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파트 역사

8. 부산의 아파트 역사를 찾아서, <5>영선아파트

김부현(김중순) 2020. 4. 21. 08:27

영선아파트는 영주아파트가 지어진 이듬해인 1969년 1월, 36㎡ 4개 동, 총 240세대 규모로 지어졌다. 지금은 대부분 공가로 남아 있고 37세대 정도만 거주하고 있다. 부산광역시 영도구 영선2동 흰여울문화마을 윗길에 있는 영선아파트는 지은 지 어느덧 40년이 지났다. 지상 5층인 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도 없고 층마다 공동화장실을 함께 쓰고 있다. 외벽 페인트칠을 새로 해서 겉에서 보면 그다지 낡아 보이지 않지만, 실내로 들어서면 천장과 벽면의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갔거나 갈라져 건물이 위태롭게 보이는 상태다. 봉래산 자락 아래 햇살을 맞으며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는 영선아파트는 특히 바다 조망이 으뜸이다. 그러나 노후화된 아파트의 현실은 천명관의 <고령화 가족> 한 대목과 오버랩 되기도 한다.

 

엄마가 살고있는 집은 신도시 외곽, 기찻길을 따라 나란히 들어선 연립주택들 가운데 하나였다. 가구 수는 모두 스물 네 가구나 됐지만 마당은 자동차 다섯 대만 들어와도 사람이 지나다니기 어려울 만큼 옹색했고 빗물 자국으로 얼룩진 건물 벽은 군데군데 금이 가 있어 집 안의 궁색한 살림살이가 훤히 들여다보일 것만 같았다. 건물 뒤편은 더 심각했다. 마치 밀린 임금을 못 받은 인부들이 버려두고 달아난 건물처럼 마감이 엉망이어서 울퉁불퉁한 벽에 녹슨 철근이 여기저기 튀어나와 있었다. 게다가 수십 개의 가스통이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어 빌라 건물은 마치 폭발물 벨트를 온몸에 휘감고 있는 알카에다 조직원처럼 위험하고 비장해 보였다. 그렇게 지은 지 이십 년이 다 되어가는 낡은 건물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궁기와 절망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부산 영도 영선아파트

 

당시 지어진 다른 아파트들과 마찬가지로 영선아파트의 노후화도 심각하다. 2015년 안전진단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루었다. 당시 C등급이었는데 안전진단 후 D등급으로 조정 되자 입주민들과 마찰이 빚어진 것이다. 안전진단 등급이 D등급으로 조정되면 재난위험시설로 지정되기 때문에 건물 소유주는 긴급한 보수·보강 및 사용제한 여부를 판단해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관할 구청에서 자칫 사고가 발생할 경우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240세대 소유주에게 안전등급 조정이 필요하다는 공문을 수차례 보냈지만, 소유주들은 금전적 부담 등을 이유로 부정적이었다. 사실 현재 아파트에 살고있는 거주민이 적은 데다 아파트가 영도5구역에 포함되어 있어 굳이 돈을 들여 건물 안전등급을 조정해 보강공사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개발 바람이 분 덕분에 최근 영선아파트의 몸값은 더욱 치솟고 있다. 매물 자체가 자취를 감춘 품귀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영도5구역에 포함되어 있는 다른 아파트와 비교해서도  바다조망이 우수한 대표적인 랜드마크 자리로 각광 받고 있기 때문이다. 개발에 대한 기대감에 감천문화마을과 함께 부산의 대표 관광지로 떠오른 아파트 앞 흰여울문화마을과도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흰여울문화마을은 산자락 아래 바다와 접해 있다. 바닷가를 끼고 무지개색 집들이 오밀조밀 어깨를 맞대고 있는 정겨운 마을이다. 수정동 산복도로와 함께 한국전쟁 피난민들이 모여들어 생긴 대표적인 마을이다. 어깨 동무를 하고 마을길을 걷는 연인들보다 그들의 그림자가 더 긴 아침, 구불구불한 마을 길을 걸어 봤다. 그냥 걷다 보면 알게 되는 것들이 참 많다. 잊혀진 추억이 되살아나고,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에도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한 누구나 시인이 되고 철학자가 되는 기분이다. 영화 <변호인>과 <범죄와의 전쟁> 촬영지이기도 했다는 것은 덤으로 알수 있다. 또한 고양이가 유독 많다. 약속이나 한 듯 양지바른 곳곳에 진을 치고 있다. 사람들의 인기척 따위에는 아예 관심도 없고 졸고나 잠을 자는 것이 다반사다.

 

한국의 산토리니, 부산 영도 흰여울문화마을

 

도둑발로 살금살금 들어가 본 아파트 내부는 어둡고 침침했다. 출사자들에 대한 입주민들의 불편이 많아 눈치껏 들어가야 한다. ‘한국의 산토리니’, ‘부산의 산토리니’로 불리는 흰여울문화마을의 앞바다는 ‘묘박지(錨泊地)’다. 묘박지는 배들이 정박하는 곳이다. 해변은 전부 자갈밭이다.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면 자갈도 함께 구르기를 한다.

 

어릴 적 나고 자란

나의 고향 영도이다....

세월 지나 나이 들고

얼굴 가득 주름이 선명하지만

언제나 표정만은 밝다.

물속에서 헤엄치는 모습은

나비가 춤을 추듯

자유로운 인어가 따로 없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2019년 9월 흰여울안내소에서는 윤정애 작가의 <인어> 전시회가 열릴 정도로 문화 알리기에도 적극적이다. 다양한 볼거리와 푸른 파도와 산책길이 조화를 이루면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부산시의 ‘부산관광산업 동향분석’에 따르면, 2018년 흰여울문화마을 방문객 수는 67만 5000여 명으로 전년도 30만 8000여 명 대비 2배 넘게 늘어났다고 한다.

접근성도 괜찮은 편이다. 부산역에서도 가깝다. 시내버스를 타고 영도다리를 건너 부산보건고등학교 정류장까지는 15분이면 닿을 수 있다. 절영해안산책로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탁 트인 푸른바다가 눈 앞에 펼쳐진다. 해운대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별천지다. 산책로 바닥은 바다색을 닮아있고 벽은 알록달록한 벽화로 가득하다. 하얀 파도와 푸른 바다의 조화가 참 이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