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삼독(讀書三讀)"이라는 말이 있다. 진정한 책읽기는 세 번을 읽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먼저 텍스트(글자)를 읽고, 다음으로 그 저자의 의도를 읽고, 마지막으로 책을 읽고 있는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으로 잘 알려진 신영복 선생 역시 <서삼독>에서 3독을 권했다. "책은 반드시 세 번 읽어야 합니다. 먼저 텍스트를 읽고, 다음으로 그 필자를 읽고,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그것을 읽고 있는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합니다. 모든 필자는 당대의 사회역사적 토대에 발딛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를 읽어야 합니다.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하는 까닭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서는 새로운 탄생입니다. 필자의 죽음과 독자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탈주(脫走)입니다. 진정한 독서는 삼독(三讀)입니다."
그러나 3독은 약과다. 조선시대 김득신은 책 한 권을 무려 10,000번을 읽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평생 10,000번 읽은 책이 36권이나 된다고 한다. 흔히들 부동산 관련 책은 한 번만 읽어도 된다고들 한다. 여러번 읽을 게 있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1독, 즉 텍스트만 읽는 것을 책읽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껏 어떤 책을 읽으면서 3독은 차치하고라도 2독, 즉 그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본 경우가 있긴 있었던가!
2019년 출간 당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바벨탑공화국>, "욕망이 들끓는 한국 사회의 민낯"이라는 부제가 더 안성맞춤인 책이다. 당시엔 책 제목에 혹해서 샀지만 책꽂이에 세워두기엔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바벨탑을 쌓던 부동산 시장이 잠잠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정권 바뀌면 좀 달라지겠지' 했는데... 애꿎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탓으로 돌리며 위안을 삼고 있는 듯하다.
암튼 부동산 시장이 조용하다보니 개인적으로 시간의 구조화를 새로 짜야 할 판이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토지 및 임야 공부, 책읽기, 여행 같은 개인사를 해볼 요량이다. 그래서 평일 한참 일해야 할 시간에 책을 펼치는 이런 호사도 누려본다.
한 번 읽고 먼지를 뒤집어 쓰게 하기엔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꺼낸 <바벨탑 공화국>. 하는 일이 무료해 지고 매사에 흥미가 없을 때, 맘 한 구석에서 원인 모를 짜증이 스멀스멀 밀려올 때, 쪽빛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가볍게 읽어 보면 어떨까? 쓴맛, 단맛, 짠맛, 매운 맛이 교차할 것이다. 분노와 자책... 그 너머.... 다시 시작할 힘이 생길 수도 있다.
저자는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에 조예가 깊은 학자답게 전체적인 문체는 반항적이고 거칠다. 그러나 침묵하는 우리에게, 포기한 우리들에게 저자는 묻는다.
-왜 우리는 비싼 집에 사는 가난한 사람이 되었나? |
-왜 지방은 서울의 식민지가 되었나? |
-왜 서울 아파트는 성역이 되었나? |
-왜 한국은 야비하고 잔인한 갑질공화국이 되었나? |
-왜 정치는 늘 부유한 유권자들을 대변하나? |
-왜 우리는 대중을 따르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고 생각할까? |
-왜 가정, 학교, 직장에서는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교육이 활개를 칠까? |
-왜 지방분권은 대국민 사기극인가? |
-왜 지방대는 '헬조선행 설국열차'의 5번째 칸으로 전락했나? |
-왜 서울은 지방에 빨대를 꽂을까? |
혹자는 "그래서 어쩌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다 아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일종의 체념이다. 체념이 많아진다는 건 호기심이 없다는 말이다. 호기심이 없으면 열정이 생기지 않는다. 새로운 호기심으로 글자를 꼭꼭 씹어보라. <바벨탑 공화국>은 부동산 현상, 즉 팩트에 집중한 것처럼 보이지만, 한 번 더 읽으면 부동산 현상 그 너머에 있는 부동산 심리학에 가까운 책이다. 문체는 강한 저항체이기에 글자만 읽어서는 오해할 수 있다. 정부와 부동산 시장의 왜곡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너머에 있는 우리의 역사와 심리를 함께 봐야 한다.
-세계에서 50층 이상 주거용 건축물을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 4위가 한국이다.
-찜질방, 만화방 등 '집 아닌 집'에 거주하는 가구가 220만 가구나 되는 나라가 한국이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경계는 무엇으로 나누어지나?
천국과 지옥의 경계는 누가 설계하는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니, 세계 6대 군사강국이니 떠들어도 사회는 이미 양극화의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부자와 가난한 자, 천국 아니면 지옥.... 사막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두 종류 뿐이다. 사막에 다녀온 사람, 사막 같은 현실에 사는 사람.....재도전 할 수 있는,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중간지대가 없다. 양극화의 다른 말은 흑백이다. 머리가 좋은 사람과 머리가 나쁜 사람...... 머리를 비교하면 둘 다 죽지만 개성을 비교하면 둘 다 살 수 있다. 양자택일 뿐인 나라, 중간지대가 없는 민족이 역사적으로 선진국이 된 사례는 없다. 선택지가 많은 나라가 선진국이다. 선택지가 많아야 머리가 아닌 가슴이 숨을 쉴 수 있다.
......책꽂이 한 켠,
......마음 한 구석에 이런 책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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