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는 1941년과 1944년 지어진 청풍장과 소화장이지만, 동구 좌천동 737-1번지에 1962년 4월 지어진 좌천아파트는 4개동 36㎡ A~D 타입의 307세대로 부산 최초의 대단지 아파트이다. 충장고가로를 지나 부산역에서 서면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산 위를 바라보면 알록달록 무지개색으로 페인트칠 된 낮은 아파트 단지가 우뚝 서 있는데 바로 좌천아파트다. 높은 곳에 있어 가는 길은 호흡이 가쁘지만 부산항이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이 우수하고 증산공원 숲속에 위치하여 요즘 말로 조망권과 숲세권을 동시에 겸비한 아파트다.
1960년대 초부터 우리나라 아파트 역사는 일대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5.16쿠데타 이후 박정희 정부가 막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하는 시기였다. 1960년대 이전까지는 먹고 사는 문제가 주택문제보다 더욱 절실한 국가적 관심사였지만 박정희 정권은 주택부족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기 위해 주택정책에 집중하게 되었다. 좌천아파트가 완공된 1962년 서울에서는 우리나라 단지형 아파트의 시초라 불리는 마포아파트가 지어졌다.
50년이 넘은 좌천아파트는 370세대 중 현재 거주 비율은 약 30% 정도이고, 나머지 70% 정도는 투자자들이 사놓은 공실이다. 2020년 1월 거래된 국토부 실거래가를 보면 2,350만 원 수준에 불과하다. 조망값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좌천아파트는 10여 년 전 부산에서 처음으로 재건축 아파트의 사업계획 승인이 취소된 사업장이라는불명예 기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후유증으로 보인다. 당시 좌천아파트의 사업계획승인 취소로 재건축뿐만 아니라 재개발 사업에 있어서도 사업시행인가 이후 감정평가나 분담금, 설계변경 등으로 조합원들이 불이익을 받을 경우 사업이 지연되거나 사업 자체가 취소될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한 것이었다.
당시 관할 구청에서는 좌천아파트가 2001년 주택건설사업 승인(1,2동·사업승인상 건축연면적 1만6천879㎡,187세대)을 받은 후 두 번에 걸친 사업 연기에도 불구하고 최종 사업 제한 기간인 2006년 11월 29일까지 공사에 착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업 자체를 아예 취소시켜 버렸다. 하지만 이유가 없지는 않다. 1,2동이 사업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조합운영 등을 놓고 조합 내부에 여러 가지 갈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일부 조합원들은 조합 측에서 당초 주민 동의와 달리 전용 면적을 축소하는 등 임의로 사업내용을 변경해 사업 승인을 받은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퇴거를 거부하였다. 이로 인해 2003년 7월과 2005년 11월 두 차례에 걸쳐 공사착공이 연기됐다.
이에 조합 측은 일부 조합원의 퇴거 거부와 이로 인한 공사착공 연기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결국 패소(부산지법 2004가 합9377)했다. 법원 판결 내용을 보면 '조합이 조합원총회의 당초 결의내용보다 조합원에게 불리하게 재건축을 추진하는 경우, 불리해진 내용에 반대하며 퇴거를 거부한 조합원은 조합에 대해 채무불이행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라고 판결 사유를 밝혔다. 그러다 최근 좌천아파트는 다시 소규모 재건축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9년 10월 4일 조합설립을 위한 총회가 개최되었지만 갈 길은 멀어 보인다. 무조건 부수고 다시 짓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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