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화난 원숭이 실험'을 보자.
미국의 경영학 대부로 불리는 개리 해멀과 경제학자 프라 할라드가 실험을 통해 소개한 내용이다.
실험자가 한 무리의 원숭이들이 있는 우리의 천장에 바나나를 줄로 매달아 놓았다. 그리곤 원숭이들이 바나나를 먹기 위해 줄을 타고 올라갈 때마다 찬 물을 뿌려댔다.
원숭이들은 여러 번 시도를 했지만 번번이 물세례를 받고 바닥으로 떨어지기 일쑤였다. 그러자 점점 줄을 타고 오르려는 원숭이들은 줄어들었고 마침내 어느 원숭이도 줄을 타지 않게 되었다.
실험자는 이후 찬물 세례를 받지 않은 새로운 원숭이를 무리에 집어넣었다. 당연히 바나나를 먹기 위해 줄에 올랐으나 우리 안에 있던 고참 원숭이가 제지했다.
그로 인해서 자신들까지 덩달아 찬물 세례를 받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실험자는 그럴 때마다 원숭이들을 한 마리씩 교체했고 마침내 직접 찬물 세례를 받은 원숭이는 한 마리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직접 찬물세례를 받은 경험을 가진 원숭이는 한 마리도 없는데도 어떤 원숭이도 바나나를 따먹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르면서 원숭이들에게 바나나는 '따먹으면 안 되는 대상'으로 되어버린 것이다. 이 실험은 조직에 만성화된 부정적인 태도와 학습된 무기력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등장하지만 조직뿐만 개인은 물론 분야를 초월하여 적용되는 현상이다. 조직이 나이가 들수록 관료화 되어가면서 변화보다는 관습을 따르게 된다. 부동산도 경험이 쌓이면 ‘다 안다’병에 걸려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지 않으려 한다. 누군가 새로운 시도를 할라치면 "그건 해봤는데 안 돼!" 또는 "해봐야 시간낭비야!"라고 말하는 타성에 젖은 문화가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해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만약 부동산 일을 새롭게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경험자들의 관습이 그대로 이어지는 수용적 사고에 매몰된다면 부동산 시장의 발전은 요원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나쁜 관습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경험과 지식에 의심을 품어야 한다. 모든 변화는 의심에서 시작된다. 전문가의 말이나 경험자들의 업무방식이라 할지라도 그 권위에 굴복하지 않고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어떤 일이든 변화를 시도하고 싶은 마음과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혼재되어 있지만 결국 비판적 사고가 응집되어야 기존의 관습을 뛰어넘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부동산은 첫째도 입지, 둘째도 입지, 셋째도 입지라는 대명제에 대해서도 늘 의심을 가져야 한다. 입지 너머의 심리, 지표 너머의 군중심리를 봐야 한다. 결국 시행착오를 겪은 여러 시도와 도전들이 축적되어야 내가 변하고 조직이 변하고 나아가 사회가 변한다.
원숭이와 관련하여 앞의 실험과 반대되는‘100번째 원숭이 효과’라는 사례도 있다.
흙이 묻은 고구마를 받아 든 원숭이의 모습을 상상해 본적이 있는가? 다른 동물보다 지능지수가 높은데다 인간과 가장 많이 닮은 원숭이가 고구마를 처음 보았을 때의 반응이 사뭇 궁금하다. 1952년, 이에 의문을 품은 일본 교토대학 영장류연구소 연구원들이 규슈의 미야자키현 인근에서 서식하고 있는 원숭이들을 대상으로 고구마를 던져주며 이들이 어떻게 먹는가를 실험한 적이 있다. 실험 장소는 무인도인 고지마(幸島) 섬이었으며, 20여 마리의 원숭이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원숭이들은 처음에는 고구마에 묻은 흙을 손으로 털어서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18개월 된 어린 암컷 원숭이 ‘이모’가 바닷물에 고구마를 씻어 먹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어린 원숭이와 암컷 원숭이들을 중심으로 고구마를 씻어 먹기 시작했다. 4년이 지나자 20마리 중 15마리가 고구마를 물에 씻어 먹었다. 그런데 다섯 마리의 나이든 수컷 원숭이들은 변화를 거부한 채 계속 고구마의 흙을 털어서 먹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고지마 섬에서 멀리 떨어진 산속에 사는 원숭이들도 고구마를 물에 씻어 먹는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두 무리의 원숭이들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똑같이 고구마를 씻어 먹고 있었던 것이다. 섬에서 멀리 떨어진 산속까지 고구마 씻어 먹는 행위가 전파된 것이다.
그 후 1994년, 이 사례를 유심히 연구하던 저명한 동식물학자인 라이얼 왓슨은 어떠한 접촉도 없던 원숭이들 사이에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이 행동을 ‘100번째 원숭이 현상’이라고 명명했다. 고구마를 씻어 먹는 원숭이의 수가 임계치(臨界値, 100마리)를 넘어서면 이 행동이 그 무리들뿐 아니라 멀리 떨어진 다른 장소의 무리들에게까지 전파된다는 것이다.
이후 이 용어는 어떤 행위를 하는 개체의 수가 일정 수준에 이르면 그 행동이 급속히 확산되는 현상을 설명할 때 자주 쓰이고 있다. 물론 고지마 섬과 산속 원숭이들의 고구마 세척 행태는 우연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실험이 시작된 지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고지마 원숭이들의 고구마 세척 습관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조직이라도 변화와 혁신을 거부하는 ‘나이 먹은 수컷 원숭이’ 세력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변화를 선도하는 ‘어린 암컷 원숭이’ 역시 존재한다. 당장 가시적 성과를 바라는 리더의 조급증은 혁신의 확산에 별 도움이 안 된다. 변화를 선도할 어린 암컷 원숭이가 누구인지를 파악하고 이들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조직의 구조와 문화, 프로세스 등을 세심하게 관리하고 지원해야 한다. 100번째 원숭이라는 임계점을 돌파하자 고지마 야생 원숭이 집단 전체의 행동이 바뀌었다.
그 변화의 시작은 단 한 마리의 어린 원숭이, ‘이모’였다. 작은 불씨 하나로 조직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영국의 과학자 루퍼트 셜드레이크는 이런 현상을 `유형(類型)의 장(場)에 의한 유형의 공명(共鳴)'이라는 `셜드레이크 가설'로 설명했다. 100명이 문제의식을 갖고 깨달으면 세계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혁신과 창의성으로 대별되는 작금의 기업 상황을 보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100마리째 원숭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첫 번째 원숭이’가 필요하다. 내가 바뀌면 팀원 나아가 조직 전체가 바뀐다.
이 현상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이다.
첫째, 어린 원숭이들은 빠른 속도로 새로운 행태나 문화에 젖어 들었지만 나이든 원숭이들은 자녀들을 모방한 암컷 원숭이들만이 이러한 사회적 진보를 학습했을 뿐, 그렇지 않은 성인 수컷 원숭이들은 여전히 손으로 털어 먹을 뿐 물에 씻어 먹는 것을 거부했다.
둘째, 세상의 가치관이나 구조는 변화를 주도하는 한 사람에 의해 바뀐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깨달으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먼저 한 사람이 깨달으면 사회와 세계를 바꿀 수가 있는데 이것은 시공을 초월한 공명현상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셋째, 고구마를 씻어 먹기 시작한 고지마섬 원숭이들의 행동이 60년이 지난 지금도 바뀌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한 번 습관화된 행동양식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것 같아 한편으론 씁쓸하다.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면 이 역시 결국 또 다른 ‘화난 원숭이’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변화에 마침표가 없는 이유다.
끝으로 우리가 변화를 이야기할 때 깊이 새겨야 할 글이 있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의 지하 묘지에 있는 한 성공회 주교의 무덤 앞에 적혀 있는 글이다.
내가 젊고 자유로워 상상력의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시야를 약간 좁혀서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누운 자리에서 나는 깨달았다.
만일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다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 지도.
"변화를 원하는 건 기저귀가 축축한 아기뿐이다"
-유태인 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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