 참가한다. 지금껏 너무 많은 책임에 짓눌려 짬을 낼 수 없다는 이유로 그런 활동들을 미뤄왔는지 모른다. 내가 챙겨야 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든 저들대로 버텨 나가는 법을 터득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일을 하는 능력을 나 자신의 가치와 동일시하는 일에 종지부를 찍는다. 누구나 실직을 할 수 있고 사업에 실패할 수 있다. 이런저런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그 사람이 가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패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다.
일본에 처음으로 실패학(失敗學, science failure)이란 개념을 소개한 하타무라 요타로(畑村洋太郞)에 따르면, 실패란 '인간이 관여하여 행한 하나의 행위가 처음에 정해진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역설적이지만 실패학이란 결국 성공을 위한 학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과거를 알자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실패가 주는 플러스적(+)인 측면을 활용하여 제2의 실패를 막고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기 위한 노력인 것이다. 따라서 '실패학'이란 '실패(failure)'라는 말보다 '재기학'(再起學, science recovery) 내지는 '시행착오학'(試行錯誤學, science of trial and error)'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제3장 | 두 번째 자기사랑-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
다른 사람의 평가에 연연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구하는 일은 필요조건이 아닌 그저 희망사항이 되어야 한다. 박수갈채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치켜세워주면 기분이 좋고 그런 대우를 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인정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불건전하다는 말이 아니다. 사실 입에 발린 말은 감칠맛 나게 기분 좋다. 인정을 구하는 일이 나를 망치는 나쁜 습관, 즉 자기실현의 오류지대가 되는 경우는 그것이 희망사항이 아닌 필요조건이 되었을 때이다. (69)
남의 눈치를 살피는 것도 꽤나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지만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 '모든' 사람의 인정을 필요로 하는 경우는 참으로 문제다. 그런 필요조건을 갖고 있다면 살아가면서 몹시 마음상하고 실망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70)
정치가 부류는 대체로 신뢰받지 못한다. 그들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동조를 필요로 한다. 인정을 받지 못하면 그들은 설 곳을 잃게 된다. 따라서 그들은 한 입으로 두 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집단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서는 이런 말을 하고 저 집단의 칭찬을 듣기 위해서는 저런 말을 한다.
눈치 권하는 사회.....
우리의 문화는 남의 눈치를 살피는 행동을 하나의 생활방식으로 강화하고 있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주적 사고는 우리 사회의 보루를 이루고 있는 사회제도의 눈엣가시인 셈이다. 이 사회에서 자란 이상 누구나 그런 속성에 젖어 있을 수밖에 없다.....
인정을 해주는 것은 교묘한 조종 수단이다. 그의 가치가 타인에게 내맡겨져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동조해 주지 않으면 그는 허깨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가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73)
눈치 보게 하는 부모님....
노는 것, 먹는 것, 잠자는 것에서부터 친구 관계를 맺는 것, 생각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가정 내에서 어린아이에게 주어지는 자립의 메시지는 거의 없다. 자녀를 소유물로 생각하는 부모의 궁극적인 믿음 때문이다. 부모는 자녀가 스스로를 위해 생각하도록,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키우도록 돕기보다 자녀를 소유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76)
칼릴 지브란은 그의 책 <예언자>에서 소유물 취급을 받는 아이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자녀는 당신의 자녀가 이니다.
그들은 생명 자체를 갈망하는 생명의 아들, 딸들이다.
그들은 당신을 통해서 나왔지, 당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당신 곁에 있지만 당신에 속해 있지 않다."
매번 부모의 동의를 구하게 만드는 전략의 효과는 모든 '의존형' 아이들에게서 뚜렷이 나타난다. 엄마는 심판관, 끊임없이 싸움을 뜯어 말리는 사람, 동생이 말썽을 저질렀다며 쪼르르 달려가 일러바치는 대상일 분 아니라 모든 생각, 감정, 행동을 나 대신 도맡아 해주는 사람이다. 엄마나 아빠가 대신 해줄터이니 해결해야 할 어려움이 있으면 자신을 믿지 말라고 한다.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 먼저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라는 것이다. (76-77)
학교는 붕어빵 공장....
학교에 들어간다는 것은 동조를 구하는 사고와 행위를 드러내놓고 주입시키려는 제도에 입문하는 일이다. 학교에서는 하는 일마다 허락을 구해야 하며 스스로의 판단에 의존해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화장실에 가도 되느냐고 선생님께 여쭤본다. 정해진 자리에 앉는다. 제 자리를 뜨면 벌점이 붙는다. 모두 타인의 통제를 받는 인간을 양성하기 위한 것이다. 스스로 공부하는 법이 아닌 생각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 "열여섯 조각이 되도록 종이를 접어라." "접은 종이에 낙서하지 말아라." "오늘 집에 가서 1,2장을 공부해 와라." "이 단어의 맞춤법을 연습해라." "이렇게 그려라." "저렇게 읽어라." 등 시키는 대로 따르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의문점이 생기면 선생님께 여쭤보라는 식이다.
학교의 이념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문구로 되어 있다.
"본 고교는 학생들의 전인교육을 추구한다. 교과과정은 본 고교 개개인의 필요에 부합하도록 짜여 있다. 본 고교는 학생들의 자기실현과 개개인의 발달을 장려하고 촉구한다."
도대체 이런 문구를 실천에 옮기는 학교와 교사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80)
학교는 자립적 사고의 조짐을 보이는 학생들을 키우는 데는 재주가 없다. 인정을 받는 것이 성공에 이르는 길이라고 가르치는 학교가 숱하다. "선생님의 눈에 든다." "알랑거린다." 등의 말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상투어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가르침이 몸에 배게 되는 시기는 대개 중학교에 들어갈 즈음이다. (80)
인터넷에서 본 초등학교 5학년의 글이다. 푸른 하늘과 흙을 벗 삼아 뛰고 달려야 할 초등학생의 생각치고는 참 섬뜩하다.
"학교라는 교도소에서 교실이란 감옥에 갇혀, 교복이란 죄수복을 입고, 실내화란 죄수신발을 신고, 공부란 벌을 받고, 졸업이란 석방을 기다린다."
학교라는 감옥에서 석방된 아이들은 다시 대학이라는 더 크고 호화스러운 감옥으로 옮겨간다. 초등학교 때 잘해야 중학교 때 성적이 좋고 중학교 때 성적이 잘 나와야 고등학교 때도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가서 성공한다는 식이다.
쉽지 않겠지만 지금부터라도 공부를 재미있는 놀이로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당장은 성과가 나지 않고 정착되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리겠지만 이것은 포기해서도, 늦추어서도 안 된다. 공부를 다른 어떤 놀이보다 재미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나라도 있다. 인류 역사를 보더라도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인간은 늘 지적 즐거움을 추구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읽고, 쓰고, 그리고, 부르는 여러 가지 창작활동이 인류 역사의 큰 줄기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면 무언가에 대해 결정을 내리기가 어렵다고 느낄 것이다. 12년 간을 꼬박 어떻게, 무엇을 생각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선생님께 일일이 여쭤보는 식의 교육에 길들여졌기 때문에 막상 졸업식 날이 되면 자기 혼자서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된다. 그는 인정을 탐하고 다른 사람의 인정을 얻는 일이 성공이나 행복과 동급이라고 배운 것이다.
대학에서도 이와 똑같은 세뇌 패턴이 이어진다. 학기 말 리포트를 두 번 쓸 것, 올바른 서식을 갖춰 여백을 맞출 것, 반드시 타이핑을 치고 서론, 본론, 결론의 구성을 갖출 것 등등. 대학은 대규모 '붕어빵' 공장인 셈이다. (81)
사회는 눈치쟁이 양성소다....
인정을 탐하는 병을 얻게 되는 곳은 가정이나 학교뿐만이 아니다. 교회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하나님, 또는 예수, 그리고 자신 이외의 누군가를 기쁘게 해야 하는 것이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위대한 종교 지도자들의 가르침을 잘못 해석하고 천벌에 대한 두려움을 무기 삼아 순응을 가르치려 든다. (82)
남의 눈치를 보는 태도를 조금씩 내던져라.....
세상이 움직이는 방식을 보라. 요컨대 우리는 결코 이 세상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 수는 없다. 사실 50% 정도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도 꽤나 성공한 것이다. 세상에는 절반 정도의 사람들이 타인의 말 절반 정도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 사실은 대통령 선거만 봐도 알 수 있다. 압승을 거둔 선거라 해도 반대 유권자의 비율이 40%를 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늘이 두 쪽이 난다 해도 다른 사람의 반대를 피할 수는 없다. 이무리 손사래를 쳐서 뿌리쳐도 소용없다. 내가 가진 모든 의견에는 정반대되는 의견이 있게 마련이다. (86-87)
하버드 대학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던 긍정심리학의 강의로 유명한 탈 벤샤하르( )는 미래의 달콤한 보상을 위해 현재의 고통을 참아내야 한다는 식의 삶의 태도를 '채식주의자의 맛없는 음식'에 비유했다. 지금 당장은 맛이 없지만 훗날 몸에 좋을 것이라 생각하고 꾹 참고 먹는 것이지요.
반면 기름기 많고 달콤해서 당장은 입이 즐겁지만 훗날 몸에는 해로워서 결코 좋아할 수 없는 음식이다. 즉 맛이 없으면 몸에 좋은 것이고 맛있는 것은 몸에 해롭다는 식의 사고방식이지요. 이런 사고방식은 공부는 고통스러운 것이고 놀이는 재미있는 것이라는 우리의 교육이데올로기와 비슷한 것 같다. 이상적인 음식은 지금 당장 먹으면 맛있고 행복하고 몸에도 좋은 것이다. 바로 지금 행복하면서도 미래의 꿈을 위해 더 많은 것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꿈을 이루고 나면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때문에 꿈을 이룬다는 사고방식이다.
제4장 | 세 번째 자기사랑-자신에게 붙어 있는 꼬리표를 뗀다 |
과거의 삶에서 얻은 자신에 대한 평판들을 늘어놓으면서 과거 속에서만 이슬렁대는 것은 유령이나 하는 짓이다. 오늘의 나이지 어제의 내가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표현하는가? 이 두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내가 여태껏 살아온 삶을 뒤돌아봐야 할 것이다. 인간은 분명 과거에 매어 있으며 거기서 빠져나오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설명할 때 어떤 말을 써서 표현하고 있는지 한 번 돌아보자. 남들의 시시껄렁한 평판들을 차곡차곡 모아 놓았다가 그대로 표현하지는 않는가? 서랍 하나 가득 이런저런 말들을 쌓아두었다가 정기적으로 꺼내서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신경질 적이다." "나는 내성적이다." 나는 게으르다." "나는 음치다." "나는 눈치가 없다." 등 나는 어떻다 식의 온갖 꼬리표들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99)
'나는 어떻다' 꼬리표의 뿌리
우리의 꼬리표 이력은 두 가지 범주로 나뉜다. 첫째 유형은 다른 사람들이 붙여진 꼬리표로, 어렸을 적 붙여진 채 지금까지 지니게 된 경우이다. 둘째 유형은 귀찮거나 어려운 일을 해야 하는 의무에서 도망가기 위해 자기 스스로 붙인 꼬리표다. 단연 첫째 유형의 꼬리표가 압도적으로 많다.... 나의 꼬리표들이 생겨난 데 가장 큰 원인을 제공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이를테면 부모나 오랜 가족 간의 친구, 옛 선생님, 조부모 등과 얘기를 나눠 보라. 그들에게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내가 언제나 그런 식이었는지 물어보라.
그리고 이제부터 나는 변할 작정이라고 밝히고, 내가 변할 수 있다고 그들이 여기는지 살펴보라. 아마 놀랍게도 그들은 나름대로 이유까지 설명해가면서 "너는 항상 그런 식이었기 때문에 절대로 변할 리가 없어."라고 말할 것이다. 둘째 유형의 꼬리표는 하기 싫은 일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붙힌 편리한 꼬리표들이다. (102-103)
전형적인 10가지 꼬리표 유형
1. 나는 수학, 작문, 독해, 언어 등에 약해
2. 나는 요리, 스포츠, 뜨개질, 그림, 연기 등 몇몇 기술 분야에 무척 서툴러
3. 나는 내성적이고 성미가 까다롭고 신경질적이고 겁이 많아
4. 나는 운동 신경이 없고 몸이 둔해
5. 나는 매력이 없고 못생겼고 덩치가 크고 평범해, 너무 키가 작아
6. 나는 정리를 안 하는 편이야, 지나치게 깔끔을 떨어, 칠칠치 못해
7. 나는 건망증이 있고 부주의하고 무책임하고 무관심해
8. 나는 이탈리아인이야, 유대인이야, 아일랜드인이야, 흑인이야, 한국인이야
9. 나는 제멋대로야, 참견을 잘 해, 권위주의적이야
10. 나는 늙었어, 중년이야, 지쳤어 (105-109)
항간에 우리의 교육 현실을 빗대어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선생님들이 21세기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교육실상이 마치 여불위(呂不韋, Lu Puwie)가 쓴 <여씨춘추(呂氏春秋)>에 나오는 '각주구검(刻舟求劍)'에 관한 고사를 생각나게 한다. 전국시대 초나라의 한 젊은이가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건너다 배가 강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그만 실수로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물속에 빠트렸다.
"아뿔싸! 이를 어쩌지."
그 젊은이는 허둥지둥 단검을 빼서 칼을 떨어뜨린 그 뱃전에다 표시를 해두었다. 그리고 배가 건너편 나루터에 닿자마자 그는 표시를 해 둔 그 뱃전 밑의 강물로 뛰어들어 칼을 찾았다. 그러나 칼이 그곳이 있을 리가 없었다. <여씨춘추>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때는 이미 지나갔으나 법은 바뀌지 않았으니 이런 방식으로 정치를 한다면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우리 역시 각주구검 속 젊은이를 어리석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미래로의 여행보다는 익숙한 과거로의 여행에 더 길들여져 있으니까 말이다. 장 피아제Jean Piaget는 "교육의 근본 목표는 다른 세대가 해놓은 것을 단지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할 줄 아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물음표와 함께 학교에 입학해서 마침표와 함께 졸업한다."는 닐 포스트먼Nel Postman의 말은 단연 압권이다.
이제 성적순으로 줄을 세워 상위권에 있는 학생들이 미래의 가치를 창조해 낼 것이라는 과거의 교육믿음으로는 학교도 살아남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유엔미래보고서2>에 따르면, 이미 미국에서는 전체 학생의 10%가 홈 스쿨을 하고 있고 20%가 온라인교육을 받고 있다. 2020년이 되면 대부분의 교육이 온라인 포털에서 업데이트된 정보로 이루어지고, 학교생활은 팀워크 등 커뮤니티 활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한다.
꼬리표를 내던지기 위한 전략
1. 되도록 현재시제의 꼬리표를 사용하지 말 것. 대신 "지금까지는 그랬지."와 같은 과거시제를 사용하라.
2.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제 그런 말투를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선언할 것
3. 지금까지 해온 것과는 다른 식으로 행동하겠다는 목표를 정할 것
4.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사람에게 자신이 과거에 얽매이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말할 것
5. 자신을 망치는 꼬리표를 붙인 행동에 대해 일기를 쓸 것
6. 꼬리표를 하루에 한 가지씩 없애도록 노력할 것. "나는 건망증이 있어."라는 꼬리표를 사용해 왔다면 예를 들어 월요일에 그 꼬리표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라.
7.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을 찾아내어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어느 날 오후를 비워둘 것
우리의 꼬리표들은 모두 후천적으로 몸에 밴 회피 방식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113-114)
제5장 | 네 번째 자기사랑-자책도 걱정도 없다 |
노상 자책감과 걱정을 끌어안고 있기만 해서 과거나 미래 상황이 변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다른 현실 체계를 가진 별천지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일생을 통해 하등 도움이 안 되는 감정이 두 가지 있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자책감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섣부른 걱정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 쓸모라고는 하나도 없는 걱정과 자책감은 서로 짝을 이루고 있다..... 자책감은 '과거'에 행한 어떤 행위의 결과 옴짝달싹 못한 채 현재의 순간들을 잡아먹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걱정은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어떤 일 때문에 현재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상태다. (119)
걱정은 미래, 자책감은 과거에 대한 반응이지만, 둘 다 현재의 자신을 불안하게 하거나 꼼짝 못하게 한다는 동일한 목적을 수행한다.... 자책감은... 과거 행위와 관련된 감정에 사로잡혀 현재의 순간들을 내팽개치는 것이다. 반면 걱정의 경우, 미래의 일에 집착하면서 소중한 현재를 잡아먹는다. (120)
자책감이란....
요컨대 우리는 자책감 기계다. 우리들이 오랜 세월 동안 걱정과 자책감을 일으키는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체로 자책감을 느끼지 않으면 어쩐지 '나쁜' 것 같고 걱정하지 않으면 어쩐지 '매정'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모두 '배려'와 관계가 있다. 배려의 마음을 갖고 있다면 이미 저지른 끔찍한 일에 대해 자책감을 느끼면서, 혹은 장차 어떻게 될지 걱정하고 있다는 가시적인 증거를 내보이면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이는 따뜻한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얻기 위한 노이로제 반응이다. (121)
부모가 주입하는 자책감, '나는 너를 위해 희생했다'....
"나는 너를 위해 희생했다'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은 자책감 유발제로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부모들은 자식에게 뭔가를 해주기 위해 자신의 행복을 포기한 어려운 시절을 죄다 들먹인다. 자식들은 그런 빚을 떠올리며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인가를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자녀를 출산했을 때의 고통을 들먹이는 것도 자책감을 자아내게 하는 태도의 일례다.
"내가 열여덟 시간 동안이나 배 아파 너를 낳았다." 또는 "나는 너 하나 바라보고 산다. 네 아버지랑 이혼 못하고 사는 것도 다 너 때문이야."라는 말도 효과 만점이다.
자책감을 키우는 사회
교사들은 가장 강력한 자책감 유발 주체다. 그리고 아이들은 가장 유약하며 조종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대상이다. 사람들의 자책감을 유발하고 행동을 조종하기 위해 종교가 이용되는 경우도 많다. 교회에서 우리가 실망시키는 대상은 하나님이다. 교회가 전하는 자책감 메시지는 나쁜 짓을 저지르면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130)
자책감을 없애기 위한 전략....
1. 내가 과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든 과거는 하늘이 두 족 나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할 것
2. 자책감 일기를 쓸 것. 자책감을 느꼈던 모든 상황에 대해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 정확히 언제, 왜, 그리고 누구와 함께였는지를 적어보라.
3. 자신의 가치관을 다시 점검해 볼 것
4. 지금까지 내가 저지른 나쁜 행동을 죽 열거해 볼 것
5. 내 행동의 실제적 결과를 평가할 것. 내 인생에 득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를 어정쩡한 기준으로 판단하지 마라. 나의 어떤 행동이 나 자신에게 기쁨이 되고 도움이 되는지를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자책감은 다른 사람들을 조종하기 위한 편리한 도구이며 쓸데없는 시간 낭비다. (133-136)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 때문에 노심초사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걱정을 해도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걱정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 또는 미래에 일어날 일 때문에 현재의 자신을 옭아매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걱정을 미래를 위한 계획과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장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경우라면, 혹은 더 알찬 미래에 도움이 되는 경우라면 그것은 걱정이 아니다....걱정을 걱정하라.
걱정을 해서 얻을 수 있는 보상
1. 현재 자신이 하기 싫거나 겁내고 있는 모든 일을 회피할 수 있다.
2. 위험을 감수해야 할 필요를 회피할 수 있다.
3. 자기 파괴적인 행동에 대한 손쉬운 변명이 된다.
4. 충실한 삶을 방해한다. (143-144)
걱정을 없애기 위한 전략
1. 현재는 미래에 대해 집착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충실하게 살아야 할 때라는 점을 명심할 것
2. 걱정이 터무니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
3. 자신의 걱정시간을 점점 줄여 나갈 것
4. 스스로에게 "내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무엇이고,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라고 질문을 던져볼 것(144-145)
현재를 살아라.
현재가 바로 자책감이나 걱정에 사로잡힌 행위를 이해하는 열쇠다.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고 과거나 미래에 매몰되어 현재의 순간들을 허깨비처럼 보내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숨쉬고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뿐이다. 그리고 무익한 자책감과 걱정은 모두 현실도피 안에서 자행되고 있는 행위다. (146)
"규칙이 있다. 즉 내일의 잼과 어제의 잼은 있어도 오늘의 잼은 없다."
그러자 엘리스는 반박했다.
"그래도 언젠가는 오늘의 잼이 될걸요."
동화 작가 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엘리스>에서 현재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이다.
제6장 | 다섯 번째 자기사랑-미지의 세계를 즐긴다 |
불안한 자만이 안정을 갈구한다.
새로운 경험에 가슴을 열어라.
무엇이건 못 해낼 게 없다. 자기 자신을 충분히 신뢰하고 있다면 말이다. 일단 확실하지 않은 영역에 용기 있게 발을 내디뎌보겠다고 마음 먹으면 우리는 인간에게 허용된 경험을 모조리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 놀랄 만큼 멋진 삶을 살았던 사람들을 떠올려 보라. 그들은 오로지 하나만 잘했던 사람들이 아니다. 미지의 것을 피하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벤저민 프랭클린, 베토벤,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개척자이자 미심쩍은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간 모험가였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다. 유일한 차이라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감히 밟지 못한 곳을 기꺼이 가로질러갔다는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 한 순간이라도 자신 안에 내제된 가능성의 일부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 경험에도 스스로를 열 수 있다. (151)
오늘이 어제의 재탕은 아닌가....
자신의 즉흥성을 면밀히 살펴보라.....즉흥성이란 재미있을 것 같아 어떤 일을 순간적 기분에 휩쓸려 시도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지체 높으신 분들은 즉흥적이 되는 것을 꺼려하는 경우가 많다.... 즉흥적으로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들은 이미 장계를 떠난 인사들인 경우가 많다..... 예스맨은 즉흥적인 사람이 못 된다. 그들은 옴 몸으로 미지의 것을 두려워할 뿐이다. 그들은 대세에 영합한다.
시키는 대로 따를 뿐이다. 도통 반기를 드는 법이 없고 자신에게 기대되는 바로 엄정히 준수할 따름이다..... 경직된 사람들은 결코 성장하지 않는다. 늘 해오던 방식대로 일을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153-154)
'최선을 다하라'의 덫.....
성취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유로워지기' 위해 '떠난다'는 것을 실천하기는 어렵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 사회에 이만저만 위압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러한 두려움은 어린 시절 주입돼 전 생애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실패라는 것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160)
누구나 실패를 한다.
사실 실패는 단지 특정 행위가 어떤 식으로 마무리됐어야 했다는 다른 사람의 의견일 뿐이다. 구체적으로 정해진 방식으로 행해져야 할 일 따위는 없다고 믿는다면 실패란 있을 수 없다. 스스로의 기준에 비추어 실패하는 경우가 있을 수는 있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행동과 자신의 가치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일에 성공하지 못했다 해도 그것은 인간으로서 실패한 게 아니다. 어느 시기에 어떤 시도를 했는데 성공하지 못했던 것뿐이다. 오로지 그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예를 들어 동물학자가 동물의 행태를 설명하면서 실패라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가?
개가 15분 간 짖고 있는데 누군가 "저 개는 그다지 잘 짖지 못하는군. 50점!"이라고 말한다 치자. 얼마나 터무니없는가! 낙제하는 동물이 있는가? 동물이 낙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연행위를 평가하는 규정 따위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미가 거미줄 치는 것을 두고 성공작이니 실패작이니 하고 말할 수 있겠는가?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도 한 번 시도하여 실패하면 그냥 다른 쥐를 쫓아간다. 그 자리에 드러누워 놓친 쥐를 놓고 푸념하고 불평하지는 않는다. 실패했다며 신경쇠약에 걸리지도 않는다. 그저 자연스러운 행위일 뿐이다.
우리 문화는 가장 자기 파괴적인 두 마디 말을 이용해 사람들로 하여금 성공하라고 몰아붙인다.
무수히 들어왔고 사용해 온 말, 즉 "최선을 다하라!"가 바로 그것이다. 이 말이 성공노이로제의 시작이다. 무슨 일을 하던지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 자전거를 좀 시원찮게 탄다고 뭐 어떻다는 건가. 공원에서 산책하는 행위에도 점수를 매겨야 하는가? 살아가면서 어떤 일들은 죽을힘을 다해서가 아니라 그냥 하면 안 되는 걸까? "최선을 다하라"의 노이로제는 새로운 활동을 시도하거나 이전부터 해왔던 활동을 마음껏 즐기지 못하게 한다.
나도 완벽주의자?....
자녀에게 최선을 다하라고 강요하며 무기력과 분노의 씨앗을 심지 말라. 대신 자녀가 가장 즐겨할 만한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라. 그리고 그런 일에 대해서는 격려하라. 잘 못할지도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일을 피하라고 가르치지 말라는 것이다. 잘해야 한다고, 남들보다 잘하라고 윽박지르지 말라는 말이다. 대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활동에 대해서는 자긍심과 자부심,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163)
특히 어릴 때는 실수를 자기 가치와 동일시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메시지를 쉽게 받아들인다. 그 결과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활동은 아예 기피하게 된다. 자신의 가치가 일의 송공 여하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끼게 되어 있다.
에디슨을 생각해 보라. 그가 첫 번째 실험에 실패한 후 그 실패를 가지고 자신의 가치를 저울질했더라면 자신을 실패자라고 단언한 채 세상을 밝게 하는 일을 포기해 버렸을 것이다. 실패가 때로는 교훈이 될 수 있다. 실패가 새로운 발견에 이르는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면 그 실패는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해 보라. 사실 실패가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성공을 유일하게 흡족한 기준으로 애지중지하도록 배워왔다. 우리는 실패할지도 모르는 일이면 덮어놓고 피하려 든다.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 가운데 상당 부분은 실패에 대한 걱정이다.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듯싶은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풍기면 무엇이건 피하고 보는 것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란 미지의 것에 대해, 그리고 최선을 다하지 않을 때의 곱지 않은 시선 모두에 겁을 집어먹는 것이다.
"나의 가치는 다른 사람에 의해 평가될 수 없다.
내가 소중한 이유는 내가 그렇다고 믿기 때문이다."
-웨인 다이어
"완벽이 아니면 모두 소용없다."라는 격언을 한 단어로 줄이면 '무기력'이다.
-윈스턴 처칠
제7장 | 여섯 번째 자기사랑-의무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
모든 경우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규칙이나 법, 전통은 없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이 세상은 눈길 닿는 곳마다 의무 천지다. 사람들은 무턱대고 이런저런 의무를 자신의 행동에 적용시킨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 늘 이치에 들어맞고 모든 경우에 최고의 선을 실현하는 법이나 규칙 따위는 없다....링컨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언제 어디서나 적용될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해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다. 항상 그 시점에서 가장 합리적인 정책을 실행하려고 노력했을 따름이다." (173-174)
운명론자, 결정론자, 또는 재수 운운하는 사람들은 외부 지향적인 사람들이다. 인생은 미리 설계되어 있어서 정해진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고 믿는 사람들, 그들은 그 길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갖가지 의무들을 짊어지고 평생 낑낑댄다. 나를 외부의 힘에 내맡기는 사람은 결코 자기실현을 구할 수 없다. 제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란, 인생의 문제란 문제는 모두 제거하는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자기 마음의 심지를 자신의 외부에서 내부로 돌릴 줄 아는 사람이다. (178)
외부지향적인 사람은 비난이나 영웅숭배에 빠진다....
비난은 어떤 일에 대한 책임을 떠안고 싶지 않을 때 요긴하게 꺼내 쓸 수 있는 꽤 괜찮은 방법이다..... 모든 비난은 시간낭비다...... 비난이라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행동이다...... 영웅숭배란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정하는 것이다. 아무개가 이렇게 행동하면 나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영웅 숭배는 일종의 자기 부정이다.
영웅 숭배는 다른 사람들을 자신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기실현을 자신의 외부 세계와 결부시킨다...... 당신의 영웅도 모두 보통 사람이다. 그들도 모두 인간이다. 날마다 하는 일도 당신과 똑같다. 가려우면 긁고 아침에 일어나면 입냄새를 풍긴다. 누군가를 영웅시하는 것은 모두 쓸데없는 노력이다. (178-179)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또 한편으로는 숭배하고 있다면, 목이 길어져라 다른 사람들만 쳐다보는 '바보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이나 의무에 대한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동이다.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고 스스로의 공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그런 오류지대를 없애는 첫걸음이다. 영웅은 자기 자신이다. 비난이나 영웅 숭배행위에서 벗어나면 나의 중심이 외부에서 내부로 옮겨진다. (180)
올바른 선택이란 없다....
정확하지도 않을뿐더러 자신을 망가뜨리기까지 하는 옳고 그름의 이분법을 집어치우면 결정을 내리는 일이 간단해진다.....이미 내린 결정에 대해 후회하기 시작하면 다음 기회에 다른 결정을 내릴 생각에만 매여 지내게 된다. 후회는 시간낭비다. 과거에서 계속 살게 되는 것이니까....
어떤 경우에도 옳고 그름을 가르는 일에 빠져들지 말라. 어떤 것도 다른 것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 조개껍데기를 수집하는 아이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삼성전자의 사장보다 더 옳은 일을 하는 것도, 더 그른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 둘은 서로 다를 뿐이다. 단지 그뿐이다..... 자녀나 친구들, 배우자에게 "옳은 일이 아니면 말하거나 행할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가? 여기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런 권위주의적인 태도가 전국적, 세계적 규모로 확대될 때 독재로 이어진다. 옳다는 것은 누가 결정하는 것인가? 이것은 결코 만족스러운답을 구할 수 없는 질문이다. 법은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는다. 합법적인지 여부를 가릴 뿐이다.
사회화와 전통의 거부
개인도 그렇지만 세상도 발전을 하는 것은 사회에 적응하고 무슨 일이든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라 일탈하는 사람들 덕택이다. 변화는 관습을 거부하고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혁신가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자기실현을 위해서는 사회화에 저항하는 것이 불가피한 일이다. 삐뚜름한 행동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 정도는 자주적 사고를 얻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다. 그러다보면 별종으로 보일수도 있고 이기적인 사람이나 불평분자라고 낙인찍힐 수도 있다. 많은 정상적인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도 있다. 때로는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190)
머스터베이션하는 사람의 증상
머스터베이션(musturbation, '반드시 해야 할 일'과 '반드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정리해놓은 것)
1. 모든 것은 제자리가 있고 항상 그 정해진 자리에 놓여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 용인되는 옷차림은 딱 하나밖에 없고, 그것도 다른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하며 늘 무엇을 입어야 하느냐고 묻는다.
3. 특정 음식에는 특정 음료가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4. 신앙심도 깊지 않고 내심 싫어하면서도 종교의식에 참석한다.
5. 피곤할 때가 아니라 잠잘 시간이 되면 잠자리에 든다.
6. 문화가 요구하는 일상의 역할을 택한다. 집안일은 아내의, 바깥일은 남편의 몫이다. 이것은 사내아이가 할 일이고, 저것은 여자아이가 할 일이다.
7. 모든 일에 '~하는 법' 책자를 참고한다.
8. 책을 읽을 때는 항상 책 표지에서부터 시작해서 끝까지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읽는다.
9. 데이트 신청을 하는 것은 남자의 몫이다. (193-195)
머스터베이션을 없애기 위한 전략
1. 자기 나름의 전통을 만들 것. 예를 들어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트리를 장식했다면 이제부터는 3일 전에 장식해 보는 등 새로운 전통을 만들라.
2. 자신의 내면과 외면에 대한 일기를 쓸 것
3.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규칙을 강요하고 있는지 살펴볼 것
4.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떠맡긴 역할을 버릴 것
5. 대화하다가 다른 사람을 화제로 삼지 말 것
6. 다른 사람이 변하기를 기다리지 말 것. 다른 사람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단지 내가 원하기 때문은 아닌지 반문해보라. 누구나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 (198-199)
인간은 '진부'라는 맷돌을 하염없이 돌리고 있다. 하지만 맷돌에서 나오는 것은 오로지 그 맷돌에 집어넣은 것뿐. 하지만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즉흥적 사고를 택하는 순간 시, 위트, 희망, 미덕, 교훈적 일화 등 온갖 것들이 와르르 쏟아져나와 인간을 도와준다.
-에머슨, <문학 윤리 Literary Ethics>중에서,
제8장 | 일곱 번째 자기사랑-정의의 덫을 피한다 |
세상이 너무도 질서정연하고 모든 것이 공평무사해야 한다면 어떤 생물도 하루를 버텨나지 못한다.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 것조차 할 수 없다. 어찌 모든 이의 이익을 충족시킬 수 있겠는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정의를 찾는다.
정의가 실현되지 않을 때는 분통을 터뜨리거나 불안하고, 혹은 좌절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정의 구현을 추구하느니 차라리 젊음의 샘이나 신기루를 좇는 편이 훨씬 생산적일 수 있다.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껏 존재한 적도 없었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져 있지 않다. 새는 벌레를 잡아먹는다. 벌레에게는 공평치 않은 일이다.
거미는 파리를 잡아먹는다. 파리에게는 공평치 않은 일이다. 사자는 코요테를 잡아먹는다. 코요테는 오소리를 잡아먹는다. 오소리는 쥐를 잡아먹는다. 쥐는 벌레를 잡아먹는다. 자연만 쓱 둘러봐도 세상에는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바로 깨달을 수 있다. 폭풍우, 홍수, 해일, 가뭄 어느 것 하나 불공평하지 않은 것이 없다. 정의라고 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개념이다. 이세상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늘 불공평하다. (205)
우리는 정의를 구하면서 세상이 불공평하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말한다. 정의를 주장하는 행위가 전부 노이로제는 아니다. 정의를 주장하는 것이 오류지대가 되는 유일한 경우는, 정의가 보이지 않는데도 부질없이 요구하며 부정적인 감정으로 자신을 몰아세울 때다. 이런 자기 파괴적인 행동은 더 이상 정의가 아니다. 정의 부재라는 현실에서 비롯되는 자기 통제 불능 상태일 뿐이다. (206)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이 지나갔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려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아가 자유와 평등이라는 요소에 행복이라는 요소를 더하여 정의를 논하고 있다. 하지만 정의란 개념은 그 의미의 사전적 정답은 없다. 상황은 변하고 대중의 의식도 변해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미국과 우리나라에서는 이 책이 지속적으로 베스트셀러로 각광을 받는 것일까? 그것은 미국과 한국이 불평등과 차별에 대한 불만이 있고 ‘정의’에 배고파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구촌 그 어디에도 '정의로워지려'는 국가는 있어도 '정의로운' 국가는 없다. 불평등은 변하지 않고 존재한다.
그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도달하게 되는 ‘공동의 선’이란 개념은 끝이 막혀있는 ‘정의’에 대한 결론이 아니다. 그러나 샌델은 ‘정의’ 긍정론자로서 우리의 논의가 현실보다 더 성숙된 개념의 ‘정의’로 향해 가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이성만의 문제가 아니고 책 전반에 깔려있는 ‘선’을 향한 인간으로서 본성적 감성이 이성적 정리와 함께 ‘정의’를 향한 우리의 인생사란 것이 암시되어 있다. 정의란 정의될 수 없는 것이다.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도 없다. 그것이 정의다.
부질없는 외침 '불공평해!'"불공평해!"라는 외침은 상대방에게 내지르는 보편적인 자기 파괴적 한탄 가운데 하나다. 무언가를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려면 스스로를 다른 사람이나 집단과 비교해야 한다.....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마다 "불공평해!" 게임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며 타율적인 외부 지향적 사고에 지배되고 있는 사람이다. (208)
빌 게이츠가 마운틴 휘트니스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해준 인생 충고 10가지 중 첫 번째가 "인생이란 원래 공평하지 못하다. 그러한 현실에 대해 불평하지 말고 받아들여라."였다.우리 사회는 불공평을 없애고 정의로운 사회를 약속한다. 정치인들은 선거 때마다 공약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날이 바뀌고 해가 바뀌고, 세대가 바뀌어도 정의의 부재는 계속되고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다. 가난, 양극화, 흑백이념, 살인, 강도는 시간이 지나도 행해지고 있다. 인류 역사가 지속되는 한 이런 상황은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불공평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류 역사다.
우리나라 지도층에서 말하는 "세상은 공평하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온다."라는 교과서적的이고 위선적인 가르침보다는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다."는 빌 게이츠의 말이 더 솔직하고 진솔하게 다가온다.
공평함은 외부 지향적인 개념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한 가지 방법인 것이다.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대신 자신이 진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결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전략을 짜보라. 다른 사람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와는 상관없이. (209)
'이 일은 내가 더 불리하다.'고 아무리 징징대봤자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어떤 사람들은 별다른 노력 없이 20억 원의 로또복권에 당첨된다. 어떤 사람은 적게 일하고 많은 돈을 번다. 때로는 내가 더 능력 있지만 연줄이 없어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승진하기도 한다. 일종의 질투다. 질투의 뿌리는 자신감 부족에서 비롯된다. 영국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존 드라이든(John Dryden)은 질투를 "영혼의 편견"이라고 불렀다. 명쾌한 해석이다. 질투는 다른 사람의 손아귀에 잡힌 행동이다. 질투를 하면 다른 사람의 행동 때문에 내 기분이 엉망이 되기 때문이다.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의 증상
이런 증상을 가진 사람들은 매사에 이렇게 생각한다. "자고로 세상사는 공평해야 한다."라고.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의 특성이다.
1.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더 많이 번다고 불평한다.
2. 규칙을 위반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잘만 빠져나가는데 나는 한 번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고 불평한다.
3. 누군가 호의를 베풀면 반드시 갚아야 한다.
4. 논쟁을 벌일 때, 옳은 사람이 이기고 츨린 사람이 져야 한다는 이분법적 논리를 주장한다.
5. 받은 선물과 같은 가격대의 선물을 한다.
6. 다른 사람의 행위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그가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어." 식의 게임을 한다. 고속도로에서 새치기를 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먼저 그랬기 때문이고, 꾸물거리는 앞차를 서둘러 제친 이유도 그 차가 먼저 그랬기 때문이다. 정의감이 침해당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내놓는다. 그들은 어렸을 적 부모가 "저 사람이 나를 치니까 나도 치는 거야."라고 행동하는 것을 수천 번 보고 자랐을 경우가 많다. (213-214)
중요한 것은 불공평 그 자체가 아니라 불공평에 대해 내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이다.
제9장 | 여덟 번째 자기사랑-결코 뒤로 미루지 않는다 |
어떤 일을 미루는 데에는 땀 한 방울도 필요하지 않다.
누구도 일을 미루면서 마음 졸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는 것은 우리 인생을 매우 피곤하게 만드는 일인데도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다른 오류지대와 마찬가지로 뒤로 미루는 것도 그 행위 자체에는 피해랄 게 없다. 사실 미룬다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면 하는 것이고, 하지 않는 것은 뒤로 미루는 게 아니라 그냥 하지 않는 것이다. (222)
막연한 희망, 바람, 그리고 '아마'
미적거리기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미루는 행위에 빠지게 하는 3단계 심리 상태다.
-1단계 : "일이 어떻게든 잘 됐음 좋겠어."
-2단계 : "일이 더 잘 되길 바랐는데."
-3단계 : "아마 잘 될 거야."
여기에 뒤로 미루는 사람들의 기쁨이 있다. '좋겠어' '바랐는데' '아마' 같은 말을 하는 한은 현재 어떤 일에 나서지 않는 데 대한 구실이 생긴다. 원하고 바라기만 하는 것은 시간 낭비이며, 동화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어리석은 짓이다. (223)
뒤로 미루는 것은 오늘을 잡아먹는 행위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나중에 하겠노라고 결심하는 것은 '즐거운 바꿔치기'다. 지금 실행하는 대신 결심을 하는 것이다. 지금 바로 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과 타협하는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속일 수 있으니까. 뒤로 미루는 행위는 다음과 같은 편리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혹시라도 잘하지 못할까봐, 혹은 싫어하게 될까봐 걱정이야. 그러니까 나중에 할 거라고 나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거야. 그러면 그 일을 할 생각이 없다는 걸 이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리고 이런 식으로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게 훨씬 속 편해." (225)
세 명을 악마가 인간을 상대로 내기를 했다. 각자 인간을 선택한 후 자신들이 선택한 인간에게 한 가지씩 과제를 주어 인간을 이기는 내기였다. 첫 번째 악마는 인간에게 실패를 주었다. 그러나 인간은 실패를 주면 줄수록 그것을 딛고 일어나 더 큰 실패를 계속 이겨내는 것이었다. 결국 첫 번째 악마는 인간에게 손을 들었다.
두 번째 악마는 인간에게 시련을 주었다. 역시 인간은 시련을 주면 줄수록 그것을 극복하고, 더 큰 시련도 능히 이겨냈다. 두 번째 악마도 인간에게 손을 들었다. 마지막 세 번째 악마는 인간에게 미루는 것을 주었다. 인간이 무엇을 하려고 하면, 악마는 인간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소곤거렸다.
"아직 시간이 충분해, 잠시만 미루었다가 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어"
"내일도 시간이 있잖아, 지금 하지 않아도 나중에라도 너는 충분히 할 수 있어" 마침내 세 번째 악마는 인간을 이겼다.
건설적인 비평은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행동가가 아닌 관찰자의 역할을 택하면 성장할 수 없다....인생은 결코 따분하지 않지만 따분함을 굳이 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따분함은 선택이다. 내가 스스로 자초하는 것이다.... 뒤로 미루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대가로 현재를 내놓는 행위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따분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뒤로 미루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근거의 3분의 1은 자기기만, 3분의 2는 현실도피다. 미루기에 배달림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보상은 뒤로 미루다 보면 하기 싫은 일을 분명 회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한 전략
1. 5분 단위로 생활할 것
2. 지금 당장 앉아 지금껏 미뤄왔던 일을 시작해볼 것
3. 미루고 있는 일을 지금 실행에 옮길 경우 내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 상황은 무엇인지 자문해볼 것
4. 시간을 정해 당신이 미뤄오고 있는 일에만 전념해볼 것
5. 현재의 당신을 유심히 들여다볼 것
6. 자신의 삶을 찬찬히 살펴볼 것 (231-233)
세상이 변하기를 바란다면 세상에 대해 불평할 자격이 없다. 변화는 2인칭이 아니라 1인칭이다.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 내가 변하면 친구도 변하고 나아가 나라도 변한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성당의 한 성공회 주교의 비문에 있는 글이다.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에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 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 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 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자리에 누운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약 내가 나 자신을 먼저 변화 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 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내어
내 나라를 좀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 되었을지!"
제10장 | 아홉 번째 자기사랑-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
어떤 관계든,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관계는 결국 반쪽의 두 사람이 한데 모인 것이다.
심리적 둥지를 떠나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다.... 정신적 자립이란 온갖 의무 관계, 그리고 타인의 지시를 받아서 행동하는 일에서 온전히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둥지를 떠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찾는 것,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행동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단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반면 정신적 의존이란 자신에게 선택권이 전혀 주어지지 않는 관계,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강요당하는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238)
자녀는 소유물이 아니다....
동물의 왕국 어디에서든 어미 노릇이란 새끼들이 자립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기술을 가르친 뒤 새끼 곁을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인간들도 마찬기지로 자립 논능은 갖고 있지만, 자식을 소유하고 자신의 삶의 보람으로 여기는 집착에 가까운 욕구가 더 우세한 듯싶다..... 아이들은 역할모델의 행동에서 배운다....
만약 부모가 자녀를 자신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면 그 부모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부모라는 사실이다. 이는 자녀들에게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우선시하도록, 그리고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골방만 차지하도록 가르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얄궂은 일인가.... 부모도 자기 자신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자녀들을 위해 늘 스스로를 희생하지는 않음으로써 자녀들이 자신감을 갖도록 가르쳐야 한다. 자신을 희생하는 부모는 희생적 태도의 본보기 밖에 안 된다.
지배하려 하지 말고 인정하라.
대다수의 사람들의 결혼생활을 옭아매고 있는 실이 있다. 바로 지배와 복종의 실이다. 더러는 역할이 바뀌기도 하고 각각의 상황에 따라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 실은 어김없이 존재한다. 결혼 생활에 충실하겠다는 이유로 배우자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한 예를 들어보자.
철수는 31세, 영희는 27세에 결혼을 한다. 철수는 영희보다 학력이 조금 더 높고 돈도 더 많이 버는 버젓한 직장을 가지고 있다. 영희는 비서나 사무원, 또는 교사나 간호사처럼 여성이 주를 이루는 직종에 종사할지도 모른다. 영희의 직업은 출산과 함께 그만둬야 하는 비정규직이다. 4년간의 결혼생활 끝에 2~3명의 자녀를 두고 아내로서, 엄마로서 집에서 봉사한다.
아내의 역할은 살림을 하고 아이들과 남편을 보살피는 것이다. 직업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녀의 직장은 집이며, 정신적으로 복종적인 입장에 처해 있다. 반면 남편이 하는 일은 훨씬 중요한 것으로 받들어진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돈을 벌어온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남편의 성공이 곧 아내의 성공이며, 그가 사회적으로 교류하는 사람들과 아내도 함께 어울려야 한다. 그는 집에서 아내보다 더 대우를 받는다. 아내의 역할은 그의 삶을 한껏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 될 때가 많다. 아내는 하루의 대부분을 자녀와 씨름하면서 보내고 똑같은 심리적 덫에 빠진 동네 아줌마들과 노닥거린다. 남편이 직장에서 고비를 겪으면 그것은 곧 아내의 고비가 된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이런 구도 하에서는 지배하는 쪽과 복종하는 쪽이 분명히 존재한다. 아내는 그런 관계를 받아들이며, 어쩌면 바람직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여태껏 그런 구도 안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녀의 결혼생활은 그녀의 부모나 그녀가 자라면서 보아온 다른 사람들의 결혼생활을 본뜬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의존했던 부모의 자리를 남편이 대신한 것에 불과하다.... 의존은 지배와 복종을 낳고 궁극적으로는 부부 관계를 와해시킨다.... 중요한 것은 의존과 사랑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얄궂지만 결혼생활에서는 함께 하는 가운데 약간의 거리를 둬야 부부 간의 금슬이 더 좋아진다. (246-247)
자립을 선언하기 위한 전략
1. 모든 인간관계에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가를 명시하는 '자립 선언서'를 작성해볼 것
2. 내가 종속적으로 느끼고 있는 사람 하나하나와 얘기를 나눌 것
3. 부모, 배우자, 상사, 자녀 등 나를 지배하고 있는 사람들을 고의적으로 피하지 말 것
4. 나를 지배하고 있는 사람들 곁을 떠나보라.
5. 모임에 참석하면 배우자와 떨어져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라. (256-257)
제11장 | 열 번째 자기사랑-화에 휩쓸리지 않는다. |
화의 유일한 해독제는 '도대체 왜 저 모양일까?'라는 말을 마음속으로 되내지 않는 것이다.
화는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 아니다....
일종의 정신적인 독감 같은 것이다.... '화'라는 것은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경험하는 자기 통제가 불가능한 반응을 가리킨다. 화는 격분, 적개심, 폭력 행사, 말없이 노려보기 등의 형태를 띤다....화는 버릇이다 선택이다. 실망을 느낄 때 나타내는 몸에 밴 반응으로, 결국 후회하게 될 방식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심하게 화를 내는 것은 일종의 정신 이상이다.... 화를 내서 얻을 수 있는 정신적 보상은 없다.... 화를 표출하는 것이 누르고 있는 것보다 훨씬 건전한 대안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보다 더 건강에 좋은 대안이 있다. 아예 화를 내지 않는 것이다.... 모든 감정이 그러하듯, 화는 생각이 만들어낸 것이다. 단지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261-263)
화는 어떤 인간관계에서든, 상대방이 계속 예전과 다름없이 행동하도록 부추기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 화를 내는 것은,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그 사람의 권리를 억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른 사람들은 결코 당신이 바라는 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란 그런 거다....
절대 변하지 않을 상황에 대해 화를 매는 것, 그것은 매우 미련한 짓이다.
화를 내는 대신, 다른 사람에게도 내 생각과 다른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못마땅하더라도 그렇게 인정하는 것이 옳다.
화의 원인
화는 언제 어디서나 나타난다. 화를 내는 보편적인 상황들을 살펴보자.
1. 자동차 운전 중에 내는 화
운전자들은 걸핏하면 다른 운전자에게 소리를 지르고 경적을 울린다. 너무 천천히 운전한다고, 과속한다고, 깜빡이를 제대로 넣지 않는다고, 멋대로 차선을 바꾼다고. 다른 사람들이 실수를 할 때 벌써 맥박은 빨라져 온다.... 교통체증도 화와 적개심의 진군을 알리는 주요한 신호다. 이런 모든 화의 주범은 바로 이 생각 하나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어. 하지만 이렇게 눈앞에 벌어지고 있으니 화가 안 날 수 있겠어? 다른 사람들도 이런 상황에 처해보라지.'
2. 다른 사람들의 굼뜬 행동에 대한 화
다른 사람들이 나의 일정에 맞춰 움직일 거라고 기대하면서 내는 화다. 그들이 내 기대에 어긋날 경우 "내가 화 안 나게 생겼어? 날 30분이나 기다리게 했다고."라는 말로 자신의 통제 불능을 정당화한다.
3. 다른 사람들이 정돈도 못하고 칠칠맞다고 내는 화
화를 내는 것이 되레 상대방으로 하여금 계속 똑같이 행동하도록 부추기는 것인데도 화를 내는 쪽을 택한다.
4.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세상사에 대한 화
정치나 외교 관계, 또는 경제 돌아가는 꼴이 영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화를 내고 흥분한다 한들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267-269)
화를 이기려면
화를 제거할 수 있다. 그러려면 생각을 대폭 뒤집어야 한다. 그리고 한 번에 그 순간의 화만 제거할 수 있다. 화를 공략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전략 몇 가지를 소개한다.
1. 화를 내는 것을 뒤로 미루려고 노력할 것
2. 허물없이 지내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할 것
3. 자녀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기 위해 건설적으로 이용하려 할 경우에는 화를 내는 시늉만 할 것
4. 화를 냈다면 "방금 나도 모르게 화를 내버렸어. 이제 다시는 화를 내지 않도록 생각의 시각을 바꿀 거야."라고 말할 것
5. 자신을 사랑할 것. 그러면 자신을 망치는 행동으로 스스로를 짐지우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다.
6. 교통체증에 걸리면 시간을 잴 것. 얼마 동안 화를 내지 않고 참을 수 있는지 살펴보라. 자신을 제어하기 위해 노력해 보라.....
화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하등 쓸모없는 짓이다. 다른 모든 오류지대와 마찬가지로, 화는 다른 사람이나 물건을 이용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다른 사람들은 잊어라. 스스로 선택을 내려라. 그리고 그 선택이 화가 아니게 하라. (272-274)
제12장 | 행복한 이기주의자 |
그들은 너무도 열심히 살아가는 나머지 주위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아차릴 여유가 없다.
오류지대를 하나도 보이지 않는 사람은 실제로 존재한다....
그들은 삶의 거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해도 즐거워하며, 불평하거나 이미 지나간 일에 매달려 허송세월 하지 않는다.
열의에 차 있으며, 삶에서 최선의 것을 구하려 애쓴다. 나들이, 영화, 책, 스포츠 등 거의 모든 것을 즐긴다.
불평하거나 하소연 하는 일, 심지어는 한숨짓는 일도 없다.
비가 오든 푹푹 찌든 결코 투덜대는 법이 없이 즐긴다.
차들로 꽉꽉 막힌 도로에서 오도 가도 못하든,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든 혼자있든, 그들은 주어진 상황에 있는 그대로 대처한다.....
이런 사람들은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에 살고 있다.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색다르고 낯선 경험을 찾아 나선다....
그들은 현재의 행복을 긁어모으며, 미래가 현재가 되면 그 행복도 쓸어담는다.
그들은 퉁명스러울 정도로 솔직한 편이다. 비위를 맞추기 위해 세심하게 포장된 표현을 사용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을뿐더러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인정헤줬으면 하는 터무니없는 바람도 품지 않는다....
그들은 불합리하고 소소한 규칙들을 무시한다. 상당수 사람들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자잘한 관습도 짐짓 못 본 채한다.....
삶에 대한 태도는 진중하지만 삶에 대해 웃음을 보낼 줄 알며 모든 것을 즐겁게 바라본다....
그들은 세상이 어떠해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없다. 청결이나 정돈에 대한 결벽증도 없다....
그들은 호기심이 왕성하다. 그 호기심은 채워질 줄을 모른다. 항상 새로운 것을 찾고, 인생의 한 순간 한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자기변명을 하지 않는다. 잔머리를 굴리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내보이기 위해 옷을 입지도 않는다....
그들은 툭하면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도 아니다. 어떤 사람이 더 많은 특권을 가지고 있다면 잘 됐다고 생각하지, 배 아파 하지 않는다. 어떤 이와 경쟁하게 되었을 때 상대방이 선전하기를 바라지, 어떻게든 이겨보겠다고 그 사람이 실수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저자가 우리에게 강조하는 바를 요약하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성장하고 싶다는 욕구에 자극받으며, 갈림길에 섰을 때 항상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편을 택한다....
현재의 한순간 한순간을 최대한 알차게 살아라.
그러면 우리는 주변인이 아닌 '행복한 이기주의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오류지대에서 벗어난다는 것, 그것은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지금 당장 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행복한 이기주의자'가 되어라.
'행복'에 관한 통찰력이 담긴 글이다.
"행복(幸福)을 찾으려는 시도만큼 행복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도 없다.
역사학자 윌 듀런트(Will Durant)는 지식 속에서 행복을 찾는 방법을 설명했지만 결국에는 얻은 것은 환멸뿐이었다.
그는 다시 여행에서 행복을 구했지만 지루함만 남았다.
부를 얻었지만 불화와 걱정이 생길 뿐이었다.
저술에서 행복을 찾았지만 피로만 쌓일 따름이다.
어느 날 잠들어 있는 갓난아기를 품에 안은 한 여인이 소형차 안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얼마 후 한 남자가 기차에서 내려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먼저 여인에게 부드럽게 입 맞추고 난 다음, 아기에게도 혹시라도 잠이 깨지 않도록 살짝 입을 맞췄다.
가족이 차를 타고 떠나자.
듀런트는 진정한 행복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벼락같이 깨달았다.
그는 '일상 속에 순간순간이 행복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이 편안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Reader's Digest)>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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