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군가에게 강요당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을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보자.
다수의 힘이 무엇인가?
그들은 내게 자신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라고 요구한다.
나는 참다운 인간이 군중의 강요를 받아 이런 식으로 또는 저런 식으로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길을 가던 사람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돌부리를 욕하며 발로 돌부리를 걷어차자 자기 발만 더 아프게 되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혀를 차며 그의 우둔함을 말하자 그는 자신이 넘어진 것이 바로 당신들 때문이라며 비난하기 시작했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원님이 "넘어진 것은 당신 잘못이지 돌부리나 다른 사람의 탓이 아니다"라고 판결을 내렸다.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 세상의 비난거리는 대부분 자신의 잘못으로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려 하는 우를 범한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도 문제지만 재수 없다고 자신을 비난하고 자책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만약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면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갈 길을 가면 그만이다. 누구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돌부리를 탓하지는 않는다. 현명한 사람이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일어나지 않는 사람들은 하는 말이 있다. 바로 "가봤는데 없더라.", "해봤는데 안 되더라."이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과 같은 전철을 밟게 만들고는 세상을 불공평한 것이라고 탓한다. 하지만 당신이 세상을 탓하든 말든 세상은 '나 잡아봐라'하면서 잘 굴러간다. 세상은 생각처럼 그렇게 불공평하지 않다. 그 이유는 당신 혼자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 때문이다. 불공평하다고 포기하는 것은 단지 도전하지 않을 핑계거리에 불과하다. 남들 술 먹을 때 술 먹고, 남들 놀 때 다 놀고, 남들 고스톱 칠 때 다 치면서 세상을 불공평하다고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모욕이다. 세상이 불공평한 것이 아니라,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영국 청년 에드먼드 힐러리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 산을 등정하려다가 혹독한 기후 때문에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에베레스트 산이여, 너는 자라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자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다시 돌아오겠다. 기다려라."
그는 10년 후 에베레스트 산을 재도전하여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했다.
만약 그가 날씨나 기후 탓으로 돌려버리고 포기했더라면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을 등정한 인물로 기억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용기가 부러울 뿐이다. 우리는 흔히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두려움이 오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진정한 용기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미루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최대의 적은 두려움이다. 두렵기 때문에 늘 내일부터 한다고 말한다.
여기 내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희소식이 하나 있다.
'내일은 공짜'라는 이발소가 있었다.
그 간판을 본 사람들은 다들 내일이면 공짜로 이발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다음날, 이발소에 손님이 찾아왔다.
"손님 머리를 어떻게 손질해드릴까요?"
"알아서 잘 다듬어 주세요."
손님은 공짜 이발이라 굳이 까다롭게 굴지 않았다.
얼마 후 이발사가 말했다.
"손님, 다 끝났습니다. 마음에 드십니까?"
"네. 아주 깔끔하니 좋네요. 감사합니다."
손님은 이발사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이발소를 나가려 했다.
그러자 이발사가 손님을 불렀다.
"그냥 가시면 어떡합니까? 이발료를 주셔야죠. 8천원입니다."
"네? 8천 원요?"
손님은 의아해했다.
"밖에 걸린 간판을 보고 왔습니다. 어제 간판을 보니 '내일은 공짜'라고 해서 온 겁니다. 그런데 돈을 받으면 어떡합니까?"
그러자 이발사 왈,
"간판을 보세요. 내일이 공짜라고 했지. 오늘이 공짜라고 한 건 아닙니다. 그러니 돈을 내세요."
손님은 어이가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가 공짜라는 겁니까?
"간판에 적혀 있는 그대로 내일입니다. 오늘은 돈을 받습니다." 이발사가 시치미를 떼고 대답했다.
"그러면 결국 언제와도 돈을 받는다는 말씀이네요."
"손님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지만, 아무튼 저희 이발소는 오늘은 돈을 받고 내일은 공짜인 것이 확실합니다."
손님이 돈을 냈겠는가? 내지 않았겠는가?
1번 : 냈다.
2번 : 내지 않았다.
물론 이발사의 신출귀몰한 아이디어이기는 하지만, '내일'은 없으니 오늘에 충실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다. 그렇다. 내일이란 단어는 하나님의 달력에도 없다. 그런데도 '내일'이란 단어는 미루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마법과도 같은 날이다. 내일부터 시작하겠다는 것은 결코 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내일타령하지 말자. 오늘부터 하자. 지금부터.
-손님은 결국 돈을 냈다.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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