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의 부자를 위해서는
10000명의 거지가 필요하다
몸도 마음도 헐렁한 주말, 하루 종일 방바닥에 엑스레이를 찍다 저녁 무렵 TV를 켠다. 황금시간대를 점령한 연예오락프로그램의 주 내용은 서바이벌 형식의 오디션프로그램이다. 무수한 출연자들을 탈락시키면서 한 명의 최종 승자를 가린다. 오락프로그램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상대를 딛고 일어서야 하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단 한명의 영웅을 위해 99명의 탈락자들이 눈물을 흘려야 하는 무한경쟁시대가 빚은 안타까운 풍경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호랑나비가 한 번에 낳는 알은 200개 정도라고 한다. 이 중 가장 고통스럽다는 20일 간의 알, 애벌레 , 번데기 과정을 거쳐 사마귀나 붉은 개미와 같은 수많은 천적들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결국 2마리만 호랑나비가 된다. 호랑나비의 생존율은 1%에 불과하다.
‘한 명의 부자를 위해서는 100명의 거지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지만 이제는 한 명의 부자를 위해서는 10000명의 거지가 필요한 세상이다. 정부의 압박카드로 부동산시장이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지만 부자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나라 부자들 중 80% 이상이 부동산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다. 소위 ‘알부자’일수록 비중은 더 높아진다. ‘KB 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발표한 <2018 한국 부자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자산이 10억 원 이상인 우리나라 부자들의 총자산 구성비는 부동산 53.3%, 금융자산 42.3%로 나타났다. 부자들의 자산 구성에서 절반 이상이 부동산일 정도로 부동산 비중이 높은데 이는 전년 대비 1.1% 증가한 수치다.
2017년 기준 국세청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다주택자 상위 10명이 보유한 주택 수는 총 3,756채로 나타났다. 이를 상위 100명으로 확대할 경우 총 주택보유 수는 1만4,663채, 상위 1%로 확대할 경우 상위 1%에 포함되는 14만 명이 보유한 주택은 총 94만4,382채로 1인당 6.7채를 보유한 셈이다. 공시가격기준으로 무려 202조7,085억 원이다.
또한 2017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영리법인은 66만 6163개이다. 이 중 대기업은 0.3%인 2191개이고 나머지 99.7%는 중견·중소기업으로 나타났다. 이를 매출액 기준으로 보면, 대기업은 전년 대비 7.4% 증가한 2285조 원으로 전체 매출의 50%를 차지하고 있어 대기업으로의 경제 집중도가 더 높아졌다. 더 큰 문제는 영업이익이다. 대기업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무려 35.4% 증가한 177조원으로 전체 영리법인 영업이익의 61%를 차지하고 있어 전반적인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쏠림현상이 두드러졌다. 불과 0.3%에 불과한 대기업들이 전체 매출의 50%, 전체 영업이익의 61%를 가져가고 있다. 중소기업들의 피눈물 속에서도 대기업들은 돈을 쓸어 담고 있는 형국이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부자가 더욱 부자가 되는 부동산계급사회가 갈수록 고착화되고 있다.
주택건설시장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18년 재개발·재건축과 같은 도시정비사업 수주액 중 10대 건설사가 수주한 금액은 12조 1652억 원으로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10대 건설사로 좁혀보면 대림산업과 현대산업개발, GS건설의 3개사가 수주한 금액은 5조 8273억 원으로 총 수주액의 절반에 육박한다. 건설사간 수주 경쟁에서도 빈익빈 부익부라는 승자독식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게다가 갈 길 잃은 시중 부동자금 규모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2016년 처음 1000조원을 넘은 시중의 부동자금은 1년 반 만에 100조원이상 증가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8년 6월 현재 부동자금은 1117조를 넘었다. 부동자금이 증가한 가장 큰 요인은 저금리기조 때문으로 보이지만 향후 금리인상 등 악재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부동자금의 규모는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사회 곳곳에서 승자만이 모든 결과물을 가지는 승자독식사회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서민들은 곡소리를 내고 있지만 한 쪽에서는 현금다발을 들고 부동산 쇼핑에 나선 사람들로 북적인다. 각종 규제에도 불구하고 시중유동자금 상당수가 부동산으로 몰려들고 있어 정책의 실효성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정책의 핵심은 결국 대출을 조이는 것인데 자금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대출받아 투자할 이유가 없다.
사기에 ‘토영삼굴(兔營三窟)’이라는 말이 있다. ‘현명한 토끼는 세 개의 굴을 판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소시민들은 한 우물이 아닌 두 개, 세 개의 우물을 파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소만 키울 것이 아니라 닭도 키우고 돼지도 함께 키워야 한다. 과거 물적 자본에서 이제는 사회적자본이나 정신자본과 같은 수치화가 쉽지 않은 자본들이 국가와 개인의 성장 동력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개미들은 자신이 생각한대로 행동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성공이 우연이 아니듯이 실패 또한 우연이 아니다. 양계장에서는 독수리가 나오지 않는다.
'부동산을 읽다 > 부동산에 뛰어든 인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9. 부동산에 뛰어든 인문학-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양치기 소년이다 (0) | 2019.01.11 |
---|---|
8. 부동산에 뛰어든 인문학-부동산은 지표가 아닌 심리다 (0) | 2019.01.09 |
6. 부동산에 뛰어든 인문학-시는 삶이다 (0) | 2018.05.07 |
5. 부동산에 뛰어든 인문학-마키아벨리의 <군주론> (0) | 2017.12.15 |
4. 부동산에 뛰어든 인문학-손자의 <손자병법> (0) | 2017.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