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형! 소크라테스형!
2,500년 전 무덤에 간 테스형, 잘 지내지. 어찌 무덤속은 난방이 잘되는지? 거기도 천국은 아니지! 그래 천국은 없을거야. 천국은 지옥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그냥 도피처로 만든 이상향이지. 그때 형이 독약을 마시지 말고 10년만 더 살았어도 세상이 훨씬 나아졌을텐데. 좀 억울해도 참지 그랬어. 신성모독죄니 젊은 층을 타락시켰다느니 하면서 형을 괴롭힐 때 끝까지 버텨보지 그랬어. 형이 독약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그리스의 철학자, 서양 철학의 아버지가 아니라 세계의 철학자, 세계 철학의 아버지, 철학자들의 철학자로 불렸을거야.
그런데 요즘 형이 살았던 그리스에서 엄청 먼 지구촌 아시아의 조그만 나라, 대한민국에서 형을 찾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어. 졸지에 형은 아주 유명인사가 됐어. 좀 의외의 일인 건 분명해 보여. 그동안 학문의 전당이라 불리던 상아탑에서조차 형에게 좀 더 다가가기 위해 공부를 하던 철학과나 인문학과들이 통폐합되거나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거든.
물론 이렇게 된 데는 형 탓도 있어. 형은 주구장창 돈보다는 마음공부만 강조했잖아. 그래서 형은 별로 인기가 없어. 먹고 살기도 바쁜데 형을 찾을 만한 여유가 있겠냐고! 대한민국은 아직 자본주의의 하위 단계인 물질적 자본주의가 판을 치고 있어. 전쟁의 폐허에서 보릿고개를 겪으며 한강의 기적으로 경제 규모로는 세계 10위권이지만 아직 정신적 자본주의를 논하기에는 일러. 그래서 아직은 형보다는 돈을 많이 번 부자들만 찾아. 형을 찾던 사람들은 “대한민국은 500년 전 조선시대에 인문학은 끝났다”고들 해. 그때부터 대한민국은 글공부, 마음공부보다는 돈에 더 집착하기 시작했거든. 갈수록 문사철은 점점 발붙이기가 어려워졌어. 물론 자본주의라는 제도 자체가 돈의 논리로 운영되는 측면이 강하니까 도덕 운운하고 형을 찾는 건 현실 너머의 이상에 불과할 수도 있지.
근데 최근 상황이 많이 달라졌어. 형을 목놓아 불렀던 한 가수 덕분에 형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니까. 형을 대한민국에 소환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 형을 애타게 부른 사람이 누군지 아냐고? 철학자도, 인문학자도 아니고 교수도, 정치인도 아니야. 대한민국에서 아주 유명한 나훈아라는 가수야. 우리는 그를 가요계의 황제, ‘가황’이라고 불러. 대한민국에서는 형보다 훨씬 유명한 사람이야. 그 가황이 2020년 추석때 한 방송국에서 “2020 대한민국 한가위 대기획 어게인 나훈아”라는 단독콘서트를 열었어. 그 콘서트에서 형을 목청껏 부르면서 <테스형!>이라는 신곡을 발표했어. 당시 최고 시청률이 70%를 넘기도 했거든. 한 마디로 대박이었지.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난리통을 겪고 있는 와중에 형 때문에 잠깐이었지만 여유를 찾을 수 있었어. 근데 있잖아. 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는 했는데 정작 테스형을 부른 가수만 찾고 여전히 형에 대해 알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대한민국은 아직 테스형을 찾을 만한 준비가 조금 부족한 상태니까 조급증 내지말고 그려려니 하며 기다려봐.
그리고 형이 했던 말을 두고도 말이 많아. “gnothi seauton 크노티 세아우톤”
대한민국 말로 하면 “너 자신을 알라”라고 번역이 돼. 근데 따지고 보면 형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잖아. 형보다 훨씬 앞서 델포이의 아폴로 신전에 새겨져 있었던 글이잖아. 근데 형이 가장 아끼던 제자 플라톤을 비롯한 여러 제자들이 형이 말한 것처럼 꾸민 측면도 있어. 그렇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대부분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한 사람이 테스형이라고 믿고 있어. 실제 시험지에도 정답으로 테스형이라고 해야 점수가 나와. 어쨌던 역사란 기록이잖아. 어떤 말이나 행동을 처음으로 했던 사람이 아니라 처음으로 기록된 사람이 우선시 되는 게 역사잖아. 루비콘 강을 처음 건너 이탈리아로 들어간 사람은 카이사르 장군으로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잖아. 실은 그 전에도 뭇사람들이 수없이 루비콘 강을 건넜지만 역사는 카이사르가 처음 건넌 걸로 기록돼 있잖아.
형이 죽은지 2,000년 하고도 500년 만에 최근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해졌어. 이 유명세가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어. 워낙 대한민국이 '반짝'하는 문화풍토가 강해서 진득하니 갈지, 정말 형을 연구하고 공부하고 스스로의 마음을 돌보는 사람들이 많아질지는 미지수지만 암튼 형이 계속 그 유명세를 이어가길 바래. 그로 인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정신적 자본주의와 마음공부가 자라잡아 한강에서, 아파트에서 아이들을 안고 뛰어내리는 제1의 자살공화국에서 탈출했으면 좋겠어.
그럼 그 유명 가수가 불렀던 형에 대한 노래 가사 한 번 볼래!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울 아버지 산소에 제비꽃이 피었다
들국화도 수줍어 샛노랗게 웃는다/그저 피는 꽃들이 예쁘기는 하여도
자주 오지 못하는 날 꾸짖는 것만 같다/아 테스형 아프다
세상이 눈물 많은 나에게/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세월은 또 왜 저래/먼저가본 저세상 어떤 가요 테스형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 가요 테스형/아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아 테스형 아 테스형/아 테스형 아 테스형
근데 형이 말한 “너 자신을 알라”고 했던 여섯 글자를 두고도 해석이 분분해. 형이 말한 진심은 한 마디로 “잘난 척하지 마라”는 거잖아.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한계가 있음을 알아라는 거잖아. 자신의 영혼을 깊이 들여다 보고 세심하게 돌보라는 거잖아. 한 마디로 전지전능한 신의 자리를 넘보거나 탐내지 말고 자신의 마음부터 돌보라는 거잖아. 스스로 자신을 얼마나 알고, 얼마나 모르는지를 공부하라는 거잖아. 인간아, 너는 신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 깨달아라는 거잖아. 그런데도 잘난 척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형보다 한참 어린 아시아 중국의 손자라는 장수도 형과 비슷한 말을 했어.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라면서, 전쟁에서 이기려면 나를 먼저 알고 적을 알아야 한다고 했어. 그런데도 현실은 너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문제는 자기 자신을 알려고도 하지 않아. 형을 비롯하여 여러 선인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신은 내버려 두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떠보려는 얄팍한 사람들 천지야.
니체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이란 짐승과 초인 사이를 오가는 다리일 뿐 건너가는 존재이기도 또한 몰락하는 존재이기도 하다.”고 경고했잖아. 즉 인간이란 위태로운 밧줄 위에서 자신의 이해관계와 필요에 따라 짐승쪽으로 갔다가 신이 있는 쪽으로 갔다가 하는 어정쩡하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거잖아. 동서양을 불문하고 철학자들은 자기성찰을 우선시 하라고 경고하지만 현실을 보면 너무 아는 체하는 사람들이 많아. 내가 안다고 하는 순간 그 앎은 곧 블랙홀이 되는 걸 몰라. 경험치가 많아질수록 자기 주장이 강해져 장벽이 된다는 걸 몰라.
근데 그 가수가 콘서트를 마치고 인터뷰에서 “역사속에서 어느 군주도, 임금도 국민을 위해 죽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국민이 강하면 위정자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렇게 말을 한 거야. 이를 두고 한 쪽에서는 리더가 국민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협조를 하지 않으니 국민을 위해 일을 할 수가 없다고 서로 삿대질을 하고 있어. 한 마디로 모두 지들 유리한대로 해석해 상대를 공격하는 데 사용하고 있어. 형! 테스형이 빨리 와야겠어. 형이 없는 세상, 별반 나아지지 않았어. 형의 부재는 철학의 부재고, 철학의 부재는 자본주의의 병폐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거 같애.
그런데 형, 앞서 나훈아라는 가수가 대단하다고 했잖아. 그야말로 나훈아 신드롬이야. 형은 없고 테스형을 부른 가수가 국민적 영웅으로 등장하고 있어. 물론 제때 형을 소환한 가수도 훌륭한 건 맞아. 형에 대한 관심사를 높였으니까. 아무튼 그 가수가 얼나나 대단한지 함 볼래! 나훈아가 올 연말에 서울, 부산, 대구에서 징글벨 콘서트를 열거든. 콘서트장 규모도 어마어마해. 부산에서는 수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벡스코라는 곳에서 하고, 대구도 부산과 비슷한 엑스코라는 곳에서 해. 근데 서울은 아예 체조경기장을 통째로 빌려서 한다는 거야. 코로나19로 거리두기 좌석제로 배정하기는 하지만, 친구들과는 밥도 안먹는 판국인데 예매 8분만에 전 좌석이 매진된거야. 대단하지. 형도 와서 강의 한 번 해 볼래? 100명 정도는 모일라나?
아무튼 무덤에서 편히 쉬고 있는 형이 들으면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지만 현재 대한민국 물질적 자본주의 병폐의 대표적인 것은 부동산이야. 형은 부동산이 뭔지 잘 모를거야. 사람들이 가족들과 모여 잠자고 쉬는 곳이야. 그중에서도 대한민국에서는 아파트가 가장 많아. 주택, 빌라 등도 있는데 전 국민의 60% 정도는 아파트에서 살아. 아파트 인기가 BTS급이야. 그래서 외국 사람들은 아파트공화국이라고 부르기도 해. 대한민국 아파트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날도 멀지 않았어. 그러다보니 아파트가 쉬고 잠자는 곳이 아닌 쩐의 전쟁터로 전락해 버린거야. 서울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하려면 25년치 월급을 한 푼도 안쓰고 은행에 모아야 할 정도야. 근데 언제 형 생각할 시간이 있겠어. 거기다 밥 먹고 커피도 마시고 가끔은 테스형 책도 사고 해야잖아. 근데 테스형 책은 잘 안 팔려. 서점에는 부동산, 재테크, 돈, 부자와 관련된 책들만 명당자리에 누워 있고, 형 책은 불빛도 잘 안드는 귀퉁이 책꽂이에 늘 서서 있어. 다리도 많이 아플거야. 잘 팔리는 책은 누워있지만 잘 안 팔리는 책들은 힘들게 서 있으니 할 짓이 아니지. 그래도 언젠가는, 누군가는 형을 찾을거야. 형 책은 안 사더라도 또 가끔씩은 바닷가로 드라이브도 가고 풍경 좋은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도 마시다 보면 평생 아파트 한 채 사기도 어려운거지.
집을 더 지으면 된다고? 물론 많이 지었지.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긴지 오래됐어. 근데 형 마음 같지가 않아. 전 가구가 공평하게 1채씩 가지면 남아 도는데, 돈 있는 사람들이 2채, 3채, 심지어 수백 채씩 가지고 있는거야. 1채 가지면 2채 가진 사람이 부럽고 10억이 있으면 100억 가진 사람이 부러운 법이잖아. 손가락이 없는 사람은 손목이 없는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불평하는 게 인간이잖아.
그러니까 보다 못한 나훈아라는 가수가 적기에 형을 급히 찾은 것 같애. 근데 형이 와도 딱히 해결책이 쉽지는 않을 거야. 역대 대통령들도 국정의 제1과제로 아파트 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이었거든. 그 어떤 대통령도 집값을 안정시킨 적이 없어. 특히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기대를 많이 했지만 아직까지는 마찬가지인 것 같애. 임기가 1년 조금 더 남아 있기는 하지만 집값을 잡기는 어려울 거 같애. 아파트 가격을 잡기는 커녕 오히려 더 많이 올라버렸어. 한 마디로 국민들은 멘붕상태야. 돌아버리기 일보 직전이지. 젊은 청춘들도 형을 찾기보다는 집사는데 혈안이 돼버린 거야. 대통령뿐만 아니라 부동산 일을 전담하는 국토교통부 장관 김현미도 뾰족한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방법이 없는 건지 방법을 모르는 건지 헷갈려. 그래서 국민들은 무슨 문제만 불거지면 문재인, 김현미 탓을 하는 지경이야.
아무튼 형 인기가 좋다보니 대한민국 국회에서도 테스형이 등장할 정도야. 종종 멱살잡고 삿대질하는 모습을 봐왔던 터라 국회에서 테스형을 찾았다기에 이젠 좀 철 들려나 했는데 그건 아닌것 같애. 국회에서 형 관련 무슨 포럼이나 세미나를 개최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국회 국정감사에서 야당 국회의원이 김현미 장관한테 질의를 하는 과정에서 테스형 이야기가 나왔던 거야. 일견 이해는 돼. 현 정부가 20번 넘게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는데도 부동산 시장이 안정화 되지 못하자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부동산이 왜 이래”하면서 김현미에게 테스형의 노래를 틀어서 들려준거야. 이에 김현미는 국민들께 죄송하다면서도 코웃음을 쳐서 또 한바탕 소동이 일기도 했어.
이제 부동산에도 테스형이 필요하다. 부동산도 더이상 부동산이 아니라 동산화 되어가고 있다. 인간의 필요나 욕망에 의해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사회의 수준이나 경제 성장 속도에 따라 변한다. 영원할 것 같았던 ‘합리적 경제인’이라는 정통 경제학의 명제는 경제학자가 아닌 심리학자에 의해 처참히 무너졌다. 경제와 관련하여 인간은 결코 합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다는 반증이다.
따라서 그 어떤 수치나 기술도 결국 산출된 답을 해석하는 데서 가치가 발현된다. 기술이나 통계는 무결점의 완성체가 아니다. 충분히 편향되거나 왜곡될 수 있다. 기술과 통계의 결점을 보완하는데 테스형의 분석과 가르침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아가 데이터를 정교하게 활용하고 의미 있게 적용하는 데도 테스형의 도움이 필요하다. 단순히 데이터만 쫓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데이터와 함께 반드시 인문학이 병행돼야 하며, 인문학의 가치가 충분히 인정돼야 데이터도 빛을 발한다.
부동산이 직면한 여러 문제의 해결책을 찾으려면 데이터뿐만 아니라 테스형에 대한 근본적 이해가 필요하다. 기술이나 데이터가 지금보다 좀 더 인류와의 공존을 위해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좋은 변화를 이끌어 내려면 그 중심에 테스형이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시장이 정부 정책도 별 약발이 없고 비이성적 과열 시장으로 요동치는 것도 지나치게 지표와 수치에 매몰된 나머지 그 너머의 인간행동과 심리를 간과한 데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모든 게 못으로 보이고 도끼를 든 사람에게는 장작만 보인다. 어떤 분야이건 핵심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다양한 경험에 테스형의 시각이 가미되어야 길러질 수 있다.
노래방에서만 불려지는 테스형이 아닌 우리 마음속에 오랫동안 함께 하는 테스형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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