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경영/꿈과 비전

꿈은 휴가 중!

김부현(김중순) 2009. 3. 21. 20:54

세상 부러운 게 없는 유유자적한 토요일 아침,

오징어처럼 몸 가는대로 흐느적거리다 겨우 일어났다. 늦은 아침을 먹고, 뒷산 백양산 자락을 오르기 위해 집을 나섰다.

햇살은 참 똘망똘망 했다.

막내딸이 다니는 초등학교 담벼락을 따라 벌써 샛노란 개나리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고, 꼬부랑 산길에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 풍선처럼 진달래가 꽃봉오리를 펼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성미 급한 놈들은 군데군데 벌써 꽃망울을 터트리기도 했다. 꼭 단체생활에서 이탈하는 놈들이 있다. 사람처럼...

 

일 때문에 서울로 가기 전에는 일주일에 서너 번은 족히 다녔던 길이었다.

주말에 내려오면 집안에만 파묻혀 지내다 올라가기가 일쑤였던 탓에 오늘에서야 나섰다.

계절이 한 번 바뀌고서야 나선 길,

분명 예전의 길 그대로였지만 군데군데 새로운 샛길도 있었다.

언제 다녀도 아름답고 조용한 길, 산책과 등산을 원하는대로 선택할 수 있는 한적한 길이다.

 

일상이 헐거워 질때마다 나를 위로하기 위해 찾는 산,

높으면 높은 데로,

낮으면 낮은 데로,

멀리 있으면 멀리 있는 데로,

가까이 있으면 가까이 있는 그대로,

산은 언제나 있는 그대로 나의 헐거워진 일상을 조여준다.

 

나이 마흔이 될 때가지, 난 늘 뭔가 손해 보는 것 같고,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사실은 난 잃을 것도 없었고, 잃은 것도 없었다.

처음부터 가진 것이 없었으니까.

구태여 잃은 것이 있다면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모른 척 지나왔던 그 때늦은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비록 늦었지만 나는 그에게 다가갔고, 지금은 함께 만족스런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내 자신이 사실 대견하고 기특하기까지 하다.

 

어떤 길이던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길은 누군가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늘 새로운 길을 만들려 하기보다는 있는 길을 무심코 따라가려고만 한다.

산과 들, 그리고 길을 빼고는 말할 수 없는 내 삶이다.

약 1시간 정도 오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 나의 목적지, 약수터다.

전망 좋은 능선에 올라 신라대와 옛 사상공단, 그리고 낙동강, 그 너머로 김해공항과 김해평야가 차례로 줄을 서 있었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1960년대 흑백사진 속의 풍경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변하고 있었지만, 정작 변한 게 없었다.

 

바람 중에서도 유독 봄바람에는 일종의 마약성분 같은 것이 있는 것 같다.

그 마약을 먹은 나는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 나도 모르게 산속으로 이끌려 드니 말이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닐게다. 봄엔 처녀도 바람난다고 했으니까.

 

먼발치로 보이는 낙동강 변 공항 언저리 있는 갈대숲 속,

한적한 그 곳엔 낚시꾼들이 말하는 소위 명당자리가 있다.

민물낚시를 좋아하는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몇 년 전, 나는 죽기보다 싫어하던 낚시를 따라 나섰던 적이 있었다.

밀양댐 하류 어느 조그만 마을 어귀, 어디메 쯤이었던 것 같다.

텐트를 치고 밤새 낚싯대를 드리웠으나 물고기는커녕 내가 고기에게 낚이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조급증을 가지고 있는 나에겐 강태공 기질은 애초부터 없었다.

그 날, 나는 초보 낚시꾼이라 그렇다손 치더라도 함께 갔던 이른바 낚시광이라는 K형 역시,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단, 한 마리도....

딴에는 매운탕 끓여 먹으려고 준비는 철저하게 했다. 너무 준비를 완벽하게 해서였을까. 아무튼 미리 김칫국부터 마셨던 것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도 물고기들이 반상회를 개최하여 하루 동안 집에 칩거하고, 위험하니까 절대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방송이라도 했던게 틀림없었나보다. 방송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괜히 집을 나섰다가 낚시 바늘에라도 걸리는 날엔 그 물고기는 엄청 억울할 테니까.

 

그 때 같이 갔던 낚시의 귀재, K형의 말이다.

"고기도 억울하게 잡히는 놈이 있어"

"억울하게 잡히다니요?" 내가 의아해 하자,

"그물에 잡힌 물고기는 사실 좀 억울하지.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잡혔으니까."

"그러나 낚시에 걸린 물고기는 억울한 것이 아니여. 공짜 먹이를 탐하다 잡혔으니까..."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낚시꾼이 그렇게 많은가보다", 그리고 "물고기도 공짜 좋아하는 놈이 많은가보다"하고.

역시 사람이나 물고기나 공짜를 바라면 안 되는 것이여.

한 마리의 물고기도 못 잡은 우리에게 K형이 했던 말이다.

"진정한 낚시꾼은 고기를 낚는 것이 아니라, 세월을 낚는 것"이라고... 핑계거리는 참 많다.

난 그날 이후로 낚시와는 38선을 그어놓은 상태다.

 

산을 오르는 내내 궁금증에 머리가 아프기까지 했던 그 약수터는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약수터 주변은 가지를 옮겨 다니는 바람소리, 행복한 꽃들의 지저귐으로 가득했다.

약수터 앞의 바가지며, 옆 공터에 훌라후프, 철봉과 같은 간단한 운동기구들은 그 모습 그대로였다. 매일 오는 것처럼 아주 익숙한 척, 가볍게 맨손 체조랑 턱걸이를 몇 회 하고는 다시 왔던 길을 재촉했다.

모퉁이를 돌자 치맛바람처럼 오락가락하는 봄바람이 회오리처럼 불어댔다.

이렇게 간지러운 바람이 불 때면 나의 육체와 정신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한 쪽으로 기울어지려고 한다.

외려 센 바람엔 중심을 잡고 곧게 서는데 말이다. 역시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 것이 세상 이치인가보다.

 

계절이 바뀔 무렵이면 문득 내가 제대로 살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조금만 마음을 풀어 놓으면 마음이란 놈은 금새 지 맘대로다. 그래서 내 마음은 늘 차렷 자세다.

가끔 차렷 자세가 편히쉬어 자세가 되어 흐트러진 마음을 보면 어린아이 경기하듯 화들짝 놀라 나 자신을 두들겨 팬다.

마음이 느슨해 질 때면, 예외없이 난 그와의 시간들이 빛바랜 필름처럼 떠오른다.

너 없이도 아무 일없이 잘 살아온 나의 삶에 비집고 들어와 씨를 뿌리고 싹을 틔워 마침내 꽃을 피우려하는 너,

정말 고맙다.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그날, 그날이 기다려진다.

 

너와 나,

처음엔 티격태격 '니가 잘났니, 내가 잘났니' 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많이 주고 받았었지.

다듬어지지 않은 날카로운 혀로 너의 마음을 많이도 찔렀었지.

오늘도 없고, 내일도 없다며 무던히도 너를 괴롭혔었지.

비가 오면 왜 비가 오냐고, 흐리면 왜 날씨가 이 모양이냐고 황당한 투정을 부렸었지.

왜 그렇게 나를 따라 다니며 귀찮게 하느냐면서 멀리 멀리 밀쳐 내기도 했었지.

..........그래도...... 넌 또 다시 나를 찾아왔지.

 그러면서 우리 사이엔 너무 많은 세월이 켜켜이 쌓여 버렸지.

서로의 애정을 숨기기에는 우린 너무 오래 함께한 존재가 되어버렸지.

 

언제나 내 맘속에 함께하면서,

때로는 부딪쳐 상처를 받기도 하고 절망도 하지만 결코 피할 수 없는 존재, 너는 나에게 그런 존재다.

내 삶의 거울을 닦고 나를 들여다보며 웃을 수 있는 행복한 나날을 준 너,

고맙다.

더 이상 너를 힘들게 하거나 투정부리지 않을게.

너도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겠니!

며칠 휴가라도 다녀오렴.

그래서 가고 싶은데도 가보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만나고 하렴.

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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