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경영/꿈과 비전

결과보다는 치열한 과정을 즐겨라

김부현(김중순) 2010. 1. 5. 11:11

나는 책 한 권을 책꽂이에서 뽑아 읽었다.

그리고 그 책을 꽂아 놓았다.

그러나 나는 이미 조금 전의 내가 아니다.

-앙드레 지드

 

2년에 한 번, 그것도 단 두 마디의 말밖에 하지 못하게 하는 수도원이 있었다.

이 수도원에 들어간 어떤 수도사가 처음 2년을 채우고 드디어 두 마디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그는 신부님에게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잠자리가 불편합니다."

다시 2년의 세월이 흘렀고, 젊은 수도사는 다시 두 마디 말을 할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

"밥이 맛없습니다."

다시 2년의 세월이 흐른 뒤 젊은 수도사는 짐을 꾸려 신부님 앞에 나타났다.

"저 갑니다."

수도원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그의 등에 대고 신부님은 이렇게 말했다.

"2년간 참은 끝에 할 수 있는 귀중한 두 마디 말을 그대는 모두 불평불만을 말하는 데 써버렸네. 그러니 당연히 견딜 수 없지."

 

그렇다. 우리의 마음은 조금만 풀어헤쳐 놓으면 하루에도 수십 가지의 불평불만을 만들어 낸다. 그럼 불평불만이 오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서 살려고 하기 때문이다.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되어 살지 않고 나를 내가 아닌 '너'로 투영시켜 보려는 생각 때문이다. 너 때문에, 너가 잘못해서, 너로 인하여....

 

하지만 세상은 결코 불평불만으로는 바뀌지 않는다. 세상이 바뀌는 것은 대안을 통한 행동함이다. 분명 시작할 때는 거의 같은 능력을 가지고 시작했는데도 어떤 사람들은 결과를 만들어내고 어떤 사람들은 낙오자가 되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또 낙오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계속 머무르게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부자 한 사람이 만 명이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게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누군가는 기회를 찾아 전환점을 만들고 누군가는 오는 기회조차 모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바로 불평불만 속에서 안주하느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행동하느냐의 차이 때문이다.

 

'그 행동'이 바로 자신의 목표를 이루어 가는 시작점이자 꿈을 이루게 하는 열쇠가 된다. 따라서 꿈을 가진 사람은 눈빛부터 다르고 행동거지나 마음가짐도 다르다. 물론 이들도 가끔은 절망에 빠지기도 하고 불평불만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찬란한 미래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꿈꾸는 사람들은 누구나 행동하는 양심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늘 꿈만 꾸면서 미적대기만 하고 나아갈 추진력이 부족하다면, <연금술사>를 읽어보라. 신부가 되기를 원하던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양치기가 되어 세계를 여행하겠다는 꿈을 가진 소년 산티아고, 그가 꿈을 찾아 떠날 수 있었던 계기를 준 책 속의 이야기다.

 

"이 세상에는 위대한 진실이 하나 있어.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거야.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은 곧 우주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지."

 

연금술이란 원래 고대 이집트에서 비롯되어 아랍에서 발달한 원시적인 화학기술에서 시작되었다. 귀중한 금을 만들어보기 위해 납이나 철 같은 금속을 녹여도 보고, 그 혼합물에 수은을 석어보기도 하는 등 여러 실험을 해 보았지만 16세기 들어 연금술은 단순한 미신으로 밝혀지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금술이 현대과학에 미친 영향은 대단했다. 실험과정에서 각종 기구나 기술들이 개발되었고 다양한 화학물질들이 발견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납덩어리에서 금을 만들어내려는 연금술사들의 일이 심리학적으로는 자기 자신의 무의식을 찾아내 스스로를 개발하고 완성해 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이 책에서 연금술을 공부하는 영국의 화학자 '나와', 그가 결코 연금술사가 될 수 없었던 이유는 숨겨진 진정한 자기 자신, 즉 마음의 금을 발견하지 못하고 오직 물질적인 금을 만드는 데 몰두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연금술사가 되려면 단순히 금속을 금으로 만들겠다는 꿈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내면에 감추어진 마음을 연마해야 한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이 꿈을 마치 금속을 녹여 금을 만드는 것과 같은 외형적인 기법에만 집중한 나머지 자신들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정신적인 부분을 등한시하는 우를 범한다. 꿈을 이루고자 한다면 꿈만 꾸는 늙은 크리스털 상인이 되기보다는 간절한 꿈을 찾아 떠나는 산티아고 양치기 소년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랑 애벌레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물었다.

"어떻게 하면 나비가 되죠?"

"날기를 간절히 원하면 돼. 하나의 애벌레로 사는 것을 기꺼이 포기할 만큼 간절하게."

"죽어야 한다는 뜻인가요?"

노랑 애벌레는 하늘에서 떨어진 세 마리의 애벌레를 생각하면서 물었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겉모습'은 죽은 듯이 보여도, '참모습'은 여전히 살아 있단다.

삶의 모습은 바뀌지만, 목숨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야. 나비가 되어 보지 못하고 죽는 애벌레들과는 다르단다."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여기서 노랑 애벌레는 '단순히 먹고 사는 것 이상의 무엇'을 원한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도 수많은 애벌레들이 모여 있는 '애벌레 기둥'에 휩쓸린다. 기둥의 꼭대기는 너무 높았고 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수많은 애벌레들이 서로 먼저 꼭대기에 오르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오직 남을 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밟히는 치열한 다툼이 있을 뿐이었다. 이런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노랑 애벌레는 자신의 참모습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마침내 그는 나비가 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참모습에 도달하는 것이라는 간절한 꿈을 갖게 되고,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죽음을 무릅쓰고 단단한 고치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애벌레와 같은 우를 범하고 있다. 늘 실체도 불분명한 가상의 적과 싸워야 하고 진지한 고민 없이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곤 하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출발하기 전에 자신의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것이 먼저다.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애벌레가 단단한 고치 속으로 들어가야 나비가 되듯 치열한 과정이 필요하다. 과정을 무시하고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를 통해 우리는 현재의 삶을 변화시키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질수 있게 된다. 그럼 애벌레에게 나비가 되도록 하는 힘은 무엇이었일까? 그것은 자신만의 간절한, 간절한 목표와 꿈이다. 

 

따라서 치열한 과정이 없다면 아무리 애벌레가 많아도 단 한 마리의 나비도 될 수 없다. 자신의 꿈을 위해 과정을 무시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짓밟아야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꿈이 아니라 한낱 욕심이다. 우리는 세상이나 다른 사람들이 내 뜻대로 흘러가 주길 바라지만 그것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지난 일에 왈가왈부하기보다는 내가 먼저 변하는 것이 세상이치다. 내가 변하면 세상도 변한다. '내가 먼저'야말로 만병통치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