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파트 역사

4. 부산의 아파트 역사를 찾아서, <1>청풍장아파트

김부현(김중순) 2020. 4. 18. 12:57

“도시의 활력은 낡고 오래된 건물에서 비롯된다.”는 캐나다의 도시학자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의 말처럼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장면은 오래된 지역이 그곳의 고유한 매력을 유지한 채 새롭게 태어나는 모습일 것이다. 사상공단의 공장이 커피숍으로, 창고가 식당으로, 인쇄소는 갤러리로 변신하고 있다. 본래의 쓰임을 다해 버려진 공간은 더 실용적이고 창의적인 공간으로 변신해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시민들의 일상도 풍부하게 해준다.

 

언젠가부터 ‘부산’하면 해운대 바다 앞에 우뚝 솟은 마린시티, 바다를 가로지르는 광안대교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와는 딴판인 과거 부산의 모습을 잘 알고 기억하는 이들이 만나고 싶어 하는 진짜 부산다운 모습은 구도심, 골목 속에 숨어 있다. 무엇보다 부산의 오래된 골목은 서울의 비슷한 골목들에 비해 역사적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더욱 기대만발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눈부신 산업화를 거쳐온 역사와 정체성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기 때문이다. 소란하면 소란한 대로 투박하면 투박한 대로 골목 구석구석을 지킨 이와 새로 찾는 이가 어우러져 의외의 매력을 만들어낸다.

 

부산 문화를 들여다보면 일본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철도청장이 살던 근대 가옥, 일본 천왕도 머물렀다는 동래 별장 등 ‘모던 보이’ 시대의 근대 문화유산이 아직까지 많이 남아있지요. 또 한국전쟁을 겪으며 부산은 곳곳에서 밀려온 피란민들과 일본에서 귀환한 재일동포들이 삶을 영위하는 터전이었습니다. 이들은 밀면, 돼지국밥, 꿀꿀이죽을 나눠 먹었으며 깡통시장, 보수동 책방 골목 등 전쟁의 산물이 민들레 씨앗처럼 하나둘 생겨났습니다.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도 삶은 피어났지요. 감천 2동, 대신동을 지나 국제시장, 깡통시장, 남포동, 광복동, 자갈치 시장, 부산시청, 중앙동, 부산역을 거쳐 일맥문화재단의 본거지 초량동까지, 구도시를 한 바퀴 도는 이 동선 안에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구도심을 걷노라면 굳이 역사의 뒤안길을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가슴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낡고 고루하다고 역사를 버리거나 감춰야 하나요? 대부분의 상권이 해운대 지역으로 넘어간 지금, 옛 활기를 되찾을 수 없다면 구도심만의 콘텐츠를 동력 삼아 제2의 개항을 해야 합니다. 구도심을 따라 걷는 길은 ‘부산’의 비전과 소통이자 미래 그 자체입니다. (행복이 가득한 집, ‘길 따라 만나는 근대문화유산’, 2011년 8월호)

 

또한 <골목 인문학>의 저자 임형남, 노은주는 ‘골목은 도시의 맨얼굴이며 도시의 정체성’이라고 했다. 산허리를 감싸고 꾸불꾸불 난 산복도로와 판자촌 사이를 요리조리 비집고 들어가는 골목들은 부산의 맨 모습이자 부산의 정체성이다. 담벼락과 마주한 막다른 골목이다 싶지만 좁다란 골목길은 기어코 다른 길과 연결된다. 골목길을 걷는다는 것은 철학하는 것이다. 아니 철학적 시선으로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철학이 발달한 나라일수록 골목길의 역사가 잘 보존되고 있다.

 

오래전 업무차 독일을 방문했을 때 틈만 나면 어김없이 뒷골목을 찾곤 했다. 으슥한 곳에 있는 술집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100년이 지나도 보도 블럭이 흠집 나지 않고 첫 모습 그대로인 것을 보기 위해서였다. 보도블록 하나에도 역사가 숨 쉬고 있었다. 멀쩡한 보도블록을 툭하면 갈아치우는 우리나라의 모습과는 다르다.

 

골목은 길도 길이지만 바닥에도 역사와 발자취가 스며있는 법이다. 아름답고 아날로그적인 역사적 체취를 간직하고 있는 골목길은 철학적 사유가 풍부한 유럽의 길이 차분하다. 우리나라는 경제적 부자는 많지만 정신적 스승은 없다. 철학하는 능력의 부재가 아니라 철학적 사유를 받아줄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경제적 가치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철학도들이 철학 공부를 하러 가는 곳이 어디인가?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등이다. 이런 나라들의 공통점은 철학이 존중받는 나라이자 선진국이다. 선진국이 되어서 철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을 했기 때문에 선진국이 된 것이다.

우리가 경제적으로는 지구촌 국가들의 앞줄에 있지만 계속 철학을 외면하다가는 뒷줄로 미끄러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외국인 근로자 수입하듯이 철학을 필요할 때마다 수입할 수도 없다. 철학을 수입한다는 것은 생각과 가치관을 수입한다는 말과 같다. 생각을 수입한다는 것은 그 나라의 영혼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따라간다는 것은 결국 종속이다. 생각과 가치관이 종속되면 경제와 산업도 종속된다. 맹목적인 미국식 산업화 따라하기의 결과로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미국에 종속되는 강도가 더 세지고 있다.

 

일본의 전자제품 설계도면을 그대로 수입하여 이른바 ‘베끼기 경제’로 시작하여 국민소득 4만 불 시대를 열었다.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한 미국의 합리적 경제를 수입하여 세계10의 경제 대국을 이루었다. 세계사적으로도 대단한 일이지만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다. 남을 따라 하고, 남의 물건을 카피한 따라 하기식 경제로는 현상유지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전진할 수 없다. 오랫동안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이 짧은 시간에 세계 1등 국가가 된 것은 남을 따라 하지 않은 실용주의 덕분이었다.

 

부산은 역사적으로 개항포의 역할을 하면서 수없이 많은 왜구를 무찌르기도 하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많은 피란민이 따뜻한 남쪽 부산으로 밀려들어 왔다. 하지만 부산은 어머니 품처럼 말없이 품었다. 산동네 판자촌과 현대화된 도시가 어우러진 역사의 도시지만 아픈 역사의 흔적은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부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부산의 인상 깊은 점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우선 해운대 바닷가와 동백섬, 야경이 화려하고 이국적인 바닷가의 불빛과 더불어 빨간색 25인승 만디버스가 다니는 산복도로를 꼽는 경우가 많다. ‘만디’는 고지대, 언덕을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다. 부산의 새 명물로 등장한 만디 버스는 2016년 7월부터 영도구, 동구, 중구, 서구 원도심을 누비고 있다. 지형적인 특성에다 전쟁으로 인해 피난민들이 거주할 곳이 없다 보니 말 그대로 산 만디까지 집들이 지어져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부산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산복도로는 사전적으로는 산의 중턱을 지나는 도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부산에서는 피란민들이 우후죽순 산에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산기숡을 따라 꼬불꼬불 이어진 도로이다. 산복도로는 부산항이 바라보이는 수정산 산동네를 따라 처음 개설되었다. 산동네는 1920~1930년대 부두와 방직 노동자, 해방 이후에는 귀환 동포, 한국전쟁 때는 피란민들이 자리 잡고 살던 곳이다. 한때 밤에 부산으로 들어온 외국 선박들이 마천루처럼 보이는 이곳 산동네의 불빛을 보고 감탄했다가 아침에 판자촌임을 알고 실망했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부산의 산복도로와 산동네는 감추고 싶은 부산의 아픈 상처였다. 하지만 요즘 산복도로는 부산의 명물이자 역사적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1941년 부산 최초의 아파트, 청풍장 아파트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인 서울 충정로의 충정아파트가 지어진 지 약 10년 후인 1941년 부산 중구 남포동 비프(BIFF)광장 뒷골목에 4층짜리 청풍장이 들어섰다. 부산에 지어진 최초의 아파트다. 인근에 청풍장과 호형 호재 하는 소화장은 1944년 지어졌다. 간혹 청풍장, 소화장 하면 여관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부산지역 아파트 계의 살아있는 신화다. 굳이 법적으로 구분하자면, 층수가 4개 층 이하이고 바닥 면적 합계가 660㎡를 초과하므로 청풍장과 소화장은 부산 ‘제1호 아파트’가 아니라 ‘제1호 공동 주택’, 더 구체적으로는 ‘제1호 연립 주택’이라고 할 수 있다.

 

지하철 1호선 남포동역에서 가깝지만 그 앞 역인 중앙동역에 내려 뒷골목을 따라 걸어보기로 했다. 11번 출구를 빠져나가 몇 발짝 걷다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일제강점기 이래 사무실, 금융기관 및 상가가 밀집했던 부산의 구도심, 일명 중앙동 거리가 나온다. 인근 용두산공원 방향으로 가면 언덕배기에 그 유명한 ‘40계단’이 있다. 오밀조밀 붙어있는 키 작은 건물들과 빛바랜 간판, 40계단으로 향하는 조용하고 정돈된 거리는 마음까지 차분하게 해 준다. 피란 시절 행정 중심지이던 부산 중구에 있는 곳으로 많은 피란민이 그 주위에 판잣집을 짓고 밀집해서 살았다.

 

박중훈, 안성기, 장동건이 출연한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기억하는가? 영화의 첫 장면, 비 오는 거리 노란 은행잎이 흩날리는 가운데 허름한 계단을 내려오는 한 남자가 있고 BeeGees의 노래 ‘Holiday’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해주는 이 장면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명장면의 배경이 40계단이다. 일제강점기에는 각종 상업시설들이 밀집했던 중심가로 번화했던 시절과 한국전쟁 당시 임시수도 부산 피난시절의 힘든 기억이 함께 숨쉬는 곳이다.

 

옛 추억을 한웅큼 쥐고 있는 기억의 한마당, 40계단 주변은 2000년대 이후 이국적인 분위기로 말끔히 정비되었다. 계단 난간과 도로변의 주변 카페에서는 Eagles가 부른 Hotel California라는 익숙한 팝이 울려 퍼지고 낯선 재즈와 국내 발라드 음악들도 이에 뒤질세라 가세한다. 음악을 들으면서도 눈길은 고달픈 삶의 흔적들을 풀어놓은 60여 년 전 피난민의 동상들과 노천카페의 의자들을 보고 계단 위쪽의 영주동 주택가와 상가로 가는 고갯마루를 향한다.

 

해방 이후 산자락을 끼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판자촌과 상가들이 서로 다른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몇 발짝을 옮기면 부산을 대표하는 굽어진 산복도로가 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산복도로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곳곳에서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산복도로에서 내려다보이는 중앙동 일대와 부산항을 아우르는 북항재개발과 감만동에서 영도를 잇는 바다 위 부산항대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다내음을 담고 중앙동 옆 남포동 거리로 들어가면, 두 세대를 넘긴 부산 최초의 청풍장 아파트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부산 최초의 아파트-청풍장
소화장

청풍장은 당시 조선도시경영회사의 관사로 사용했고 한국전쟁기인 부산임시수도시절에는 국회의원 관사로 사용되었을 정도로 고급 아파트였다. 각각 4층 높이와 1개 동으로 구성되었던 이 아파트가 지금으로써는 높은 건물이라 말하기 어렵지만 당시로서는 주위를 압도할 만큼 높은 고층아파트였을 것이다. 지금도 40여 세대가 살고 있다.

 

청풍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세 번 놀란다고 한다. 외관이 너무 노후화되어 놀라고, 안에 들어가면 넓어서 또 놀라고, 그리고 사는 사람들이 부자라서 놀란다. 세 번 놀란다는 말까지 생길 정도로 당시에는 최고급 아파트였다는 반증이다. 일본 문물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부산이었기에 청풍장과 소화장에는 일제 강점기의 건축 특징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내부는 옛날 구조 그대로 다다미방이 보존되어 있으며 일본식 옷장과 대나무 창살도 남아 있다.

 

그리고 발코니 쪽에는 비상 탈출용 사다리가 설치되어 있고 줄을 당기는 사기 좌변기까지 갖춰진 당시로서는 최신식이었다. 특히 소화장 입구로 들어서면 궁형 형태의 복도가 있는데 르네상스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96년 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았지만 부지 자체가 너무 작아 개발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2006년 문화재청에서 등록문화재로 지정하려고 하면서 관심사로 떠올랐지만 입주민들의 동의를 얻지 못해 무산되었으며, 재건축 역시 주민들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요즘은 30년만 되어도 재건축을 해야 한다고 야단들인데, 70년이 지나서도 사람이 거주하고 있으니 보통 아파트가 아니란 생각은 들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여기 사는 주민들이다. 인근 광복동, 자갈치 등지에서 장사를 하면서 경제적으로 그렇게 어렵잖게 사는 사람들이 주위의 시선엔 아랑곳하지 않고 이 낡은 아파트를 선호하는 데는 그 나름의 철학이나 신앙이 없지 않고서야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청풍장과 소화장이 가치를 갖는 데는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일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일본식주거형 건물이 광복 이후 변화되는 과정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곧 근대 시기 삶의 흔적과 주거 생활사가 담겨 있는 건축물이면서, 부산 근대 주거문화의 변화를 보여주는 건축물이란 데 있다. 여전히 부산시는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보존에 무게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