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 머리통을
말랑말랑하게 해주는 책,
<르네상스 창조경영>
공자, 맹자, 순자, 노자, 묵자, 한비자가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기였던 춘추전국시대에 한꺼번에 등장했다. 서양에도 이와 같이 천재들이 한꺼번에 등장한 시기가 있었다. 단테,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 등이다. 한 세기에 한 명도 나오기 어려운 천재들이 혼란의 와중에 이탈리아 피렌체라는 작은 공국에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따라서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경쟁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천재는 평온할 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절박할 때 등장한다. 서 있으면 앉고 싶고 배부르고 등 따시면 드러눕기 마련이다.
천재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다행히 천재는 후천적으로 만들어 진다는 것이 역사의 가르침이다.
여기에 희망을 가져볼 만하다.
'르네상스 1번지'로 불러 마땅한 피렌체는 천재들의 창조성과 치열한 경쟁, 완벽함에 열정이 더해진 산물이다.
르네상스라는 시대정신을 경영학의 화두인 창조경영과 접목시켰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창조적 결합이요, 예술적 상상력이다. 또한 ‘르네상스에서 읽는 창조경영의 10가지 법칙’이라는 소주제 하에 마사초의 '프레스코화', '세례를 베푸는 성 베드로'에서부터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벽화'까지 르네상스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과 거장들의 치열한 삶에 나타난 눈부신 창조성을 현대의 경영환경에 재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흥미롭다.
-18쪽, 브랑카치 예배당의 마사초 프로스코화
특히 미켈란젤로의 소년 시절을 재현한 서두 부분은 흥미만점이다.
거장 마사초가 60년 전에 그린 프레스코화 작품 속에서 14살의 천재 소년 미켈란젤로는 '엄숙한 종교행사에도 불구하고 추위 앞에서 떨고 있는' 인간 그대로의 인간을 발견했다. 인간 본질에 대한 표현과 이해가 두 천재를 통해 접목되는 찰나,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결코 과언이 아니다. 종교가 모든 것을 지배하던 시대에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자 한 마사초나 그 의도를 꿰뚫고 청출어람으로 계승 발전하고자 했던 미켈란젤로, 정치는 도덕의 범주에서 행해지던 시대에 '정치와 도덕의 분리'를 주장한 마키아벨리, 그 어떤 미사여구도 필요 없이 르네상스 창조정신의 본질이자 단초였다.
길거리를 배회하던 무명 소년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을 높이 보고 2년 이상 자신의 식탁에서 음식을 나눌 수 있도록 편의를 베푼 ‘위대한 자’, 로렌초 데 메디치의 선견지명은 오늘날 기업가와 예술가의 관계맺음에 대해서도 시사 하는 바가 크다.
경영자의 인재 채용 방식은 창조적 인재로 바뀌어야 한다.
이에 앞서 경영자 자신부터 창조성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40쪽
이윽고 작은 배가 항구를 떠난다.
사람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는 배 안은 벌써 아수라장이다. 배 주위에는 여전히 배에 올라타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인간들로 인해 배가 심하게 흔들리고 금방 가라앉을 모양새다.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수도사와 수녀는 물론이고 가운데 돛대 대신 세워진 나무에는 빵 한 조각이 매달려 있다. 그 밑에서 수녀와 수도사는 입을 벌리고 그걸 서로 먼저 먹겠다고 아우성이다.
왼쪽 옆에 있는 수녀는 아예 한 손에는 술병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다른 사람과 멱살잡이를 하고 있다. 심지어 맨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바다에 먹은 걸 토해내고 있다. 무엇이든 절제하고 금욕해야 할 수도사와 수녀들이 이럴진대, 다른 사람들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배 위에는 온통 탐욕에 물든 광기어린 바보들뿐이다. 배는 돛대도 사공도 없으니 그냥 정처 없이 흘러갈 뿐이다. 어떤 목적지도 없고 미래도 없이 그저 오늘의 쾌락만을 위해 살아가는 바보들로 가득하다.
15세기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의 그림 <바보들의 배 The Ship of Fools>가 묘사하는 풍경이다. 부조리와 부패가 만연했던 당시 유럽은 광기어린 바보들의 시대였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인간군상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에도 배에 탄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를 상상하지도 인지하지도 못한 채 습관적인 향락잔치에 빠져 있다.
보쉬의 그림은 오늘날 기업들에게도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진다.
많은 기업들이 새로운 르네상스를 향해 출항하지 못하고 산업사회의 달콤한 성공에 안주한 채 자만에 빠져있는 배에 탄 바보들의 모습을 닮았다. 찰나의 향락을 찾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불나방 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산업사회의 미래가 어떤 파국을 가져올지, 그동안 기업경영의 근간을 이루었던 전략이나 자원들이 어떤 한계에 직면하는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기업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보라.
부조리와 퇴폐는 늘 새로운 시대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혼돈과 향락의 시대적 어둠을 뚫고 찬란한 르네상스가 꽃피었고, 총칼이 난무했던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성인들의 등장이 그랬다. 하나같이 그 바탕에는 창조정신이 있었고, 상상력이 나래를 펼쳤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나무 돛대 위 한 사람,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연상하게 하는 단 한 사람만이 깊은 사색에 빠져 있다. 그는 이미 다가온 문예 부흥기를 직감하고 깊은 고뇌에 빠져 있다. 그는 쾌락에 물든 중세인 이기를 거부한 르네상스인의 참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창조적 선각자의 모습이다. 산업사회의 달콤한 성공을 뿌리치고 창조사회로 전진하기 위해 고뇌하는 CEO의 모습이다. 다른 기업들이 산업사회의 전략을 맹신하고 있을 때, 혼자서 창조적 가치를 추구하는 현자의 모습이다.
전 세계 인구의 0.25%에 불과한 유태인이 세계적인 과학자의 17.6%, 미국 명문대학 교수의 20%, 미국 변호사의 40%, 1991년 이후 총 270명의 노벨상 수상자 중 45%인 122명이나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 즉 하나님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은 유일신 하나님의 존재를 구체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존재하지만 구체화 될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유대인들의 초월적 신이었다. 따라서 초월적 신을 경외하는 것은 순전히 각자의 상상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가들은 이 ‘초월적 상상력’이야말로 오늘날 유대인들을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43쪽
기업도 이른바 초월적 상상력을 통한 초월적 존재를 만들어야 한다.
초월적 존재란 초월적 가치에서 나온다.
초월적 가치는 이념이나 철학으로 나타나는 기업문화다.
지금과는 다른 미래가 도래한다는 것을 믿고 그 믿음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문화는 산업사회의 지식이나 기술로 측정할 수 없다. 유대인들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신을 창조해 낸 것처럼 기업문화는 구성원들의 상상력을 통해 창조기업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 상상력과 창조력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 CEO는 기업구성원들이 초월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도록 이념과 철학을 체계화하여 그것을 기업문화로 정착시킬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는 산업사회의 항구에 정박해 있는 기업들보다는 창조사회를 향해서 과감히 출항하는 기업들이 더 높은 점수를 받는다. 산업사회의 방식은 단기효율과 생산성에 국한되지만 창조사회는 성장성에 더해 고용성과, 고객 만족, 사회공헌, 협력사와의 동반성장, 지배구조의 투명성, 친환경 경영 등의 다면적이고 입체적인 면으로 확장된다.
배를 타고 정처 없이 세월의 바다를 항해하는 인간의 모습을 다양한 상징성을 통해 표현하고 있는 보슈의 그림은 슬프지만 인간군상의 바보스러운 모습이다. 새로운 트랜드를 잊고, 술을 마시고, 희희덕 거리고, 사기를 치고, 쓸데없는 게임이나 하고, 가질 수 없는 물건이나 추구하면서 사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바보들의 배’는 ‘바보들의 기업(The Company of Fools)’으로 오버랩 된다. 기업에 존재하는 바보들을 창조형 인간으로 바꾸는 것이 CEO들에게 주어진 과제다.
일찍이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를 주장한 바 있다.
이것은 밥상 위의 반찬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밥상을 뒤집어 엎는 것이다. 기존에 통하던 전략이나 방식, 작은 성공을 겉포장만 그럴듯하게 꾸며서 재탕 삼탕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산업사회와 지식정보화사회가 가고 창조사회가 도래하자 다급해진 경영자들은 인문학을 들먹이고 아인슈타인을 찾고 피카소 그림을 뒤적이고 있다.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이나 MBO와 같은 시스템화가 가능한 영역은 컨설팅업체에 맡길 수 있지만 시스템화가 불가능하고 객관적 측정 도구가 없는 창조성이나 상상력, 예술적 감성은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기업마다 처한 환경이나 가용할 수 있는 자원, 그리고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창조성, 상상력, 기업문화와 같은 정형화되기 어려운 것들을 정착시킬 수 있어야 바보기업에서 탈출할 수 있다.
창조성은 특출한 천재의 반짝이는 유레카 eureka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명확하지 않는 여러가지 사물들과의 상관관계를 간파해 낼 수 있는 보통사람의 일상적인 재능이다.
-크렉 위넷(P&G임원)
따라서 창조성이란 평범한 사람들이 가진 '사물을 종합 할 수 있는 통찰력'으로 설명될 수 있으므로 종합적 사고를 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창조성의 가능성은 활짝 열려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창조적인 느낌을 잊어버리게 됐을까?
내 안에 있는 '아티스트'는 언제부터 잠들어 버린 것일까?
우리는 나이가 어렸을 때는 창조성과 지능이 모두 높았다가
나이가 듦에 따라 각각 창조력과 지능 한 쪽이 강화되는 쪽으로 발전된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지능이 우수한 사람의 수가 늘어나고, 창조력과 지능이 동시에 우수한 사람의 수는 줄어든다.
-다카하시 마코토
대부분 나이가 들수록 창조성과 상상력이 뒤쳐지는 이유는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지식으로 잘 무장되어 학교 성적은 잘 나오지만 통합하는 시스템적 지혜는 없고, 암기는 그럭저럭 하지만 문제해결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을 양산하는 반 창조적 교육시스템이 판을 친 결과다. 꿈이 뭔지도 모르고 영어 단어를 외우고,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해 올인하는 학생들로 넘쳐 나는 곳이 우리나라다. 오죽했으면 고교생 중 상당수는 대학 가는 게 꿈이라고 한다. 슬픈 일이다. 우리 교육의 자화상이다.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 하고 노벨상을 휩쓰는 유대인은 '절대자'라는 '추상적이고 초월적인 것'을 최초로 믿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유일한 절대자의 존재를 인정했지만, 그렇다고 그 절대자의 형상을 만들지도, 조각하지도 그림으로 그리지도 않았다. 그들의 유일신은 여러 가지 동물모양으로 표현되었던 이집트의 신들과 달랐고, 아름다운 대리석 조각으로 구체화되었던 그리스나 로마신화의 신들과도 달랐다. ‘존재하지만 구체화 될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유대인의 초월적인 신이었다.
-48쪽
다른 차원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고 그 믿음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습과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고, 다른 세상과 이 세상을 연결시키겠다는 강력한 초월적 상상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초월적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서 창조성이 시작된다. 상상력이 있는 곳에 창조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아름다운 것중 하나는 '신비로움'이다.
그것은 모든 진실한 과학과 예술의 원천이다.
더 이상 경탄하지 않는 사람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아인슈타인
구시대의 고정관념이나 사고의 틀을 해체하는 것은 죽는 것보다 더 어렵다.(63쪽)
-64쪽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는 모순으로 가득한 예술품이다.
전통적인 다비드의 모습은 거인 골리앗을 물리친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묘사되는데 반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는 골리앗과의 전투가 일어나기 직전의 소년 전사의 모습을 그것도 완전 누드로 조각했다.
‘다비드’가 서양 조각사의 최대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미켈란젤로가 이룩한 완벽한 조형미에 있다. 머리가 과도하게 크게 조각되어 있고 머리에서 발끝으로 내려오면서 몸 아랫부분의 크기가 윗부분의 크기에 비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는 이미 20대 초반의 나이에 ‘다비드’와 같은 거대한 동상에 공간적인 원근법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만약 ‘다비드’가 등신대의 비율로 조각되었다면 아마도 그의 머리는 굉장히 작게 보였을 것이다. 관람객과 작품사이의 거리, 좌대의 높이, 작품의 4미터 크기를 고려하면 무려 7-8미터나 올려보기 때문이다.
-188쪽
미켈란젤로의 회화, 시스티나 예매당의 천장화를 보라.
시스티나 예배당은 완성된지 20여년이 지났을 때 예배당의 천장에 금이 가는 불상사가 발생하여 이를 보수한 후 틈이 벌어진 부분을 벽돌로 막고 그 위에 석고를 발라서 천장에는 이상한 모양의 흰색선이 무질서하게 나타났다. 이를 보다 못한 교황이 미켈란젤로에게 이 골치 아픈 천장을 프레스코로 장식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때까지 미켈란젤로는 조각만을 하였지 그림을 그린 적이 없었다.
미켈란젤로를 질투하였던 브라만테가 교황을 꼬드겨 미켈란젤로를 욕보이려는 음모에서 생긴 일이었다. 미켈란젤로는 천장벽화를 구약성경의 내용을 주제로 채워넣었다. 당시 르네상스 화가들의 종교적 주제는 성모상이라던지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이나 부활 등 신약성서의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구약성경의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으로 그린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말 못할 고생을 하면서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벽화를 완성하였다.
이 그림은 서양미술사 최대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망치와 정으로 대리석을 깎아내던 그가 어떻게 붓과 석회로 이런 천하의 걸작을 남길 수 있었을까. 이렇게 기적에 가까운 창조성은 몰입의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삶과 작품을 동화시켜 완전한 몰아지경에서 그림을 그린 것이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절대적 행복감은 몰입의 경험에서 태어난다.
돈이나 명예가 많다고 절대로 행복한 것은 아니다. 몰입의 행복감이 있을 때 맡겨진 업무에서 엄청난 창조성을 유발한다는 것을 미켈란젤로의 작품에서 보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영속적인 이윤창출을 통한 공공선을 실현하는 것‘이 경영자의 책무다. 따라서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는 당위성을 주장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기업 자체가 전략 그 너머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도록 구성원들의 의식수준을 바꾸어 기업문화로 정착시킬 수 있어야 한다.
직원들이 월급을 받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어떠한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이 일을 한다는 신념이 공유되도록 하는 것이 CEO의 역할이다. 같은 일을 하는 석공들도 단순히 돌을 깎는다는 사람도 있지만 하나님의 집을 짓는다는 석공도 있다. 누가 더 신바람 나게 일할 것인가는 분명하다.
-80쪽
르네상스의 중심이자 이탈리아 예술의 극치, 피렌체
피렌체는 ‘생각으로 사는 모든 사람들의 어머니’ 같은 도시라는 게 저자의 표현이다.
일찍이 ‘천재들의 도시’로 명명되어진 피렌체가 배출한 천재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176쪽, 피렌체 찬가
피렌체를 예술의 도시로 만든 장본인은 천재들의 창조성을 알아본 메디치 가문이었다.
-81쪽
메디치 가문은 뒤에서 피렌체를 은밀하게 통치했다.
-100쪽
메디치 가문은 절대 앞에 나서는 일이 없었다.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는 것을 가문의 처세술로 삼았다.
-101쪽
하늘 아래 새 것은 없다고 했다.
미켈란젤로의 창조적 상상력은 모방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라오콘 군상>을 통해 <노예상>의 모티브를 얻었다.
-113쪽, 라오콘 군상
-115쪽
인공의 세계에 나타난 모든 새로운 물건들은 이미 존재하던 모종의 대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조지 바살라, <기술의 진화> 중에서,
경쟁이 없는 창조적 발전은 없다.
-140쪽
창조적 경영의 기본 인프라는 경쟁적 환경이다.
-142쪽
창의적 인재를 알아보는 것이 뉴리더들의 능력이다.
-157쪽
컨설팅 분야의 세계적인 기업인 보스턴컨설팅에서 경영자교육을 할 때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것은 ‘자기 회사가 처한 환경을 정확하게 파악하라.’는 것이다. 현실을 명확하게 분석해야 대안이 나온다. 최신 경영전략들을 따라한다고 해서 모든 회사가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동종 업계의 동향과 거시경제의 흐름에서 볼 때 올바른 전략은 무엇인가, 어떤 부문을 재조정해야 하는가와 같은 기업의 현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는 것이 먼저다.
현실을 정확히 진단해야 그에 맞는 대안이 나온다.
중세의 종말로 찬란한 르네상스가 꽃피었고, 힘을 중시하던 냉전체제가 붕괴하면서 시계화시대가 도래했다. 이러한 역사의 큰 변곡점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왔다. 기업으로 범위를 좁혀보면 산업화시대의 합리성 추구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비합리성으로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합리성은 객관적 자료와 데이터, 통제와 지시로 대별되는 ‘시스템적 경영’이지만 비합리성은 개량화 할 수 없는 무형의 가치가 기업경영을 성패를 결정짓는다. 시스템 경영하에서 경영자는 말 잘 듣는 직원을 뽑아서, 적당히 월급을 주고, 주기적으로 업무의 진행정도를 체크하면 충분하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경영의 시스템화는 구시대의 잔재로 치부되고 있다.
지식수준이 높고 가방끈이 긴 우수한 직원일수록 시스템 경영에서의 적응도는 높다. 변화와 혁신을 방해하는 기존 경영전략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데는 탁월하다. 따라서 이러한 인재들은 기업문화경영을 구축하는 데는 마이너스다. 변하자고 하면 변하지 말아야 할 이유들을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가 르네상스에서 인문경영, 창조경영, 예술경영의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메디치 가문의 지혜를 배우기 위함이다. 오죽했으면 `메디치 효과(Medici effect)`라는 용어가 경영학에 등장했겠는가. 메디치 효과란 서로 관련이 없는 것들을 융합해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거나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경영 컨설턴트 프란스 요한손(Frans Johansson)이 처음 사용했는데, 중세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이 음악, 미술, 철학 분야의 인재들을 두루 후원한 것이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데서 유래했다.
이제 철을 깎는 인문학도, 그림 그리는 경영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들의 예술적 감성이 경영환경을 새롭게 진일보 시킬 수 있다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이탈리아의 오늘을 가능하게 한 메디치 효과는 창조경제를 구현하려는 우리에게 큰 영감을 준다.
거듭 강조컨대, 미켈란젤로, 단테,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걸출한 예술 스타들이 르네상스의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메디치 가문의 적극적인 후원 때문이었다. 그런데 때늦은 감은 있지만 우리나라에도 메디치 가문처럼 인문학에 적극 지원하겠다는 그룹이 있다. 국내 유통업계의 리더 신세계 그룹 정용진 부회장이다.
업계 라이벌인 롯데그룹이 ‘아시아 TOP 10 글로벌그룹’이라는 기치 아래 외국어 능력을 우대하는 것과 사뭇 다른 움직임이다. 그는 2014년 3월 '한국의 메디치 가문'이 되겠다고 선언 했다.
15~17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300년 동안 인문학과 문화예술을 적극적으로 후원한 메디치 가문처럼 우리나라의 인문학 전파에 매년 20억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신세계 메디치 가문 프로젝트'는 인문학 소양을 갖춘 미래의 예비 리더 양성, 전 국민 대상 인문학 지식 나눔, 우수 인문학 컨텐츠 발굴, 전파 등으로 크게 3단계로 진행될 예정이다.
특히 올해를 인문학 전파의 원년으로 삼고 ' 인문학 청년 영웅 ' 양성에 나서기로 했다. 정용진 부회장이 인문학 전파에 적극적으로 나선 배경에는 '사람이 중심이 되고 바탕이 되는 인문, 예술, 패션을 통해 고객의 행복한 라이프스타일을 디자인한다'는경영 이념이 자리잡고 있다.
평소 그는 " 유통업의 미래는 시장점유율인 마켓셰어(market share)보다 소비자의 일상을 점유하는 라이프셰어(life share) 를 높이는데 달려있다 " 고 강조했다. 또한 " 문사철 (문학, 역사, 철학)뿐 아니라 음악과 문화예술에 대한 폭넓은 관심이 유통에 감성적인 요소를 가미하는 동력이 된다 " 는 것이 정용진 부회장의 지론이다.
경영, 마케팅, 건축, 창조, 혁신, 결국 사람이다. 사람이 희망이고 사람이 미래다.
사람을 등한시하고 지나치게 기법에만 몰두하는 산업화식 논리는 한계에 직면했다. 우리 경제가 정체되고 실업률이 증가하고 자살율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통과의례가 아니다. 인문학을 내팽개친 결과물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상아탑이라는 대학에서조차 인문학이 홀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학과가 통폐합 되고 아예 폐지되기도 한다. 돈이 안 되기 때문이라는데 어처구니없는 사태다.
아무튼 진일보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다른 그룹들이 어학이나 자격증 같은 스펙에 집중하고 있는데 신세계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정용진 부회장이 지향하는 인문학 중심 경영이 빨리 자리잡기를 기대한다. 그래야 다른 기업들도 인문학에서 답을 찾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겉으로는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외치고 있지만 말 뿐인 인문학 짝사랑에 불과해 보인다.
신세계그룹만큼은 아니지만 조용하게 창조경영, 예술경영을 선도하는 기업이 있다.
파라다이스그룹이다.
호텔과 카지노를 중심으로 한 우리나라 관광산업의 선도기업, 파라다이스의 경우 핵심사업을 보면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는 집중화 전략을 펴고는 동시에 그 저변에는 예술과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지금도 많은 CEO들이 경영학원론 첫 페이지에 나오는 이른바 '경영은 종합예술이다.'라고 하지만 경영일선에선 먼 나라 이웃나라 이야기에 가깝다. 그런데 파라다이스는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경영에 예술을 입히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파라다이스의 ‘예술경영’은 결코 일회성 유행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유독 사회공헌과 문화와 낭만을 사랑했던 창업주 전락원 회장의 철학이 체화된 결과다. 남들이 경영기법을 앞 다투어 도입하던 시절, 개인 사재를 털어 현대문학관을 설립하고 각종 문화재단들을 줄줄이 만든 것을 보면 그의 예술사랑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월간 경제풍월>은 ‘드높은 이상향을 꿈 꾼 도요새’라는 전락원 회장의 추모집을 통해 “예술과 와인을 사랑한 경영자, 전락원 회장”이라고 강조하면서, ‘고인은 세상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현금과 빌딩에 집착한 기업인이 아니라, 예술과 문학과 자연을 사랑하고 와인에 도취하고 순수한 사람들을 좋아한 낭만주의자로 살다 갔다’고 추모했다.
파라다이스그룹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 역시 유별나게 '예술경영'을 강조하는 파라다이스의 독특한 기업문화 때문이다. 다른 기업들이 성과와 숫자에 집착할 때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문화와 예술을 사랑한 그룹이다. 기업문화가 수학공식처럼 누구나 공감하는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익히 알았지만 ‘파라다이스웨이’로 대별되는 파라다이스 그룹의 기업문화를 들여다보는 순간 ‘아차!’ 싶었다. 파라다이스의 기업문화는 ‘파라다이스 웨이’로 대별된다.
파라다이스 웨이는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기업이념, 비전, 경영원칙, 공유가치’다. 파라다이스 기업문화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은 ‘창조, 상상, 예술’이다.
물론 창립 이래로 문화와 예술을 사랑한 기업이기는 했지만 다른 기업에 비해 예술사랑은 지나칠 정도다.
홈페이지(www.paradisegroup.co.kr)부터 압권이다. 심플하다. 예술적이다. 일반적인 기업들의 홈페이지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구글의 홈페이지가 부럽지 않다. 메인 화면을 보면 박물관이나 역사 깊은 예술관련 회사로 착각할 정도다. 파라다이스 기업문화를 이해하려면 경영 이전에 예술을 알아야 한다. 예술적 감성 없이는 파라다이스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파라다이스의 문화와 감성 예술이 바탕이 된 기업문화가 새로운 경영트렌드를 선도해 나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파라다이스 카지노는 최근 새로운 모델로 스포츠계 인물을 처음으로 발탁했다. EPL 첼시 감독 무리뉴다. 파라다이스 그룹은 "카지노 고객 중 상당수가 중국인인데, 중국에서 EPL의 인기가 높아 리그를 대표하는 스타 감독 무리뉴를 기용했다"고 설명했다
창조경영의 가장 큰 적은 산업화식 성공이다.
창조경영하에서는 산업화식 성공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그런데도 그 성공방식을 실패할 때까지 밀고 나간다.
그것은 용감한 것이 아니라 무모한 것이다.
한 번의 성공은 한 번으로 끝난다.
창조경영 하에서의 성공방정식은 그 한 번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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