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보다 더 도덕적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옐로카드,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가끔 제목에 휘둘려 사는 책이 있다.
우연히 책 서핑을 하다 제목에 혹해 무릎을 쳤다.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라는 책이다.
심리학에 가까운 책이지만 철학적 질문이 가미되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철학이 묻고 심리학이 답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진실’이라는 부제가 더 심오하다.
공자 이래로 아니 공자 이전부터 인류는 늘 도덕을 강조해왔고 도덕적인 인간과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해 오고 있다. 그러나 갈수록 비도덕적인 것 같다. 도덕적 가치를 실현한다는 것, 이것은 인류의 영원한 숙제인가 아니면 이상인가.
정말 도덕적인 인간들이 많아질수록 나쁜 사회가 된다는 말인가.
도덕적 인간이 많으면 당연히 좋은 사회가 되어야지 어떻게 나쁜 사회가 된다는 것인가.
도덕적 인간이 나쁜 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쉽게 수긍이 가지 않았다.
이 책은 '사회적 인간'이라는 주제와 관련한 모든 심리학 연구를 집대성해놓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페이지마다 엄청난 각주와 출처, 그리고 온갖 심리학 실험과 통계, 기사들이 인용된다. 엄격하게 말하면 책이라기보다는 논문에 가깝다. 심리학 관련 많은 실험결과들이 등장하다보니 제법 익숙한 법칙들도 눈에 띈다. 깨진 유리창 법칙, 37명이 보고 있었음에도 살해당한 뉴욕의 여자, 어린이 마시멜로 실험, 간수와 죄수 역할 놀이를 통해 사람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 하는 실험, 등등.
이 책의 백미는 객관적 자료들에 입각하여 인간의 본성이 악해서 세상이 비도덕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갈수록 인간의 사회성이 발달하기 때문에 오히려 세상이 나빠진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낙서금지'라는 팻말이 커다랗게 보이는 한적한 거리. 세워진 자전거마다 요란한 광고전단이 꽂혀 있다. 자전거 주인들은 전단지를 바닥에 버릴까, 쓰레기통에 버릴까. 가슴에 손을 얹고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 자문해보라. 실험 결과, 이미 낙서로 더럽혀진 거리에서는 69%가 전단을 바닥에 버렸다. 하지만 낙서 없이 깨끗한 거리에서는 33%만이 전단을 버렸다. 책에 나오는 한 실험결과다.
저자는 이른바 '도덕적 착각'에 빠진 인간의 본성을 가감없이 이야기한다.
‘군주는 도덕적이기보다는 도덕적인 척하라’는 마키아벨리의 말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착하고, 예의 바르고, 배려심 있는' 도덕적 인간을 요구하는 우리 사회에서 정말 도덕적으로 살고 있느냐고 말이다. 유명한 심리학자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대개의 인간은 도덕적이기보다는 도덕적인 척하는 위장술에 능하다. 특히 권력자나 정치가, 경영자와 같은 사회지도층일수록 위장술에 더 일가견이 있다. 위장술이 능할수록 우리는 도덕적인 인간으로 대접을 해준다.
이처럼 인간의 마음은 간사하고 얍삽하다.
특히 권력이 존재하는 곳, 이익으로 존재의 가치를 추구하는 조직에서는 더 심하다. 조직에서 감시와 통제, 억압이 가해질수록 다른 직원들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더 ‘도덕적인 척’, ‘더 유능한 척’ 연기를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남들보다 더 도덕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스스로 도덕성을 획득했다고 생각(착각)하는 순간부터 비도덕적이 된다. 자신이 도덕적이란 생각만으로도 사람들은 타인의 위반 행동에 비난을 퍼붓거나 앙심을 품는다. 자신도 교통신호를 지키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교통신호를 지키지 않는다고 삿대질을 해댄다. 남의 잘못에 눈을 부라리면서 자신에게만 관대하다. 어쩌다 부도덕한 행동을 하게 될 때도 ‘그저 남들이 하니까 따라서 한 것뿐’이라고 합리화시킨다.
인간은 가면을 쓰는 등의 가벼운 익명성에도 불구하고 폭력성이 증가한다.
시험을 볼 때 문제를 푸는 방의 조명이 조금만 어두워져도 부정행위가 확 증가하고, 자신이 도덕적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탐욕스러운 태도를 보인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에게 관대한 태도를 보이지만, 권력을 차지한 사람들은 그러한 위선적 태도가 훨씬 두드러진다. 세상이 남에게 공정하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강간피해자, 아동폭력 피해자, 사기당한 사람 등의 사회적 피해자를 업신여긴다. 도덕적인 행동을 이끌어내는데 종교 또한 별 효과가 내지 못한다는 게 심리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독실한 종교인들은 서면상의 조사에서는 자기가 남들보다 선하다는 것을 드러내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태초에 원시인으로 시작했다.
세계에서 가장 문명인이라 자처하는 그리스인도 예외는 아니다. 동물에서 시작해서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고 해서 인간이 동물의 본성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지구별에서 ‘~인 척’ 하는 명연기자들인지도 모른다.
도덕적 착각에 빠져 있는 인간의 심리를 파헤친 사회심리학 서적이다. 책은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고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인간의 모습을 실험과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도덕적 인간이라 자처한 사람들이 자신이 행한 도덕적 행위를 반성하지 않는 한 좋은 사회는 도래하지 않는다고 저자는 주장. 2013년 이그노벨상을 수상한 저자가 도덕성에 집착하는 사회에 대해 맹렬한 비판을 토해낸다.
1000명의 일반인에게 죽어서 천국에 갈 것 같은 유명인을 물었다. 마더 테레사가 천국에 갈 거라고 답한 사람이 79%였다.
그런데 ‘자신이 죽으면 천국에 갈 것’이라고 답한 비율은 87%에 달했다. 연구에 따르면 조깅하는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다고 생각할 때 좀 더 열심히 달린다고 한다. 성금은 봉투에 넣어서 내게 하면 모금액이 확연히 줄어든다. 스스로를 ‘도덕적 인간’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은 정말 도덕적일까. 책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증명한다. 소소하긴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위선적인 셈이다.
이렇게 ‘호모 모랄리스(도덕적 인간)’가 넘쳐나는 세상이 왜 비도덕적일까? 답은 사람들이 심각한 ‘평균의 착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책은 ‘도덕적 자아’에 대한 환상을 깨부수며 인간의 도덕성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산물임을 풍자적으로 풀어낸다. 하지만 바로 이렇게 타인을 의식하기에 ‘나만 잘 사는 것’을 바라는 게 아니라 ‘남들도 잘 사는 것’을 바라는 도덕적 존재로 진화했다고 분석했다.
모범생이고 예의바를수록, 복종하는 경향이 강하다.
직장인들의 경우 근속년수가 오래될수록 복종하는 경향이 강하다.
80% 이상의 사람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도덕적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피해자에게 가혹하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아직도 도덕 타령이라니!
이 책은 ‘도덕적 인간’이고 싶어하는 우리의 욕망을 담고 있다. ‘착한 사람’, ‘예의 있는 사람’, ‘개념 있는 지식인’을 내세우며 스스로가 도덕적 인간임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지하철 옆자리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바쁜 와중에도 자신의 도덕성을 긁어모아 곱게 포장해서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를 비롯해 개인의 성향을 드러낼 수 있는 모든 곳에 진열하는 것은 비단 남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도덕은 타인의 시선이 머무는 곳,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우리의 고귀한 도덕성이 그저 타인의 시선에 의해 좌우된다니, 좀 억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그 모습을 바꾸는 인간의 도덕성은 이 책의 실험과 사례에 따르면 이토록 많다. 심지어 우리의 도덕성은 태어나자마자 타인에 의해, 그리고 사회가 정한 기준에 의해 평가되고 정해진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선과 악이 마치 산소와 수소처럼 결합해 이루는 ‘좋은 생각’의 바다와 같다. 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그 바다에 잠겨든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호모 모랄리스(homo moralis), 즉 ‘도덕적 인간’이다. 내 아들은 분만실에서 태어난 지 고작 몇 시간 만에 행동거지가 바르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기의 체온 등 몇 가지 사항을 확인한 간호사가 차트에 ‘순하게 행동함’이라는 코멘트를 달았던 것이다.(10쪽)
우리는 다소 꺼림칙한 일을 할 때 ‘그저 남들처럼 행동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함으로써 이미 검증된 이 심리 기제를 이용하곤 한다.
가령 못 말리는 술꾼에게 친구들의 주량을 털어놓으라고 하면 그는 친구들의 주량을 실제보다 부풀려 말한다.
당신의 이웃이 남들을 우롱하거나, 아내 몰래 바람을 피우거나, 세금을 포탈하지 않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그 사람에게 그런 짓을 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얼마나 될 것 같으냐고 물어보라! 구린 일을 하는 사람은 자기와 똑같이 행동하는 사람의 비율을 높게 잡는 경향이 있다.(13쪽)
연구에 따르면 조깅하는 사람들은,
자기를 보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할 때보다 누군가가 자기를 보고 있다고 생각할 때 좀 더 열심히 달린다고 한다. … 위생수칙이라는 측면에서도 공중화장실에 혼자 있을 때보다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 볼일을 보고 나서 손을 씻는 빈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타적인 행동을 요청할 때에도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이 권할 때, 사회적인 인맥을 고려하게 만들 때, 전화보다는 직접 얼굴을 보고 부탁할 때, 특히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부탁할 때 그 요청이 받아들여질 확률이 높다. 반대로 성금 따위를 봉투에 넣어서 내게 하면 모금액은 확연히 줄어든다.(53쪽)
감시의 부재가 범죄 실행의 조건이 될지라도 부정직한 행위의 근본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규범을 위반하는 가장 큰 이유는 통제가 느슨해져서가 아니다. 게다가 감시는 사회적 행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부당하게 여겨지는 통제는 되레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자극하고 역효과를 일으킨다. 한 연구에 따르면 직원들이 직장 상사의 감시가 과하다고 생각하면 그 상사에게 적대감을 품게 된다고 한다. 또 직장에서 출입 자동기록시스템 같은 인력감시수단을 늘릴수록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반감을 품는 경향이 있다.(61쪽)
작은 집단 내에서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이 거론되면 그 사람에 대한 평판은 두번째로 나오는 발언으로 결정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처음에 그 사람에 대한 안좋은 얘기가 나왔는데 누가 그 얘기에 맞장구를 친다면 집단 전체는 그 사람을 나쁘게 볼 것이다.
반면에 두번째로 말하는 사람이 그에 대해 긍정적인 얘기를 하면 맨 처음 얘기를 꺼낸 사람의 부정적인 언급은 상당 부분 힘을 잃어버린다.
(91쪽)
인간의 온기를 거부당한 사람들은 정말로 체온이 떨어진다.
토론토 대학의 두 연구자는 사람이 사회적 배척을 경험한 직후에는 자기가 있는 방 안의 온도를 실제보다 낮게 느끼고 따뜻한 음료나 음식을 선호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반면에 사람들은 실내 온도가 17도일 때보다는 23도일 때 서로를 더 가깝게 느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사회적 거부를 경험한 직후에 아이큐검사를 받은 사람들은 지능지수가 상당히 떨어지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또 사회적 거부를 경험한 사람일수록 술이나 음식에 탐닉하는 경향이 있고, 남에게 너그럽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속임수를 쓰기 좋아했다.(94쪽)
다리우스는 가까이 지내는 그리스인들을 불러 얼마를 주면 돌아가신 아버지의 육신을 먹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금은보화를 안겨준다 해도 그런 짓은 할 수 없노라 대답했다. 그러자 다리우스는 인도인들은 불러오게 했다. 이들에게는 돌아가신 부모의 육신을 먹는 풍습이 있었다. 다리우스는 그리스인들이 보는 앞에서 인도인들에게 얼마를 주면 돌아가신 부모의 시신을 화장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인도인들은 언성을 높이면서 제발 그런 끔찍한 말은 하지 말라달라고 애원했다.
(181쪽, 헤로도토스의 <역사> 재인용)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가 속한 집단과 사회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는 본능적 노력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덕적 행위의 동기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고 이기적이지도 이타적이지도 않은 중성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도덕적 인간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루소의 말을 전하고 싶다.
"내가 살면서 저지른 모든 잘못은 심사숙고 끝에 나온 것이었지만, 얼마 안 되는 선행은 충동적으로 한 일이었다."
(장자크 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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