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의 권리
함부르크가 유명한 것은 하펜시티나 엘베필하모니홀이 랜드마크여서가 아니다. 분데스리가의 함부르크SV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독일 최대의 항구이자 제2의 도시라는 점에서 부산과 닮았지만, 도시 품격에서 부산과 견줄 바가 아니다. 무역을 발달시킨 막강한 중세 해양력은 물론 르네상스 이후 한자동맹 맹주로서도 위상을 한껏 자랑했다. 그런 역량을 바탕으로 증권거래소나 은행 등 명실상부한 해양금융의 중심지답게 백만장자가 5만 명 가까이 살고 있단다.
그러나, 진정한 함부르크의 힘은 ‘도시의 권리’를 끌어낸 시민단체 ‘콤 인디 겡에(Komm in die Gange·골목으로 오라)’에 있다. 2000년대 초 함부르크 항구 뒷골목의 원도심 재개발 정책이 발동하면서, 100여 년 된 건물 열두 채가 노화를 이유로 철거대상이 됐다. ‘콤 인디 겡에’는 “도시는 브랜드가 아니고 기업도 아니고, 하나의 공동체다”라고 선언하면서, 낡았지만 역사적 가치를 지니는 건물의 철거에 결연히 저항했다. 이에 동조한 저항적 예술가들이 몰려들어 골목을 살려냈고, 지금은 연일 관광객이 들끓는 함부르크의 대표적 명소가 됐다.
삶의 주름이 있는 골목이 도시의 매력
함부르크의 성공도 골목을 지켜낸 덕분
낙후된 원도심, 재개발로 지울 게 아니라
느리게 골목 걸어 다닐 권리 되찾아야
도시의 성장이나 브랜드는 화려하고 웅대한 건축물에 있지 않다. 보이지 않으면서도 삶의 흔적과 주름, 냄새가 있는 공동체 공간이라야 한다. 오늘날 초고속·초연결·초하이테크 사회가 ‘영혼의 자리’를 밀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뉴스는 마치 “네가 꿈꾸는 것 이상으로 실현”되는 5G의 세상이 곧 닥칠 듯이 선전한다.
바야흐로 문명사적 대전환이 임박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오늘’ ‘여기’의 가치 중심은 여전히 사람이다. 내일이 신의 영역일지 몰라도, 오늘은 인간의 영역이라서다. “21세기의 전례 없는 기술적·경제적 파괴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사회적·경제적 모델을 최대한 빨리 개발해야 한다. 이런 모델들은 일자리보다 인간을 보호한다는 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유발 하라리의 경고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인간의 행복이 바로 “사람이 있는 문화, 함께 행복한 문화” 속에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도시에 문화가 흘러야 하고, 시민은 향유할 권리를 지닌다. 도시 공간의 문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차량을 타고 질주할 게 아니라, 골목을 느리게 걸어야 한다. 속도와 편익성에 가려진 인스턴트 문화가 아니라, 기다림과 느림 그리고 거기서 배어 나오는 원초적 고독을 즐기기 위해서라면 대로가 아니라 골목길이 제격이다. 불편과 고통이 인류를 진화시켰음을 믿는다면, 도시의 거리와 골목길을 차량으로부터 되찾아 와야 한다. 가로와 세로, 수직과 수평의 동선을 따라 터벅터벅 걸어서 누릴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그리운가? 사람 다니라고 생겨난 길이 우마차에 빼앗겼다가, 마침내 차량에 정복당했다. 차량을 피해 거리와 골목을 숨어다녀야 하는 우리는 얼마나 불행한가?
부산 곳곳이 도시재생 중이다.
자본은 여전히 재생보다 재개발의 유혹에 기울어져 있다. 노화된 도시를 말끔히 밀고, 완전한 새것으로의 개조를 욕망한다. 재개발을 넘어 ‘공공적 재생’이 성공하는 길은 없을까? 노후한 골목에 예술가 화가 디자이너 도시설계사 사진가 건축가 영화감독 행위예술가 무대설치가 기획사들이 ‘공공적 재생’ 또는 ‘자생적 부활’에 동참해 만드는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이들이야말로 리처드 플로리다가 말한 ‘창조적 계급’이지 않은가?
그런 공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수영 삼거리 근처,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내려 간선도로를 비켜 한 블록만 들어가면 길은 좁아지고 집들이 손에 잡힌다. 골목을 걸으면 책방, 출판사, 카페, 마을 도서관, 음악다방이 즐비하고, 조그만 빵집이나 맛집들이 뿜어내는 향기가 달달하다. 이곳저곳에서 생생한 인문학적 토론회, 작은 전람회나 음악회, 영화상영, 작가모임, 시민강좌 등이 벌어진다면 또 얼마나 좋을까? 자본에 예속된 ‘큰 놈 한방(single big)’이 아니라 사람 냄새 풀풀 나는 ‘작은 것들(several small)’이 원도심의 신성장 동력이자 인구감소를 줄일 대안은 아닐지? 젠트리피케이션만 아니라면 집값 좀 오르면 어떠랴? 느리게 걷다 보면, 사람 목소리가 담장을 넘어온다. 음, 참 따뜻하다.
-<부산일보>, 2019.3.8. '로컬터치' 김태만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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