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분식집에서 2천 원짜리 김밥을 말고, 일당 몇만 원을 벌겠다고 인력사무실에서 번호표를 받아 기다리고, 병원 청소를 하기 위해 새벽 첫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성실의 표상이다. 그러나 지폐 몇 장에 구겨지는 삶은 고단하다. 부자들은 구겨지는 삶의 처절함을 모른다. 아니, 알 필요조차 없다. 개구리는 올챙이 시절을 모른다. 개천에서 용이 되었다고 별반 다르지 않다. 구겨진 삶은 하루하루가 지옥이고 매 순간이 전쟁이지만 구겨진 삶에도 볕 들 날이 올 것이라 믿으며 날마다 부자를 꿈꾼다.
더 이상 세상에 무슨 아름다움이 있을까
구겨진 지폐 몇 푼을 ‘깎자, 못 깎는다’ 흥정을 하고
욕을 먹고 돌아오는 밤에도
별, 너는 나뭇가지 끝에 지상의 모든 빛을 흐리며 빛나고 있구나
이제 나는 알고, 슬프다
멀리서 반짝이기만 하는 것은
몇억 년 후에라도 닿을 수 없는 것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장사를 하며>라는 양애경의 시다.
자영업자 수가 유독 많은 우리에게 시장은 그야말로 구겨진 삶의 체험 현장이다. OECD가 발표한 자료(2016년)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5.1%로 OECD 국가 중 독보적인 1위다.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의 4분의 1이 자영업자인 셈이다. 7%의 미국과 11%인 일본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콩나물 한 주먹을 두고 한 푼이라도 ‘깎자, 못 깎는다’ 옥신각신하는 전쟁터가 된 것이다. 욕까지 먹으며 전쟁 같은 하루를 끝내고 돌아오는 밤에도 ‘별은 뜬다’며 애써 위로해 보지만, 한 번 구겨진 삶은 쉽게 펴지지 않는다.
그러나 또 다른 누군가는 단지 부동산가격이 오르는 지역에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씩 돈방석에 앉는 사람들도 있다. 청소일을 하거나 일용직을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은 평생 만져볼 수 없는 돈일지도 모른다. 물론 치열하게 공부하고 발이 불어터지도록 현장을 다닌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강남에 살았다는 이유로 해외여행을 즐기고 백화점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거리고, 집을 여러 채 소유하면서 소위 ‘경제적 자유’를 만끽하는 현실을 보면서, 구겨진 삶에 매일 연고를 발라주어야 하루가 무탈한 개미들에겐 선뜻 와닿지 않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국세청 자료를 바탕으로 <국내 민간토지 보유 실태>를 조사(2017.3.30)한 결과를 보면, 1964년부터 2015년까지 50년간 땅값 상승분 6,702조 원 가운데 상위 1%가 38.1%인 2,551조 원, 상위 5%가 65.5%인 4,391조 원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상위 10%로 확대하면 무려 82.8%에 해당하는 5,546조 원을 차지하고 있다. 국민 3,500만 명은 땅 1평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세상은 늘 그랬듯이 스스로 길을 보여주지 않는다. 길을 여는 것은 결국 소외된 자들의 용기였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배경은 그들이 처한 극한 상황이었다.”는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말을 곱씹어 보자. 자본주의가 변질될수록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는 점점 어려워지는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부자들을 욕하고 삿대질하며 구겨진 삶을 그대로 방치해 둘 것인가. 발가락이 없는 사람은 발목이 없는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불평한다. 이제 부동산은 부자들, 투기꾼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개미들에게도 닥친 현실적인 문제다. 그간 우리나라 부동산은 살아 움직이는 존재마냥 미쳐 날뛰었다.
입지니 지표니 통계니 하는 것으로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 소위‘얼빠진 시장’이었다. 개미들은 얼빠진 시장에 도덕의 골무를 끼워 손가락질하기에 바빴다. 시장이 미치면 같이 미쳐야 하는데 정의와 도덕 타령만 하고 있었다. 반면 미친 시장에 동참한 사람들은 부자가 되었다. 소설가 이외수는 <하악하악>에서 이렇게 지적했다.“가난한 사람들은 대개 돈을 욕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개 같은 놈의 돈, 원수 놈의 돈, 썩을 놈의 돈, 더러운 놈의 돈,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든 물건이든 욕을 하면 더욱 멀어지기 마련이다.”
프랑스 <칸Cannes>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 개봉한지 불과 53일 만에 천만 관객을 끌어모았다. 관객들이 열광한 이유는 기생관계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날선 비판의식 때문이었다. 돈에 의해 지하와 반지하 그리고 지상으로 구분되어 그 선을 넘어오는 걸 용납하지 않는 그 지점에서부터 기생 관계는 싹트기 시작했다.
영화에서 부잣집 사모님 연교를 만난 후 기택 부부는 서로 다른 평가를 내린다. 기택은 ‘그 집 사모님은 부자인데도 착해’라고 말하자, 그의 아내 충숙은 ‘부자니까 착한 거지’라고 정정한다. 착해서 부자가 된 것인지, 부자라서 착한 건지. 사실 누가 목장주이고 누가 목동인가를 구분하는 것은 그리 중요치 않다. 그보다는 누군가는 숙주이고 누군가는 소를 키워야 하는 기생적 시스템이 갈수록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목동들에게 부동산이 원수가 된 이유는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삶을 파괴하는 장본인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멀쩡하던 가족의 삶을 박살 내고 죽음으로 내몰기도 한다. 정직과 신뢰는 적어도 부동산에서는 사라진지 오래다.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결국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힘 있는 자와 힘없는 자의 싸움이다. 가난 구제는 국가도 못한다는 경구처럼 양극화는 국가정책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정책 너머의 범주이기 때문이다. 수치화가 불가능한 것은 정책으로 온전히 해결할 수 없다. ‘대중의 반대편으로 가라’는 선각자의 가르침을 따랐던 투자자들은 대부분 자본주의적 삶을 누리고 있다.
사실 돈이 많으면 입지니, 통계니 하는 골치 아픈 부동산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 그냥 현금 들고 강남 가서 사면 된다. 물론 강남에 대한 희망 그 자체에 제동을 걸고 싶지는 않지만, 강남에 투자할 여력이 안 되는 개미들은 강남을 쳐다보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그림의 떡이자 희망 고문일 뿐이다. 강남에 투자할 만한 돈이 없기 때문에 힘들게 공부하고 발에 땀이 나도록 현장을 누비는 것이다.
청와대 사회수석이었던 <부동산은 끝났다>의 저자는 “부동산이 우리를 겁박하고 위협하던 시대는 끝났다. 부동산으로 국민을 현혹시키던 정치인, 돈 벌 기회를 보장하라는 말을 시장주의로 포장하던 언론, 믿고 싶은 것을 과학이라 얘기하는 전문가, 이들이 아니라 시민들 스스로 올바른 부동산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일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잊고 지냈지만 진작부터 집은 인권이요, 삶의 자리였어야 했다. 인질의 공포감을 벗어던지고 깨어난 시민들이 이제 부동산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것이다”라고 했다. 저자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위해’한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현실과는 괴리가 있어 보인다. 대구카톨릭대학교 전강수 교수도 <부동산공화국 경제사>라는 책 서문에서 이렇게 한탄했다.
한때 자발적인 근로의욕과 창의력, 높은 저축률, 뜨거운 교육열과 학습열, 모험적인 기업가 정신으로 충만한 사람들이 땀 흘리고 절제하며 노동하고 기업을 일구고 자식을 공부시키며 공평한 경제성장을 이끌었는데, 이들은 다 어디가고 생산적 투자에는 관심 없이 비업무용 땅 사재기에 열을 올리는 기업, 대출받아서 갭 투자를 하는데 관심과 정력을 쏟는 회사원, 부동산특강 강사를 따라 아파트 사냥 투어에 나서는 주부, 건물주가 꿈인 중학생이 우리 사회의 상징처럼 떠올랐을까?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진보와 빈곤>의 저자 헨리 조지의 사상을 연구하는 학자답게 부동산문제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경제사를 파헤친 책이다. 저자는 우리나라를 ?불로소득의 나라, 정직한 사람들이 실패한 역사?라고 일갈했다. 부동산의 부정적인 면을 지적하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여전히 부동산이 새로운 기회라는 것을 반증해 준다. 물론 과거와 같은 화려한 결과물을 내기는 어렵지만 현실적으로 부동산을 능가하는 투자 대안은 없어 보인다.
경실련 발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문재인 정부 동안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54%라고 한다. 지금까지 23차례에 걸쳐 연이은 규제위주의 대책을 발표했다. 대부분 욕지기를 하며 투자를 꺼리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현금을 들고 아파트 사냥에 나선다. 하수는 정부정책을 비토하고 고수는 정부정책을 이용한다. 정부의 대책은 늘상 있어왔다. 정부정책은 리스크로 볼 것이 아니라 기회로 봐야 한다. 워렌 버핏이 했던 유명한 말이 있다.
"남들이 욕심을 낼 때 두려워하고, 남들이 두려워할 때 욕심을 내라"
그는 대중들이 두려워하고 투자를 포기하는 그 시점이 리스크가 적고 오히려 투자의 적기로 본 것이다. "대중의 반대편으로 가라"는 투자의 격언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다. 대중들이 두려워 물러서는 그 순간이 리스크가 가장 적을 수 있다.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지만 비행기가 가장 안전할 때는 비행기 사고가 나고 열흘 쯤 지났을 때다. 사고를 계기로 모든 항공사가 더 철저히 정비를 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리스크가 가장 높은 순간이 리스크가 가장 적다.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폭등기든 하락기든 리스크는 있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다. 위기가 되면 누군가는 위기를 위기로 보지만 누군가는 위기를 기회로 본다. 모든 절망은 희망을 품고 있고, 모든 희망은 절망을 품고 있다.
주위에서 많은 분들이 앞으로 아파트값이 어떨게 될 것이냐고 묻는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답한다.
"모릅니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면 대부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미래를 보는 안목이 있을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경제 예측이든, 아파트값 예측이던 단기간의 예측은 통계나 전문성으로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거시적인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 어떤 경제활동도 수학이나 통계로 먼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그것이 예측가능한 일이라면 인간사가 재미없다.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나름의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고, 그 결과 누구는 맞고 누구는 틀리게 된다. 사후에 평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미래는 과거의 통계 틀 안에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통계에다 복잡한 인간 심리가 투영된 새로운 통계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는 정해진 규칙도 틀도 없는 것이다. 경제학자 존 갤브레이스(John Galbraith)는 "세상에는 '모르는 사람'과 모르는 것을 모르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다.
환율, 주가, 부동산, 아파트의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면 해외 여행 다니면 되지 굳이 직장을 다니고, 식당일을 하고, 책을 팔러 다니고, 유튜브에 나와 요란하게 말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이제 전문가는 없다고 봐야 한다. 아니 전문가가 만들어질 정도로 단순한 사회가 아니다. 과거에 대한 전문가는 있을지언정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전문가는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있다면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을 지나치게 믿지 마라. 전문가에서 'ㄴ'받침 하나만 빼면 아무것도 모르는 전무가가 된다.
'부동산을 읽다 > 부동산에 뛰어든 인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31. 부동산에 뛰어든 인문학-모아이 석상과 아파트 바벨탑 (0) | 2020.11.05 |
---|---|
30. 부동산에 뛰어든 인문학-‘철저히 준비하겠다’는 말은 ‘그냥 포기하겠다’는 말이다 (0) | 2020.10.17 |
28. 부동산에 뛰어든 인문학-부동산은 어떻게 자본주의의 무기가 되는가? (0) | 2020.09.17 |
27. 부동산에 뛰어든 인문학-<단테>의 신곡, 희망이 없는 곳이 곧 지옥이다 (0) | 2020.06.17 |
26. 부동산에 뛰어든 인문학-부동산 투자의 90%는 심리전이다 (0) | 2019.0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