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파트 역사 27

2. 한국 최초의 아파트, 충정아파트(1932년) 철거된다고?

관련 자료에 의하면, 충정아파트의 건축년도는 1932년, 1933년 또는 1937년에 지어졌다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어림잡아도 여든 살을 훌쩍 넘긴 아파트다. 아파트에 관심이 있어 서울을 방문할 때 종종 들르는 곳이다. 푹푹 찌는 지난 여름, 지하철 2·5호선 충정로역 9번 출구를 빠져 나와 조금 걷다 보니 차들이 쌩쌩 달리는 대로변 고층 빌딩들 사이로 빛바랜 연녹색 페인트를 머금은 낡디 낡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멀쩡한 아파트라도 보통 30년만 되면 철거하고 새로 짓는 것이 대세인 요즘, 여든 살이 넘은 아파트가 서울 한복판 대로변에 떡하니 버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오랜 역사의 가치에 비해 가까이 다가가보면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우리나라 최고령 아파트..

1. 세계 최초의 아파트-로마의 인술라(Insula)

세계 최초의 아파트를 이야기하려면 2,000년 전 고대 로마 시대로 거슬러 가야 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당시 로마는 세계를 호령하는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급속한 성장의 결과로 인구가 도시로 몰리고 도시가 급속히 팽창하자 심한 주택난을 겪게 된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처럼 로마는 오늘날의 공동주택인 집합 주거가 최초로 발달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적 요인이 작용했던 것이다. 천재적인 도로 건설 기술과 광대한 운송 네트워크를 형성했던 로마는 당시에 이미 세계 각처의 사람들이 몰려드는 국제도시로 성장했기에 주거문제가 가장 시급했다. 인술라insula, 사진 : , 2014.6.12. 당시 로마에는 부자들이 거주하는 ‘도무스domus'('집'을 뜻하는 라틴어로, 로마의 귀족들이 ..

8. 부산의 아파트 역사를 찾아서, <5>영선아파트

영선아파트는 영주아파트가 지어진 이듬해인 1969년 1월, 36㎡ 4개 동, 총 240세대 규모로 지어졌다. 지금은 대부분 공가로 남아 있고 37세대 정도만 거주하고 있다. 부산광역시 영도구 영선2동 흰여울문화마을 윗길에 있는 영선아파트는 지은 지 어느덧 40년이 지났다. 지상 5층인 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도 없고 층마다 공동화장실을 함께 쓰고 있다. 외벽 페인트칠을 새로 해서 겉에서 보면 그다지 낡아 보이지 않지만, 실내로 들어서면 천장과 벽면의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갔거나 갈라져 건물이 위태롭게 보이는 상태다. 봉래산 자락 아래 햇살을 맞으며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는 영선아파트는 특히 바다 조망이 으뜸이다. 그러나 노후화된 아파트의 현실은 천명관의 한 대목과 오버랩 되기도 한다. 엄마가 살고있는 집은 신..

7. 부산의 아파트 역사를 찾아서, <4>영주아파트

1968년 완공된 부산 최초의 시민아파트인 영주시민아파트는 37개동 888가구였으나 1969년 인근에 300가구가 추가로 들어섰다. 대단지였던 영주시민아파트는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 73-1 일원에 위치한 ‘부산 주택정책의 상징’으로 불린다. 시민아파트는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관련이 있다. 정부가 1968년 12월 발표한 아파트 공급 대책은 1971년까지 24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대규모 국책과제였다. 2천 동을 목표로 국민의 주거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빨리빨리 문화가 단기간에 기계처럼 찍어내는 아파트 공사에도 영향을 미쳐 멀쩡한 아파트가 탄생할 리 만무했다. 부실공사에 시공사와 공무원까지 비리에 가담하여 비리백화점이 된 것이다. 각 세대 당 전용 면적은 37.5..

6. 부산의 아파트 역사를 찾아서, <3>수정아파트

버스는 재개발지구를 굽이굽이 돌아 올라갔다. 진주가 나오겠다고 했던 중간 지점의 정류장에 다행히도 그녀는 아직 나와 있지 않았다. 버스는 종점까지 갔다. 그곳에서 내린 것은 나 한 사람뿐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낯설고 기이한 세상이 그래서 더더욱 믿기지 않았다. 집들이 모조리 부서져 있었다. 지붕이 주저앉고 벽이 무너지고 창문이 깨져, 사방에서 시멘트 먼지가 전쟁터의 포연처럼 피어올랐다. 뼈만 남은 짐승의 사체마냥 철골만 남은 가옥도 눈에 띄었다. 그 안의 누추한 살림살이들이 고스란히 비에 젖고 있었다. 살풍경한 배경과 어울리지 않게 샛노란 철모를 쓴 사내들이 쇠망치를 든 채 골목을 휘젓고 다녔다. 길바닥에 나앉은 주민 몇이 통곡을 하가 말고 철모들에게 욕을 버부었다. 다른 몇은 넋이 나간 듯 허공을 응시..

5. 부산의 아파트 역사를 찾아서, <2>좌천아파트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는 1941년과 1944년 지어진 청풍장과 소화장이지만, 동구 좌천동 737-1번지에 1962년 4월 지어진 좌천아파트는 4개동 36㎡ A~D 타입의 307세대로 부산 최초의 대단지 아파트이다. 충장고가로를 지나 부산역에서 서면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산 위를 바라보면 알록달록 무지개색으로 페인트칠 된 낮은 아파트 단지가 우뚝 서 있는데 바로 좌천아파트다. 높은 곳에 있어 가는 길은 호흡이 가쁘지만 부산항이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이 우수하고 증산공원 숲속에 위치하여 요즘 말로 조망권과 숲세권을 동시에 겸비한 아파트다. 1960년대 초부터 우리나라 아파트 역사는 일대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5.16쿠데타 이후 박정희 정부가 막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하는 시기였다. 1960년대 이..

4. 부산의 아파트 역사를 찾아서, <1>청풍장아파트

“도시의 활력은 낡고 오래된 건물에서 비롯된다.”는 캐나다의 도시학자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의 말처럼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장면은 오래된 지역이 그곳의 고유한 매력을 유지한 채 새롭게 태어나는 모습일 것이다. 사상공단의 공장이 커피숍으로, 창고가 식당으로, 인쇄소는 갤러리로 변신하고 있다. 본래의 쓰임을 다해 버려진 공간은 더 실용적이고 창의적인 공간으로 변신해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시민들의 일상도 풍부하게 해준다. 언젠가부터 ‘부산’하면 해운대 바다 앞에 우뚝 솟은 마린시티, 바다를 가로지르는 광안대교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와는 딴판인 과거 부산의 모습을 잘 알고 기억하는 이들이 만나고 싶어 하는 진짜 부산다운 모습은 구도심, 골목 속에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