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바위와 돌로 지어진 성이 공중에 떠 있다.
하얀 구름, 그리고 파란 하늘과 대비되는 르네 마그리트가 그린 '피레네의 성'은 중력에 저항하는 반중력의 표상이다.
중력에 저항한다는 것은 많은 노력과 고통을 수반한다.
중력에 저항하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발레다.
발끝으로 선다는 것 자체가 중력에 저항하는 것이다.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는 역도도 짓누르는 중력을 극복하는 스포츠다.
높이뛰기나 멀리뛰기도 공중에 떠 있는 시간이 길어야 좋은 기록을 낼 수 있다.
중력에 저항한다는 것은 일반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다. 사회 모든 분야에는 암묵적으로 정해진 상식의 룰이 존재한다. 상식을 뛰어넘는 것은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화가 마그리트는 평생을 '익숙한 것을 익숙하지 않게 그리는 것'을 철학으로 삼았다. 익숙함은 편안함이다. 익숙함은 습관이다. 익숙함은 정신과 육체를 지배하는 대신 편안함을 준다.
그래서 벗어나기 힘들다.
르네 마그리트 '피레네의 성'
개인도, 기업도, 국가도 이런 편안함에 길들여지면 중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얄팍한 뇌가 그렇게 길들여져 왔다. 익숙한 것은 이해하기 쉽고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에 뇌가 에너지를 많이 소비할 필요가 없다. 뇌가 가장 좋아하는 '에너지 소비 최소화의 원칙'에 부응한다. 그래서 인간은 대개 익숙한 것만을 찾는다.
나이가 들고 특정 분야에 경험이 많을수록 더욱 그렇다.
특히 어떤 분야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전문가라고 자만하는 순간 중력의 힘에 빠져든다. 남들이 가지 않는 새로운 길을 가기 어렵다.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기 어렵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는 새롭고 창의적인 것에 뇌가 불편해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든 기업이든 경제든 부동산이든 익숙함에 중독되면 변화가 어렵다.
똑똑하기로 소문난 토끼가 있었다.
겨울이 오자, 토끼는 먹이를 찾으러 나섰다.
두 갈래 길이 나타났고, 토끼는 자신이 택한 길에 먹이가 있으리라 확신하며 앞만 보고 뛰었다.
그러나 가도 가도 온통 하얀 눈밭 뿐, 도통 먹이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반대편에서 오던 다른 토끼를 만났다.
"이 길엔 먹이가 없을 텐데, 다른 길로 가 봐."
여기서 되돌아간다면 내 선택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꼴밖에 안 돼.
토끼는 머리를 흔들며 걸음을 재촉했다.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어야 했나?
하지만 여기서 포기한다면 이도 저도 아닌 꼴이 될 거야.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힘겹게 한발 한발을 내딛던 토끼는 아무것도 없는 길의 끝에 다다랐다.
잘못된 판단, 부질없는 자존심, 그리고 옹졸한 고집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지만, 토끼는 자꾸만 감기는 눈을 깜박이며 생각했다.
'되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어.'
삶이 아름다운 건 수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우고 다시 쓴 자국이 가득한 원고야말로 진짜 작가의 열정이 녹아있다.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갈 수도 있다.
되돌아와서 새로운 길을 나서는 용기와 열정이 필요하다.
중국의 대문호 루쉰이 말했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된다."
맨 땅에 가장 먼저 길을 만드는 것은 중력에, 상식에 저항하는 것이다. 안락지대를 벗어나 불편지대로 가는 것이다.
오랫동안 금과옥조처럼 해왔던 방식이나 생각, 방향성이 편암함에 물들어져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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