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니의 남편은 지금 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가 있다. 물론 폭풍우가 몰아치는 춥고 사나운 날씨에 바다에 나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먹고살기가 빠듯해 날씨를 가려가며 일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자니는 열심히 바느질을 하면서도 마음은 줄곧 바다에 나가 있었다. 더욱이 오늘처럼 폭풍우가 거세게 몰아치는 날이면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간간이 거센 폭풍우를 뚫고 갈매기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는 줄기차게 퍼부었고 자니는 불안하고 불길한 마음에 자꾸만 부정적인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폭풍우에 배가 난파당하는 장면이 그림처럼 떠올랐던 것이다. 배가 암초에 걸려 부서지고 사람들이 살려 달라고 아우성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아, 제발 무사해야 할 텐데….’
자니는 두려움에 떨며 몸을 웅크렸다. 그때, 낡은 괘종시계가 뎅뎅거리며 시간을 알려 주었다. 철부지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잠에 빠져 있고 자니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먹고 사는 일이 정말 쉽지 않다. 남편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추위와 폭풍우를 무릅쓰고 바다에 나가 시시각각 조여오는 위험 속에 자신을 내맡기는 일이 다반사고 그녀는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쉴 새 없이 부지런히 일해야 겨우 입에 풀칠을 하는 실정이다.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의 <가난한 사람들>에 나오는 내용의 일부이다.
예로부터 ‘가난 구제는 국가도 못한다’는 경구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돈으로 인간성까지 사고 팔 수 있는 변질된 자본주의 시스템이 고착화되고 있다 하더라도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가난은 자본주의의 산물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이다. 어떤 국가의 국민들이 모두 절대적 빈곤에 허덕인다면 그 국가는 가난한 국가라고 부를 수조차 없다. 그것은 가난이라기보다는 재앙이며 그 재앙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협력하여 해결해 나가야 할 숙제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남편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바다에서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폭풍우와 사투를 벌이고, 아내 자니 역시 늦은 밤까지 쉬지 않고 일을 하는데도 겨우 입에 풀칠하기에 급급하다.
독일의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E. F. Schumacher는 <자발적 가난>이라는 책을 통해 스스로 가난을 선택하고 소박한 일상 속에서 성찰하며 내적 풍요를 가꾸는 삶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비자발적 가난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뜬구름 잡는 허풍이자 희망 고문에 가깝다. 노동현장에서 등짐으로 시멘트를 나르고, 하루 종일 서서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고, 새벽 첫 차를 타고 병원에서 청소를 하는데도 가난에 시달리는 건 그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국가의 시스템 및 정책과 제도의 비합리성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절대적 빈곤을 해결하는 주체는 개인이 아니라 결국 국가의 몫이다. 이들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어서도 아니고, 인간성 결여로 인한 관계의 결핍 때문도 아니기 때문이다. 튼튼한 두 다리로 부지런히 달려 입속의 거미줄을 걷어내고, 날 저물면 포장마차에서 친구와 소주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에게서 ‘노~력 부족’이라는 말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그럼에도 자본주의가 변질되면서 갈수록 가난은 개인의 책임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다.
최근 한 언론에서 우리나라 성인 남녀 4,11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부자’라고 생각하는 자산 기준은 39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봉 5,000만 원을 받는 직장인이 한 푼도 쓰지 않고 78년을 모아야 가능한 금액이다. 게다가 KB경영연구소에서 발표한 ‘2019 한국 부자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부자들은 ‘부자의 기준’으로 금융과 부동산 등 모든 자산을 포함하여 총자산 50억 원 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은 2018년 32만 3,000명으로 전년 대비 4.4% 증가에 그쳐 최근 5년 내 가장 낮은 증가율을 보였다. 한국 부자의 지역별 분포를 보면, 서울 14만 5천 명, 경기도 7만 명, 인천 1만 명으로 수도권에 69.6%가 집중되어 서울공화국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 외 부산, 대구 순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총자산 구성비를 보면, 부동산 53.7%와 금융자산 39.9%로 나타나 부동산 사랑은 여전한데 반해 저금리 기조 등으로 금융자산 비중은 최근 5년 만에 처음으로 하락하였다. 부자일수록 부동산 비중은 더 높았다.
그렇다면 부자는 아니더라도 그나마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중산층의 기준은 무엇일까?
중산층이 두터워야 사회가 안전하고 국가가 튼튼해지기 때문에 많은 국가들이 중산층을 늘리는데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최근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의 중산층 기준도 만만치 않다. 부채 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소유, 월급 500만 원 이상, 2,000CC급 중형자동차 소유, 은행예금 잔고 1억 원 이상 보유, 그리고 1년에 한 차례 이상 해외 여행을 다닐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인문학의 정점이었던 조선시대에만 해도 중산층의 기준은 돈이나 부동산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하는 소유의 양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두어 칸 집에 두어 이랑 전답이 있고, 겨울 솜옷과 여름 베옷 각 두어 벌, 또 서적 한 시렁, 거문고 한 벌, 햇볕 쬘 마루 하나, 차 달일 화로 하나, 봄 경치 찾아다닐 나귀 한 마리에 의리를 지키고 도의를 어기지 않으며, 나라의 어려운 일에 바른말을 하고 사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유럽 선진국은 어떨까? 먼저 프랑스의 경우, 중산층 기준은 외국어를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고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어야 하며,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어야 한다. 또 남들과는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요리를 할 수 있어야 하고, ‘공분’에 의연히 참여하고 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 중산층의 기준이다.
그리고 옥스퍼드대학에서 제시한 영국 중산층의 기준은 페어 플레이를 할 것,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할 것, 불의·불평·불법에 의연히 대처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자신의 주장에 떳떳하고 사회적 약자를 돕고, 부정과 불법에 저항하고 테이블 위에 정기적으로 받아 보는 비평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중산층의 기준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돈과 소유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선진 각국은 사회 정의에 기준을 두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소유냐, 존재냐>는 거창한 책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나라가 존재 그 자체보다는 소유에 초점을 두게 된 것은 결국 역사적 배경과 무관치 않다. 한국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국토에 국가 재건이 시작된 것은 1960년대 초, 1962년 제1차 경제개발계획을 시작으로 국민들은 새로운 희망으로 똘똘 뭉쳤다.
당시 UN에 등록된 나라 수는 120여 개국, 필리핀의 국민소득이 170달러였고, 태국은 220달러였지만 한국은 83달러에 불과했다. 우리 밑에는 달랑 인도만 있었다. 세계 120개 나라 중에 인도 다음으로 못 사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었다. 그러나 제1차 경제개발계획이 끝난 1966년 국민소득은 83달러에서 125달러로 증가했다. 일제치하와 전쟁, 보릿고개를 겪으면서 국난극복이 일상화되다 보니 입에 풀칠하는 것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경험했고, 새마을운동과 산업화, 민주화를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거치면서 먹고 사는 것이 어느 정도 해결되자 소유에 집착하게 된 것이다.
역사에서 보듯 사회가 선진화될수록 소유욕은 차츰 줄어든다.
따라서 우리는 아직 자본주의는 선진화되고 있지만 사회의 선진화는 요원하다. 우리나라의 소유욕의 원천은 결국 부동산, 그중에서도 아파트다. 아파트는 죄가 없다. 그러나 아파트는 아프다. 아파트는 피곤하다. 공공의 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파트를 신성시하는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를 모르고서는 한국식 자본주의에 온전히 살고 있다고 할 수 없을 지경이다.
2016년 IMF가 발표한 '아시아의 불평등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3년 현재 45%로 자료를 확보할 수 있는 아시아 국가 가운데 가장 높았다. 상위 10%의 소득점유율이 높은 국가는 한국에 이어 싱가포르가 42%, 일본이 41%로 상대적으로 높았고, 이어 뉴질랜드 32%, 호주 31%, 말레이시아 22% 순이었다. 한국의 상위 10% 소득 점유율은 1995년 29%에서 18년 사이에 16%나 상승한 것이다. 비슷한 기간 아시아 국가 전체의 평균은 1∼2% 늘어나는데 그쳤지만 한국 상위 10%의 소득 점유율 증가폭은 압도적이다. 보고서는 최근 연구를 보면 한국의 사회적 계층 이동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급속한 고령화와 정규직,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 직업과 관련된 성차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중에서도 아파트를 몇 채 가지고 있느냐가 계층 구조를 결정짓는 아파트 계급사회도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2019년 통계청에서 발표한 우리나라 주택소유통계 자료(2018.11.1.)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택은 1천763만3천 호로 51만1천 호가 증가했다. 이 중 개인이 소유한 주택 비중은 1천531만7천 호로 다소 줄었지만 주택을 2채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는 전년 대비 7만 명 가량 늘어 220만 명에 이르며 전체 주택 소유자의 15.6%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주택자 비중은 2014년 13.6%를 시작으로 매년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3주택자는 28만 명, 4주택자 7만 4천 명, 5주택 이상도 11만 7천 명에 이른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우리나라 땅의 소유구조는 더 심각하다. 상위 1%가 우리나라 전체 민간토지의 38%, 금액으로는 9,489조 원을 보유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조사(1979~1999)한 2018년 기준 대한민국 총 땅값은 '1경1,544조 원'인데 이는 40년 만에 30배 가 오른 것이다. 이를 연평균 상승액으로 보면, 규제 일변도의 정책을 펼치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서 1,027조 원으로 역대 정부 중 '최고'를 기록했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토지 불패신화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증명된다. 그래서 개인이든 기업이든 심지어 국가도 땅을 더 가지기 위해 그야말로 피터지게 싸운다.
이 가운데 민간이 보유한 땅값은 9,489조 원, 정부 보유분은 2,055조 원으로 나타났다. 경실련 분석 결과 민간보유 땅값은 1979년 325조 원에서 40년 만에 약 30배로 뛰었다. 경실련은 이같은 현상이 정부가 짓지도 않은 아파트 선분양제를 유지하면서 분양가상한제를 폐지했을 때 아파트값과 땅값도 크게 상승했다고 지적했다. 2018년 국내총생산(GDP)은 1,893조 원이지만 땅값은 GDP의 5배로 프랑스 2.5배, 일본 2.2배, 독일 1.2배 핀란드 0.9배 등으로 땅값의 거품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경실련은 40년 동안 물가 상승률대로만 땅값이 올랐다면 작년 말 기준 민간보유 땅값 총액은 1,979조 원에 그쳤을 것이며 이를 정상적인 땅값 수준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2018년 말 대한민국 땅 값 총액에서 이를 제외한 7,510조 원은 불로소득이라는 것이다. 경실련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물가 상승률에 따른 상승을 제외하고 2년간 1,988조 원의 불로소득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이는 한 가구당 9,200만 원에 이르는 금액이다. 그러나 이 불로소득이 소수에게 집중되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현재 땅을 1평이라도 보유한 국민은 1,500만 명 정도로 국민의 70%는 토지를 한 평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년간 1,988조 원의 불로소득이 1,500만 명의 토지 보유자에 돌아갔다고 할 경우, 1인당 불로소득은 1억 3,000천만 원에 달한다. 경실련은 "문재인 정부에서 역대 정부 가운데 최고로 땅값이 상승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성실하게 땀 흘리며 일하는 서민들을 위해서라도 집값, 땅값 거품을 제거하는 강력한 투기근절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갈수록 양극화가 심화되어 부자들은 부의 바벨탑을 더 높게 쌓고 있지만 그에 비례하여 바벨탑 옆에서 박스를 이불 삼아 잠을 자는 노숙자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 가난 구제는 국가도 하지 못한다는 경구는 틀리지 않았다.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가난은 결국 개인의 책임영역으로 넘어오고 있다. 그런데도 가난한 사람들은 말한다. 기회가 오면 잡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는 일이라곤 끊임없이 핑계를 대며 시간벌기가 대부분이다. 투자를 투기세력으로 몰면서 늘 꾸물댄다. 그러는 통에 기회는 사라진다. 기회가 지나가면 자신을 또 합리화하기에 급급하다. ‘준비하는 중’이었다고 말이다.
알리바바Alibaba 마윈 회장의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일하기 힘든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작은 비즈니스라고 하면 돈을 별로 못 번다고 하고, 큰 비즈니스라고 하면 돈이 없다고 한다. 새로운 걸 시도하자고 하면 경험이 없다고 하고, 새로운 사업을 해보자고 하면 전문가가 없다고 한다. 그들의 인생은 기다리다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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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형! 소크라테스형! 2,500년 전 무덤에 간 테스형, 잘 지내지. 어찌 무덤속은 난방이 잘되는지? 거기도 천국은 아니지! 그래 천국은 없을거야. 천국은 지옥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그냥 도피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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