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을 읽다/부동산에 뛰어든 인문학

32. 부동산에 뛰어든 인문학-부산의 부동산 시장은 서울의 식민지다

김부현(김중순) 2020. 11. 19. 18:47

항구 도시 부산이 요란하다. 조정지역 재지정 때문이다. 전화통이 불나는 요즘이다. 조정지역으로 지정되면 호떡 집에 불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이다. 조정지역은 투기과열지구 및 투기지역과 더불어 부동산 낙인찍기의 3대 규제 셋트 중 하나다. 규제지역이란 한 마디로 좋은 동네, 비싼 동네라는 말이다. 아무튼 두 달 가까이 계속 군불만 지피더니 해운대·수영·동래·남·연제구 등 5곳이 2020년 11월 20일자로 조정지역 시행에 들어갔다.

부산의 조정지역 지정은 이미 다 예측하고 있었던 사실이다. 이미 오를 대로 오르고 난 그야말로 뒷북대책이다. 특히 해운대와 수영은 정량적 요건이 충족되었기에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했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때마침 터져 나온 가덕도 신공항이 기름을 붓고 있어 부동산 시장이 진정될지는 두고볼 일이다. 현재 울산, 천안, 창원 일부지역도 국토부에서 정밀 모니터링에 들어가 조만간 규제지역으로 지정될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반면 청주와 경기도 양주시는 조정지역 해제 요건을 충족하여 12월에 조정지역에서 해제될 것으로 보인다.

부산의 조정지역 지정은 두 번째다. 따라서 처음과는 달리 내성도 생겼고 시장의 충격도 크지 않을 것이다. 혹자는 정치일정을 들어 대선 무렵에 다시 조정지역이 해제될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만 설령 그런 상황이 온다 하더라도 너무 가격을 올려놓은 뒷북 탓에 남구를 빼고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조정지역 지정의 효과가 먹히지 않을 경우 해운대나 수영은 향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어쨌던 명색이 부산은 제2의 도시인데 작년 조정지역 해제 이후 그간 부동산 규제지역이 하나도 없었다. 부산은 그간 별볼일 없는 동네였다는 반증이다. 제2의 도시라지만 이것도 가짜 뉴스에 가깝다. 인구수만 빼고는 경제 전반에 걸쳐 제2의 도시는 인천으로 넘어간지 오래다.

부산의 조정지역 지정을 예상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거창하고 복잡한 통계적, 정량적 수치가 아니다. 서울사람들이 부산에 몰려와 부동산 시장을 들쑤시면 규제가 임박했다는 신호다. 사실 부산 스스로는 부동산 가격을 떠받칠 수 있는 능력도 없고 실력도 없다. 부산 부동산 시장을 띄우는 방법은 단순하지만 계속 반복되고 있다. 외지인, 특히 서울사람들이 부산의 특정 지역을 타겟으로 부동산을 휘젓는 것이다.

그들이 시장을 띄우는 방법은 간단하다. 부산에 떼로 몰려와 특정 지역의 매물을 싹쓸이 한다. 그리고는 호가를 왕창 올려 자기들끼리 치고 받으며 잔칫집 분위기를 만든다. 이때까지 부산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하며 관망만 한 채 강건너 불구경 하듯 한다. 하지만 얼마지 않아 상상할 수 없는 고가에 실거래가가 찍힌다. 이때가 되면 기다렸다는 듯 서울 언론들도 동참한다. 부산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고 있고 계속 상승할 것이라고 부추긴다. 이때까지 계속 눈치만 보던 부산사람들이 레밍쥐처럼 고가행렬에 동참한다. 그러면 서울사람들은 주식시장에서 단타치듯 잽싸게 팔고 도망간다. 뒤늦게 부산사람들끼리 경쟁이 붙는다. 늘 뒷북인 탓에 폭탄을 안고 간다. 

그러고 얼마 있으면 정말 한치의 오차없이 정부에서 규제대책을 발표한다. 이미 서울사람들이 다 해먹고 간 뒤다. 규제가 되면 피해를 보는 쪽은 뒤늦게 폭탄을 안았던 부산사람들이다. 주범은 이미 도망가고 없는데 부산사람들끼리 삿대질한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으면 김현미와 문재인에게 욕지기를 한다. 본인 탓은 하지 않는다. 

사실 정부의 부동산 규제 대책의 기본목적은 가격을 안정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가격안정은 위장 전술에 불과하고 미쳐 날뛰는 인간심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퍼붓는 것이 진짜 목적이다. 즉 불을 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더 이상 불길이 번지지 않게 하는 심리적 요인을 노리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정책은 세부 내용 그 너머에 있는 계획된 심리전이다.

규제대책이 시행되면 일단 처음에는 완강히 저항하며 정부 정책에 맞선다. 버티기 전략이다. 배째라 전략이다. 대출받아 샀지만 1년 정도는 이자 꼬박꼬박 내며 방어선을 친다. 정 안되면 실수요로 거주하면 된다는 야심찬 목표도 세운다. 따라서 조정지역으로 지정됐다고 당장 집값이 폭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1년 쯤 지나면 본인 탓이 아닌 정부 정책 탓을 하며 매물을 던진다. 이때가 되면 잊고 있었던 서울사람들이 또 몰려와 저가에 줍줍해 간다. 자금 여유가 있는 서울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그들이 하는 일은 줍줍해 놓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 얼마 안 있으면 부산 사람들이 규제를 풀어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또 다시 언론과 방송에서는 부동산 시장 침체 운운하며 부산사람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개거품을 문다. 

정말 미치고 환장할 일이다. 그러고 얼마 안 있으면 귀신같이 정부에서 규제를 푼다. 서울사람들이 정보력이 있는 것인지 정부와 짜고 치는 고스톱인지는 알 수 없지만 딱딱 들어 맞는다. 그러면 다시 서울사람들은 줍줍해 놓았던 물건들을 지들끼리 치고 받으며 실거래가를 왕창 띄운다. 그리고는 미친 듯이 달려드는 부산 호구들에게 역시 팔고 또 튄다. 이런 일은 반복된다.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실력이라고 했다. 문제는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경제학자인 존 갤브레이스는 세상에는 ‘모르는 사람’과 ‘모르는 것을 모르는 사람’의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다.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다. 문제는 모른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사람이 문제다. 왜 매번 부산사람들은 서울사람들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계속 당하는 것일까. 부산사람들은 그들을 투기세력이라고 몰아부치지만 그들은 투기세력이 아니라 고도의 능력으로 무장된 자본주의의 탈을 쓴 합법적인 투자세력이다. 

한 마디로 능력면에서 부산사람들은 서울사람들의 호구라는 것이다. 모르면 공부라도 해야 하는데 그럴 의욕도 별로 없어 보인다. 하긴 100대 기업의 본사가 부산에는 한 곳도 없고 죄다 서울에 몰려 있고, 유명 대학의 80%도 서울에 죄다 모여 있고, 내로라하는 능력자들이 하나같이 서울에 있다 보니 서울공화국에 일단 한 수 접히고 들어가는 것이다. 

......................  그냥 그려려니 하고 살면 편하겠는데 불현듯 이 아침에 기분이 꿀꿀한 건 왜일까?

우리 안에 원숭이 네 마리를 집어넣고 천장에 바나나 한 묶음을 걸어 놓고 바나나에 다다를 수 있게 사다리를 놓는다. 얼마 안 있어 배고픈 원숭이 한 마리가 바나나를 먹으려고 용기있게 사다리에 올라타는 순간, 천장에서 찬물이 쏟아진다. 이를 본 다른 원숭이들은 사다리에 오르면 찬물을 맞게 된다는 것을 터득한 나머지 아무도 바나나 근처에 가지 않았다. 이후 천장의 물을 잠그고 물벼락을 맞은 원숭이 한 마리를 우리에서 꺼내고 대신 다른 원숭이를 들여보낸다. 바나나를 발견한 새 원숭이는 찬물이 쏟아진다는 것을 모르는 상태이므로 곧장 사다리를 타려고 한다. 그 순간 나머지 세 마리 원숭이들은 찬물이 쏟아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사다리에 올라가려고 하는 원숭이를 공격한다. 공격을 받은 원숭이는 자기가 왜 공격을 받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다. 찬물을 뒤집어썼던 원숭이들을 차례로 다른 원숭이로 교체해도 또 같은 일이 벌어진다. 시간이 흘러 우리 안에는 한 번도 찬물을 맞은 적이 없는 원숭이들만 존재하게 됐는데도 아무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려 하지 않는다. 막대기에 올라가면 안 되는 이유도 모른 채 그저 막대기를 멀리한다.

런던 비즈니스스쿨 게리 해멀Gary Hamel 교수와 미시간 경영대학원 프라할라드C. K. Prahalad 교수가 공동으로 쓴 <미래를 위한 경쟁>에 나오는 원숭이 실험이다. 인간사나 부동산 투자를 대입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열정으로 똘똘 뭉친 누군가가 여태까지 생각할 수 없었던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려고 하면 경험과 전문가라는 것으로 교묘히 포장한 사람들이 등장하여 십중팔구는 부정적인 인식을 보인다. 대부분의 투자는 투자자들이 몰리는 곳이 편안하지만 먹을 건 적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자들이나 투자의 귀재들은 대중의 반대편으로 간다.

관성화된 맹목적 경험으로 위장한 채 별다른 의구심 없이 답습하는 많은 대중들에게 경고를 보내는 사례다. 찬물을 뒤집어쓰기를 감수하고 사다리를 탈 용기 있는 사람들은 많지만 주위 사람들의 제지와 공격으로 그들의 용기는 점점 꺾이게 되고 결국 대중 속으로 묻혀가는 편안함을 택하게 된다.

니체의 말이다.

“너는 안전하게 살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항상 군중 속에 머물러 있어라. 그리고 군중에 섞여 너 자신을 잃어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