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 연안을 따라 길게 자리하고 있는 칠레의 이스터섬Easter Island에는 세계인들의 주목을 끄는 모아이 석상이 있다. 이 섬에는 약 600개 모아이 석상이 서 있다. 석상의 높이는 3m부터 가장 큰 것은 20m가 넘는 것도 있는데 석상의 무게는 자그마치 20t에서 90t에 이른다고 한다.
학자들에 따르면,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은 12세기부터 18세기까지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모아이 석상은 길쭉한 얼굴과 코를 가진 독특한 외모 때문에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육지와 멀리 떨어진 외딴 섬에서 이처럼 거대한 구조물이 발견된 이유를 쉽게 설명할 수 없어 '세계적인 불가사의'로 선정되면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이처럼 작은 섬에 당시의 기술 수준이나 경제 수준을 생각하면 거대한 석상이 존재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모아이 석상이 어떻게 제작되었고, 도대체 그 용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석상으로 인해 이스터 문명이 몰락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자원이 한정된 작은 섬에서 거대한 석상을 만드는 데 막대한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입하다 보니 정상적인 생산 활동과 대외 교류를 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식량 생산이 감소하고, 지역이 고립되면서 스스로 자멸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유명 관광자원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모아이 석상이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끔찍하다.
모아이는 한 섬을 파멸로 몰아가고 수많은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어간 폭주와 욕망 사회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더 크고 더 높은 석상을 쌓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고 이로 인하여 섬은 파멸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종교적, 주술적 의미로 석상을 만들기 시작하여 처음에는 작게 만들었지만 갈수록 더 크고 더 높은 바벨탑 모아이가 만들어진 것이다. 더 큰 모아이를 만드는 것으로 섬의 부족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힘을 보여주려고, 지배계층이 피지배 원주민이나 주변 부족에게 자신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더 큰 모아이를 만들었던 것이다. 오늘날 랜드마크가 되기 위해 더 높이 아파트 바벨탑을 쌓는 우리도 한번쯤 모아이 석상의 교훈을 되새겨 봐야 하지 않을까?
모아이 석상을 오늘날 경제학 관점에 대비해 보면, ‘베블런 효과’의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가격이 낮고 합리적인 제품들의 판매량이 증가하는 ‘립스틱 효과’는 익히 들어봤을 것이다. 베블런 효과에서 말하는 베블런재는 경제학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수요의 법칙'에서 아주 예외적인 재화이다. 즉 일반적인 재화는 가격이 상승하면 구매량이 줄고, 가격이 하락하면 구매량이 증가해야 하는데 베블런재는 반대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가격이 상승하면 판매량이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판매량이 증가하고, 가격이 하락하면 구매량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판매량이 감소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정상적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베블런재는 소비가 자신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만족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비치는 모습과 평가에도 가치를 부여하는 소비형태이기 때문이다. 결국 베블런재는 자신의 경제적 계급을 과시하기 위한 소비활동으로 쓰이는 재화를 말하는데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처럼 실생활에 크게 쓸모가 없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소유물을 과시하는 베블런 효과의 결과물이다. 또한 자크 라캉은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했다. 내가 원하는 아파트가 아닌 타인이 선호하는 아파트를 사는 것이다. 나를 나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통해 나를 보는 것이다. 자신의 욕망으로 세상을 보지 않고 타인의 욕망이 덧씌어진 채로 세상을 본다.
베블런 효과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상급 계층의 두드러진 소비는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하여 자각 없이 행해진다.”라고 말한 미국의 사회학자 베블런의 이름에서 붙여진 용어다. 대표적으로 값비싼 귀금속류나 고가의 가전제품, 고급 자동차 똘똘한 한 채 등은 경제상황이 나빠져도 수요가 줄어들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는 꼭 필요해서 구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단지 자신의 부를 과시하거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더욱이 과시욕이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고가의 물품을 구입하는 사람들의 경우 값이 오르면 오를수록 수요가 증가하고 값이 떨어지면 누구나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는 이유로 구매를 하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과시적 지출 경향이 부동산과 주식 같은 투자 시장에서도 많아지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즉 '수익'이라는 합리적, 객관적인 기준을 고려해야 하는데 최근에는 베블런 효과와 유사한 투자 행태가 증가하고 있다. 주식시장에서는 동학개미를 넘어 서학개미군단이 등장하고, 부동산에도 일부 작전세력들이 선점한 시장에 일명 '~카더라'정보에 휩쓸려 뒤늦게 추격매수에 나선다. 분위기에 휩쓸리면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강해진다.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 핵심 아파트는 가격이 상승할수록 수요가 더 증가하는 베블런식 투자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물론 ‘달리는 말이 더 달린다’는 투자 격언처럼 부동산도 가격이 상승함에도 수요가 더 증가하는 것은 향후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를 두고 무조건 비효율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근 부동산 가격 상승 흐름에 맞춰 ‘나는 ㅇㅇ아파트에 산다’는 욕망을 과시하기 위한 베블런식 투자 경향이 많아지고 있다. 나는 현대에 살고 너는 삼성에 사는 나라, 철수는 자이에 살고 영희는 더샵에 사는 나라, 다른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문학이 부재하여 다른 사람에게 어필할 것이 없다보니 더 크고 더 비싼 화려한 외형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물질적 부자는 많지만 철학과 인문으로 무장된 스승이 부재중이니 인문학이 전국민적으로 천대받고 있는 것이다. 학문의 전당 상아탑에서조차 인문학 관련 학과는 통폐합되거나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은 수십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지만 우리는 왜 한 명도 없는 걸까? 수년 간 우리나라에서 노벨 문학상 후보에는 올랐지만 정작 상을 받지는 못하는 걸까? 저변이 빈약하기 때문이다. 노벨 문학상은 개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사회의 독서문화이기 때문이다. 책읽는 문화가 천대받는 나라에서 노벨 문학상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 아닐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치장하는 대표적인 것이 자동차와 아파트다. 물론 자본주의에 발을 딛고 살아갈 수밖에 없기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도덕규범과 "어떻게 사는가?"라는 현실규범은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은 대개 외형적인 모습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게 가장 편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모아이 석상 사례에서 보듯,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통한 투자가 늘어날수록 경제적 건전성 및 효율적 측면에서는 비정상화 현상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개인에게는 투자 자산에 대한 버블이 발생하기 쉽고, 제한된 자원이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데 투자되기보다는 소모적인 곳에서 투자자들간 제로섬 게임으로 변질되어 폭탄 돌리기로 종결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불장으로 대별되는 작금의 부동산 시장을 보면서 이성적, 합리적이라는 투자의 기본 명제를 되새겨 본다. 물론 저금리로 인한 풍부한 유동자금이 갈 곳이 마땅치 않다보니 부동산으로 몰려드는 이유도 있지만 결국은 욕망으로 대별되는 심리 때문으로 보인다.
아파트가격이 오르는 것인지 돈 가치가 떨어지는 것인지 헷갈린다.
내가 아파트에 사는 건지, 아파트가 내게 사는 건지 헷갈린다.
아파트가 주인인지 내가 주인인지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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